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7,14-15.18-20; 마태 12,46-50
+ 찬미 예수님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서의 마지막 부분을 들었는데요, 미카 예언서는 기원전 8세기경 쓰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마지막 부분은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시작되는데요, 과수원은 이방인이 차지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숲속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백성이 당신의 소유인 양 떼이기에,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달라’고 청하는 기도가, 지난 주일의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미카’라는 이름과 연관이 되는데요, 왜냐하면 예언자 이름 ‘미카’는 “누가 야훼와 같으랴?”라는 뜻의 ‘미카야후’의 줄임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을 뜻하는 ‘엘’을 붙이면,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뜻의 ‘미카엘’이 됩니다.
그런데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말을 하느님께 하게 되면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누구입니까?”라는 의미가 되어,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하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독서의 나머지 부분과 화답송의 기도가 이 말씀과 결합되어 더욱 간절하게 와 닿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소서,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에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당신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십니다.
제가 1년 반 전에 우리 본당에 부임해 왔는데, 오늘로서 이 복음이 네 번째 나왔습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에서 한 번씩 나왔고, 다시 마태오 복음입니다. 계산해 보면 이 말씀은, 앞으로 제가 본당을 떠날 때까지 열 번 정도 더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여기서 ‘형제’는 친형제가 아니라 사촌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낳으셨기 때문에만 어머니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셨기에 더욱 예수님의 어머니시다’ 이 말씀을 반복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과 같이 말씀해 주셔서 다행인데요, 만일 예수님께서 ‘내 혈육이 우선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복음이 유대인 그룹을 빠져나오기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사도들 모두 유대인이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혈육이 아닌 우리 누구나가 예수님의 형제와 누이가 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도 서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나는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밖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가는 사람에 속하는가, 아니면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는 말을 듣고 있는,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 안에 포함된 사람인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사촌 형제들처럼, 내가 그간 가져왔던 나의 지위, 남들이 나를 대해 주는 태도 같은 것에 기대어,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면,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당신 소유인 당신의 양 떼’ 중 하나라 자처하며,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가운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기도를 실천하는 것이 참으로 예수님의 형제가 되는 길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는 말씀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들어야겠습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러시아 이콘, 1340년.
첫댓글 미카엘(“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누구입니까?”)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하는 말이군요. 우리집 미카엘라에게도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해봅니다^^
평상시 저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을 이모님이라 호칭하듯, 교회 안에서 제 옆의 분을 무심하게 형제님 자매님이라 부릅니다. 그러다가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눈에 힘을 주고 제 마음속에서 외칩니다. 때론 소리도 내서 외칩니다. 누가 형제이고 자매입니까!
많이 부끄럽네요. 주님이 저의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