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 古墳壁畵; 漢城百濟博物館 특별전시
高句麗 古墳壁畵 특별전시
서울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漢城百濟博物館에서는 <高句麗 古墳壁畵>를 특별전시하고 있다.
(전시기간: 2016.12. 29~2017.02.26)
壁畵가 그려진 고구려 무덤에는 고구려 사람의 삶과 소망이 投影되어 있으며, 그림 속 모습은
고구려 사람들에게 現世 삶의 再現이자 來歲의 所望이었으므로, 현대를 사는 우리가 古代의
고구려 사람을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전시는 民族和解協力凡國民協議會가 漢城百濟博物館에 기증한 고구려 벽화고분 5기의
實物模型과 그 밖의 壁畵 模寫圖를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는 고구려 그림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사람이 만든
삶과 죽음의 공간을 직접 체험하고 그 속에서 그림을 통해 역사적 想像力을 키우는 기회이다.
고구려 사람들의 생각과 감각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實物 크기의 모형, 그들의 精巧한
기획력과 建築術을 實感할 수 있는 축소모형, 첨단 映像裝備로 구현한 假想現實世界 등
다양한 媒體와 방법을 통하여 고구려 사람의 삶과 얼을 느껴볼 수 있다.
漢城百濟博物館
한성백제박물관은 올림픽공원 서울 夢村土城(史蹟 제297호) 지역에 건립된 서울시립박물관으로
王都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알리기 위해 2012년 4월 개관한 古代史∙考古學專門
박물관으로 지상 2층, 지하 3층의 構造로 垈地面積 1만 4,894㎡, 建物延面積 1만 9,423㎡이다.
漢城百濟(BC18∼AD475)는 백제 歷史 678년 중 오늘날 서울지역인 漢城에 493년 동안 都邑을
두었던 시기로. 동아시아 해상무역과 문화교류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등 백제 역사상 가장
强盛했던 시기였다.
전시공간은 로비, 제1전시실(서울의 先史) ∙ 제2전시실(王都 漢城) ∙ 제3전시실 (三國의 角逐)등
常設展示室 및 企劃展示室과 2층 野外展示空間 등 총 6개 展示室로 구성되어 있으며, 로비에는
百濟王城인 서울 風納洞土城(사적 제11호)의 城壁을 傳寫(옮겨 베낌)하여 전시∙연출하였다.
사진을 2회로 나누어 올린다.
高句麗 古墳壁畵;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시(2-1)
高句麗 古墳壁畵;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시(2-2)
2017.01. 23 孤 山 朴 春 慶
高句麗 古墳壁畵;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시(2-1)

(01) 漢城百濟博物館
박물관 外觀은 夢村土城의 輪廓을 나타내면서 海洋國家 漢城百濟를 상징하는 배 모양으로
설계하였다.

(02) <고구려 고분벽화> 포스터

(03) 古墳 天障畵

(04) 展示를 열며

(05) 高句麗 時代
*고구려는 BC 37년 朱蒙이 이끈 夫餘族의 한 갈래가 鴨綠江의 支流 佟佳江(渾江) 流域에
건국하였으며, 國號 ‘高句麗’의 語源은 ‘句麗’에 ‘크다’, ‘높다’는 뜻의 ‘高’=‘大’를 덧붙인
말로, ‘큰 고을’ ‘높은 성’의 뜻을 지닌 말이다. (*句麗; 貊族의 城을 ‘溝漊’, ‘忽’이라
하는데 이는 邑, 洞, 谷 등을 나타내는 ‘고을’과 통하는 말이다.)
고구려는 廣開土大王(재위 391∼413년) 때 백제의 漢城을 침공하여 臨津江과 漢江線까지
진출하였고, 북으로는 後燕을 정복하여 遼東을 차지하고 肅愼을 服屬시켜 滿洲와
韓半島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였으며, 長壽王(재위 413~491년)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제도의 정비와 대외정책의 확대 등으로 최대 全盛期를 맞이하였다.
427년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首都를 古朝鮮의 문화 遺産地인 平壤으로 遷都하여 집권적
정치기구를 정비하고 국력을 신장시켜 동쪽으로는 琿春, 南쪽으로는 牙山灣에서 동쪽의
竹嶺에 이르렀고, 北西쪽으로는 遼河 以東의 滿洲地方 대부분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隨∙唐과의 여러 차례 戰爭으로 國力이 소모되고, 淵蓋蘇文 事後
男生∙男建∙男産 세 아들의 不和로 지도층이 分裂되어 羅唐聯合軍에 의해 668년 平壤城이
함락되고 멸망하였다.

(06) 고구려 사람, 그리고 무덤

(07) 고구려의 領土, 壁畵무덤 위치
*歷史에 假定은 없다지만 만약에 三國(고구려, 백제, 신라)을 新羅가 아닌 高句麗가
통일했다면 지금 滿洲地方은 우리 領土가 되어 대한민국 憲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韓半島와 그 附屬島嶼로 한다.’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滿洲大陸,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가 되지 않았을까? (*허황된 꿈?)
*中國은 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中國歷史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인 <東北工程>으로
吉林省∙遼寧省∙黑龍江省 등 東北三省 지역의 古朝鮮 ∙ 高句麗 ∙ 渤海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

(08) 고구려사람의 삶

(09) 고구려의 王都

(10) 고구려의 王都(위치도)
BC 37년 朱蒙이 卒本(桓仁) 지방에서 고구려 건국, 이후 國內城(通溝)으로
遷都 → 儒理王 22년(AD 3) 國內城으로 遷都. → 209년 丸都城 →
長壽王 15년(427) 平壤(長安城)으로 천도. 668년 고구려 滅亡

(11) 安岳三號墳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67호/유네스코 세계유산-
黃海(南)道 安岳郡 五國里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무덤으로 故國原王 6년(336) 遼東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冬壽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어 ‘冬壽墓’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고구려의 故國原王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고국원왕 27년(357)에 축조되었으며 1949년 발굴되었다. 무덤의 外觀은 네모뿔臺로
남북 약 33m, 동서 약 30m, 높이 약 6m이며, 그 속 半地下에 무덤간이 있다.
무덤간은 널방[玄室], 앞방[前室], 두 옆방[側室], 그리고 앞방 앞에 문간이 있고,
이 문간과 널길[羨道]이 연결되어 있다.
壁畵는 돌벽 위에 직접 그렸는데 안길의 동서벽에는 무덤을 지키는 護衛兵이 그려져 있으나
석회가 떨어져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칸에는 巫樂儀仗隊를, 서쪽 곁칸에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주인공이 文武官을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장면과 侍女들을 거느리고 있는
안주인을 그렸다.
이 무덤은 우리나라 石工 技術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遺蹟이라 할 수 있으며 畵面이
엄청나게 크고 등장인물도 많으며 내용도 다채로워 우리나라는 물론 世界美術史에서도
秀作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안악 3호무덤은 築造年代(357년)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있고, 화려한 벽화를 통하여 당시
고구려의 사회와 문화 등 다방면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널길[羨道]; 굴식방 무덤에서 밖에서 무덤 방으로 들어가는 사이의 공간.(*羨; 무덤길 연)

(12) 안악3호분 동쪽곁방[東側室] 집안 風景
동쪽곁방에는 집안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그렸다. 東壁에는 料理하는 부엌의 모습과
고기를 갈고리에 매달아놓은 고기창고, 무덤주인 夫婦가 탈 수레와 車庫의 모습을 그렸다.

(13) 안악3호분 서쪽 곁방[西側室] 西壁의 무덤주인
서쪽 곁방[西側室]은 무덤주인 夫婦의 공간으로 西壁에는 帳幕 안 平床에 무덤주인이
정면으로 앉아있고 장막 바깥 좌우에 侍從과 官僚들이 늘어섰다.
주인공은 비단모자[羅冠]을 썼으며 도깨비얼굴을 그린 털부채를 손에 쥐고 있다.

(14) 안악3호분 서쪽 곁방[西側室] 南壁의 무덤주인 부인
서쪽 곁방[西側室] 南壁의 화려한 平床에 앉은 무덤주인 부인은 조금 통통하게
표현하였으며 周邊 侍女들은 모두 부인보다 조금 작게 그렸다.

(15) 안악3호분 앞방[前室]
앞방의 三碧은 모두 출입구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나뉜다. 南壁의 서쪽에는 뿔나팔 부는
사람과 樂器를 연주는 樂士들, 동쪽에는 儀仗旗手와 도끼를 든 무사[斧鉞手]를 그렸다.
東壁의 남쪽에는 格鬪技의 일종인 수박[手搏]을 하는 두 사람과 도끼를 든 武士가 있다.
서쪽 곁방 출입구 양쪽에는 護衛武士 그림과 함께 ‘帳下督(장하독)’이라는 官職名 글씨가
있다. 帳下督의 머리 위에는 전연[前燕]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冬壽(동수)에 대한 墨書가
있으며 여기에 永和 13년(357)이라는 造成 年度가 적혀있다.

(16) 안악3호분 널방[玄室], 회랑[回廊]
널방[玄室]은 東壁에만 樂器를 연주하고 춤추는 인물 4명 그림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樂士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오른쪽 인물의 춤사위와 服飾이 異國的이어서 西域출신의
인물로 보기도 한다.
회랑에는 250여명의 인물을 그린 거대한 行列圖가 있으며 행렬 뒤쪽에 있는 무덤주인은
털부채를 든 채 소가 끄는 四方이 트인 수레를 타고 있고 수레 앞 侍從이 든 검은 깃발에
‘聖上幡(성상번)’이라는 글씨가 있어 무덤주인을 王으로 보기도 한다.
수레 앞뒤에는 侍從과 侍女, 음악을 연주하는 樂隊 등의 무리가 있다.

(17) 高句麗의 音樂

(18) 장고∙현금을 연주하는 신[奏樂仙人]. 集安 五盔墳(模寫品) (*盔; 주발 회)

(19) 손북[手鼓] (再現品) – 장고[杖鼓] (再現品)

(20) 흔들북

(21) 뿔나팔[角笛] (再現品)

(22) 거문고[六絃琴]

(23) 뿔나팔과 소를 연주하는 神(위)-저대 부는 神. 중국 吉林省 集安 五盔墳 출토(模寫)
(*盔; 주발 회)

(24) 말북[馬上鼓] (再現品)

(25) 메는 북[擔鼓] (*擔; 멜 담)

(26) 무용도[舞踊圖]와 여러 신상[神像]

(27) 무용도[舞踊圖]. 중국 吉林省 集安 舞踊塚 출토.

(28) 수렵도[狩獵圖]. 중국 吉林省 集安 舞踊塚 출토.

(29) 씨름도[角觝圖]. 중국 吉林省 集安縣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 角觝塚에 그려진 벽화(模寫).

(30) 불의 신과 농사의 신[天神]. 중국 吉林省 集安 五盔墳(模寫)

(31) 불공 드리는 모습[禮佛圖]. 集安長川一號墳(模寫)

(32) 불의 신과 대장장이 신[天神]. 중국 吉林省 集安 五盔墳 四號墓(模寫).

(33) 수레바퀴 신과 숫돌 신[天神]. 중국 吉林省 集安 五盔墳 四號墓(模寫).

(34) 德興里 壁畵墳(南浦 德興里 壁畵古墳)

(35) 南浦 德興里 壁畵古墳 出入口.
*南浦 德興里 壁畵古墳–북한국보 제156호/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평안남도 南浦市 江西區域 德興洞(舊地名: 평남 大安市 德興里)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주인공의 이름을 따 ‘幽州刺使鎭墓’로 부르기도 한다. 평양에서 20여 ㎞
떨어진 덕흥동 舞鶴山 서쪽 玉女峯 南端 丘陵에 자리잡고 있으며
1976년 북한 고고학계에서 발굴하였다.
널방[玄室]의 구조는 앞방의 남벽에 달린 널길[羨道]과 가로로 긴 장방형의 앞방[前室],
앞방과 널방을 잇는 좁은 통로, 네모난 널방으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이 고분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壁畵古墳이면서 풍부한 그림을 전해주고 있으며, 앞방
북벽의 天障 하부에 14행으로 墨書된 銘文으로 永樂 18년(408)에 고분을 축조하였고,
널길[羨道] 서벽의 명문을 통해 己酉年(409)에 폐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들판을 사이에 두고 江西 三墓와 마주 보고 있으며 주변에는 南浦 藥水里 壁畵古墳,
南浦 水山里 壁畵古墳, 蓮花塚 등 벽화고분 10여 基가 있다.

(36) 南浦 德興里 壁畵古墳. 앞방[前室]의 南壁과 밖으로 연결된 출입구.

(37)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앞방[前室] 北壁. 널방[玄室]과 연결된 출입구.

(38) 南浦 德興里 壁畵古墳 앞방[前室] 서쪽공간.
앞방[前室]은 무덤주인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公務를 처리하던 사랑채이다.
앞방의 서쪽공간에는 13명의 太守와 幕府官吏로부터 인사를 받는 무덤주인의 모습을
그렸다.

(39) 南浦 德興里 壁畵古墳. 앞방의 동쪽공간. 대규모 行列圖

(40)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앞방[前室] 천장(天障)

(41)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널방[玄室]
무덤주인의 개인 生活空間인 널방[玄室] 北壁의 무덤주인 肖像.

(42)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널방의 西側壁

(43)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널방의 東側壁

(44)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널방의 천장

(45) 남포 덕흥리 벽화고분 널방[玄室]의 南壁. 앞방[前室]과 연결된 출입구.

(46) 고구려 사람의 얼
- 高句麗 古墳壁畵;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시(2-2)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