100-47편
한 사람을 돕는 일, 세심한 시선으로부터
박세경
박세경 선생님 실천 뒤에는 학습이 있습니다. 이상이 분명합니다.
사람을 도울 때 무엇을 보아야 할지 확실합니다.
"백 씨 아저씨의 우울증에 관여할 수 있는 깜냥은 없었습니다.
경제적 지원으로 아저씨의 삶을 단순화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표면적인 어려움, 그 너머에 시선을 두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여전히 희미했지만,
단 한 가지 아주 큰 변화가 있다면 백 씨 아저씨를 찾아뵙는 제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백 씨 아저씨를 다시 찾아뵙기 시작했습니다."
박세경 선생님의 시선이 달라진 정확한 이유과 계기가 글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체 글을 읽다보며 짐작이 갑니다.
사회사업가의 달라진 시선은 질문을 다르게 했습니다.
사회사업가의 이전과 다른 질문에 아저씨께서 눈이 빛나고 몸이 바빠집니다.
"아저씨는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많다고 하여 불쑥 찾아가지 않고,
약속 시간에 아이들이 아저씨를 정중히 만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혹여나 이웃들과 술 약속이라도 생기면 ‘나 그때 아이들 만나기로 했는데 안 되겠다.’ 생각하시기 바랐습니다."
백 씨 아저싸와 적극적 복지 사업을 펼치게 된 바탕에는
평소 꾸준히 주민들과 동네 아이들과 이룬 다양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러 모임이 있이니 아저씨를 만나면서 어떤 적극적 복지를 만들어 이뤄갈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당장의 물질적·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당면한 분을 만날 때면, 눈에 보이는 필요에 골몰했습니다.
사실 어려운 상황이라는 전제를 빼고도 그랬습니다.
물론 이를 무시할 수 없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양한 영역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삶이 곧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아닌 것도 알겠습니다.
내가 경제적 필요만 충족하며 살지 않듯,
내가 만나는 주민에게도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는 일상의 관계와 돌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표면적 문제 해결로 주민들의 삶을 국한하고,
약한 사람이나 받는 존재 정도로 가두어두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소관을 다했다고 뿌듯해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한 사람을 돕는 일, 세심한 시선으로부터'을 읽은 뒤,
댓글로 '읽었습니다' 하고 남겨주세요.
소감이나 질문을 써도 좋습니다.
첫댓글 당사자를 바라볼 때 세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소 사람을 만나며 이 세심함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당사자 삶의 작은 일부라도 힘이 될 수 있음을, 그 힘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음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여전히 희미했지만, 단 한 가지 아주 큰 변화가 있다면 백 씨 아저씨를 찾아뵙는 제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당사자를 ’깊이‘ 마주해야 하며, 마주하기 전에는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잘 이루어져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보이는 상황과 어려움을 너머 그 삶을 깊이 살피고자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묻고, 듣는 과정은 당사자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발걸음이 되어줄 것임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그냥 마주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삶을 보다 깊이 바라보고자 힘써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가 되고, 도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낍니다. 사회사업가들 역시 그렇다는 말이 매우 공감됐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의 쓸모와 가치를 느낄 때 즐겁게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근본은 변함이 없으니 원칙에 따라 이루어가는 방법만 변경하면 된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사자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사회사업가들이 당사자를 어느 정도로 깊게 바라봤을 때 개입의 방법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심한 시선은 인간적인 시선이자 곡선의 시선, 이는 질문을 달라지게 하며 당사자의 삶을 변화하게 합니다. 자신이 좋아했고 잘하는일로 당사자가 살맛나게 거든 실천기록 잘 읽었습니다.
백씨 아저씨가 아이들과 만날 준비를 하며 분주해진 모습을 보며 '살 맛 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저 또한 배웠습니다. 좋은 실천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사자에게 조금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조금 만 더 나은 삶을 살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그릴지, 그리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내 삶을 얼마나 부족하게 보았길래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은 삶도 덜 나은 삶도 늘 당사자중심에서 생각해야겠습니다.
-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당장의 물질적·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당면한 분을 만날 때면, 눈에 보이는 필요에 골몰했습니다. 사실 어려운 상황이라는 전제를 빼고도 그랬습니다. 물론 이를 무시할 수 없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양한영역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삶이 곧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아닌 것도 알겠습니다. 내가 경제적 필요만 충족하며 살지 않듯, 내가 만나는 주민에게도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는 일상의 관계와 돌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