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산 사람이 맞이한 명랑한 노년
----박정란 제2 수필집 『월반하세요』
양 애 경
박정란선생님처럼 부지런한 분을 본 적이 없다. 제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는 교수님의 완벽한 아내, 잘 키운 두 아드님의 자애로운 어머니, 100세 넘으신 친정아버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딸…. 이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텐데, 공주문인협회, 금강여성문학회, 시낭송협회를 이끄시며, 색소폰 연주 봉사를 정기적으로 하시고 전원주택지 텃밭에 꽃과 야채를 가꾸신다. 굉장한 에너지를 지닌 여걸이신가 보다 하겠지만, 사실은 특유의 약간 낮고 정감 어린 음성을 가지고 눈길에 따스한 미소가 풍기는 아담한 여성이시다.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도 자투리 시간에 뜨개질을 하고 계시다. 주변 대부분이 박정란 선생님이 떠주신 꽃장식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 박정란 선생님은 작은 태양처럼 주변에 빛과 온기를 나눠주는 분이다.
필자도 박정란 선생님 곁에서 따스한 볕을 쬐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이번 제2 수필집 원고를 받아 읽으면서 선생님에 대해 다시 알게 되는 것이 많다.
박정란 선생님은 2007년 수필시대로 등단하였고, 2017년에 첫 수필집 『짧은 시간 긴 여행』을 출간하였다. 나태주선생님이 그 발문에서, ‘매우 솔직하고 담백한 글, 경험한 그대로를 썼고 생각한 그대로를 쓴 글’이며, ‘이렇게 굴절 없는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공감한다. 박정란 선생님은 2022년에 애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첫 수필집인 『짧은 시간 긴 여행』이 유년과 중년을 거쳐서 온 세월 동안의 가족과 이웃과의 희로애락을 담았다면, 이번 두 번째 수필집 『월반하세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지만 노년에 대한 사색이 더 깊어져 있는 점이 돋보인다. 백세시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절정에 달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노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면에서 필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노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며, 질병과 경제적 위기, 외로움이라는 위험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많다. 이런 시기에 박정란 선생님의 소박하면서도 현명함을 담은 글들이, 많은 시사점과 위로를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는 첫 수필집 이후 작가의 생활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것이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1. 가족 안에서
1) 자매와 아버지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과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수필은 시나 소설처럼 비유법이나 허구라는 보호막이 없다. 그래서 쓴 사람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은 기분 좋게, 때로는 뭉클하는 감정으로 읽힌다. 고개를 끄덕이며 책 속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박정란 선생님의 수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가족이다. 첫 작품 <뭐 해 뭐 해>는 박정란 선생의 친정의 가족사가 한눈에 읽히는 작품이다. 딸을 다섯 낳은 후에 2명의 남동생이 태어났다니, 그 자매들의 관계가 얼마나 아기자기할지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우리 자매들의 카카오톡 단톡 채팅방 알림음이 ‘뭐 해 뭐 해’이다. 자매들이 톡방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한참을 가야 끝이 난다. 외출 시에나 혹은 누굴 만나는 자리에 이 알림음이 켜져 있으면 시끄러워서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급한 연락을 서로 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알림음을 무음으로 해놓는다.
어느 날은 한두 시간 후에 카톡을 살펴보면 40여 개가 와 있거나 60여 개가 와 있어서 친절한 안내, ‘여기까지 읽으셨습니다’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가야 한다. 오늘은 또 뭔 일이 있었지?
<뭐 해 뭐 해> 중에서
충남의 각 지역에 흩어져 사는 다섯 명의 자매들이 단톡방에 모여 있다. 그 채팅 알림음이 ‘뭐 해 뭐 해’다. 자매들이 대화를 시작하면 단톡 알림음이 연속으로 ‘뭐 해 뭐 해’하고 울리기에, 일이 있을 때는 잠시 알림음을 꺼놔야만 한다. 결혼하여 각자 자기 가족을 이룬 모든 자매가 이렇게 사이좋게 소통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주변에서 보아 안다.
자매들의 가장 큰 공동 관심사는 100세가 넘은 아버지의 신상이다. 치아가 좋지 않은 아버지의 식사를 위해 아버지가 드실 수 있을 만한 음식에 관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오늘 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어하시는지 알린다. 그러면 음식솜씨 좋은 자매는 음식을 만들고, 가까이 사는 자매는 아버지께 음식을 날라다 드린다. 그리고 얼마큼, 얼마나 맛있게 드셨는지, 다음에는 어떤 음식을 마련해야 할지를 의논한다.
박정란 선생님이 모임을 주선하고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특출하신 것이 어디서 왔는가 했더니, 어려서부터 5자매가 협력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듯하다.
작품 <일요일의 외출>은, “매주 일요일, 우리 형제자매들은 아버지 교회에 간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아버지 교회’란 말은 종교에 관한 말이 아니다. 독실한 교인들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듯, 모든 형제자매가 일요일이면 아버지를 찾아뵙자는 말이라고 한다. 아버님이 장수하시다 보니 어머니 두 분을 차례대로 떠나보내시고 혼자 남으셨다. 7명의 형제자매가 일요일마다 같이 또는 번갈아 찾아뵙는 것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버님은 본인이 가보고 고르신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셨다. 그렇지만 일요일의 외출은 계속된다. 모시고 나가 병원 순례, 이발, 식사대접, 필요한 물건 사드리기 등 도와드려야 할 일이 많다.
아버님의 건강 상태는 모두의 가장 큰 관심사다. 건강이 좋으신 편이지만, 고장 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얼굴이 후끈>에서는 아버님 눈 밑에 뾰루지가 나서 낫지를 않는다. 뭔가 심상찮다는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가니, 피부암이라고 한다. 수술을 할 것인지 그대로 두는 게 나을 것인지 갑론을박한다. 아버지께서 수술을 겁을 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 힘들게 수술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한 5년 사심 안될까요?”
“나도 그게 좋겠다. 무서워”
-- <얼굴이 후끈 중에서>
아버지 모시고 여러 개의 병원에 가 상담하고 시간차를 두고 고민한 후, 마지막으로 만난 의사에게, ‘선생님! 노인이시니 수술이 무척 걱정됩니다. 선생님의 아버지셨어도 저 연세에 수술하시라고 권하실 건지요?’하고 묻고는, ‘네. 그럼요.’하는 자신 있는 대답을 들은 후에야 수술을 결심하게 된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하여 당시 80세이셨던 아버님은 이제 101세가 되셨다 한다.
이렇게 20여 년이나 더 사시는 아버지께 한 5년만 더 사시라는 말씀을 드렸었으니 얼마나 죄송스러운 말이었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후끈하다.
-- <얼굴이 후끈> 중에서
이 부분에서 푹~ 웃고 만다. 아이러니다. 고통을 겁내시니 덜 힘들게 할 방향을 찾으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향후 20년 이상을 더 사실 아버지께 ‘한 5년만 더 고통 없이 사시는 게 어떠냐’고 한 자식은 자다가도 이불을 찰 정도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인간적으로 공감이 간다. 사실 부모에게 잘한 자식일수록 나중에 돌아가신 후에 후회도 많고 반성도 많은 법이지 않은가.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실제 100세가 될 때까지 사는 분은 흔하지 않다. 사람은 얼마큼 사는 게 적당할까? 몸과 마음이 온전한 상태로 나이 든다면 100세가 아니라 120세를 살아도 좋겠지만, 세월에는 예외가 없다.
노인의 컨디션이 확 나빠지는 변곡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고관절 골절이다. 박정란 선생의 아버님도 100세의 나이에 고관절 골절을 당하셨다 한다. 코로나 시국이니 입원, 수술, 회복, 재활 등의 과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매일 전화와 영상통화로 아버지 회복 상태를 체크해 보며 자칭 간병 달인이라는 분에게 일당도 정해진 가격보다 더 주며 부탁했건만 10여 일이 지나 퇴원한 후 확인해 보니 수술 부위보다도 더 아파하시는 곳이 기저귀 때문에 아래에 생긴 습진이었다.
“기저귀를 막 잡아 빼, 인정사정 없이.”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다섯 시간은 걸렸나벼.”
설마 돈 받고 일하는 분이 그리 오래 비웠으랴만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그리 길게 느끼셨을까. 말씀 하나하나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효도 참 어렵다> 중에서
병원에서 노인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나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의 요양사들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많다. 노인환자는 몸만 못 쓰는 게 아니라 섬망과 치매 등으로 인해 간호하기가 몇 배나 힘들다. 자식도 못하는 일을 타인이 돈 받고 하려니, 게다가 요양사는 한꺼번에 10~20여 명을 돌보기도 하니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맡길 수밖에 없는 자식들은 죄인일 수밖에 없다.
박정란 선생의 아버님은 그런 점에서 최고의 보살핌을 받는 분이다. 고관절 골절 수술을 마치면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게 보통이지만, 막내따님이 집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남자어르신이니 키도 크고 몸도 무겁다. 자매들 서너 명이 함께 일으키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한다. 그래도 대소변 시중과 아버님의 섬망은 버겁다. 섬망이 오면, 헛것을 보고, 자신이 다쳤다는 것을 잊고 링겔과 관들을 뽑아버리는가 하면, 부러진 다리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박정란 선생의 아버님도 이런 과정을 거쳐 간신히 회복되신다.
그렇지만 이런 부상은 원상복구되지는 않는다. 아버님은 휠체어 상태로 실버타운으로 돌아오셨지만 오전에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야간엔 개인 간병사를 들여서 급한 불을 껐다. 딸들은 급한 연락이 오면 달려가야 하는 대기조 상태다.
한 달 동안 녹초가 된 실버 딸들은 다가올 자신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보며 각자의 노후를 더 걱정하고 있다. 아버지는 7남매나 두셨으니 가능한 일인데 자식을 하나 둘 둔 우리들은 이다음 어쩌나 걱정이다.
그나저나 효도하기 참 어렵다.
--<효도 참 어렵다> 중에서
아버님이 100세면 자식들은 70이 넘은 나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된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노노케어(老-老care)’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라는 말이다. 자기 몸도 겨우 지탱할 나이에 윗세대 노인을 돌봐야 한다. 박정란 선생님네는 7남매나 되고 드물게 사이좋은 남매이니 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세대의 노후는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복지시스템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노인 문제의 해결은 갈 길이 멀다. ‘효도하기 참 어렵다’는 고백이 마음에 와 닿는다. 한편으로, 이 사이좋은 대가족에 부러움도 느낀다.
2) 부부
수필 <내게 소중한 것>은 문정희 시인의 시 <남편>의 인용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와 전쟁을 제일 많이 한 남자’라는 구절이다. 처음부터 잘 맞는 부부가 있을까.
우리 부부도 그렇다. 침대의 온도부터 다르다. 나는 따뜻한 걸 좋아하지만 더우면 못 자는 남편은 겨울에도 시원해야 한다. 나는 단 커피를 싫어하는데 남편은 달달한 커피를 좋아한다. 어디 그뿐인가.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남편은 여행이나 쇼핑도 좋아하고, 나는 꼭 필요할 때 외에는 사람 많은 곳은 피곤해서 돌아다니길 즐기지 않는다.
급하고 직선적이어서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누가 있거나 말거나 화를 내서 가끔은 자존심도 상하고 한바탕하고 싶지만 대부분 참고 산다.
<내게 소중한 것> 중에서
박정란 선생님과 부군이신 김학수 교수님이 함께 색소폰 연주를 하거나 모임에 함께 하신 모습을 뵈면 참 이상적인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분보다 안사람이 더 씩씩한 결합이 아닐까 얼핏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책을 보면서 의외로 진짜 부부를 이끄는 사람은 바깥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원주택지를 사서 텃밭을 일구게 된 것도, 색소폰 연주를 부부 함께 시작한 것도, 젊으실 적 스포츠용품 상점을 차린 것도 그렇다. 물론 자잘한 일들은 아내의 의사에 따르셨을 것이나, 큰일은 남편분이 결정하셨고, 아내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신 것 같다.
두 분이 결혼하게 되었던 즈음의 사연도 재미있다. 결혼 전, 신랑 자리가 홀어머니에 가난한 집 아들이란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한다. 고민 끝에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궁합을 보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으니 둘이는 볼 것도 없이 좋은 사주이고 남자는 장관 자리까지 올라갈 사주니 결혼하시는 게 좋겠소. 그리고 아가씨가 남편을 잘 보필해 앞으로 큰사람이 되게 해 줄 사주니 걱정하지 말고 해요.”
“겨우 시골 학교 선생인데 뭔 장관까지 가요?”
“문교부 장관도 있잖소.”
- <새해에는> 중에서
대화가 소설처럼 재미있다. ‘장관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이 남자 나쁘게 풀리지는 않겠거니 희망을 걸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설명은 빠졌지만 신랑감이 훈남이신 것도 작용했을 것 같다. 결과는 좋았다. 본인의 노력과 아내의 뒷바라지로 남편은 후에 존경받는 대학교수가 되신다.
그래도, 부모님이 걱정하셨던 대로 결혼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경제적 이유로 아이들을 기르며 가게를 운영했는데, 나중엔 병드신 시어머님을 집에 모시고 여러 해 간병해야 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묘해서 힘든 것보다 더 참기 어려웠던 것이 남편과의 불협화음이었던 듯하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 할까.
<아들아! 넌 그러지 마>에서 아내가 남편과 함께 먹을 점심밥을 준비하려 하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남편은 점심약속이 생겼으니 밥을 하지 말라고 한다. 아내는 부부 동반 초대인 줄 알고 점심 먹으러 온다는 아들까지 오지 말라고 연락을 하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집에 돌아온 남편은 외출준비를 하며 자기만 가는 약속이라고 한다.
“뭐라구요? 그럼 왜 밥을 하지 말래? 난 뭐 먹으라구요? 그럼 괜스레 큰애만 집으로 오지마라 했잖아요.”
“그런가? 난 내 밥 하지 말란 뜻이었지.”
- <아들아! 넌 그러지 마> 중에서
남편에게 악의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그냥 남편과 주부의 생각 회로가 달랐던 것뿐이다. 다음 에피소드도 그렇다.
어느 날은,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남편 식사를 곁에서 돕고 있는데 열심히 먹던 남편은
“그만 구워. 이제 됐어.”
라고 말한다. 나는 고기를 한 첨도 안 먹었는데 말이다. 아무 말 없이 고기를 더 구웠다.
“그만 구우라니까...”
“난 안 먹어? 나도 좀 먹으려고.”
- <아들아! 넌 그러지 마> 중에서
남편은 아내의 볼멘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 참! 마누란 안 먹었지’하고 민망해한다. 돌보고 베푸는 역할과 받는 역할이 오래 계속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남편과 아내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다.
차이는 이런 갈등에 대처하는 태도에서 발생한다.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부부 사이에 갈등이 갈수록 쌓여만 갈 것이다. 그렇지만 박정란 선생님은 긍정적 마인드를 가졌다.
“문정희 시인의 시에서처럼 그래도 나와 제일 많이 밥을 같이 먹은 남자이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아이들의 아빠이고 내가 아플 때 제일 먼저 달려와 줄 남자가 남편일 것 같아서다. 그래서 좀 맘에 안 들어도 되도록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살자’ 그러며 산다.” - <내게 소중한 것> 중에서
이렇게 남편에 대한 기본적 믿음이 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들이 결혼해서 자기 아내에게 그럴까 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아들아! 너희들은 마누라에 대한 배려를 늘 생각하고 말해 주렴!”하는 충고로 글을 맺는 것이다.
‘내가 아플 때 제일 먼저 달려와 줄 것 같은 남자’라는 작자의 예상은 맞았다. 건강했던 박정란 선생도 나이 들어가며 아픈 곳이 생긴다. <남편의 바람>에서 아내가 손목 골절을 당하자,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야 하게 된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서 아내에게, ‘왜 물 마신 컵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 새 컵을 꺼내 마셔서 설거지거리를 늘어나게 하냐’는 불평을 한다.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아내는 말없이 쾌재를 부르며 ‘진즉에 그래주지’하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남편에게 집안일을 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쉽지가 않다.
부부 중에 누가 먼저 갈지 모르니 남자들도 주방 일을 가르쳐야 남자가 혼자 남게 되어도 자식들 덜 귀찮고 무엇보다 자신이 덜 당황스럽다고 나이 든 세대들이 종종 말하는 걸 전해도 절대로 자기가 먼저 갈 거니까 그런 걱정은 말라 한다.
이번 기회에 남편에게도 가사 일을 가르쳐 보려던 것이 모두 허사로 끝난 채 나는 깁스를 풀고 말았다. 아직은 부기와 통증으로 재활치료가 남아있지만 나보다 깁스 풀은 팔을 보며 더 기뻐하는 남편을 본다. 곧 다가올 주방으로부터의 탈출의 기쁨일 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남편보다 더 오래 세상에 남는 방법밖에 없나 본데 남편의 뜻대로 될까?
- <남편의 바람> 중에서
남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일이다. <간호 선생님>은 간호사가 된 이질녀를 보며 남편이 다쳤던 때를 회상하는 구조로 된 글이다. 때는 1988년 여름, 남편이 ‘이토록 많이 다친 사람은 처음 본다’고 생각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늑골이 부러지고, 장 파열로 내출혈이 의심되니 물 한 모금도 주지 말라는 의사의 엄명이 떨어졌는데, 남편은 갈증으로 ‘물 한 모금만 달라’고 보는 사람에게마다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차마 볼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그이를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타까워 견디기 힘들 때,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물론 간호사, 조무사들까지 하나님같이 보였다. 얼굴은 뚱뚱 부어서 알아볼 수조차 없게 되었고 코에는 호스와 산소 호흡기로 줄이 여러 개 달려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침대에 두 팔과 다리까지 묶여져 있는 형편이었다.
갈증에 견딜 수가 없던 남편은 간호사가 나타날 때마다 붙들고 사정을 했다.
“간호원 아가씨! 나 물 좀 한 컵만 주세요.”
“아가씨가 뭐예요. 좀 참으세요.”
저럴 수가... 저토록 온몸이 부서진 환자에게 쌀쌀맞게 핀잔을 하다니. 인정머리 없는 간호사가 너무너무 괘씸했지만 표현조차 할 수가 없었다. 목이 말라 통사정을 하던 남편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간호원 아가씨’란 말이 왜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이제껏 다들 그렇게 부르며 지내지 않았던가?
- <간호 선생님> 중에서
중상을 입어 갈증을 호소하는 남편에게, ‘아가씨가 뭐예요. 좀 참으세요’라고 쌀쌀하게 대꾸한 간호사에게 아내는 괘씸함을 느낀다. 하지만 남편이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후에야 간호사가 화내던 까닭을 알게 된다. 때는 ‘간호원’, 또는 ‘간호원 아가씨’라고 불리던 직업 명칭이 ‘간호사’라는 전문직 호칭으로 막 바뀐 때였다.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했던 것이다.
아픈 사람이 뭐라고 호칭하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그 아픔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선행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간호사도 사람이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존중을 원했다는 걸 알게 된다. 남편을 살리는 일이 간절했던 아내는 그 후부터 ‘간호 선생님! 이것 좀 부탁합니다.’라고 꼭꼭 존칭을 했고, 간호사들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처리해 주어 병원 생활을 큰 어려움 없이 해 나갈 수 있었다 한다.
필자는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려는 간곡한 마음을 읽었다. 간호사도 환자 보호자도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선을 원한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에게 최대한의 예의와 성의를 보이는 것은 자존심을 넘어 당연한 일이다. 박정란 선생은 종합병원 간호사가 된 이질녀에게, “너만은 힘들더라도 항상 친절함을 잃지 않는 간호사가 되어주렴. 혹 아가씨라 부르는 환자가 있더라도 화내지 말고.”하는 격려와 부탁을 전한다. ‘성심성의를 다한다’는 말은 박정란 선생의 삶의 자세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세월이 더 흘러 최근에 남편은 아내의 믿음에 보답하게 되었다. 박정란 선생님이 고관절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게 되었다. 수혈이 필요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할 정도의 대수술이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나왔을 때,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정신이 드세요?”
“이름 좀 말씀해 보세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술 잘 끝나셨고요, 입원실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침대에 눕힌 채 회복실 문을 나서니 초조히 기다리던 남편이 반갑게 맞이한다.
“수고했어요.”
남편의 손이 따뜻했다.
- <긴 외출> 중에서
산소호흡기까지 달아야 할 정도의 위급 상태였던 모양이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도 자유롭지 못할 때였지만 환자 상태가 걱정스러워서 남편이 곁에 머물며 하룻밤 간호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회복 기간을 거쳐 목발을 짚고 그리웠던 집에 돌아가게 되기까지는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따뜻한 사람들>에서는 퇴원 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방에 들어가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남편이 가사를 도맡고, 지인들은 김치와 반찬을 나른다.
주위를 살펴보면 대부분 아내가 몸이 약하거나 수술을 했거나 아파본 경험이 있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자상하게 잘했다. 가사도 잘 도와주고 말이다. 아내들이 건강하면 믿거라 하고 대부분의 남편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인가 보다.
그 자상한 남편들이 부러웠는데 이번 아프면서 내 남편도 자상한 남편으로 돌아왔다. 세탁기 빨래나 청소는 무조건 자기가 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도와줄까?’를 종종 묻는다. 내심 기분이 좋다.
- <따뜻한 사람들> 중에서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글이다. 아내에게 특별히 잘하는 남편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내가 몸이 약하거나 크게 아팠던 경험이 있는 남편들이 아내에 대한 배려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필요는 성공의 어머니다. 박정란 선생도 아프고 나서 남편이 자상하게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내가 아프기 전에 남편이 미리 잘하면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이 글에선 결론을 내린다. 부부가 함께 건강해야 함께 오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란 선생님 부부를 보면,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는 아내와, 아내에게 더 크게 될 기회를 열어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상생相生이라 더 좋고, 그렇게 얻어낸 서로의 성공이 더욱 빛나 보인다.
3. 자녀
아이들은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어른들은 종종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놀라면서, 때로 이 아이가 세상에 잘 적응할까 걱정도 하면서 아이를 기르는 것 같다.
<문 없는 집>은 박정란 선생이 자녀를 기르면서 짠했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스포츠용품점을 하던 때의 이야기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맡길 곳이 없어 가게 안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장사도 해야 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손님이 오면 손님을 상대하고, 다시 책을 읽어주다가 손님을 맞이하고….
그렇게 지나기를 여러 날, 아이는 그만 지쳐 버렸나 보다. 하루는
“엄마! 우리 문 없는 집으로 이사 가자”
“문이 없으면 어떻게 사람이 드나들어?”
“사람 오는 거 난 싫어. 문 없는 집이 좋아.”
아! 그제야 나는 아이의 맘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실망을 거듭했으면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문 없는 집을 상상했을까.
- <문 없는 집> 중에서
엄마에겐 손님의 방문이 반갑지만, 네 살짜리 아이에겐 손님이 엄마와의 오붓하고 편안한 생활을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장사를 하지 말란 말을 하지는 못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게 집에 문이 없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것이다. 마음을 쿡 찔린 엄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병으로 쓰러지신 시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가게를 접었다. 장난감을 사 달라 조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장사를 그만둬서 돈이 없다고 하니, 아들은, “엄마! 장사는 그만두더라도 금고는 가져오셨어야지요.” 하며 나무란다. 이 부분에서 웃음이 쏟아졌다. 역시,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아드님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 아드님은 잘 성장하여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잘 키우고 있다는 해피엔딩이다.
부언하면 박정란 선생님은 두 아드님을 두었다. 위 에피소드에서처럼 생활에 바빠 보살핌이 적지 않았나 미안해하기도 하고, 혹시 경제관념을 잘 못 가지고 자랄까 봐 걱정도 하지만 (<엄마도 용돈 줘>), 두 아드님 모두 잘 자라서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고 잘 맞는 짝과 결혼도 했다. 작품 <시어머니가 되던 날>에는 큰아드님을 결혼시키던 날의 설레임과 분주함, 하객에 대한 고마움, 둘째아드님을 곧이어 결혼시켜야 하기 때문에 갖는 하객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말미의, “햇살 맑은 날, 나는 행복한 시어머니가 되었다.”라는 1줄 술회에서, 아들을 낳아 소망을 담아 길러 마침내 골라인에 안착시킨 어머니의 만감이 읽히는 듯하다.
이제 엄마는 시어머님이 되어 며느리와의 좋은 관계가 주 관심사가 되었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신조어 중에 미친년 시리즈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며 지내고 싶은 시어머니’라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며느리가 절대로 딸은 될 수 없다는 말일까? 가끔씩 누가 그런 말을 지어 유행시킬까 씁쓸하다. 그만큼 고부 사이는 어렵다는 말일 거다. 피가 섞인 딸이랑은 다르다는 말이겠지.
< 고부(姑婦) 사이 2> 중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며 지내고 싶은 시어머니’가 기피 순위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들만 둘이니 며느리를 맞이하면 딸처럼 아껴주고픈 로망이 있었던 작자는 그런 인터넷 유행어가 씁쓸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자신의 며느리 시절을 돌이켜보면 역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처음 먹었던 마음만큼 쉽지만은 않았었다. 지나고 나서야 더 많이 이해해 드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가 든다.
그래서 저자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최대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애들 말도 존중하며 지내는’ 현명함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과거시대의 시어머니들보다 깨인 부분은, ‘자신의 아들이 처가에서 맘에 들어하는 사위로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점이다.
나의 좋은 며느리에 대한 기대만큼 내 아이 또한 처가에서 맘에 들어 하는 사위로 잘 살아줘야 할 텐데 그도 가끔은 걱정이 된다. 나이를 먹어도 엄마 앞에서의 아들은 늘 철없음으로만 보이니 말이다. 그러나 가끔은 안사돈께서 ‘아드님을 어쩜 그리 잘 키우셨어요’ 라는 전화를 받게 되니 아들 또한 장모님께 인정받는 것 같아 흐뭇하다.
- <고부(姑婦) 사이 2> 중에서
안사돈에게서 ‘어쩌면 아들을 그렇게 잘 키우셨냐’는 말씀을 듣는 것은 제일 맘이 놓이는 칭찬일 것이다. ‘처가 사랑은 마누라 사랑’이라는데, 역시 아들이 며느리에게 잘한다는 뜻이다. 그 보답으로 며느리도 정성껏 고른 스카프를 시어머니께 선물하여 마음을 표현한다. 가족의 교감이 행간에서 읽힌다.
2. 이웃 안에서
모두의 중심이 되는 사람, 인기 있는 사람을 요즘 유행어로 ‘인싸’라고 한다. 공주 지역사회 문화계의 인싸라면 박정란 선생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고향이 서울이고 어려서 대전으로 이사 와서 이 학교 저 학교 전학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낸, 어쩌면 ‘자발적 아싸’인 필자는 공주에 가서 박정란 선생과 만나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만다. 박정란 선생님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건네오는 인사들이며, 여러 세대(조부모- 부모- 본인- 자녀)에 걸친 안부가 오가는 것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은 공주 지역사회의 유지들만이 가진 특징이기도 할 것이다. 앞서 박정란 선생님이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일 때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어 날라 주었다는 지인들의 돈독함이 이해가 간다. 모든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니 그만큼 그동안 이웃에게 베푼 것이 많다는 뜻도 된다. 이 책 속에는 그러한 다정한 이웃과의 관계가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책 속에는 이웃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통해 삶의 여러 국면을 읽어내는 통찰이 들어 있다. 특히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문제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장례식 축하>는, 제목이 눈에 번쩍 뜨인다. 장례식을 축하하다니 무슨 말일까. 사연인즉 이렇다. 40여 년 전 18세 나이의 처녀를 30 넘은 가진 것 없는 총각이 건드렸고, 처녀를 데리고 먼 곳으로 야반도주를 한다. 그리곤 그 처녀에게는 친정부모와의 절연, 생활고, 남편의 알콜중독과 의처증이 닥쳐온다. 자식들까지도 ‘그만 아버지와 헤어지고 마음 편히 사시라’고 하였지만 버리지 못했던 남편이 병이 깊어 세상 뜨자, 그녀를 걱정하던 고향의 친구들에게서는 조문보다 먼저, ‘그동안 애썼다. 축하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참으로 인간적이라고나 해야 할까.
<한낮의 비상벨 소리>는 이웃 노인의 사연이다. 성공한 아들들을 두었지만 막내딸과 살고 있는 할머니다. 눈이 안보여서, 딸이 출근하고 나면 집안에서 혼자 더듬더듬 지내신다. 어느 날 낮에 할머니가 황급히 아파트 앞집 문을 두들긴다. 종종 있는 일이라 그런지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다. 급히 나가보니 할머니는 집안에 비상벨이 울렸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패닉에 빠져 계시다. 할머니를 부축하고 몇 층 위인 할머니 댁으로 올라가자 화재가 나거나 가스가 누출되었을 때 홈오토에서 알려주는 비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있다. 관리실도, 이웃집도 모두 외면하여, 몇 층 아랫집까지 내려와 문을 두들기는 동안 눈도 안보이는 그 할머니가 겪었을 두려움이 안쓰럽다. 홈오토를 꺼서 해결을 해드린다.
할머니는 빨리 죽어서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지만, 생으로 죽으면(자신이 자살 같은 걸로 죽으면) 자식들에게 나쁘다고 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푸념을 하며 우신다. 저자는 ‘한낮에 아파트가 떠나갈 듯 울려대던 그 비상벨은 요즘 노인들의 외로움을 말해주는 비명소리가 아닐까’ 하고 술회한다.
<어버이날 우는 노인>도 자식들에게 외면당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다. 7명의 자식을 키웠으나 얼마 안되는 땅을 그중 못사는 아들 하나에게 몰아주었다는 죄로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할머니다. 어버이날, 자식들은 아무도 오지 않고, 인근 교회에서 나온 모르는 젊은이들이 어버이날 꽃을 달아주기에 서러워 울고 있다는 것이다. 재산 물려준 아들은 자기 사정으로 멀리 떠나고, 다른 자식들은 돈 받은 놈이 엄마를 맡으라면서 매몰차게 군다.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속 문제로 형제간 의 상하는 일이 많은 요즘, 우리 형제자매는 상속받을 재산이 없어서 오히려 더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작자는 글을 맺는다. 상속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부모 부양도 그렇다. 그러나 자식들은 오로지 노쇠한 부모님의 현재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잇속 때문에 부모에게 박정하게 대하면 나중에 남는 것은 후회뿐일 것이라고 박정란 선생님은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년이 다 이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바쁘고 어려웠던 세월을 젊음으로 견디고 극복해왔고, 이제 인생의 과업을 마무리할 시점에 도달하였다. 좀 쉬며 좋은 것을 누려도 될 나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좋은 사람과 교류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좋은 강연을 듣는다. ‘참 좋은 세상!’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난다.
<아름다운 초대>의 주인공처럼 80 넘어 90이 가까워가는 나이에도 모습과 생활을 아름답게 가꾸고 젊은 세대와 휴대폰 카톡과 문자로 교류하며 사는 분도 있고, <강부자 씨와 대담을 하며>에서처럼 보람 있는 노후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노래방에서의 교가>는 중학교 동창회에 대한 이야기다. 동창들이 많이 사는 서울에 일부러 올라갔고, 여학생들만 모였다니 과연 어떤 장면이었을까?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한 명 한 명 식당 출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중년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알아맞혀가며 큰소리로 환호를 하고는 했다. 얼마 만인가? 중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들은 30년도 넘었으니 얼굴도, 이름도 아름아름한 것이 당연했다. 어떤 친구는 얼굴 모습이 별로 변하지 않아 금방 이름을 알아맞히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전혀 몰라볼 만큼 변해서 자신이 이름을 댄 후에야 ‘그래! 이제 알겠어. 맞아, 너구나.’ 하기도 했다.
만나자마자 우린 모두 30년 전 중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분위기가 꼭 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의 첫날 같다고나 할까? 모두들 너무너무 반갑고 신이 나서 소리도 지르고 흥분이 되어 목소리 높이며 즐거워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벌써 사위를 본 친구도 있었고 학교 때의 성품 그대로 얌전하고 조용하게, 혹은 씩씩하고 쾌활하게 나이 든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학교 때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는 친구들도 있으니 어찌 새롭고 즐겁지 않으랴.
- <노래방에서의 교가>
읽기만 해도 즐겁고, 재미있고, 벅차고, 설레었을 그 자리가 눈에 선하게 보인다. 결국 이 모임은 23명의 동창이 근처 노래방에 가서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마지막 노래는 무려 중학교 때의 교가를 합창하는 것이다.
<할머니들의 외출>은 노래방에서 교가를 불렀던 중학교 여자 동창생들의 후일담인 것 같다. 위에서보다 더 시간이 흘러, 12명의 여자 동창들이 1박2일 여행을 간다. 살림엔 도가 텄다고 자부하는 젊은 할머니들이 각자 자신 있는 요리를 해 가지고 와서 풀어놓는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안부를 서로 나누기엔 하루밤낮이 부족하다. 다음엔 2박3일로 모이자고들 한다. 각자의 걱정거리가 없을 리는 없으나 이 하루만이라도 중학생 때로 돌아가 즐거움에 넘치는 모습은, 열심히 산 당신들에게 주어진 상이라고 할 만하다. 독자에게 한번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노년을 맞는다는 것이 꼭 두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 월반越班하세요
지금은 여자아이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다. 한 집에 1명 또는 2명의 아이가 있고, 그 아이들에게 부모가 지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교육을 제공한다. 우수한 여자아이는 알파걸(모든 면에서 탁월하게 우수한 여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의 시대에만도 이렇지 않았다. 교육의 기회가 남자아이에게 집중되었다. 남자형제의 학비를 대기 위해 여자형제들이 공장이나 버스 차장, 가정부로 가야 하던 시대가 그리 오래 전도 아니다.
박정란 선생님은 교사 집안의 7남매 중 하나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재능이 넘쳤지만 넉넉지 않은 살림 탓에 꿈을 펼칠 기회가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 결혼 후에는 또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해야 할 역할이 늘어났다. 아마 오랜 기간 마음 속에 눌러놓기만 했던 재능과 끼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특별히 <월반하세요>라는 글에 주목하게 된다. ‘월반’이란 무엇일까. 특별히 우수한 학생을 그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년이나 학급에 두지 않고 상급반으로 진급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을 뜻한다. 어린 천재를 일반학교에 두지 않고 일찍 명문대학에 입학허가를 내준다거나 하는 사례가 있지 않은가.
젊은 날, 나의 멘토 역할을 해주시던 지인께서 내게 ‘월반(越班)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땐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렴풋이 짐작만 하며 지냈지만, 이 나이에 이르니 그 말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된다.
월반의 사전적 의미는 ‘학습 능력이 높은 학생이 학년의 차례를 뛰어넘어 상급반으로 진급함’을 말한다.
그분께서는 나의 삶을 곁에서 보시고 어른의 눈으로 본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안타까워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좀 더 높은 목표를 두고 열심히 살았으면… 싶어서였을 게다. 하지만 나는 학습능력이 높지 못해 실수를 거듭하며 살았다. 열심히는 살았다고 자부하나 월반하지 못하고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물 흐르듯 살았을 뿐이다.
그 분의 말씀처럼 내가 월반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내 삶에 더 의미를 부여하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 와서 뒤늦게 해 본다.
- <월반하세요> 중에서
젊었던 한때 고민이 많았던 박정란 선생이 찾아가서 지혜를 구하자, 인생의 선배는 ‘월반하세요’라고 한다. 이 충고에 대한 답을 평생 찾으며 작가는 살아왔다고 한다. ‘월반하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작은 일에 얽매이지 말고 멀리 앞을 내다보세요’일까. ‘한 단계 뛰어넘으세요’일까. ‘당신은 그렇게 작은 일에 고민하기엔 아까운 사람이니 다른 쪽으로 노력해서 한 단계 상승하세요’일까.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월반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로부터 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저자는 원하던 것을 거의 모두 이루신 것 같다. 가정의 안정과 자신의 성취가 다 이루어졌다. 그러니, 박정란 선생은 이미 월반에 성공하셨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월반에 끝이 있을까.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사람들은 한 차원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꿈을 지니고 산다. 어찌 보면 이제 작가의 ‘월반’을 방해하는 것은 작가 자신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어렵지 않은가.
<어느 날의 식사시간>에는 갈등과 해소에 얽힌 작가의 특별한 경험이 들어 있다. 계기는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을 기다리는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이걸 아는 데 왜 30년이나 걸렸을까? 진즉에 알았더라면 서로가 좀 더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결혼 후 30년이 넘도록 남편과 아이들을 기다리며 살았다. 어느 주부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곧잘 화가 나고는 했다. 아내와의 약속은 종종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집에서 한다고 했다가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아내 생각은 아니하고, 퇴근길에 다른 약속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 <어느 날의 식사시간> 중에서
음식 만드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먹을 사람들이 밥상 앞에 제때 앉지 않는 것이다. 음식 만드는 일은 잔손이 많이 가는 중노동이다. 손맛이 있다는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그만큼 음식 만드는 과정에 더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는 쪽에 가깝다. 박정란 선생님도 손맛 빼어난 주부다. 식사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밥상을 차려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먹을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애써 준비한 음식이 버려지는 것도 아깝지만, 함께 먹으려고 기다리며 배를 곯다보면, 음식은 식어버리고 식욕마저 달아나버린다.
<어느 날의 식사시간>은 그런 일이 생겼던 많은 날 중의 하루이지만, 이날은 달랐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접시에 1인분의 반찬을 고루고루 담았다. 그리고 혼자서 먹기 시작했다. 싱싱한 재료들로 만들어서인지 참 맛있었다. 다 먹고 나니 포만감과 함께 남편은 아직 도착 전인데도 행복했다.
<어느 날의 식사시간> 중에서
유난히 배가 고팠던 날이기도 했지만,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 오기 전에 먼저 밥을 먹은 것이 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뭔가 마음속에서 달라진 것이다. 사실 남편도, 아내가 자기만을 기다리며 밤늦게까지 굶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예정보다 귀가가 늦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집에 왔을 때 아내가 배고픈 상태로 화가 나 있다면 난감할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일의 뒤에는 ‘남자들이 잘 먹도록 시중을 든 다음에야 주부가 먹는다’라는 가부장적 관념이 있었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속의 금기가 평생 남편 오기 전에 숟가락을 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러니, 먼저 숟갈을 들고 맛있게 먹은 이날의 일은 큰 의미가 있다. 박정란 선생은 ‘결혼 후 40년이 훌쩍 지난 다음에야 드디어 깨달은 것을 며느리에게는 꼭 일러주리라 생각해 본다’라고 독백한다. 내가 행복해야 반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다. 오래된 자신만의 금기를 깨는 것, 이 또한 ‘월반’의 순간 중 하나다.
이렇게, 박정란 선생님의 두 번째 수필집 『월반하세요』는 앞선 책보다 눈부시게 성장한 지은이의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누구나 맞이할 노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되, 세계관이 훨씬 밝아졌다는 것이다. 이 책의 테마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어려운 시절을 성공적으로 살아낸 세대가 맞이한 명랑한 노년’. 후속 세대에게, 닥쳐올 노년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