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심문모전]제3부 함안댁 (제29회)
3. 무태 농가와 로차 고아원(5)
(처음부터 읽지 못한 분을 위한 재수록입니다.)
문제는 그가 실신해서 구출되던 날 까지 곁에 있던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만 반복하면서 자기가 쓰러졌던 곳에 가보자고 졸라대며 울었으므로 찾아가 보기도 했다.
“사방이 칠흙 같이 어덥은데다가 등화관제 때문에 앞 헤드라이트도 반쯤 가려놓고 있는 판이라 못 본 모양이지예.”
“그래도 그렇제. 즈거 엄마가 실려 가는 걸 보마 아들녀석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을 거 아이가?”-성
“그러게 말입니더. 아마 한쪽에 떨어져 잠이 깊이 들어있었는지도 모리지예.”
“그래서 우예 됐단 말고?”-염
“대장님, 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 말입니더. 고아원에서 짤막한 영화를 봤는데예.”
“영화? 고아원에서 영화를?”
“예, 미군이 찍은 영환데예, 실제 뉴스 같은 영홥니더.”
“다큐멘타리를 말하나 보다.”-성
“뭐라꼬예?”
“실제로 벌어진 일을 영화로 찍은 기다. 다, 큐, 멘, 타, 리락 칸다.”-성
“아, 그런 기 있십니꺼? 뉴스 영화하고는 다르다 그 말이지예?”
“뉴스는 말 그대로 새소식이고, 다큐멘타리는 뉴스는 아니지만 실제로 있거나 있었던 거를 설명해 주는 그런 영화 아이가. 그러나마나 니가 봤다 카는 거는 무슨 영환데?”
“방의 벽에 흰 보자기를 걸어놓고 거게다가 비춰서 보여주는 데예, 화면도 조그만 영화인데 내용도 아주 짤막한 영환데예, 클라크 군목이 함안댁을 구하는 장면부터 시작되는 영화라예.”
문모가 말하는 영화는 미국인 한 선교 단체에서 선교 활동을 취재하러 나와서 클라크 군목과 접촉한 다음 제작한 것이었다.
그 선교 단체는 미국내 교회를 상대로 모금을 위한 홍보성 다큐 물을 제작한 것들 중 한 편이거나 편집되기 전의 일부로, 로차 고아원 실태를 다큐로 찍은 것이었다.
문모가 본 장면은 클라크 군목이 고아원을 돕기 위해 부대를 나서서 고아원으로 가는 도중에 함안 댁을 구출하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장면은 등화관제 상태인 어두운 밤에 무슨 조명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어둠 속에서 군인들이 한 여인과 어린 아기를 구출하는 장면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화면 어느 구석에도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탓도 있지만 아이가 쓰러져 있거나 서 있거나 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없었다. 물론 그 장면 자체가 불과 십여 초의 지극히 짧은 장면이어서 설사 그 아이가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촬영하는 이가 그것을 놓졌거나, 제대로 확인이 안 되는 부분을 편집할 때 잘려 나갔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아원의 실상과 대구 거리에 배회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는 물론 로즈 여사의 기독교적 사랑을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주요 내용으로 엮는 과정에서 나타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함안댁의 아들이 영화 장면에는 아무리 살펴봐도 없더라 그 말이구나.”
“맞심더.”
“그런데 그 아지마시[아주머니] 사정에 우예 그래 밝노? 아주 미주알고주알로 아네 그래?”
“지가 그 함안댁한테 들은 기 아니고예. 신문사 황 국장님 부인한테 들은 깁니더.”
“황 국장 부인? 황 국장 부인이 그게 와 또 끼이노?”
“그 함안댁이 고아원에 와서 사나흘 지나 주일날, 공일날임니더. 그날꺼정 그 아주마이 정체가 정확하게 드러난 기 없었지예. 지대로 말을 잘 안했거등예. 그런데 그날 신문사 황 국장 부인하고 내 누이동생이 그 고아원에 왔심더. 황 국장 부인이 주일마다 그 고아원에서 봉사활동합니더. 미국에서 헌옷들을 보내오는데 그 옷들을 아이들 몸에 맞차서 줄이고 늘이고 하는 재봉일을 해주러 오지예. 그날도 그래서 왔는데예. 그 부인이 그 함안댁을 바로 알아본 깁니더.”
“그 부인이 우째 그 아주마이를 알아봤다 말이제?”
“해방되고 황 국장이 불하받아 사는 그 왜옥에서 곽가 가족이 일 년 같이 살았거등예.”
“황 국장하고 그 곽가가 같이 살았다꼬? 한 지붕 밑에서?”-염
“그랬심더. 황 국장이 그 집을 불하받아 이사 들어가이까네 이미 곽가가 그 집을 먼저 차지하고 있더라 카네예.”
“아아! 맞어맞어. 그랬구나. 그 곽가가 중학교 선생 될라꼬 도경에서 신원증명을 받으러 왔었거등. 그때 신원보증을 해왔는데 보증한 사람이 황 국장이더라꼬. 그래서 신원증명을 해조가지고 선생이 됐제. 그런데 십일 폭동나자 곽 가가 주모자급으로 수배하느라고 그 신분을 캘 때 황 국장이 보증 섰다는 기 드러나 가지고 그때 황 국장이 붙들리 왔었지. 군정 시아이시에 불리가갔고 좀 고생하셨던 걸로 알거등. 그때 그 양반이 곽가를 우예 아시고 보증을 서싰나 싶었디만도 그런 인연이 있었구만.”
“그래 십일폭동이 날 때꺼정 아마 꼭 일 년을 채왔을 깁니더. 같이 산 기 말입니더. 그래 같이 살다가 폭동이 나던 날 곽가 가족이 도주하듯이 이사갔분 깁니더. 그래 헤어져서 삼 년 만인가? 사년 만이제? 십일폭동 난 기 사이칠구년이고, 올해가 사이팔삼년이까네 사 년 만이네. 그렇지예? 그래 그분들이 사 년만에 해후한깁니더. 그래가지고 함안댁 정체가 온전하게 들통난 기지예.”
보준과 진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칠구(4279)년이나 사이팔삼년은 단기였으므로 서기로는 각각 일구사육(1946)년과 일구오공(1950)년이 된다.
“사람 인연들이 참 묘하네. 우째 그래 다시 만나게 되시꼬?”-성
“국장 부인이 나타나기 전꺼정도 부원장님하고 함안댁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아입니꺼. 그런데 알고보이 뜻밖에도 함안댁이 문맹이락 합니더. 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학교에를 못 댕깄다 카네예. 친정이 우째 사는 집안인지는 모리겠지만도……, 그래서 그 날까지 함안댁이 하는 말은 도무지 가리산지리산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데예. 국장 부인을 만나서 대화할 때에야 조근조근 묻고 또 다시 되풀이 묻고 해서 함안댁이 살아온 내력꺼정 온통 다 알기 된 기라예.”
일요일마다 황현준 국장의 부인 남득순이 고아원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철자의 소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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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마다 토/일 양일간 2회분씩 재수록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