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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다름'을 소통한다는 것
"소크라테스와 점심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전 재산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그만큼 대단했고 존경받았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안타깝게도 이미 2,000년 전에 죽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 천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게 바로 고전 읽기를 통해서다.
책은 작가의 치열한 생각을 최고로 간결하게 정리해놓은 집약본이다.
책을 읽으면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세인트존스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책을 읽는다.
시대의 천재들이 했던 생각을 엿보는 그 과정 속에서 배움을 얻기 위해.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배움의 시작일 뿐이다.
조니들은 책을 읽고 수업에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드디어 진짜 배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토론의 또 다른 이름, 소통을 통해서다.
'다름'을 소통하라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생각을 엿보았고 작가와 '소통'했다.
그러나 이 소통은 일방적인 것이다.
내 이야기는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수업에 가면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진다.
수업에는 같은 작가와 (책을 통해 각자) 만난 후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온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평소에는 나와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 불편했다.
그러나 이 다른 친구들이 세인트존스에서는 소중한 존재다.
다르기 때문에, 다름을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예시를 보자.
책을 통해 (이미 저세상에 가 있는) 작가는 말했다.
작가: 똥은 세상에서 가장 유용하다.
이를 두고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치매 할머니와 함께 산 적이 있는 철수: 똥은 유용한 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거야.
의학을 공부하는 영희: 그렇지. 똥을 못 싸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지. 배출은 유용한 일이야.
케냐에 사는 사바나: 오, 예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소똥으로 집을 만들어.
만약 이들에게 "다들 작가의 말 이해했니?" 하고 묻는다면 모두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모두가 이헤했다는 말이 똑같이 받아들였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이해는 했어도 어떻게 '해석' 했느나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우리는 경험, 자라온 환경, 가치관에 따라 작가의 단순한 한마디조차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위의 예를 다시 보면, 치매 할머니와의 경험 때문에 똥을 슬프게만 생각했던 철수는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게는 똥이 너무나 유용한 건축 재료로 쓰인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될 것이다.
사바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똥의 의학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똥의 새로운 면모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통의 힘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나누고 있다 보면 배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소통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의 예시처럼 단순한 똥 얘기라면 괜찮겠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주제로 들어가면 자신의 가치관, 신념 등을 놓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의견과는 '다른' 친구들의 의견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충돌이 시작되면 토론discusion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있던 소통communication은 논쟁debate이 되고 누가 옳고 틀리냐를 두고 싸우게 된다.
그렇게 토론이 논쟁으로 변질되는 것은 세인트존스의 수업 방식이 아니다.
세인트존스의 '토론'은 '어떤 주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서로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하는 말하기'가 아닌 소통으로서의 토론이기 때문이다.
세인트존스의 토론은 학생들이 서로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나누고 궁금한 것들을 더 캐묻고 의견을 나누는 정도지, 누가 이기고 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소통의 매너를 익혀라
토론을 할 때는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선 충돌해야만 한다.
다른 의견을 들어야 자신의 제한된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시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견을 듣는 건 신나는 일이다.
내 한계를 벗어나야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말도 안 되게 느껴지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을 듣는 경우도 많다.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갈릴레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옳다고 밝혀진 많은 진리들이 예전에는 그랬다.
어찌 보면 자신이 평생을 믿어온 가치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의견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때 소통을 단절하면 나는 여전히 지구가 네모나다고 믿는 내 세상 속에만 머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전혀 동의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통을 해나가기 위해. 그래서 모두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기 위해.
이 과정을 질해내기 위해선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소통의 매너를 익혀야 싸우지 않고, 서로 기분 상하지 않으며 함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인트존스에 처음 가면 학생들은 소통의 매너를 익히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히 1학년 돈 래그 때는 튜터들이 지적하는 학생들의 문제점 중 거의 대부분이 수업에서의 매너에 관한 것이다.
"말이 너무 많다(다른 의견을 들어라)."
"말이 너무 적다(네 의견을 표현해라)."
"다른 사람의 말을 끊지 마라(다른 사람을 배려해라). 등이다.
여기서 핵심은 다른 이들을, 다른 의견들을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라는 것.
그것 하나다.
타인을 존중하기 위한 제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경어쓰기다.
우리는 수업 때 모두가 경어를 쓴다.
심지어 튜터들조차 학생들을 '~ 씨Mr./Ms.'라고 부른다.
자칫 감정적이 되거나 싸우게 될 수도 있는 토론을 배움이 가득한 토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거리를 두고 격 식을 갖추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인트존스는 아주 작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엄청 친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수업 때는 더욱더 거리를 두는 것이다.
좋은 클래스메이트란
매너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각자의 역할이다.
토론 수업은 개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수업이다 보니 책이나 교수에게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서로에게서, 서로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많다.
따라서 얼마나 팬찮은 클래스메이트가 있느냐 역시 배 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어떤 친구들이 좋은 클래스메이트일까?
똑똑하고 지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친구들이 무조건 좋은 클래스 메이트라고 할 수 없다.
모두가 똑똑하면 수업은 엉망진창이 된다.
실제로 나는 머리 좋기로 소문난 친구들이 한꺼번에 몰린 수업의 구성원이 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와, 똑똑이들이 다 모여 있어!'하면서 좋아했다.
하지만 그 수업은 1년 내내 최악이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 것이다.
모든 수업에는 각자 학생들의 개성, 성격에 맞는 역할들이 있다.
똑똑한 학생, 질문하는 학생, 유머를 날리는 학생, 언제나 반대 의견을 내는 학생, 잘난 척하는 학생, 자책하는 학생, 수줍은 학생, 자신감이 과한 학생.
여러 유형의 학생들 중 많은 튜터와 학생들이 선호하는 유형은 아무래도 모든 걸 두루두루 잘하는 학생이다.
잘 듣고, 자신의 의견도 적절하게 표현하고, 그 의견 안에 통찰이 있고, 거기에 더해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중재까지 가능한 학생.
4년간의 토론을 통해 이런 경지에 도달하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하나 사실 이렇게 되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자기는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착각하는 학생들도 있으나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아닌 경우도 많다).
게다가 세인트존스의 수업은 보통 대학의 수업처럼 학기마다 바뀌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유지된다.
1년이나 함께 배움을 탐구할 클래스메이트들이니 여러모로 어떤 성격의 학생들이냐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또 반대로 그렇다면 나는 과연 수업에서 친구들이 배움을 얻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역할을 정확히 알수록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클래스메이트가 중요하다 보니 세인트존스에만 있는 특이한 시스템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코어core와 블랙리스트blacklist다.
한마디로 하자면 코어는 학교에서 정해준 1년을 함께할 짝꿍 시스템, 블랙리스트는 정말로 싫어하는 친구와 엮이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원수 명부(?) 시스템이다.
운명 같은 친구, 원수 같은 친구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잡다한 서류 작성을 마치고 방 배정을 받고, 제일 마지막으로 1년간의 수업 시간표를 받는다.
조니들은 수업 시간표를 받는 시간을 제일 기다린다.
매일 어떤 수업을 몇 시에 듣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표 확인의 진짜 묘미는 바로 코어를 찾아내는 데 있다.
코어는 세인트존스의 아주 특이하고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3~5명 규모로 단짝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원리는 이렇다.
100명의 신입생이 있다 치자.
이 100명은 똑같은 커리큘럼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대개 한 반에 13~20명씩 배정하는데, 제일 쉬운 방법은 아예 A반, B반 등으로 대략 15명씩 나누어 통째로 5 종류의 수업을 1년간 함께 듣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측에선 그렇게 모든 수업을 같이 듣는 반을 만들지 않는다.
토론 수업이다 보니 다양한 의견, 성격을 가진 친구들이 골고루 섞여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한명 한명 다 수업을 다른 시간으로 배정해주는데 그래도 모두가 다 완전히 다를 수는 없으니 다섯 개 수업을 전부 같이 듣는 친구들이 몇 명 생긴다(공통으로 수업을 듣는 친구들의 숫자는 다섯을 넘지 않는다).
학생들은 처음 시간표를 받았을 때 누가 자신의 코어 멤버인지 모른다.
그러나 세미나에서 본 친구가 수학 수업 시간에 가니 있고, 언어 수업에 가니 또 보이고. 이런 식으로 모든 수업이 겹친다면 그들은 코어인 것이다(모든 수업이 겹치지 않고 절반 정도만 겹칠 때는 하프 코어half core라고 부른다).
코어가 생기면 장단점이 생긴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코어는 모든 수업을 함께 듣기 때문에 서로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엄청 소심했던 나는 1학년 때 수업 중에 말을 한마디 안 했는데 나와 코어였던 (친구들 사이에서 골든 소울golden
soul이라 불릴 정도로 다방면으로 뛰어난) 친구가 은근히 나를 많이 도와 줬다.
내가 한마디라도 하면 좋든 나쁘든 그 말이 토론장에서 묻히지 않게 하려고 애써주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있다.
바로 코어인 친구가 나와 정말 맞지 않는 경우다.
어느 누가 옳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달라, 서로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는 그냥 '우린 다른 종류의 사람이구나' 하고 각자의 삶을 살면 되는데 비극적으로 그런 친구들끼리 코어로 묶여버리면 정말 난감해진다.
게다가 수업 중에는 나와는 정말 상반되는 그 친구의 의견을 열심히 들어야만 하는 일이 매번 발생한다.
고역이요, 고문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통스러워하며 1년을 그냥 보내야 하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다.
블랙리스트는 말 그대로 내가 정말 수업에서 만나고 싶지 않는 친구의 이름을 올려놓는 명단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려면 정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걸 학교가 인정해줘야 한다.
단순히 '난 이 친구가 수업 시간에 자기 말만 해대서 정말 지긋지긋해. 그 어떤 수업도 같이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한다면, 그건 이유가 안 된다.
지긋지긋한 이야기라도 그걸 들을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친구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가?
정말 어쩔 수 없이 피하는 게 좋은 경우만 올라간다.
예를 들면 남녀 친구 둘이 사귀다가 너무 안 좋게 헤어졌을 때, 또는 절친한 친구였던 친구 둘이 원수가 됐을 때 같은 특별한 케이스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당사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공부나 배움에 몰두하기는커녕 서로를 의식하고 있거나 다른 친구들의 공부까지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라도 학교 측에선 웬만하면 둘이 잘 해결해보라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학교에서도 받아들여준다.
인간관계 문제는 100여 명 안팎의 학생들이 4년간 같이 생활하며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어느 정도는 학생들의 편의를 봐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완전 코어도 아니고 하프 코어도 아닌, 어정쩡한 코어가 생기는데, 그럼 친구들은 "이거 누가 나 블랙리스트에 올린거 아냐?"라며 장난을 던지기도 했다.
누군가가 자기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면 해당 수업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이상하게 한 수업만 다르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사실 코어와 블랙리스트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무의미해지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학교로 편입하거나 자퇴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남는 친구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더 이상 수업 구성원을 다양하게 섞기도 힘들어지고 그렇게 섞을 필요조차 없어지게 된다.
3~4년 동고동락 하다 보면 딱히 코어가 아니어도 서로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정말 죽도록 싫었던 친구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는 살 수가 없다.
혼자 책을 읽고 배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할 때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더 갈고닦게 되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게 된 다.
그렇기 때문에 싫으나 좋으나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혼자 공부하고 생각해서 가져올 수 있는 배움의 크기가 고작 10이라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 배움의 크기는 몇 배로 커질 수도 있다.
게다가 나의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이 소통을 통해서 시너지를 낸다면 그때는 혼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배움을 얻게 된다.
때문에 함께 배우는 클래스메이트들은 중요하고, 그들과 함께 소통하는 매너를 익히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배움의 자세인 것이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중에서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
조한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