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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천사의 나팔(26)
말씀: 계 11:14-19. 2024년 12월 1일 일요일 오후 2시
오늘 말씀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입니다. 두 가지 화는 지나갔고 셋째 화가 임합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마지막 나팔이라고 해서 교회의 휴거에 적용하는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 깜짝할 사이에, 천사장의 호령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이 땅에 있는 신약 성도들은 저 하늘로 들림을 받는데 일곱째 천사의 나팔을 마지막 나팔이라고 추정하여 교회가 큰 환란을 통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곱째 천사는 천사장이 아니며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아닙니다(살전4:16).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고(딤후2:15) 정확하게 알아야 거짓에 속지 않습니다. 주님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전 사도 요한에게 여러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첫째, 강력한 천사의 손에서 책을 받아먹고 다시 대언하라.둘째, 갈대를 받아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라는 말씀과 마흔두 달 동안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예루살렘에 대해 말씀하셨고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 동안 대언할 것이라고 그들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계11:3).
이들은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나무요 두 등잔대”(계11:4)라고 하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영으로 권능 있게 일하는 자들이지만 모세와 엘리야는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으로(히9:27) 모세는 한번 죽어서 부활한 자의 예표이고 엘리야는 살아서 하늘로 옮겨진 휴거자의 예표입니다. 에녹 역시 죽음을 맛보지 않고 들림 받았으며 환난 전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를 증언하고 주님의 재림 때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유1:14).
큰 환란 때 두 증인의 사역은 권능을 동반한 표적과 이적으로 1260일 동안 대언합니다. 이 땅에 있던 사람들은 이 두 대언자가 하는 대언(말씀)으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복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사람들 중에 이들을 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불에 타 죽습니다(계11:5). 이들은 1260일 동안 거룩한 도시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을 대언하며 사람들의 불신과 마귀 숭배를 책망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공개적으로 꾸짖으며 직접 죄에 대한 심판의 표적으로 하늘을 닫고 비가 내리지 아니하게 하고 물이 피로 변하게 하여 모든 재앙으로 땅을 칩니다(계11:6).
그러다 대언의 사역을 마칠 즈음에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흘 반 동안 몸이 길거리에 놓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은 몸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냅니다(계11:10).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영이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부활하고 위로 올려 집니다(계11:11).
그들이 죽었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임합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이리 올라오라.”(11:12)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 장면을 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올라가는 크리스천의 휴거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리 올라오라.”(계11:12). 이 음성은 땅에 있는 누군가를 하늘로 불러올리는 음성입니다. 큰 환란 가운데 땅에서 대언하던 두 증인이 죽었다가 부활하여 하늘로 들림 받았습니다. 이 때 표적으로 예루살렘은 큰 지진으로 파괴되고 칠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난 후 일어났던 재앙이 끝난 둘째 화입니다.
14절입니다. [둘째 화가 지나갔으며,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오리라. 하더라.] (계11:14).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오리라.”(14) 지금까지 위에서 설명한 그대로 여섯째 천사가 불었던 나팔로 말미암은 둘째 화는 지나갔고 셋째 화가 곧 바로 임합니다.
15절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 하니](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고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천사가 반복해서 선포했던 세 가지 화중에 마지막인 셋째 화가 선포되었습니다. 이미 앞에서 천사가 선포하기를, “일곱째 천사가 음성을 내는 날들 즉 그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그분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밝히 드러내신 것같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10:7) 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나님의 신비가 이루어졌는데 이 신비는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입니다. 성경에는 다양한 신비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셔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들은 그 때가 언제인가? 늘 알고 싶어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느 때에 하나님의 왕국이 임할 것인지 주님께 다그쳐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왕국이 임하는 때에 일어날 표적을 물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은 함께 와서 묻기를,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 다시 회복시키려 하시나이까?]”(행1:6) 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한 때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10:7).” 선포하며 온 이스라엘의 도시들을 돌아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항상 “하늘의 왕국”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세우실 ‘왕국’이야 말로 사도들의 주된 관심사였고 모든 이스라엘이 바라고 기다리며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때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그것들은 너희가 알바가 아니요,”(행1:7)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승천하기 전까지 제자들은 왕국이 어느 때에 임하는지 전혀 알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알바가 아니요”라고 하심으로 관심을 끊으라고 하십니다. 조상 대대로 왕국이 임하는 것, 왕국의 도래만 기다린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 충격적인 답변입니다. 그러나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됩니다. 주님이 이 땅을 통치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이 잃어 버렸던 왕국의 통치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하십니다. 일곱째 천사가 자기 병을 쏟아 부을 때 하늘의 성전에서 왕좌로부터 “다 이루어졌도다.”(계16:17)란 음성이 나옵니다.
다시 15절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 하니](계11:15). 이 세상의 왕국들은 지금 마귀의 것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통치자입니다(요14:30). 이 점에서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본문을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왕국들(The kingdoms of this world)이...”이는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이나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을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전 세상, 현 세상, 다가올 세상이 있습니다. 이전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통치했습니다. 이 세상은 아담에게 주셨는데 마귀에게 찬탈 당했고 마귀에게 넘겨졌습니다(눅4:6). 다가오는 세상은 천사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분께서는 다가오는 세상 곧 우리가 말하는 그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시키지 아니하셨느니라.](히2:5).
본문에,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15)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한 현 세상이며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구출하시려고 우리 죄들로 인해 자신을 주셨으니](갈1:4).
주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는 세상을 개혁하거나 개선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빛으로서 세상의 어둠, 악함을 드러내고 증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으로부터 배척되고 미움을 받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음을 우리가 알며](요일5:19). 온 세상이 사악하다는 것은 주님의 증언이지 염세주의적, 비관론자들의 가치관이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은 세상에 대해 조금도 낙관적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악하다고 증언하셨고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요17).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요3:16)고 할지 모릅니다. 실제로 어떤 크리스천들은 우리도 주님처럼 세상을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사명을 다하자고 설교하는 분들도 매우 많습니다. 이는 성경도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오류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검증하도록 하라.](롬12:2)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악한 현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이 세상을 노아의 때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해 버리지 않으시고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세상에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악한 현 세상에 주님은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개혁하거나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악한 현 세상에 있는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친히 오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시고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따로 분리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죽으셨는데(갈1:4) 우리가 건짐 받은 후 그런 세상을 사랑한다면 이보다 더 사악한 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들에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거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세상과 일치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에 동화되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을 따르지 말고 거슬러 살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대적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불신자는 이 세상의 자녀들입니다(눅16:8, 20:34). 우리는 주의 길을 따라 걷고 불신자들은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걷습니다(엡2:2). 우리 안에 있는 이는 하나님(성령)이시고 세상에 있는 이는 마귀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고 또 그들을 이겼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요일4:4)고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세상에 있는 그”는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입니다.
한 때 마귀는 예수님께 자신에게 경배하면 이 세상의 왕국들을 모두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다시 마귀가 그분을 심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세상의 모든 왕국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그분께 보여 주며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매](마4:8-9). “네가 만일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이란 말은 마귀의 빅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에게 세상 왕국을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주겠다고 했던 그 왕국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15)란 말씀은 통치 체계의 완전한 전환을 말합니다.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 왕국들을 멸해 버리십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를 멸해 버리십니다. 평강의 주 하나님께서 사탄의 머리를 부수시고 밟으십니다. 이것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에 하나님의 신비가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집니다.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15). 이 통치는 영적인 통치, 도덕적인 통치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갖는 문자 그대로 이 땅에서 주님이 왕으로서 권력을 갖고 통치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우시고 다스릴 왕국은 지금까지 이 땅에 존재했던 어떤 왕국과도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친히 내려와 이 땅에 세우시는 왕국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진행되매 그들이 그의 통치 권세를 빼앗아 그것을 끝까지 소멸시키고 파멸시킬 것이요, 왕국과 통치 권세와 온 하늘 아래 있는 왕국의 위대함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들의 백성에게 주어질 것인데 그분의 왕국은 영존하는 왕국이며 모든 통치 권세가 그분을 섬기고 그분께 순종하리라. 하니라.](단7:26-27). 이 왕국이 바로 복음서에 선포된 ‘하늘의 왕국’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큰 무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많은 물들의 소리 같기도 하며 강력한 천둥들의 소리 같기도 한 음성이 이르되, 할렐루야,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께서 통치하시는도다.](계19:6).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바 “하늘의 왕국”이며 성경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구원과 교회에 관심을 갖지만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이 왕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한 왕국을 세우신다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이며 구약의 대언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선포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 이 말은 종교인들이 하는 말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통치자이며 이 세상의 신입니다(고후4:4). 현재 이 세상의 왕국들은 마귀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큰 환란 때는 적그리스도가 이 땅에 등장해 직접 온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합니다. 그런 세상의 왕국들이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왕국은 이 땅에서 천년 동안 지속됩니다. 그래서 흔히 “천년 왕국”이라고 말합니다. 천 년이란 말은 요한계시록에서만 6번 언급됩니다. 이 기간 동안 마귀요 사탄인 그 용 곧 저 옛 뱀은 잡혀서 결박당해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집니다(계20:2,3). 이 세상 통치자가 바닥없는 구덩이에 봉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천년 왕국에서는 사탄의 활동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 왕국에서는 큰 환란 동안 이기는 자들 즉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목이 베인 자들의 혼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 이마 위에나 손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부활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합니다(계20:4).
큰 환란 때 이기는 자들은 모두 부활하지만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끝날 때까지 부활하지 못합니다. 이 왕국에서 부활의 몸을 입은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과 제사장이 되어 도시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천년 왕국에서 통치할 사람들은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계20:6). 큰 환란 때 순교한 자들 역시 통치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통치합니다(계20:4). 우리는 영원무궁토록 통치합니다(계22:5).
다시 15절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 하니](계11:15).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복수). 그분께서(단수). 성경은 곳곳에 삼위일체의 진리를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16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스물네 장로가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계11:16).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이 세상 왕국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다는 선포와 더불어 스물네 장로가 등장합니다. 스물네 장로가 누군가는 계시록 4~5장에 이미 나왔습니다. 그들은 왕좌 둘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인데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스물네 장로가 나올 때면 항상 함께 오는 말은 “............앞에 엎드려”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11장에서 나오고 다시 19장에서 나옵니다. 모든 장에서 그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자들로 등장합니다. 우리가 저 하늘에서 할 일이 바로 “경배”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일이 가장 큰 사역입니다. (참조. 계4:10, 5:8,14, 11:16, 19:4).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16). 지상의 성막,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주님을 섬길 때 앉을 자리(의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의자가 없었다는 것은 안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하늘에서 스물네 장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요한이 하늘에 올라갔을 때 처음 본 것이 “그 왕좌 둘레에 있는 스물네 자리가”(계4:4)있습니다. 장로들은 그 자리에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땅의 성막과 하늘의 성막에서의 차이입니다. 하늘의 성막에서 성도들은 참된 쉼(안식)을 누립니다. 주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이들에게 안식과 평강과 기쁨이 있습니다.
땅의 성막에서 동물들의 피를 흘리고 제단에 헌물을 올리는 이들은 육체적 수고와 고단함이 넘칩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체 불구자들은 제사장들로 섬길 수 없었고 역할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앉게 됩니다.
17절입니다. [이르되, 오 [주] 하나님 [전능자]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 우리가 감사를 드림은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해 오셨기 때문이니이다.](계11:17). 스물네 장로가 엎드려 경배하며 드리는 찬양입니다.
“오 주 하나님 전능자여...”(17). 신약 성경에서 계시록을 제외하면 “전능자”란 말은 단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고후6:18). 요한계시록에는 “주 곧 전능자”란 말씀이 8번이나 반복됩니다. 장로들이나 그룹들은 하늘에서 주 하나님을 “주 곧 전능자”라고 부릅니다(계4:8, 11:17). 하늘에 올라간 환란 성도들 역시 주님을 “전능자”라고 부릅니다(15:3, 16:7). 하늘에서 장로들은 “오 주 하나님 곧 전능자여...”라고 하는데 우리는 땅에서 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란 표현 역시 계시록에 4번 반복됩니다(계1:4, 4:8, 11:17, 16:5). is/art to come=shalt be.
요한이 한 번, 네 짐승이 한 번, 장로들이 한 번, 천사들이 한 번 이렇게 부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하신 분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오실 주란 표현은 앞으로도 계실 분(is/art to come=shalt be)이란 뜻입니다.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해 오셨기 때문이니이다.”(17).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통치 체계는 권력 분산입니다. 절대 권력을 거부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 왕정입니다.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셨다는 말씀은 의사 결정이나 정책 결정이나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의회나 여론이나 국민들의 의견을 구하거나 참고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가진 정치 체계를 말합니다.
성경에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누가 왕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느냐?](전8:4)고 한 그대로입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고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시는데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능을 가지십니다. 모든 교황이 꿈꾸는 세속의 권력, 모든 왕들이 꿈꾸는 종교 권력을 우리 주님께서는 다 갖습니다.
재정일치, 신정일치의 완전한 독재 왕정 국가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주의 뜻과 주의 말씀이 법이고 정책입니다. 오직 주의 뜻만이 홀로 섭니다. 천년 왕국은 시민 사회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신정일치의 절대 왕정 체제입니다.
17절에서 주의할 것은 시제입니다. 15절에 “통치하시리라.”고 미래형으로 되어 있는데 17절에는 “통치해 오셨기 때문이니이다.”(17)라고 과거 시제로 말합니다.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때는 미래형이었는데 스물네 장로는 과거형으로 말합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항상 본문 속에 답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해석은 본문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이 의문을 품을 때마다 할 일은 본문을 살피는 것입니다. 13,14절에서 큰 환란이 끝나고 15절에서 천년 왕국이 시작됩니다. 16,17절에서 스물네 장로는 천년 왕국 통치가 끝나고 18절에서 “큰 흰 왕좌 심판”이 언급됩니다. 짧은 몇 절속에 천년의 기간을 모두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에는 이미 천년 왕국의 통치 기간을 돌아보며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민족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왔고 죽은 자들의 때가 왔으니 이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하려 함이요, 또 주께서 주의 종들인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주려 하심이며 또 땅을 멸하는 자들을 멸하려 하심이니이다, 하더라.](계11:18). 이 부분에서 많은 주석가들이 혼란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시점을 천년 왕국 전에 놓아야 할지 끝나는 시점에 놓아야 할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민족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왔고...” (18)란 말씀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놓아 버리면 본문 말씀이 뒤엉겨 버립니다. 15절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가 이미 천년 왕국의 도래를 선포했고 16,17절은 하늘에 있는 스물네 장로가 주님께서 천년 왕국의 통치를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18절은 큰 흰 왕좌 심판으로 보면 문제는 간단히 풀립니다.
“민족들이 분노하매”를 큰 환란 기간 중의 일이 아니라 천년 왕국 말기에 있는 일로 보는 것입니다. 천년의 기간이 다 차면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있던 사탄이 풀려납니다. 그가 풀려나자마자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을 모아 반역을 꾀합니다. [나가서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속이며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하게 할 터인데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 같으니라. 그들이 땅의 넓은 곳으로 올라가 성도들의 진영과 그 사랑받는 도시를 에워싸매 불이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켰고](계20:8-9). 민족들이 분노했다고 할 때 이 민족들은 큰 환란 때의 민족들이 아니라 천년 왕국에 있던 민족들입니다.
“주의 진노가 왔고...(18)”란 말씀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키는 것입니다. 큰 환란 때처럼 심판은 42개월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집행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의 때가 왔으니.”(18). 이것은 계시록 20:11,12절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입니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과 “죽은 자들의 부활”은 그 시기가 다릅니다. 구약 성도들, 크리스천들, 환란 성도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은 정죄의 부활입니다. 악인들의 부활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 구원 없는 자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자들입니다(마8:22).
흔히 “일반 부활”이라고 말하는 부활인데 이들은 천년 왕국이 지나고 나서야 부활합니다. “죽은 자들의 때가 왔으니 이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하려 함이요”(18)란 말씀은 결코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하늘에서 크리스천들이 각자 자신이 행한 대로(롬14:10, 고후5:10) 상급을 주는 심판입니다. 죽은 자들의 심판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심판 때에 “......주께서 주의 종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주려 하심”입니다(11:18). 환란 성도들은 이 때 보상을 받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상급을 받았지만 구약 성도들과 환란 성도들은 큰 흰 왕좌 심판에서 상급을 받습니다.
큰 환란 때 왕국복음을 믿고 영존하는 복음(계14:6,7)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주님은 상급을 주십니다. 영존하는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그분의 심판의 시간이 왔으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들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라. 하더라.”(14:7)입니다.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이 심판에서 보상을 받습니다.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보상을”(18) 준다는 말씀에서 이들이 누구인지 성경 자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땅을 멸하는 자들을 멸하려 하심이니이다.”(18). 땅을 멸하려는 자들은 용, 짐승, 거짓 대언자인데 이들은 모두 불 호수에 던져집니다.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집니다(계20:14).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집니다(계20:15).
19절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그분의 상속 언약의 궤가 그분의 성전 안에 있는 것이 보였으며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11:19).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땅의 성막과 성전은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입니다(히8:5, 9:22).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습니다. 요한은 이미 이곳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는 그분의 상속 언약궤가 있으며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에 참으로 특이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분의 상속 언약궤(ark)가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는 지상의 성막이나 성소에 있던 것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에 준 것이지 교회에 준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전이나 언약궤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교회에 주어진 것은 “빵과 포도즙”을 놓은 “식탁”(table)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주의 만찬을 행하며 그분을 기억합니다(고전11:24,25). 땅에서 지성소에 있던 언약궤는 주님의 거처였습니다. 이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때가 시작되자 성전에서 주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하늘의 성전에 있는 언약궤는 주의 임재가 아니라 주의 심판을 드러냅니다.
언약궤와 번개들, 음성들, 천둥들과 지진, 큰 우박은 심판의 도구들입니다.
“그분의 상속 언약의 궤가 ..... 보였으며...”(19)란 말씀대로 언약궤는 주님께서 말씀, 약속, 언약을 지키시는 표징입니다. 언약궤에는 언약의 말씀들이 있는데 이 말씀대로 이 땅에 심판을 집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늘에 있는 언약궤는 손상되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은 하늘에 영원히 정착되어 있다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정확합니다. 주의 말씀은 한 글자도 떨어지지 않고 모두 문자 그대로 성취됩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말씀이 저 하늘에 다 있습니다.
본문을 잘 보십시오. “한 언약궤”(an ark)가 아니라 “그 언약궤”(the ark)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언약궤를 볼 수 있는데 노아가 만든 방주가 “궤”(ark)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배가 아니라 네모난 궤(ark)입니다. 주의 말씀과 관련해서 사용된 궤는 다섯 번 나옵니다. [그들이 {주}의 산에서 떠나 사흘 길을 갈 때에 {주}의 언약궤가 그 사흘 길에서 그들 앞에 가며 그들을 위해 안식할 곳을 찾았고](민10:33). the ark of the covenant.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담은 상자입니다. 언약궤라는 말대로 주의 언약이 담긴 궤(상자)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긍휼의 자리 위 곧 증언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너와 대화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네게 명령으로 줄 모든 것에 관하여 대화하리라.](출25:22). 본문은 “증언궤”라고 말합니다(the ark of the testimony).
주님은 자신을 증언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서 맹세로 자신을 증언하신 내용들을 담았다고 해서 이 궤를 ‘증언 궤’라고 합니다. [{주}의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궤가 있더라. 사무엘이 잠자려고 누웠더니](삼상3:3). 이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입니다.
각 나라마다 종교인들이 섬기는 고유의 성물이 있습니다. 돌덩어리를 섬기는 이들이 있고 건물을 섬기는 이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궤(상자-ark)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궤를 두는 곳이 성막이요 성전입니다. 이 궤는 지성소에 두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궤였습니다.
[오 {주}여, 일어나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안식처로 들어가소서.](시132:8). 이 궤는 주의 권능이 함께 했고 많은 표적들과 기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여리고 성을 돌 때 언약궤는 주의 능력의 궤였습니다. [{주}께 거룩한 자들 곧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holy ark)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집에 두라. 그것이 너희 어깨의 짐이 되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제 {주} 너희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기라.](대하35:3). 이 궤는 주님의 자리였습니다. 이 궤에서 모세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은 궤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와 대화했습니다(출25:22).
지상에 있던 이 궤는 성전이 불타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졌는지 아니면 주님께서 하늘로 옮기셨는지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외경에 보면 예레미야가 이 언약궤를 숨겼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거짓입니다. 예레미야는 대언자였지만 지성소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언약궤를 만졌다가는 죽습니다(대상13:9-10). 언약궤는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이동하거나 운반할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손을 대지 못합니다.
지금 성전을 건축한다면 언약궤는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돌 판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직접 받은 돌 판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만들어도 그 때 그 항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막은 원형 그대로의 성막으로서 땅에 있는 성막이 불타 없어져도 영원합니다. 천년 왕국의 성전에 언약궤가 그대로 안치된다면 에스겔은 그룹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것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하늘의 영광이 떠날 때 언약궤도 함께 떠난 것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겔9:3, 10:4, 10:18, 11:23). 솔로몬의 성전을 떠났던 주의 영광은 에스겔의 성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겔43:2-5).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은 계시록에서 네 번이나 나옵니다(계4:5, 8:5, 11:19, 16:18). 이는 심판의 도구들입니다. 19절은 다시 큰 환란 때의 시점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계시록 6:12-14, 16:21에서와 같이 큰 환란의 끝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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