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
나 이제 유년의 동백나무 숲으로 가리
해풍이 잠을 깨우는 3월의 들녘을 지나
초목의 눈들이 깨어나는 산기슭을 지나
스스로 유폐를 자청한 산승山僧처럼
두어라 한 세상, 숨어 있기 좋은 곳
젖망울처럼 피어나던 수줍은 마음
그날의 동백나무 숲으로 돌아가리.
돌아가 떨어진 꽃송이를 주우며
덧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이야기하리
나 이제 젊은 날에 떠돌던 바닷가로 가리
청보리밭 서러운 해변의 모퉁이를 돌아
은빛 물결 일렁이는 봄 바다의 배후를 돌아
아득하여라 푸서릿길을 따라 흐르면
남해의 어느 섬마을로 떠나는 여객선 한 척
나의 마음은 물보라처럼 머물 곳이 없었으니
오랜 갈망과 낙망을 머금고 저물어가는 바다
어둠 속에 뿌려지는 노을의 빛깔들에게도
지난 시절의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리
돌아보면 잠시 들썩이다 저물어 간 청춘의 시간들
매화꽃이 피고 동백꽃이 지는 사이
세상에서의 날들이 이와 같이 찬란히 빛날 때
내 마음속 초당草堂에는 아직도 작은 등불 하나가 켜지고
그리움은 천지를 붉게 물들이고 바다 속에 잠겼으니
월출산 만덕산 두륜산 달마산 지나 땅끝으로 가는 길
마음은 언제나 고립을 자처하는 길손처럼 적적하였으니
백련사 동백 숲으로 가서 떨어진 꽃송이를 보고
추원당 돌담 가에 피는 수선화를 보고
벗이여 묻노니 지금은 썰물 지는 시간
세월이 우리 곁을 더 이상 빠져나가기 전에
솔섬을 떠도는 바람소리처럼 적막해 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