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홍대용(洪大容, 1731-1783) |
국가 |
한국 |
분야 |
산문 |
해설자 |
김태준(동국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
≪의산문답≫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의 사상을 집대성한 철학소설이다. 책의 제목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 동북지방의 명산 의무려산(毉巫閭山)을 배경으로 벌이는 문답 형식의 글이다.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라는 두 등장인물이 의무려산에서 만나, 서로를 소개하는 인사에서부터 문답 대결을 통하여, 실학정신을 펴서 우주론과 역사론에 이르는 철학적 내용이 중심이다. 그래서 이 글을 철학소설이라고 하는 주장과는 달리, 철리산문(哲理散文)이라고 보는 주장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다만 철학적인 글만은 아니고, 문학으로서도 대단히 흥미롭고 훌륭한 글임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바다.
의산은 조선과 중국의 경계에 있어 그 지리적 경계성이 중시되었고, 문답은 오히려 실옹의 꾸중이라고나 할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 중요한 내용이 문답으로 일관되고 소설적 구성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허구적 인물들의 설정이나 의산이라는 배경 설정에서는 물론, 인물균(人物均) 사상과 천문지리(天文地理)론과 인물 역사론이 서로 유기적으로 치밀하게 고려된 구성에서 철학소설적 의도가 돋보인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철학적 수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이 작품은 조선 18세기가 이룩한 동아시아 최고의 지적 성취라 할 만하다.
이 글을 쓴 담헌(湛軒) 홍대용은 흔히 북학파(北學派)의 대표적 실학자로, 혹은 혼천의(渾天儀)를 만든 과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의산문답≫의 지은이라는 사실에서 이 글의 주인공인 허자와 실옹을 하나로 지양한 인물이라면 그에 가장 방불한 이해에 이를 수 있을 터이다.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을 공부하여 실학에 정진하고, 고학과 상수학(象數學)은 물론, 수학과 음악 등에도 밝은 백과전서적 통합과학자였다고 할 만하다. 그는 스물아홉 살부터 4∼5년 사이에 두 대의 혼천의를 만들어 집에 농수각이라는 천문관측소를 가지고 있는 천문학자였으며, 서른다섯 살에 연행(燕行)을 다녀와서는 한문본 ≪담헌연기≫와 2천여 쪽에 이르는 국문본 ≪을병연행록≫을 남긴 여행가 문인이자 당대 최고의 가야금과 양금(洋琴)의 연주가이기도 했다. 그가 ≪의산문답≫이란 문제의 저작을 남긴 것도 이 연행의 체험과 스스로의 학문적 성취와 함께, 그의 철학과 시대정신의 총화로 이해하면 좋을 터이다. 특히 홍대용의 이 저작은 홍대용 철학의 중심으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 인물균 사상과 함께, 우주무한론(宇宙無限論)과 생명사상에서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에 이르는 그의 통합과학이 망라된 사상과 문학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허자라는 이가 숨어서 독서한 지 30년에 천지의 조화와 성명(性命)의 미묘함을 깊이 연구하고, 오행의 근원과 삼교(三敎)의 진리를 통달했다. 그리고 인도(人道)를 밝히며 물리에 정통하여 깊은 우주의 원리를 꿰뚫어 본 다음에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학문을 유세했다. 그러나 놀랄 줄 알았던 세상 사람들은 듣는 자마다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허자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작은 지혜와 더불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없고, 비열한 세속 사람과 더불어 도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실망한 허자는 중원(中原)으로 여행하여 자기의 학문을 알아줄 선비를 찾아 헤맸다. 그리하여 연경에서 놀며 연경 선비들과의 담론으로 두 달을 보냈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도 지기(知己)를 만날 수가 없었던 허자는 다시 탄식하여 말했다. “주공(周公)이 쇠했는가, 철인(哲人)이 말랐는가, 나의 도(道)가 잘못되었는가?” 그리고는 귀국길에 올라, 두 나라의 경계에 있는 의무려산에 숨기로 하고 산속 깊이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인 실옹과 만나게 되면서 그가 뽐내던 30년간의 학문은 허학(虛學)으로 샅샅이 해체되고, 실학 논쟁으로부터 우주무한론에 이르는 철학 문답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어 간다.
작품의 문학적, 철학적 상징성은 인물을 ‘허실(虛實)’로 이름 지은 대립적 설정에서부터 뚜렷이 드러나 있다. 허자는 허학에 골몰하는 세속 유학자를 대표한다. “젊었을 때에는 성현의 글을 읽고, 커서는 시례의 공부를 익히고, 음양의 변화와 인물의 이치를 탐구한” 유학자다. “마음을 기르기는 충경(忠敬)으로 하고, 일을 꾀하기는 성실과 민첩으로 했으며”, “육예(六藝)를 두루 배웠으며 결국에는 육경(六經)에 통하고 정주(程朱)의 학설을 절충했으니”, “유학자의 학문적 줄거리를 모두 갖춘” 학자였다. 이 30년의 공부가 허학으로 해체당하는 것이다. 세속 학문이 허학으로 해체당하는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그 거짓됨에 있다. 마음들이 헛되었기 때문에 30년을 숨어서 공부해 보았자 모두가 거짓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의 당시 형편만은 아니고 한문문화권의 중심이었을 중국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고 하여, 동아시아 학술 전체를 이 작품은 훌륭히 포괄하고 있다.
이 허학의 진단은 이를 지양하여 충실화하는 ‘실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허자가 실옹을 만나면서 허학을 해체해 가는 과정은 시종 두 사람의 문답으로 이어지고, 서사적 줄거리나 소설적 결말이 없다. 그러나 허자와 실옹의 개성미 넘치는 인물 설정과 그 대립에서 보이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논의의 격렬함이 일반 산문들에서 보기 어려운 소설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다. 특히 이 ≪의산문답≫을 홍대용이 가장 친했던 후배이자 친구인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한문소설 <호질(虎叱)>과 비교하면 창작 동기나 저작 의도가 너무나 닮아 있어 흥미를 끈다. 나는 이런 흥미를 바탕으로 두 작품을 ‘3장으로 된 대결의 장면 구성’, ‘꾸짖는 자와 꾸지람을 당하는 자의 인물 구성’, ‘인물들의 대결 양상’, ‘실학론과 인물성동론적 내용’ 등으로 나누어 비교하여 두 작품의 관련 가능성을 살핀 바 있었다. 이 두 글을 함께 읽으면 두 작품의 이해는 물론,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터이다.
홍대용은 통합과학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철학ㆍ문학ㆍ역사학ㆍ자연과학ㆍ수학과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사상을 이룩한 사람이었고, 이 ≪의산문답≫은 이런 그의 통합과학적 사상을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준 저작이다. 이런 사상체계는 크게 다음 세 가지 핵심 주제로 요약할 수 있다.
(가) 인물균 사상
(나) 우주무한론
(다) 역외춘추론
여기서 (가) 인물균 사상은 그가 자란 낙론(洛論)계의 ‘인물성동론’에 그 스스로 연구한 천문학의 상대적 관점을 반영한 그의 철학의 빛나는 도달점이었다. 그리고 (나)의 천문지리를 다룬 우주무한론과 (다)의 역외춘추론에 이른 역사론은 비교적 뒤 시대에 그가 도달한 철학의 체계였을 터이다.
유학에서는 천지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다고 배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만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만물이 천하지만, 만물로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터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의 처지에서 보면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자연물이 다 마찬가지다. 이런 원리에서 생각하면 만물의 생성 근원이며 자연철학의 원리가 다를 바 없다. 우주에는 무한한 별들의 세계가 있고, 별들은 무한히 운동하며, 결국 위와 아래도 없으며, 안과 밖도 없다는 깨달음이 홍대용의 우주무한론이며, 이것은 중심 개념을 해체한다. 스스로 선 곳이 중심이며,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화이론(華夷論)은 스스로 해체되기 마련이다. ≪춘추(春秋)≫가 중국의 역사라면 각 민족은 각 민족의 역사가 있다는 ‘역외춘추론’의 역사관이 그래서 나올 수 있었을 터이다.
작품에서 실옹이 사람과 만물이 나뉘는 지점으로 ‘마음’을 들고 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대목이다. 허자의 30년 닦은 학문이 샅샅이 허학으로 해체되는 까닭도 바로 그 마음의 거짓됨에 있다고 했다.
“마음이 헛되면 예의가 헛되고, 예의가 헛되면 헛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헛되면 남에게도 헛되고, 남에게 헛되면 온 천하에 헛되지 않은 것이 없다. 도학(道學)의 미혹(迷惑)은 반드시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니 그대가 그것을 아는가?”
이렇게 마음의 헛됨은 그대로 도학의 미혹으로, 도학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허학으로 진단된다. 이런 허학의 진단은 이를 해체, 지양하는 곳에 실학의 길이 있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홍대용은 스승 김원행을 조상한 제문에서, “일찍이 묻고 배우는 것은 ‘참마음[實心]’에 있고, 행하는 바는 ‘실용적인 일[實事]’이었으니, 실심(實心)으로 실사(實事)를 행하면 허물이 적고 업(業)을 이룰 수 있다”고 한 스승의 교훈을 상기했다. 특히 이 실심과 실사가 “세속 선비의 비뚤어진 학문[世儒委曲之學]과 실용 없는 학문[記聞之術]”과 대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스스로 배우고 힘쓰며, 중국의 친구에게도 요구한 홍대용 실학의 요체였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홍대용이 주장하고 스스로도 힘쓴 실학이 실심실학이었다는 점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이 작품의 가치임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