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명- 양이 태어나는 나무
저-임정희 시집
독정-26.7.22.수
출-인간과 문학사
<영원히 아픈 못>
어디서든 수직으로 서야
덜 맞는다는 걸
머리가 깨지기 직전에
깨닫는 아둔한 못
다시 뽑히지 않을 만큼만
뿌리 박고서
박힌 채로
제 뿌리를 생각하면
그래도 부모는 철광석
수 천만 번의 담금질로 태어났으리
한순간 못난 혓바닥으로 박은 못들은
그대 가슴에서 이물질로 뼈를 찌르고
그대가 박은 수많은 못난 못들도
어느 가슴속에서
피 흘리며 삭고 있을 텐데
세상을 향해 박았던
못난 원망의 못
죄인들의 아우성으로
마침내 십자가에 박아졌던 쇠못
다시는 빼낼 수 없고
삭아지지도 않는 그 못
종교가 없어도 영원히 아픈 못이다.
※ 이 책의 평론자는 ‘못은 피해자이며 가해자로 시의 반전에 연별로 굽이쳐 흥미로운 구성이다. 마치 천형 받은 죄인이면서 타자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는 숙명의 마성을 비유시킨다고 했다. 내가 놀란 것은 임 시인이 그런 숙명의 마성을 적절하게 비유한 상황 묘사가 깊은 고찰과 통찰의 저변에서 건져 올린 사유들이 무르익어서 나온 시였기 때문이다. 시를 날로 먹지 않는 성숙된 시 세계를 살고 있는 시인의 영혼이 존경스럽다.
<양이 태어나는 나무>
목화꽃 피는 걸 보고
양이 태어나는 나무라고 믿은
순수한 영혼이 있었다.
빛을 따라 걸으면 빛이 되고
어둠을 따라 걸으면
어둠 속으로 빠진다
단순한 마음 순수한 마음
소박한 마음이
양을 낳는 나무를 만든다
가난해도 행복한 건
슬퍼하던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건
순종하는 마음으로
신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의 열매는 기도이다
기도하는 순간, 순간마다
나무에서는 양들이 태어난다
※ 목화꽃에서 솜이불이나 솜바지 정도만 떠올리는 내게 시인은 목화꽃 속에 숨은 기도의 염원과 그것들이 양으로 태어나는 비상을 시로 풀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고난을 기도로 다스리는 고귀한 융화는 목화꽃에서 양을 보게 되는 시인의 천재성이다. 놀라운 비상이다.
<화석 전시장에서>
수백만 년의 세월이
찬란한 무늬 새겨 넣고
오묘한 대화를 이어주는
화석 전시장
나이테 선명한 나무도
서늘하고 견고한 돌멩이
암모나이트의 몸체는
소멸한 과거를 드러내지만
차가움만 손 끝에 스미네
느글느글하던 살덩이
삭히고 삭혀 뼈만 남기고
세월의 진액을 켜켜이 발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무늬로
영원불변의 화석이 되었네
육질이 빠져나간 자리에
영혼의 형상까지 스미도록
인고의 담금질이 있어
저리 신비로운 노래 세상에 퍼지네
꼿꼿한 시 한편
영원한
화석으로 남기고 싶네
※ 우주 만물과 교감하는 통 큰 시인은 암모나이트에서 켜켜이 발라둔 세월의 진액을 보고, 영혼의 담금질이 신비로운 노래로 퍼지는 것을 본다. 예사롭지 않는 눈과 예사롭지 않는 단어 표현만으로 신선한 시밭을 거닐게 해준다. 참 좋은 시밭을 거닐게 되나니. 그저 고맙다.
<천리포 수목원에서>
꽃이 사람과 눈을 맞추려고
방글방글 웃어대니
사람도 꽃이 되고 싶어지는 그곳
파도소리 아련이 들려오고
바람도 새들도 조심스레
갓을 낫추며
꽃의 숨소리를 듣는 곳
먼 이국에서 찾아와
조선의 금수강산에 빠져버린
푸른 눈의 한 남자가
나무와 숲과 벌레까지 사랑하며
정갈하게 가꾸어낸 천리포 수목원
별들이 뛰어드는 작은 연못가
초가집 툇마루에 홀로 깨어
쉬운 길 마다하고 생명을 키우며
만면에 웃음 가득
자연으로 돌아가신 민병길 박사님
유언처럼 개구리로 환생하여
이리저리 풀숲을 폴짝폴짝
분주히 뛰어다니며
수목원의 생명을 지키고 있었네.
※ 천리포 수목원을 일군 민병길 박사님 일화는 익히 알고 있고 천리포 수목원도 다녀왔다. 죽어서 개구리가 되어서 수목원을 지키겠다던 말씀이 인상깊게 남아 있다. 내 친구 시인도 그곳을 다녀와서 그분을 기리는 마음이 가득한 시를 썼구나. 함께 천리포 수목원을 거닌 듯 하다.
<하얀 슬픔>
누군가에게 남김없이
다 털어내 놓고 싶은 말
그러면 눈같이 희어질 수 있다 해도
마지막 한 마디는 차마 못하고
더 깊은 곳으로 구겨 넣는 말
그건 자존이 걸린 말
천근만근 무거운 말
뽑아내고 나면 넘 큰 구멍에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아
겁도 덜컥 나는 말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넣어도
결국은 녹지 않을
사리 같은 말
누구에게나 안고
버티고 살아야하는
하얀 슬픔이 있다.
※ 사리처럼 녹지 않을 말(마음)을 품었기에 하얀 슬픔 안고 견뎌내며 살아가야하겠지? 하얀 슬픔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느껴져 오면서 참 많은 사연들을 곱씹어보게 된다. 임 시인의 시는 이렇게 시 한 편 한편마다 항상 생각의 깊이를 파들어가 보게 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어 좋다.
<어린나무에게>
사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
이 말을 위해 피어난다
꽃들은 스스로 가장 화려한 시간을 흔들며
온갖 향기로 사랑의 몸짓을 한단다
사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냇물이
이 말을 위해 바다로 달려간다
더 큰 포말을 세우고
수많은 바닷새를 날리며
힘찬 뱃고동을 울린단다
나의 한 생애가 꿈꾸는
가자 위대한 일
그것은 너를 사랑하는 일
누부시게 바라보는
아름다운 것들 모두는
너를 향한 나의 정화
순수로 달려가서
너의 꿈을 단장하고자 하는 마음
너의 심장 뛰노는 소리
가슴 벅차게 들려오다
너로 말미암아 내가 소진된다면
그건 완벽한 기쁨이란다
※ 사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
이 말을 위해 피어난다
사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냇물이
이 말을 위해 바다로 달려간다
나는 이 말이 좋다. 어떻게 이런 낮스러움의 문장으로 표현을 했을까? 그저 놀라운 시어를 마구 주무르며 시를 쓰는 시인! 그녀가 내 친구라니……. 그저 자랑스럽다. 함께 보내온 책들을 들고 다니며 ‘내 친구 시집이에요. 보통 시가 아니에요. 한번씩 읽어보면 깜짝 깜짝 놀랄걸요:’ 하며 자랑하고 다녔다.
<양퍄>
연거푸 껍질을 벗기기 마세요
억지로 벗겨내면
뽀얗게 작아지는 소망
매운 세상이 겹겹이 몰려와
자꾸 눈물이 나고
연초록 생명의 촉수는 야위어가요
벗겨진 모든 것들은
반짝이던 소중한 삶
한 겹씩 떨어져나가 메말라버리면
휴지처럼 바람에 날려
아득한 어둠이 되어요
벗겨내지 말아요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한 계절 처마에 매달렸다가
부풀어 오르는 꿈
안으로 여미고
하늘빛 깃을 펼쳐
생명의 노래 틔울 거예요.
※ 양퍄를 인간에 대입해서 보는 비유가 빈말로 느껴지지 않고 옹골찬 진실로 대입되어 온다. 음미하고 싶은 문장은 이렇다.
한 겹씩 떨어져나가 메말라버리면
휴지처럼 바람에 날려/아득한 어둠이 되어요
벗겨내지 말아요/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하늘빛 깃을 펼쳐/생명의 노래 틔울 거예요.
<그날이 올 때까지>
나무들은 알지
겨울은 여린 눈 감추고 건너야하는
긴 터널이라는 걸
조금씩 덜 보면서 가볍게
최대한 웅크리고 안 젖게
그래도 휘파람 불며 가야하는 길
철새들이 가고 나면
또 올것들은 오기 마련
네가 삶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면
나무는 곁에서 잎을 떨구며
떨군 잎들을 바라보고 있었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바람이
언 땅을 녹이고
안개를 감아올리면
터널을 빠져나온 기차는
한동안 밝은 시간을 달리는데
어둠이 또 오면 어떠랴
어둠을 자주 만날수록
두려움은 작아지고
내 눈은 세상을 만만히 바라보겠네
그 날이 올 때까지
제 철에 떠나지 못한 말매미 노래로
시끄럽게 버텨보는 거야.
※ ‘그날이 올 때까지’ 이 시에서도 음미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조병화 시인처럼 사물을 의인화하는 눈이 날카롭고, 철학을 항상 밑바탕에 깔고 시를 쓰는 시인이라서 이끌림이 큰 것 같다.
<노을>
오솔길 옆 무덤가
홀로 초라한 엉겅퀴 꽃에도
온 산하에 조잘거리는 개망초 섶에도
이승의 언어는 이미 말줄임표
물끄러미 거기 계세요
물을 향해 날개 치는 파도가
끓어오른 열정 안으로 가누고
삭아지는 바람의 눈빛이
어둠 속 안식을 꿈꿀 때까지
욕망도 잊은 듯 거기 계셔요
채색할수록 어두워지는 붉은 허무로
아득히 온 세상을 덮으며
마침내 화려한 소멸을 꿈꾸는 당신
아름다운 한 생애 서녘 하늘에 걸고
조금만
조금만 더 머물러 계세요
※ 우리 인생이 노을같은 시간을 살고 있기에, 화려한 소멸을 꿈꾸다가도 조금만 더 머물고 싶은 인간의 미련을 노래해두어 마음이 먹먹해지는 시로 읽혔다.
땅끝마을 해맞이
-시선을 잡아끄는/여명의 구름 사이로/ 하늘과 바다의 이 경계를 뭉개는/ 붉은 진통 마침내/ 바다가 해를 낳았다.// 핏빛 붉은 심장이 이글거린다./ 그건 풀무로 잣아 올린 잉걸불인양/
황금빛 번쩍이며 /모두의 가슴속으로 날아들어 /빙글빙글 도는 희열/
세상의 어둠을 송두리째 태우며/ 정의의 자식이 되리라//
세상은 기쁨으로 떠들썩하고/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는 새들/ 새로운 한 해의 희망을/ 벅차게 받아 안은/ 땅끝마을 해맞이
※ 시인은 성모님을 믿는 교인이다. 시심의 바탕에 성모님이 보인다. ‘진통, 구름, 어둠 등과 해로 상징되는 붉은 심장. 잉겁불. 희열, 정의, 기쁜. 새 희망 등 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자연의 협연으로, 신묘한 섭리로 하루를 사는 자아가 자연과 하나되는 마음을 벅차오르게 한다.
<나는 번개 2>
청도 관광여행에서
멋 모르고 이끌려간
소싸움 터
오늘의 주인공들은
번개 대 야수2
콧김을 내뿜으며
싸움터로 달려 나오는 야수2
뒷걸음치며 억지로 끌려나오는
600킬로 그램의 번개
전의를 잃은 번개는 밀리고 밀리다
무릎을 꿇기 전 사력을 다해
경지장문을 박차고 달아났다
박수는 없고 야유만 들렸다
나도 싸움을 싫어하는 소
끌려 다니기도 싫어하는 소
운명은 그런 나를 채찍질한다
투우장에 끌려 나아
전의를 상실 한 채 살았다가느
아유 소리에 귀를 막아야하는데
무릎 꿇기 싫어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도망치듯 달아는 번개
나는 번개2로 앉아있다.
※ 소싸움에서 결단력 없는 자신을 보게되는 것은 대부분 우리 인간의 모습이겠다. 그런데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해두어 모두의 가슴을 울린다. 임 시인은 이 시집으로 큰 문학상 하나 곧 탈 것 같다. 문운을 비는 마음이 겹겹이 쌓인다. 친구야, 파이팅! 멋지게 격조높은 시인의 품격을 잘 닦아왔네. 만나는 날, 우리 집에서 시집 출판 기념회 하며 놀자.
<평설> 소재호의 평 옮겨옴.
이 분의 평론 수준도 예사롭지 않아서 이 분의 평론을 옮겨와 본다.
<시의 응축미를 최대로 살리며 고품격의 상징시를 구조하고 있다. 부단히 숙련하고 시의 본질에 궁구하며 시의 품격을 사뭇 높이고 있었다. 교응의 미학이 번뜩이는 시 세계 확립이 눈에 띄게 표징하고 있어 경애심을 품는다.
개체 대상은 가상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존재성을 뛰어넘어 자신의 실체를 암시적으로만 현시하고 있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보들레르는 ‘모든 가시적 세계는 이미지와 기호의 한 창고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논리적 자아를 탈피하여 자아를 객관적 자아와 우주적 범주에 진입시켜 만물과 자아와의 신통스러운 교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상징주의에서는 말한다. 이심전심의 묘법으로 자아와 세계 현상과 조화로운 할 일을 도모하는, 신통력을 지닌 자아로 바람과 노닐고 구름과 이야기하는 교응의 시인이 되고, 인생을 굽어보며 노력 없이도 말 없는 꽃과 사물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견지의 시인이 되는 것이다. 임 시인은 시의 삼요소. 즉 의미적 요소, 회화적 요소, 음악적 요소를 등가적으로 융합시켜 매우 성공한 시를 썼다.
※ 평론가로서 이렇게 칭찬 일색의 평론을 할 수 있게 한 시인의 천재적 재능에 평론가도 흡족하게 빠져들어 있는 듯 해 즐겁다. 친구야. 사랑해, 세상 끝날 때까지 시향기 쁌쁌 뿜으며 살아줘. 2026.7.23.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