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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물과별] 2024 겨울호 숨은꽃 시 10편
적的 /김부회
익숙하다 어디서 본 듯 들은 듯 흐르는, 이미 떠난 이승을 잡고 허스키가 울고 있다 소름이 음표가 되고 미명의 어스름이 노래가 되는 꿈과 꿈, 밀접할 수 없는 등과 가슴의 결계 속을 흐르는 망각의 겹철릭*을 걸친 소리가 이불 속을 뭉근하게 데운다 창틈으로 귀를 세울 때마다 선명하게 부조浮彫 되는 잠시, 몸이 떠난 자리에 마른 목소리만 꿈결로 흐른다 그가 떠난 것인가 내가 남은 것인가, 지금이 어제인 듯 오늘이 내일이 될 수 없는 여기 어디쯤, 거슬러 갈수록 더 신선해지는 시간의 선도鮮度를 더듬거린다 여적 살아있는 눈꺼풀이 몽롱한 그대와 그대의 그대가 모태母胎를 뚫고 나오며 들었던 태초, 저 아득한 비명만 손아귀에 힘껏 쥐고
*결계(結界) : 修道에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을 들이지 않는 곳.
*철릭 : 무관이 입던 공복(公服).
서해에서/김부회
펄의 알몸 뒤로 붉은 스란 한 폭이 펼쳐있다
풍경이 풍경을 덧칠하는 동안
무미했던 안부와 커피가 함께 식었다
낮이 건조를 밀어내다 스스로 무뎌질 때쯤
웃자란 약속이 약속의 정형과 이별했다
밀물이 바닥을 되돌려 주고
만삭의 섬들만 제 높이를 키우는 저물녘
켜켜이 올려놓은 모닥불 속으로
불쏘시개가 던져질 때마다 커지는 얼굴
이따금 다려지는 어둠의 주름 속으로
다가오다 사라지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
갯바람이 식어갈 무렵
미처 못 태운 꽃불의 물때가 바다로 스며든다
멀리 여명의 솔깃한 부름에
소스라친 귀가 쑤욱 자란다
부우웅~~
귀항지 멀리
뱃고동이 울린 것 같다
어쩌면 도착해 있을지도 모를 신호
청각의 바깥에
이미, 나는 없는데
아방가르드 김밥 /김부회
속사포 랩처럼 떨어진 이른 봄
노래바다 모퉁이 김밥집이 홀랑 타버렸다
연변 아줌마의 접시 가생이가 쨍 울었다 새까맣게
중심부터 닳지 못하는 뒷굽의 속성이
미치광이 풀에 내려앉는다
달이 슬어놓은 알에서 나온 우울이 금요일을 태운다
허가받은 간통을 원하십니까? 즐기다 퇴근하면 그만입니다
둘둘 말리다 가시면 됩니다, 낮이라는 어둠을 타고
달의 반대편을 알아서 뭐 하시게요
꼬인 스텝 사이 짜그르르 돌아가는 싸이키 조명, 복고풍 음질이 LP판을 굽는다
달뜬 신음 속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드는 블링블링
잡동사니 그득 비상구 층계를 파란 남자가 뛴다
미친바람의 지역구에서
폐쇄회로 영상을 피해 도망가던 네일아트가 멈칫거린다
떨어지며 자체발광 하는 플라스틱 꽃
칠십사억 개 김밥 재료들이 지구를 돌돌 말고
다시 지구에 돌돌 말리는 지금
김밥 말았던 여자가 시큰시큰 운다
돌돌 말아 올린 꼬랑지 제멋대로 흔들며
우렁찬 네온을 향해, 돼지들 뛴다
바람 난 달은 서해를 못 건넜다던가
임종실/ 김부회
심전도의 다급한 경고음
고요 위에 봇물 터지듯 울음을 덮는다
- 엄마, 사랑해, 여보, 언니....
남겨두고 가는 길이 얼마나 아플지
3시 33분, 사망선고를 하고 돌아서는 하얀 가운
- 소리는 아직 들을 수도 있어요
간호사가 위안을 남겨둔다
귀속으로 마지막 음성을 남기며
삼킨 속울음이 가고 남는다
- 이렇게 많은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간다는 것은 축복이야
아무리 변명해 봐도 아프다
망자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며
영안실로 보내는 길
딱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하루만 더 의식이 있었으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한 줌보다 조금 더 많은 잿빛 유골
세상은 한 줌일 뿐
아무것도 부럽거나
위대하거나 소중해 보이지 않는다
고인에 대한 남은 사람의 몫은
살아 있는 날까지 기억해 주는 것
고운 시절의 모습만
내 안에 각인하며 사는 것인지도 모를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사내 혼자 복도에 기대
우두커니,
떨어지는 장맛비를 꽉 움켜쥐고
죄 없는 하늘이 잔뜩 구겨진 채 울고 있다
와/김부회
어머니는 아버지와 살아요
나는 나와 살아요
때때로 (와)라는 것이 주인이 되기도 하죠
(와)에 붙어서 산다는 것은 기생한다는 말이에요
어느 날은 이집트에서 날아 온 모래를 손에 쥐어요
이집트와 내가 사는 것이 아닌데
손에 쥔 모래가, 밤마다 별이 되는 꿈을 꾸네요
하늘을 내가 만든 감옥에 가두는 상상을 해요
(와)는 (과)가 되기도 하죠
감옥과 하늘을 잇는 길이라고 설명하면 되나요?
하늘과 내가 같이 사는 것이 맞으니까요
(와) 또는 (과)의 법칙에 그닥 들어맞지는 않지만요
(와)면 어떻고 (과)면 어때요
주인은 눈이에요
초점에 맞닿은 정면이 세상이라면
여기가 하늘이 아니라 하늘 밖의 감옥이겠지요
나는 나와,
나는 (와)의 (나)일까요? 나의 (와)일까요?
애매한 공상은 과학이 될 수 없어요
이등변 삼각형의 꼭짓점은 이등변으로 인해
위가 되어서 꼭짓점이죠
나는 나와, 하나가 된 것처럼
닫힌 곳에서는 늘 지지대가 받쳐주고 있어요
(나)라는 삼각형의 두 변처럼
분열이 만든 파생이겠지요
나는 별수 없이 나와 살아요
때로는 내가 아닌, 전혀 모르는
내가 아니라는 말로 들리네요
참 낯서네요
러시안룰렛/ 김부회
여섯개들이 탄창에 다섯 발만 있고 한 발이 비었다면, 다섯 개의 목숨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한 개의 행운이라고 할 것인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까지 하나의 행운을 믿고 살아왔다. 믿음이라는 말로 인해 믿음이 된 것처럼. 다섯 개의 목숨은 남의 것이라도 되는 것인가. 부고장에 인쇄될 인사말 정도라고만 알았을까 한 번의 선택으로 한 개의 행운은 1/6의 확률, 사는 내내 절반의 확률 게임이라면서 믿어 온 나를 믿었다는 것이 실패였을 것이다. 상속의 상속, 내 대에서 상속의 고릴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눈을 감는다. 천천히 어금니를 깨문다 꽉, 우측에서 좌측, 방아쇠를 당긴다. (혹은 당기지 못할 엔딩의 경우를 포괄한다) 게임 체인져도 못 되는 비열한 남자라는 걸 알기까지 1/10초도 안 걸렸다. 하나의 행운에도 나를 걸 수 없다면 다섯 개의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것인지, 오른손잡이를 흉내 낼 수밖에 없는 태생부터 왼손잡이들의 쉼표 같은 머뭇거림과 방아쇠의 마침표는 공존하고 있었다. 어제도.
형상기억합금/김부회
옥탑 난간 밑 차들이 씽씽, 건널목 신호등이 몇 분마다 물꼬를 터주는 어떤 날, 날개를 다친 나비가 움켜쥔 옥상 난간
꿈틀거리는 나비의 날개와 허공에 반쯤 내민 내 발은 지면으로부터 불과 몇 센티에 불과한 이승의 간격을 밀어내지 못한다
- 난다, 나비와 내가 동일하다는 착시
- 날아간다, 내려간다는 것의 원형 보존에 대한 대척
시그널 앞 사뭇 다른 영역을 가진 나비와 나의 허공에 빗줄기가 이기적인 빗금을 주욱 긋고 미지가 머뭇거리는 그때, 세찬 바람이 무심코 우리의 등을 민다
나비의 하늘에 활짝 편 두 팔, 날다, 추락하는 눈에 광고판, 전깃줄, 닫힌 창, AHC 에스테틱 광택
하늘과 바닥이 출구를 위한 맞닿음을 가속하는 그때, 무대 위 공중그네를 타는 어릿광대의 손에 힘이 풀린다 자리바꿈을 하다 떨어지는, 일생 단 한 번 가장 완벽한 추락은 일종의 팬서비스
관객으로 되돌아가는, 망라網羅를 서로 잇는 그네 위
괄호의 랩소디/김부회
한때를 배회하다 문득,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여집합의
그 흔하디흔한 돌멩이 하나로 밀려난 몸뚱이와 그림자
개기(皆旣)라도 되는 듯
서로 주름 한 골이라도 가려주곤 할 때
손톱 밑에서 저무는 어스름이 훅, 밀려 나가는
흑백의 표정들
변명과 이유가 그럴싸해 보일 즈음
오래된 사진첩 비닐 속에 부러 숨겨둔 시간의
먼 소실점을 찾는다 가을 햇살은
아무렇지 않게 내일을 데려오고 있다
(한 괄호 속에)
‘그랬음직’이라는 울림처럼
손바닥을 달리다 수명을 다한 운명선의 끊어진 궤도
두께감을 잃어버린 우리의 원근법을 찾았다
엊그제 같은 발자국들
이미 괄호가 되어버린 한때의 근처를 서성거리는 오늘
다만, 한때라고 낮게 중얼거리듯
비틀린 오후 네 시
열거나 닫거나
침착하게 둘러쳐지는 무거운 괄호들
쉬르레알리슴的 청년 시대/김부회
고갱의 타히티와 고흐의 귀가 꿈을 꿨다
섬에서 곰팡이가 자랐다 앓는다 귀가
철분 모자란 동굴의 영양실조
이명의 귀를 나온 차가운 붓이 허공을 긋다가
펼쳐진 우산 위로 물방울을 볶아댄다
화성으로 가지 못한 청년, 그를
간이역이 잠깐 안는다 (다음 역 고시텔)
마른오징어처럼 오그라든 몸
검게 변주하는 가난 쏘나타 열선을 통과한
하루 치 비틀린 시간이 튀어나온 토스터 빵
편의점에서 파는 궁핍은 새카맣다
옥탑까지 가는 계단은 끝이 없다
오르내릴 때마다 파우스트의 등을 밟는 기분
지하와 지상이 = 부호를 쌓았다
등짝이 등가를 얹고 구부정 휘청,
없는 답과 여백 없이 다가올 내일 사이
등의 계절에 겨울이 온다
살릴까요? 죽일까요? 아가씨의 교살 지령이 머리에 솟구친다
숱 이야기, 뇌를 울릴 때마다 뒷골에서 올라오는 올
가닥가닥 앞이마를 덮는다
변신은 두 달에 한 번쯤 뽀글거렸다 풀어졌다
수정란 시절부터 박혀있던 몽골의 시퍼런 칩 chip
잘게 썰린 가족의 계보가 그랬고
썩어 문드러져 통째로 버린 파 다발이 그랬다
무슨 씨의 무슨 파를 따지다 문득,
도마처럼 길게 누운 골목에서
다질 것 없는 바람이 달그락 갈고 썬다
훔쳐 온 이름 겨울, 고드름처럼 툭툭
길바닥에 박힌다
가슴 절개된 라면 봉지를 튀어나온 궁색이 팔팔 끓는다
조미된 염화나트륨 효과로 한 끼 더 연장된다
거리와 도시에서
나는 빨치산이며 구월산 유격대다
쫓고 쫓기다 폐지 더미를 파먹는다
깨진 형광등이 와그작 밟힌다
입에서 등이 켜진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찌르륵찌르륵 삶의 주파가 소음 범벅이다
어디선가 꽈리 하나 퍽 터진다
그림자 곁엔 그림자만 남고 주인은 허공을 부유 중이다
절대온도를 넘어 점령군 없는 화성으로 간다
칩이다, 문제는
계절은 다음 계절에 계류 중이고
머릿속 램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하루 치 부팅을 방해한다
생의 로그인 화면이 까맣다
푸시시 전원이 나갔다
공판장 한쪽에 입찰에서 떨어진 도루묵이 문드러지고 있다
폐타이어를 다리에 둘둘 감은 사내가
가스펠 송을 움켜쥐고 바닥을 유영 중이다
청년이 파랗게 휘청거리는 골목골목
*쉬르레알리슴 : 비현실적인 잠재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도모한 예술운동
낚, 시詩/ 김부회
한때 달을 필사한 적이 있다, 그는 서역의 마니차 소릴 묻혀오거나 드물게, 쥐고 있던 야간비행의 불빛을 슬며시 건네주기도 했다
은여우와 장미를 필사한 날이면, 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붙인 채 발가락을 까닥거리는 나와 나의 미래가 서로 이슥한 밤의 속살을 제 몸처럼 핥았다, 꿈의 바다 위로 ‘아나벨 리’와 밍크고래가 간밤 이야기를 뿜곤 했다
제 주인을 찾지 못한 온갖 ‘주여!’ 들이 소매 끝에 묻어온 날, ‘주여’ 의 껍질을 혀끝에 필사한 그 밤에도, 어둠을 배경으로 환생하는 달과 한 집 건너 십자가 불빛 수십 개의 구원이 두 개의 바위틈을 뚫고 다락방으로 기어들어 왔다 폐허가 된 정원이 더는 소녀를 키우지 못하고 달력이 뱀처럼 손가락을 넘어갔다
밤이 불면의 다발을 계수기처럼 토했다, 그때 나는 침묵의 띠지로 묶인 내 결계의 수면 바깥을 도모하고 있었다,
잠잠한 물, 더 잠잠한 물속, 움찔 캐미라이트
휙,
달을 챈다고 잡아챘지만 매일
낚인 것은 ‘나’였다
김부회 프로필
(계간)문예바다 편집 주간/ (월)모던포엠 편집위원/도서출판 사색의 정원 편집 주간/김포신문 시 전문 해설위원/ 중봉문학상 대상, 문학세계 문학상 평론 부문 대상 외 다수 수상/ 시집(시, 답지 않은 소리)(러시안룰렛) 평론집(시는 물이다)
김부회 시인, 평론가
시인의 말 [시란 무엇인가?]
김부회 시인,문학평론가
오래전 시를 배우고자 하는 열댓 분을 모시고 시의 기본 이론과 시를 짓는 방법에 대해1년간 강의를 한 적이 있다.첫날 첫 시간 시를 배우시고 쓰려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나름의 답변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귀결점은 하나,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살아온 흔적을 남기는 것은 남이 나를 기억하는 것보다, 내가 타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를 쓴다는 것의 여러 가지 목표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서는 삶의 뒤안길을 더듬어 봐야 한다. 잘 살아왔든 그렇지 않든, 지금 이 시각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누적된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누적된 시간에 대한 자기반성과 그것을 통한 미래지향적 사고 혹은 사고의傳承이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달리기만 해도 바쁜 세상에 언제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요컨대 실천의 문제라는 것이다.내가 살아온 시간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바로잡는 것이 사람의 본질일 것이며, 잘된 부분이 있다면 널리 알려 모범이 되면 좋을 것이다.그것이 나눔의 본성이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잘못을 하며, 누구나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인정이라는 말이다. 실수에 대한 인정, 잘못에 대한 인정, 거짓말에 대한 반성 등등이 수반되지 않으면 잘못은 잘못에서, 실수는 실수에서, 거짓은 거짓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사람의 사고가 진화한다는 것은 인정에서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인정을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도구가 글을 쓰는 것이며 좁히면 시를 쓰는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시의 서정적인 측면에서 애써 억눌러온 나의 감정을 발견하고 그 감정에 충실하게 나를 표현하거나, 보고 들은 현상이나 사물의 풍경 속에서 남과 다른 내 생각의 독특한 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재능을 더 발전시켜 나간다면 가장 좋은 시 쓰기의 이유가 될 것이며 시라는 장르가 가진 순기능의 목적이 될 것이다. 좋은 작품을 누구나 쓰고 싶어 한다.하지만 좋은 작품의 기준이라는 것이 때론 모호하다. 문장력, 수사법, 함축, 비유 모든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진심이다. 글은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가짜가 아닌 진짜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진실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위에서 전술한 시를 배우는 분 중에 여든에 가까운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농사를 짓는 분인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을 거의 빼먹지 않고 나오셨다. 수업하다 가끔 보면 졸기도 하고, 눈 감고 기도도 하는 분이다. 연말에 수료식을 하며 물었다. “많이 공부하셨어요?” 답변이 시다. “여기 나오는 게 공부여!” 정확하게 옳은 말씀이다.그 열정, 사랑, 끈기, 자세, 모든 점이 시의 기본이다. 문장은 나중 문제다. 어쩌면 나는 기술을 가르치고 할머니에게 정신을 배운 것 같다.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 모든 것에 붙여 원용해서 사용해도 통하는 말이다. “여기 나오는 게 공부여!”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가르침에 고개가 숙여진다.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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