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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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년 남명 조식 출생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대부분을 거절하였으며 아울러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조식(曺植)의 자(字)는 건중(楗仲)이며,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다.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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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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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년 최초 여성 잡지 "가정잡지" 창간, 발행인 신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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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폴 에를리히, 매독 치료약 개발
독일의 세균학자 폴 에를리히 (Paul Ehrlich, 1854년~1915년)가 매독의 병원체인 스피로헤타에 대한 치료약을 개발했다. 이 약은 근대의학에 화학요법을 접목시킨 최초의 성공사례였다. 치료약이 개발당시, 매독은 파리에서만 연 3천명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는 이 병을 불치의 병으로 생각했다.
실패할 때마다 화학물질을 더하거나 빼면서 새 화합물을 만들어 다시 실험했다. 그래서 606번째로 합성해낸 화합물이 '606'이다. 무려 7년간의 연구 끝에 1909년 6월 26일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파울 에를리히는 606을 매독에 걸린 토끼에게 주입했다. 노란색의 606 용액이 토끼에 주사된 다음날 병원균 스피로헤타균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토끼 생체 실험에서 여러 번 성공하자 그는 자신감을 갖고 사람에게도 실험했다.
1910년 이 ‘마법의 약’은 1만명의 매독환자를 치료했고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에를리히는 이 약을 ‘살바르산(Salvarsan)’으로 명명했다. 살바르산은 세상을 구원하는 비소란 뜻. 사람을 죽이는 독이 생명을 살리는 약으로 바뀐 것이다. 엘리히는 명예와 많은 상을 수상했고 한 대중지는 그를 가리켜 ‘과학계의 왕자’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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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이동휘·김립이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 사회당 조직 : 1921년 고려 공산당으로 개칭함. 🌳31년 이광수, 동아일보에 '이순신' 연재 시작 🌳31년 연희전문, 제1회 전국중등학교 야구대회 개최 🌳38년 총독부, 각 도에 근로 보국대 조직을 지시 : 조선인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 무상으로 착취. 🌳44년 미술사학자 고유섭 죽음(1904∼) : '조선 탑파의 연구' '조선 미술사 논총' 등 저술. 🌳45년 유엔 헌장 조인 - 국제 연합은 19장 111개 조로 된 유엔 헌장을 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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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김구,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게 피살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김구(金九, 1876년 8월 29일 ~ 1949년 6월 26일)는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중국시선을 읽고 이어 휘호를 썼다. 전국에서 이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틈틈히 써 놓기 위해서다. 이어 자신이 설립한 마포 창암학원 관계자를 접견해 학교 운영방안을 상의했다. 이때 포병소위 안두휘가 경교장을 찾아와 면담을 신청했다.
오후 12시 40분 면담이 이뤄졌고 곧이어 4발의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당시 상황을 김구의 선우진 비서는 “백범선생의 점심을 마련하기 위해 지하층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고 안두휘가 손에 권총을 든 채 2층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서울운동장으로 운구되는 김구의 장례식 행렬. 이날 서울의 모든 상가는 김구의 장례에 맞춰 철시됐다.
김구 살인범, 안두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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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일본인, 독도에 불법 상륙 🌳54년 문교부, 한글간소화안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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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가수 남인수씨 사망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많은 곡들로 서민들의 힘이 되어 주었던 1940~50년대 대표가수 남인수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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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서울 FM 방송 시작 🌳67년 전력부족으로 20시 이후 TV 방송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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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두브체크, 공산당적 박탈 1970년 6월26일, "인간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알렉산드르 두브체크(Alexander Dubcek, 1921년 11월 27일 ~ 1992년 11월 7일)가 체코 공산당으로부터 당적을 박탈당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1968년 `프라하의 봄`도 역사속에 묻히고 말았다.
알렉산드르 두브체크(Alexander Dubcek)
소련이 이를 `반혁명`으로 간주한 것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자유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이미 자유를 만끽해 본 체코인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소련군을 위시한 20만명이 탱크를 앞세우고 체코 국경을 넘었지만 국민들은 온 몸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세계는 냉담했고 침묵했다. 결국 `프라하의 봄`은 침략자 군화발에 짓밟혀 파국을 맞았고 소련에 연행된 두브체크는 자신의 행동이 반동적이었음을 시인해야 했다. 1969년 4월에 당 제1서기에서 해임되고 잠시 터키 대사로 전출됐으나 그를 기다린 것은 고향에서의 산림노동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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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한-독 경제협력위원회, 함부르크에서 창립 🌳74년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78년 대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유신반대 데모 🌳80년 공업진흥청, 국민생활용품의 표준규격화위해 국내 최초로 국민표준체위 발표 🌳80년 북한 로동신문, 남북총리회담 위한 실무접촉 무의미하다고 공언 🌳81년 전두환 대통령과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자카르타에서 정상회담 🌳82년 월인석보 완본을 처음 발견 🌳84년 제122회 임시국회 개회 🌳85년 한국·기니비사우정상회담 개최, 양국의 경제 협력 강화에 합의 🌳86년 정부, 행정전산망 종합계획 확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