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참선기와 참선에 대한 의문점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 도반님들의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아래 글을 읽으신 도반 중에서 두번째 질문(다시 지속적으로 오신 선지식이 왜 이렇게 희귀한가?)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해주실 수 있으면 이메일leemany5@naver.com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전강스님, 송담스님의 참선법문 사이트입니다.
*Control바 누르고 클릭하고 들어가거나 바로 들어가지는 경우도 있음
생활불교전법회 | 전강스님, 송담스님 법문 사이트입니다. - Daum 카페
1. 전강송담스님 법문 주제별(몽산법어, 체중현 현중현…)로 듣기 :: 용화선원 법문듣기 (tistory.com)
2. 전강송담스님 참선법문(통법문-매 법문 전체 녹취와 전체 듣기) :: 참선법문 (tistory.com)
3. 전강송담스님 참선법문사전(ㄱ~ㅎ 검색) :: 참선사전 (tistory.com)
4. 전강 송담스님 법문 - YouTube
5. 전강송담스님 게송집 (tistory.com)
6. 전강 송담스님 전체 법문을 내 스마트폰 안에 !!! :: 송담전강게송집 (tistory.com)
7. 용화선원 홈페이지 (yhsw.or.kr)
8. 전강선사일대기
9. 광주(분당) 용화선원 카페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택배비포함 2만원,입금후 동명이인등 확인위한 확인전화 꼭 해야 빨리 수령가능)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글의 구성은 4가지입니다. 1.저의 참선기 2. 질문내용 3. 인가의 중요성 4. 참선의 열 세 고개
1. 아래 내용은 저의 참선기입니다. 몇 몇 불교사이트에도 올렸던 내용입니다.
71년 2월에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 입학전 겨울방학에 교회나 절이나 둘중에 하나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동네에 있는 절에 가서 스님을 만나서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더니 부처님이 일모구억충(一毛九億蟲: 터럭하나에 9억의 생명체(세균)가 있다)이라고 했는데 현대에 와서 증명이 되었을 정도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위대한 진리라고 하시며 작은 책 하나를 주셨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참선 책이었다. 책에서는 고요한 곳에 두툼한 방석을 깔고 앉아서 ‘부모미생전소식이 어떠한고? 즉 부모가 나를 낳기전의 모습이 무엇인고?’하고 의심을 하라는 것인데 정말 부모가 나를 낳기 전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이것이 화두를 드는 참선이라는 것도 모른채 그대로 해보았다. 수도를 하는데 편함을 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날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부모미생전 소식이 어떠한고? 부모가 나를 낳기전의 모습이 무엇인고?’하고 몇 번 해보다가 별 느낌도 없고 막막하기만 하고, 스님이 주신 책자체가 낡은 종이에 어색한 활자체로 인쇄된 것이라서 불교는 무당과 비슷한 저급한 종교인 모양이라고 판단하고 더 이상 끌리지가 않아서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 74년 3월부터 도선사 일요선원에 나가면서도 3년전에 이렇게 잠시 불교를 접했던 것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74년 3월 2일 토요일부터 남산 시립도서관에 고등학교 가방에 입시책을 넣고 갔는데 교복은 안입고 가방은 고등학교 것을 들고 가니 남들이 나를 보고 ‘쟤는 재수생인가봐, 재수생, 재수생,재수생...’하고 비웃는 듯하여 고개도 못들고 주눅이 들어서 갔고 집에서 공부하면 되지않을 까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 것을 이기고 꾸준히 다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심정적으로 자신감이 바닥이어서 여태까지 제대로 한 것 없이 흐리멍텅하게 살아온 것처럼 앞 날도 그리 될 것이라는 자기비하가 심해지다 보니 재수니 뭐니 할 필요도 없고 당장 내가 죽어서 내가 먹을 쌀 한톨이라도 다른 사람이 먹도록 하는 것이 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절망감으로 괴로웠다. 그런데 문득 러시아 작가 고골리가 생각났다. 그가 절망감에 빠져서 자살하려고 권총으로 머리를 쐈는데 총구가 흔들리면서 죽지않고 살아난 후에 권총을 집어던지면서 다시는 죽으려 하지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생각나면서 그렇다면 나도 여태까지 열심히 노력, 공부해본 적이 없으니 죽지 말고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 공부하면 되지 않겠는가하고 마음을 돌이켰다.
74년 3월 3일 일요일부터 재수생으로서 도선사 일요선원을 나갔다. 부모님이 도선사에 우연히 갔다가 신도등록을 해서 도선법보라는 작은 신문이 집으로 왔는데 그 중에 일요선원을 한다는 내용을 봤다. 참선이 무엇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벽을 보고 앉아 있어서 ‘벽관바라몽’이라고 불렀다는 초등학교 어린이 신문기사만 알고 있는 정도였지만 벽을 보고 앉는다는, 엄숙하게 면벽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아주 많이 설레게 했다. 마음이 복잡한 재수생인 나도 면벽을 하면 불안한 이 상황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8시에서 10시까지 50분 좌선 10분 방선 형태로, 참선을 아직 몰라서 화두를 들지는 못하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죽비소리에 맞춰 재수생이라는 불안감, 여태까지 제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책감과 열등감, 열심히 공부를 안해서 불합격하여 부모님에게 실망을 끼쳤다는 죄책감, 어떻게 입시공부를 해야하나라는 막연함, 어떻게 하면 이 못난 나를 알고 극복할 수 있을까하고 자글자글 끓는 생각들에 대한 해답을 하나하나 찾지 않고 마음에 담은 채 그냥 면벽하고 앉아있기를 몇 주동안 했더니 얼굴이 상기되고 간질간질한 듯한 느낌이 차츰 차츰 사라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고요해진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내 현실 문제의 해법을 하나 하나 분석하면서 찾아보게 되었다.
재수생으로서 첫째로 극복해야하는 문제는 자신감 부족이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끝까지 잘 마무리 한 것이 없다는 자기비하와 열등의식, 공부해봤자 또 떨어질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여 공부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이를 이기기 위해 ’나도 공부하면 실력이 늘고 합격할 수 있다‘라고 외우다 시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생각 사이를 비집고 ’아니야, 노력하면 된다는 것은 너에게는 적용이 안돼. 너는 노력해도 안돼, 또 불합격할 거야‘라는 부정적 생각이 들면 ’아니야, 부처님도 콩심은데 콩난다고 했고, 예수님도 너희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으니까 노력하면 성적이 올라가고 나도 합격할 거야‘라고 좌선시간은 물론이고 공부시간외에 버스타는 시간등에도 끊임없이 염불하듯이 반복했더니 어느 덧 부정이 없어지고 ’나도 노력하면 합격할 수 있어‘라는 긍정이 항상 자리잡게 되었다.
자신감 부족이라는 기본적 문제 하나가 해결된 다음에는 재수생이 된 이유를 찾아보았더니 3가지였다. 어리석어서 즉 왜 사는지, 어떻게 살것인지에 대한 가치관이 흐리멍텅하고, 집중력이 부족하고, 끈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근본적 가치관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너무 알고 싶고 중요하지만 답을 모르고 있었던 '왜 살지?'를 탐구했다. 재수생으로서 학과공부는 열심히 하면서 오가면서 그리고 좌선시간에 이 문제를 파고 들었다.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답을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왜 살지? 나는 왜 사는 거지?’를 반복하다보니 약 2주만에 문득 답이 마음에 느껴졌다. '살아 있는 자체가 너무 큰 행복이라는 것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먼지 나는 것에 짜증이 났었는데 이것도 내가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름다운 현상이었고 봄여름가울겨울이 바뀌는 것도 너무 고맙고 아름다운 일이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탐구했다. 이 물음은 분석을 하면서 답을 얻었다. 즉 선하게 열심히 살다가 결국은 죽은 내 모습과 악하게 살면서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살다가 죽은 내 모습을 상상해보고 어느 쪽 삶을 지금 살아야하는 지를 선택하라면 선하게 사는 것이 옳다고 마음속에서 느껴졌다. 역시 약 2주 만에 스스로 답을 얻었다.‘착하게 남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끈기를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4.19탑 아래 집에서 도선사까지 산길을 뛰어서 갔다. 4개의 크고 작은 능선을 가로 질러서 중간에 한번만 쉬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나의 약점인 이놈의 끈기를 길러야 한다는 마음으로 1시간 동안 오르막, 내리막을 악착같이 뛰다보니 체력과 함께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동시에 길러진다고 느꼈고 신체의 단련이 마음의 덕성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효과적인 공부에 필수적인 집중이란 무엇일까 따져보니 수학공부시간에는 수학공부에만 생각을 모으고 수학공부외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고 그렇게 공부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떳떳해졌다 그러한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서 공부시간 계획표를 짜고 그 시간에는 공부하는 과목에 대한 생각외에 다른 생각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매 순간 그 공부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고 정해진 공부시간에 공부내용외의 딴 생각이 나면 윗도리에 꽂고 있던 옷핀을 뽑아서 ‘앗, 따가워’ 할 정도로 허벅지를 지그시 찔렀는데 점점 집중이 잘되다 보니까 3번 정도만 찌르고 더 이상 찌를 필요가 없었다. 이 집중연습이 참선공부에도 연결되어 화두의심외에 잡념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학습계획을 세우는 등의 필요한 생각은 공부시간외의 시간에 집중해서 세웠고 공부중에 공부외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른 메모만 해두고 공부에 집중하고 난 후에 쉬는 시간에 분석해서 정리했다.
못난 내가 무엇인가를 알고 극복하기 위해 좌선시간에 두 가지 방법으로 분석을 해보았다. 첫 번 째 방법으로 나의 장점과 단점을 열거해보았더니 그 하나 하나가 어떤 것은 아버지, 또 어떤 것은 어머니에 속한 것이어서 부모님의 것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것은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나만의 고유한 속성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나를 알기위한 분석방법은 19년 동안 살아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억이 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내게 있었던 상황, 예를 들면 초등학교 2학년때 친구와 싸운 일,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들을 웃기려고 과장된 행동을 한 일등을 하나 하나 회상한 후에 그 상황에서의 나의 행동, 나의 언어등으로 보건대 나는 이러 이러한 장단점, 특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못나고 어리석은 면이 더 많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꼭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부터 알고 싶었던 의문점들을 하나 하나 분석하면서 답을 찾아 봤다.
대학은 왜 가야 하지?-안가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유리하니까
수학은 왜 공부를 해야 하나?-사고력,분석력,인내력을 키우기 위해서...즉 깊이 생각하는 능력, 논리적으로 따지는 능력, 참는 힘을 기르는 것이구나... 아하, 결국은 수학,영어,독일어,사회공부를 통해서 인격이 길러지는 것이로구나, 그러니까 학과공부와 인격수양은 분리된 것이 아니고 집중해서 참고 분석하면서 교과공부하는 자체가 인격수양이 되는 것이로구나...
남을 어떻게 도와야 하나?-물질 ? 정신?-마하트마 간디처럼 정신으로 남을 돕는 사람이 되자. 초등학교때는 돈보따리를 들고 다니면서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것이 꿈이었다. 특히 학교앞에서 노점하는 할머니들이 불쌍해서 물건을 다 사드리면서 집에 가서 쉬시라고 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때 간디자서전을 읽으면서 물질적 도움도 좋지만 물질적으로 남을 도우려는 마음을 내도록 도와주는 일이 더 중요하고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남을 돕는 스님? 목사? 교사?... 교사가 되자. 저 사람은 스님, 목사니까 저런 말 하겠지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보편적 입장에서 남을 돕도록 인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입시제도는 왜 필요한 것이지? 어리석은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서 공연히 청소년들을 괴롭히는 제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대학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다 입학하도록 하면 되지 않나? 그래, 다 입학시키자. 어, 다 입학시키려면 교수도 많이 채용하고 건물도 많이 필요하고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 그리고 대학공부할 자질이 부족한 자들은 공부를 못 따라올 것이고,,,그러다 보면 엉터리 대학생들이 엄청나게 늘 것이고....뭐야, 이건, 돈 낭비, 시간낭비 즉 귀중한 사회적 자원의 낭비가 되는 구나, 안되겠군, 결국 대학 들어갈 자질이 있는 사람만 입학시키는 것이 효율적이구나, 자질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려면? 아, 입시제도가 필요한 것이구나, 그러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입시공부는 내가 대학공부할 기본이 되어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구나. 입시제도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사라지고 제도속에서 나의 실력을 증명하기위해 바로 지금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적극적, 긍정적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입학시험날까지 현역, 재수생, 삼수생, 남녀수험생에게 똑 같은 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고 그 시간속에서 자기와 싸움하면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입시생의, 재수생의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1초 1초가 아까웠다. 버스타고 다니는 시간과 걸어다니는 시간에도 영어단어를 외우고 싶었다. 그러나 잘난 척한다는 남의 시선이 의식되고 부끄러워서 실행에 멈칫했는데 이 부분을 분석해보았다. 입학시험보러 갔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오직 내 실력으로 시험보는 것이 아닌가?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 부모님들이 내 옆에 앉아서 의논해서 시험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 실력으로 시험보는 것이지 않은가? 또 내가 걸어다니거나 버스타고 단어외운다고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없지 않은가?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왜 내가 남의 눈치를 보나? 남을 의식할 필요없이 남에게 피해주지않고 내가 꼭 필요한 일은 해야한다고 결심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가면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 동네사람이 보거나 말거나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버스에서도 계속 외웠다. 남산 시립도서관에서 점심 시간에 도시락을 먹기위해서 지하식당으로 내려오면서도 단어를 외우고 밥을 말아먹기위해 ‘국물주세요’ 하면서도 외우고 밥먹으면서도 외웠다. 혹시라도 이러한 나를 보고 ‘저 놈이 잘난 척 하는 구나’라고 비웃는 다면 그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다.
오다가다 스치는 여성들에 대해서 치솟는 욕정은 교과공부와 참선공부에 방해가 되었다. 분석을 해보았다. 결혼하지도 않은 저 여인을 대상으로 내 정욕대로 성적욕구를 푼다면 과연 옳은 가? 저 여인은 나로 인해 불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도 결코 행복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실행은 안했을 지라도 생각만으로라도 음심을 품은 것이 부끄럽고 그 여인에게 죄스러웠다. 그렇다면 마음에 거리낄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저여인이 행복해지도록 빌어주자. 마음이 끌리는 여인을 보면 정욕을 풀고 싶다는 마음을 접고 ‘부디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해지세요’라고 한번 두 번 기도를 해주다 보니 내 마음이 점점 떳떳해지고 평안하고 은은한 기운이 유지되면서 교과공부와 참선공부에 밑받침이 되었다.
질투심도 이기고 싶어서 분석했다. 남이 잘되는 것은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고 남이 안되는 것을 좋아하고 통쾌해하면서 미소 짓는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혐오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질투심을 이기고자 이성적, 논리적으로 분석해보았는데 질투심이란 무엇인가하고 질투심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질투하여 일어나는 현상과 거기에 대한 나의 마음을 분석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질투하는 즉 안되기를 ,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내 소원대로 계속 망하고, 무너지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상상해 보았다. 질투의 대상자가 계속해서 더 망하고 더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내 소원대로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통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망하고 엉망이 되어 완전한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대상자를 상상하여 보는 순간, 상대의 몰락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불쌍하다는 마음이 차츰 차츰 들면서 내 마음이 아파지는 것이 아닌가? 내 질투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망하면 행복하게 될 줄 알았던 내 마음이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불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평안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되어야 하며, 상대가 잘 되도록 빌어주고 잘 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면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나도 잘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질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점심도시락을 먹고나서 몰려오는 식곤증을 이기기 위한 방법도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깜빡 조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먹으면 졸리니까 먹지않으면 되지만 전혀 안 먹을 수 없으니까 양을 줄이자고 결론 내리고 당장 다음날 부터 도시락의 밥 양을 반으로 줄이고 다음 날은 또 1/4로 줄이고 3일째에는 딱 두 젓가락 , 유부초밥정도의 크기로 두입을 먹었는데 처음에는 허기가 져서 이러다가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하고 고민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전혀 허기가 지지않고 생생한 정신으로 식곤증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물론 아침과 저녁은 정상적으로 먹었기 때문에 견딜만 했을 것이다. 음식조절이 학과공부에 중요하다는 경험을 했다.
선한 삶과 악한 삶 가운데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성욕을 마구 풀어도 되는지, 질투를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되는지등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 기준은 내 마음이었다. 내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하게 살아야, 저 여성이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해지기를 기원해야, 질투하지 말고 잘되도록 빌어주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성경에, 불경에 질투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고 하면 안되는 근거를 내가 분석하여 스스로 얻어낸 것이다. 아직 잘 모르고 있었지만 불교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고 더욱 신뢰가 갔다. 그리고 이렇게 학과공부하고, 질투가 무엇인지등 분석할 것은 분석할 줄 아는 놈, 제대로 한 것이 없는 못난 놈 ,밥먹고, 잠자는 이 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 이 놈이 뭘까?를 의심했는데 이 모든 의문을 한 몫에 농축하고 있는 근본이 바로 이뭐꼬?라고 생각했다. 나아가서는 왜 사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진리가 무엇인가하는 근원적 질문들이 이뭐꼬?에 들어있고 동시에 그 답도 이뭐꼬?에 있다고 믿어졌다. 이성적 분석과 그 모든 것의 바탕인 알 수 없는 의심인 이뭐꼬?를 병행했다.
이렇게 큰 문제들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답을 얻은 다음에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즉 의문이 생기는, 사소하다고 보이는 문제들도 모두 따져서 답을 얻었다. 버스 타고 가는데 창밖에 거지가 눈에 띄면 저 사람은 왜 거지가 되었을까?- 그 이유 1. 자발적으로 2. 원치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되었다... 그 외 3,4,5가지 이유...그러면 거지가 된 이유에 따라서 저 사람이 할일 1. 자발적으로 거지가 되었다면 계속 거지생활을 한다 2. 타의에 의해서 거지가 되었다면 벗어나야 하는데 벗어나는 방법은 뭐가 있을 까? 그 방법 1,2,3...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분석해서 정리했다.
이러한 분석과정을 거쳤더니 보다 정교한 인생관,가치관이 세워졌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관점이 세워진 것이다. 가끔 나의 가치관을 점검해 보았다. 왜 살지? 살아있는 자체가 행복하니까...좋은 것이니까...어떻게 살아야하지? 착하게 남을 위해 살아야지,,,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니까...왜 대학을 가야하지? 남을 돕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시공부는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지,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그러면 지금 내가 할 일은? 1초를 아끼면서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이지...자, 집중 공부...
이렇게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떠한 문제든지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원인을 알 수 있고 대책도 세울 수 있으며 깊이 분석해서 답을 얻은 후에는 실천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윤리교과서에서 보았던 소크라테스의 말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바로 이것인가보다는 생각을 했다. 즉 깊은 생각을 하여 제대로 알면 실행하게 된다는...
그리고 육체를 조복시키는 연습을 했는데 그 이유는 내 몸인데 왜 내 마음대로 통제가 안되는 가하는 분함 즉 마음이 화두의심을 해야 하는 데 육체의 고통이 그 의심작용을 방해하므로 내가 내 몸에게 '내 몸아, 나는 화두의심을 해야 하니까 고통은 생기지 말아라'고 명령해도 듣지않고 제 멋대로 여기 저기 쑤시므로 내 몸뚱아리를 먼저 이겨야만 참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보고 화두 의심공부 전에 내 몸의 고통을 이기는 연습을 먼저 했다.
결가부좌시에 고통이 느껴지는 부위는 다음과 같았다. 왼발 복숭아뼈는 아래로 누르고 그 아래 우측 발 종아리뼈는 위로 작용, 반작용으로 서로 누르면서 종아리 뼈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 우측 발바닥이 왼쪽 허벅지위로 올라가면서 구부러지는 우 발목 인대가 늘어 나면서 생기는 고통, 좌우 허벅지 바깥쪽 가운데 근육이 긴장되면서 오는 고통이 있었고,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마비가 되어 이대로 불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시적으로 들기도 했는데 50분 좌선후에 10분 포행을 할 때는 다리가 저려서 남들과 같이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저린 것이 풀린 후에 일어났고 덜 풀린 상태에서 절룩거리면서 포행을 하기도 했다.
결가부좌를 하려는 이유는 이왕이면 부처님이 취했던 완전한 자세로 참선하자는 마음이었다.일단 결가부좌를 틀면 50분 동안(도선사 일요선원은 50분 좌선, 10분 포행을 2회실시)은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참기로 하고 버티는데 몇 부위에서 동시에 생기는 고통을 참고 50분을 버티기위해 옛날 일 생각하면서 현재의 고통잊기, 집에서 출발하여 도선사 일요선원으로 오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버티기, 통증이 오는 그 부위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고통잊기등을 했는데 '약 20분은 지났겠지'하고 입승스님 앞에 있는 사발시계를 흘낏 보면 겨우 5분이 지나있어서 '정말 내가 이 고통을 50분 동안 참을 수 있나, 다리를 풀고 그만 둘까,벌떡 일어나서 우왁~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참아야 하나'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데 다시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 여기서 이 고통을 참지 못하면 참선도 못하거니와 재수생인 입장에서 학과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또 불합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되면 절대 안되니까 참선해서 나를 깨닫고 , 대학도 합격하려면 기어코 내 몸의 고통을 , 내 몸을 내가 이겨야한다는 절박함으로 1초, 1초를 참고 또 참았다. 아픈 부위의 고통을 없애려고 의도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허용 안했지만 좌선 중 시계를 보기위해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는 것과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몸이 약간 기운 것은 용인했다. 이때 아픈 부위의 통증완화를 위해 결가부좌를 잠시 풀었다가 다시 틀거나 아픈 부위를 주무르거나 하면 고통은 계속해서 다시 일어날 것이며 따라서 내 몸을 결코 이길 수 없고 참선과 대학합격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고통 자체에 정면으로 부딪쳐서 50분 동안 움직이지 않아야만 내 육체를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참고 버텼다. 평소에도 결가부좌를 하면서 내 몸을 이기는 연습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즉 일요참선시간외에 입시공부를 할 때도 걸상위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50분 단위로 공부를 했더니 몸의 고통이 점점 줄어들었고 일요일에 집에서 TV를 보거나 할 때도 일단 결가부좌를 틀면 특별한 볼일이 없는 한 50분 버티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이렇게 내 몸을 이기려는 연습을 한 결과 근육과 인대가 늘어날 부분은 적절하게 늘어나고 결가부좌에 필요한 근육은 강화되고 뼈끼리 눌려서 양쪽이 단단해지면서 육체의 고통은 점점 줄어들더니 드디어 내 몸을 이겼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왔다. 50분 동안 고통이 전혀 안 느껴지는 것이다. 이때 결가부좌로 앉아있는 것이 지극히 편안하고 이 세상 어떤 자세보다도, 누워있는 것보다도 더 편안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시적인 고통을 참으면 참 평안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 몸을 이기려는 연습과정에서 자세를 슬쩍 바꾼다든지 하지 않고 양심에 부끄러움없이 아슬 아슬하게 고통자체를 참으면서 버틴 내가 대견스러웠다. 화두의심을 방해하던 요소가 없어진 것이다. 이젠 오로지 화두의심에만, 학과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참선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내 몸을 먼저 이겨야한다는 것을 체험했다.
하루에 3번 즉 도서관에 도착후, 점심먹기전, 저녁에 잠자기전에 기도하고 반성했다. 기도는 신에 대한 기도가 아니고 바램을 표현하는 기도였다. 내 주변사람들 즉 가족, 친구로부터 시작해서 범위를 넓혀가면서 당시 다니던 교회분들, 대한민국국민들, 그리고 온 세계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기도였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하니 내 마음도 행복해졌다. 아침기도 후에는 오늘 하루를 공부하면서 1초라도 집중을 놓치지 않자고 다짐하고, 점심기도후 반성시간에는 오전 중에 딴생각이나 깜박 졸은 시간이 언제이며 그 때 무슨 잡념이 스쳤는지 점검하고 지금이후 남은 오후 시간에는 매 교과시간에 그 교과공부에만 집중하고 그 외 딴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집에서 자기전에는 점심이후시간의 집중 여부를 반성하고 내일은 1초도 집중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잤는데 매 반성할 때마다 졸거나 잡념이 들어왔던 시간대와 시간양이 몇 초였다고 생각나면서 부끄러워지고 다시는 잡념과 졸음에 잡히지 말자고 마음을 다지다 보니 잡념이 순간적으로 들어오거나 나도 모르게 깜박 조는 일이 거의 사라져갔고 그만큼 마음이 편하고 성취감이 느껴졌다.
이번에 꼭 합격하기 위해 1초라도 아껴서 집중공부하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다지면서 만약에 만약에 이번에 불합격한다면 북한산 어느 골짜기에 나무를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스스로 불을 질러서 타죽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렇게 내 몸이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면서 죽기 싫으면 그 만큼 더 집중해서 공부해서 실력을 쌓아 반드시 합격하자라고 , 1초를 허비하지않고 학과공부에 지금 최선을 다하자고 각오를 하고 집중, 집중, 집중해서 공부했다.
남산도서관에 도착해서 자기자리로 올라가기전에 벽에 게시되어있는 몇가지 신문을 읽었는데 특히 선행, 인간승리기사등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바로 지금 공부에 집중하여 실력을 키워야한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 의대 이부영교수의 글중에서 정신
혁명이 필요하다는 글은, 물질적언 면보다는 정신적으로 남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내 생각에 힘을 더해주었다.
아직 화두는 모르고 있었고 나를 둘러싼 문제들은 깊이 분석하기를 통해서 다 해결되어 더 이상 생각할 일이 없어서 좌선시간에 눈 앞 약 2미터 앞에 임의의 점을 찍어놓고 집중하는 연습을 했다. 그 점에 집중,집중,집중하다보니 내 몸이 쑥쑥쑥 커지면서 어느 순간 우주도 내몸도 하늘도 앉아있는 호국참회원 법당 지붕도 없어지고 나도 없어진 듯한 경계가 왔다. 이러다가 내가 죽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하고 겁이 나서 어떻게 내 몸으로 돌아가나 걱정을 하는데 다시 도선사 호국참회원 지붕밑에 좌복을 깔고 앉아있는 나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점에 집중을 했더니 또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내 마음속에 무한한 뭔가가 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했고 불교가 무속신앙 비슷한 저급한 종교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구나하는 느낌도 들었다. 5월 초순경에는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는데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는 이양하 선생님의 '신록예찬'에서 보았던 무념무상(無念無想),무장무애(無障無礙 )하여 몸과 마음이 쾌활 쾌활한 경지가 문득 느껴졌다. 즉 조선시대처럼 사형집행하는 망나니가 칼춤을 추다가 칼로 내 목을 친다 하더라도 떨어진 내 목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듯한, 내 몸에 대한 애착이 사라진 상태를 느꼈다.
고교때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신의 존재를 믿었는데, 신이 나를 항상 지켜보고 보호해준다는 안도감, 동시에 하나 하나의 행동에 대해 상과 벌을 준다는 두려움, 전지전능하여 믿을만한 위대한 존재라는 의지처라는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는데 참선을 시작하면서 여호와에게서 벗어났다. 내가 무엇인지 알고 나를 극복하고 싶어서 참선을 시작하면서도 처음에는 여호와에게 '하나님, 제가 여기 절에 온 것은 철학과를 갈 것이라서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온 것뿐이니 오해마십시요. 믿습니다. 아멘'하고 기도하고 참선을 시작했었다. 그러다가 위의 두가지 체험(몸이 사라진 듯한 느낌, 몸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하면서 이 세상은 여호와가 만들고 주재하는 곳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더 넓은 , 더 자연스럽게 마음을 편하게 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당당하게 '여호와, 너는 꺼져!'라고 하니 큰 짐을 벗은 듯한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운 마음의 평안을 느꼈고 그리고 참선, 내가 나를 깨닫고 나를 극복하고 그리고 남도 편하게 하는 길을 가기위해 본격적으로 화두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교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내 인생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일 뿐이며 나에게 온 모든 길흉화복은 다 내가 만든 것이므로 극복도 내 노력으로 해야지 거기에 개입하는 신과 같은 존재는 없다는 당당한 자존감도 갖게 되었다.
마음의 새로운 경지를 느끼게 해주고 일요일마다 재수생으로서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제공해주고 있는 선방이 고맙고 또 선방에 앉아는 있지만 정작 선이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므로 도대체 불교가 그리고 참선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도선사 책방에 있는 청담스님이 쓴 '선(禪)'을 사서 읽어보았다.
‘선을 선이라 하면 선이 아니요. 선을 선이 아니라 해도 선이 아니다...’
알수 없는 소리였다. 그래도 뭔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왔다. 읽어나가는 중에 승찬스님의 ‘신심명’을 읽는데 뭔가 알 수 없는 뭉툭한 감동이 왔다.
그리고 ‘이뭐꼬?’란 말을 보았다. ‘이뭐꼬?’란 나를 찾는 것이다. 나를 찾으면 그것이 곧 부처다. 밥먹을 줄 아는 놈,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놈, 이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참선이며 이놈을 알게되면 그것이 곧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는 등의 말들을 읽었는데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를 알고 나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기위해서 세상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철학과를 가려고 한 것인데 내가 추구하는 것과 참선에서 추구하는 것 즉 나를 알고 나를 극복한다는 것이 통한다고 느꼈다. 더구나 단순히 나를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알면 곧 부처가 되는 것이며 진리를 알게 되기까지 한다니 나를 알아야 한다는 나의 목표에 더 많은 의미를 참선은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 생각은 현실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로 알고 있는데 혹시 불교가 이 현실을 무시하는 도피적인 종교고 참선도 그런 것을 강조한다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바로 불교고 참선이고 집어치우기로 결심을 하고 나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지를, 내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5월 중순경부터 참선시간에 화두 즉 이뭐꼬?를 들기 시작했다. ‘이뭐꼬?...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할 줄 아는 놈,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 목 마르면 물 마실 줄 아는 놈, 지금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는 놈 ,이 놈이 분명코 있는데 그 놈이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의심이 생겼다. 못난 나를 알고 극복하고 싶어서 3월부터 분석했던 모든 의문점과 그 답의 뿌리, 나의 근원, 논리이전의 더 중요한 무엇, 이 세상의 근원이 ‘이뭐꼬?,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고?’에 다 들어있다고 확신했다. 즉 마음, 몸, 우주, 모든 것의 근원이 ‘이뭐꼬?’라고 느꼈다.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들고 이 못난 나를 이기려면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알려면 논리적 이성적 분석이 아니고 오직 의심인 “이뭐꼬?“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못났다는 근거는 당시 똥통학교라고 불리던 학교를 중고등학교 6년간 다니면서 생긴 열등감이었다. 그리고 뭔가 시작했다가 마무리를 한 것이 없다는 절망감도 내가 못났다는 근거가 되었다.신문배달도 몇 달하다가 그만두고, 고3때 반장도 몇 달 하다가 학과 공부에 방해된다고 그만두고, 입시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흐리멍텅하게 지내다가 당연히 불합격한 내가 한심하고 미웠는데 이렇게 못난 나라는 열등감이 나로 하여금 나를 알고 극복하고 넘어서야한다는 의지를 심어준 면도 있다. 그래서 화두를 들 때에 ” 이뭐꼬?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고?“라고 의심도 하지만 때로는 ” 이렇게 못난 이놈이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 못난 이놈“에 초점을 두면 더 간절하게 화두의심이 되었다. 참선에는 간절함이 필요한데 그 간절함을 끌어내는 요인은 어떤 사람에게는 열등감일 수도 있다고 본다. 용화선원 송담스님의 시자로 30년 가까이 있다가 환속한 환산스님이 참선을 하게된 계기중의 하나도 한국인의 핏줄을 지닌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면서 ”이뭐꼬?“ 참선을 하게 되었다는데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이뭐꼬?를 하게한 동기가 된 것으로 본다. 즉 나를 알고 나를 극복하겠다는 근본적인 간절함은 자신의 구체적 현실문제에 부딪쳐서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고 보며 그러므로 참선자는 간절함을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동기가 있으면 참선공부의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화두의심외의 생각은 잡념으로서 없애야 한다고 하는데 끊임없이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이고 그것이 또한 살아있는 증거인데 막상 그러한 잡념들을 없애면 아무 생각도 안떠올라 마음이 텅 비게 되고 그러면 삶이 맹숭 맹숭 해지고 무미건조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언뜻 들었지만 일단 가르침대로 화두의심외의 잡념을 없애고 의심만이 지속되도록 애썼다. 이뭐꼬? 화두의심 외의 잡념은 그때 그때 생각나는 몇가지 방법으로 물리쳤다. 화두의심외에 잡념이 떠오를 때마다 이 생각이 어디서 왔는가,샘물이 퐁퐁 솟아나오는데 샘물나오는 근원이 있는 것처럼 가만히 지켜보다가 잡념이 떠오르는 순간 이 잡념이 어디서 나왔는가? 즉 지나간 일이 떠오르면 샘물의 근원이 있듯이 ‘이 생각이 나온 근원이 어디인가?’로 돌이키는 방식, 양손에 도끼를 들고 있다 치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화두외의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이를 물체로 여기고 대각선으로 여지없이 내려찍었는데 도선사 호국참회원 법당에 청담스님 초상을 모셔놔서 문득 청담스님이 떠오르면 청담스님도 찍고 부처도 찍어버리고 부모님이 떠오르면 멈칫 했다가 부모님도 찍어버리는 방식, 그리고 어려서 팥죽을 쑤면서 눋지않게 주걱으로 계속 젓다 보면 팥죽 방울이 퐁퐁 솟았던 기억이 나서 잡념을 팥죽 방울이라 생각하고 팥죽 방울을 주걱으로 톡톡 치는 방식으로 가만히 지켜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화두외의 생각을 팥죽 방울처럼 주걱으로 쳐서 없애버리는 방식, ‘지난 월화수목금토요일 동안 학과 공부한다고 애를 쓰다가 오늘 일요일에는 일요선원에 오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어떻게 내가지고 이렇게 좌복위에 앉아있는 이 놈이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의심하는 방식도 적용했다. 그리고 호국참회원 앞 마당에서 약 6m정도 거리를 왕복하면서 화두를 의심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도 안 이어지던 화두(話頭)가 6월,7월 경에는 끊어지지않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얼음장이 두껍게 얼면 물고기가 고개를 내밀 수 없듯이 화두가 힘있게 이어지니까(얼음이 두꺼워지니까) 잡념이 화두의심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고 걸을 때나 학과 공부를 할 때도 계속 의심이 계속 이어짐을 느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마음의 편안함, 선어록에서 읽었던 깨달음이란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과 선문답이 동문서답이 아니고 뭔지는 모르지만 이치에 들어맞는 말씀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화두의심을 단전에 두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고 처음에는 단전이 어디인지 헷갈려서 여기인가, 저기인가하고 마음속으로 위치를 옮겨가면서 찾다가 여기다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단전은 배꼽밑 몇치라는 식으로 물리적인 거리라기 보다는 스스로 화두의심이 맺히는 곳이 있다고 느꼈다. 단전에 의식을 두고 화두의심을 하다보니까 학과공부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각도 두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전에서 하게 되니까 두뇌의 기능이 단전으로 옮겨졌다고 느꼈으며 두뇌에서 화가 나는 생각을 직접적으로 느끼면 바로 얼굴이 벌개지고 온 몸이 화가 난 감정에 휩싸였지만 단전으로 화나는 일을 받아들이면 이미 담담하게 순화되었음을 느꼈다.
화두의심만이 이어지는 상태에서 들끓던 잡념이 사라진 것이 너무 신기해서 잠깐 동안 화두의심에 의식을 두지 않고 잡념이 혹시 떠오르나 하고 잠시 기다려 봤더니 잡념이 올라오지를 않았다. 본질은 화두의심이므로 얼른 이뭐꼬?로 돌이켰는데 처음에 화두 들 때에 가졌던 의구심 즉 잡념이 안 떠오르면 삶이 맹숭맹숭해지고 무미건조해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잘못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화두의심만이 지속되는 것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는 담담하고 편안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경전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는지가 궁금해서 읽어보았는데 모래를 씹는 듯 하여 그만두었고 단지 이뭐꼬? 이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의심하는 것만이 할 일이라고 생생하게 느꼈다.
그리고 화두의심과 일상생활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느꼈다. 오전 학과공부시작 전에는 오늘 공부시간중에 학과공부외에 딴 생각이 1초도 안 들어오도록 집중하자고 결심한 후에 공부시작하고, 점심시간에는 오전중에 나도 모르게 깜박 졸거나 집중이 안되고 공부외에 딴 생각이 잠깐이라도 난 횟수와 각 횟수별 시간의 양이 몇초인지를 점검하여 오후에는 한번도 졸거나 딴 생각없이 공부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지고, 잠들기 전에도 오후의 집중도를 점검하면서 내일은 완벽하게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이처럼 집중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매 시간 그리고 매일 매일을 보냈더니 공부에 대한 집중도가 점점 더 높아졌고 이러한 학과공부에 대한 집중연습은 화두의심의 집중에도 힘이 더해졌다. 그러니까 재수생으로서 집중해서 수학, 영어공부에 열중하면 할 수록 그 기운이 화두의심으로 연결되고 또 화두 의심이 나의 할일인 학과공부에 더 집중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굳이 출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떠난 진리는 없으므로 남들과 같이 직장다니고 결혼하고 똑같이 생활하면서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신문에 실린 나이트 클럽광고를 보면 거기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앞을 보고 있는 얼굴사진이 실렸는데 이뭐꼬?를 하지않고 멍하니 앞을 보고 있는 것이 너무 공허해보여서 속이 상했고 노점상하시는 분들이 이뭐꼬?를 아시면 그 많은 시간에 이뭐꼬?를 하면서 알차게 시간을 보낼 텐데 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웠고 당시에 카네기인생론과 같은 나를 개조한다는 책자들이 유행했는데 ‘나를 개조하려는 이놈이 무엇인고?’하고 즉 이뭐꼬?하고 의심하는 것이 근원적인 개조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뜨거운 여름과 서늘한 기운이 도는 9월에도 계속 학과공부와 화두의심을 하면서 집중했다. 10월 경에 도선사 일요선원에서 일요일 2시간 좌선할 때는 이런 마음으로 앉았다.
역대 선지식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이번 입선(50분)동안 못 깨달으면 천지개벽이 일어나 세상이 멸하고 나도 죽는다. 내일을 어찌 기약하랴 이번에 끝내버리자는 마음으로 결가부좌를 하고 심호흡을 3번 하면서 '이 뭐꼬오오-?'를 하면 그대로 밖의 소리도 안 들리고 이 몸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핵심은 '이 뭐꼬?'다.
죽비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면 아직도 못 깨달은 나일 뿐, 에잇 이 못난 놈아, 이번 시간에는 기어이 내가 무엇인지 알고야 말리라 하면서 다시 50분 '이뭐꼬오-?' 그러나 또 못알았지만 그러나 그래도 느껴지는 환희심을 무엇에 비유하랴...
깨닫지는 못하였으나 분명코 선지식들이, 부처님이 거짓말을 않으셨다는 믿음, 내가 금생에 어떤 복으로 이 참선법을 만났단 말인가하는 고마움, 2시간 좌선후에 도선사 우측 바위위에서 도선사를 내려다보는데 몸과 마음이 지극히 가볍고 상쾌해서 이 바위에서 뛰어내려도 아무 일이 없을 듯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좋음이었지만 거기에 빠지지 않았고 이러한 경계가 오게한 핵심인 이뭐꼬? 로 돌이켰다.
학과공부를 해도 잠을 자도 걸어다녀도 화두는 산위에서 돌이 굴러내려오듯이 저절로 계속 의심이 더 커지다가 나중에는 돌이 허공에서 낙하하는 것처럼 의심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는 것이 아닌가?
잠에서 깬 후에 '아차, 어서 화두들자, 이 뭐꼬?...'가 아니고 이미 무서운 기세로 화두의심은 자는 동안에도 커지고 그 힘이 더욱 세어지고 있었음을 느꼈다. 수학공부와 영어공부에 집중해서 열심히 해도 그 수학영어공부의 집중 밑에서 화두는 화두대로 더욱 의심이 커지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알아지고 보이고 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12월 초에 수학공부를 할 때에 전에는 이렇게 풀까 저렇게 풀까 고민하고 풀이과정도 한 단계씩 차례대로 생각하면서 연습장에 써내려가면서 이러한 과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풀었는데 화두의심속에서의 수학공부는 이러했다. 수학정석과 연습장을 펴놓고 손에 볼 펜을 쥐고 계획대로 2시간 수학공부를 시작하면 전처럼 생각하고 쓰고 하는 나가 안느껴지고 그냥 몰입했다가 몰입에서 나오면 2시간이 지났고 수학공부는 분명히 제대로 연습장에 풀면서 진도가 나가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과목공부인 국어나 영어나 사회, 독일어, 상업공부등은 수학공부에서 처럼 몰입했다가 문득 나오는 것은 아니고 전처럼 일일이 생각하면서 했는데 영어독해공부의 경우 영어사전도 찾고 해석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과정을 다 느끼면서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하는 생각외의 잡념은 거의 떠오르지 않았고 공부자체에만 집중해서 했다. 그리고 공부계획이라든지 도시락을 가지러 언제 갈 것인지와 같은 필요한 생각도 전에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이게 낫지 않나’하면서 하나 하나 생각하는 과정을, 내가 알고 인식하면서 했었는데 화두의심이 스스로 커지는 이 경계에서는 내게 필요한 생각을 하자 마자 단계별로 인식하는 과정은 느끼지 못했지만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아, 도시락은 11시 30분에 가지러 가는게 낫겠다.’나 ‘이번 주 공부계획은 이렇게 해야겠구나’라고 답이 덜커덕 나와있는 것이었다. 마치 계산기에 105×38+25÷8을 입력하면 계산과정은 내부 프로그램이 알아서 하고 우리에게는 답만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하나 차례대로 생각하기는 했을 텐데 그 과정을 일일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원하던 최적의 답이 덜커덕 나와있는 것이었다. 잠은 점점 줄어들었다. 곧 1월 중순경에 본고사 시험을 봐야 했으므로 최대한 시간을 확보하여 공부하기 위해서 한밤중에 졸리다 싶은 느낌이 오면 눕지않고 잠시 책상에 엎드려서 깜빡 자고 일어나서 계속 공부했는데 그래도 하루종일 피곤하지 않고 생생한 정신으로 집중해서 학과공부를 할 수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을 때에 꿈을 꾼적이 없이 숙면을 취했는데 잠에서 깨어나도 화두의심덩어리 (疑團)는 숙면속에서도 저절로 커지고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의단이 같은 크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산위에서 돌이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빠른 속도와 힘으로 굴러내려오듯 하다가 이 무렵에는 돌이 허공에서 떨어지면서 엄청난 가속도가 더해지는 것처럼 꿈도 없이 깊이 잠든 상태에서도 화두의심은 더 깊어지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굳이 숫자로 말하면 잠자기전 화두의심 정도가 100이라면 잠에서 깬 직후의 정도도 그대로 100인 것이 아니고 1000으로 더 힘이 붙었고 깬 직후에도 그 힘(알 수 없는 의심)은 계속해서 더 커지고 있다고 느꼈다. 100에서 1,000으로 늘어난 것은 깬 직후에 갑자기 100에서 1,000으로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 아니고 깊은 잠을 자느라 내가 지금 꿈도 없는 숙면속에서 ‘이뭐꼬?’하고 화두의심을 하고 있구나라는 인식은 못했지만 잠자는 그 밑에서 의단은 100-300-500-700-900으로 커지다가 숙면에서 깨어나면서 1000으로 커진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잠잘 때에도 화두의심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고 깬 직후에도 계속해서 10,000, 100,000으로 1,000,000의 크기로, 나아가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의심의 크기가 저절로 커졌다. 허공에서 바위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데 어느 정도 지나면 어딘가 바닥에 닿을 수 있을 법한데 계속 닿지를 않고 속도가 무섭게 더 빨라지기만 할 뿐, 즉 의심의 크기가 끝이 없는 듯이 더욱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수학공부를 할 때도 밥먹을 때도 말할 때도 걸을 때도 꿈없이 깊은 잠을 잘 때도 하루 종일 의심은 저절로 커졌다. 의단(疑團)의 바다위에서 수학공부의 파도, 똥누는 파도, 밥먹는 파도, 얘기하는 파도, 꿈도 없이 깊은 잠자는 파도가 치는데 저절로 커지는 의심덩어리위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行住坐臥語默動靜)이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마음의 새로운 차원을 느꼈고 참선법은 참이었다. 동네길을 걷다가 문득 내가 느끼고 있는 이것이 환상이 아닐까 라고 점검을 했는데 분명히 환상이 아닌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경지가 도대체 맞는 것인지를 100%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서 어디 큰 스님을 만나려 해도 누가 큰 스님인지 아는 분도 없었고 우선 학과공부도 급하고 해서 대학을 간후에 점검을 받으리라 하고 아직 못 깨달은 것은 사실이므로 담담하고도 맹렬하게 '이 뭐꼬?'-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뭐꼬? 담담하고 당당함 너그러움 편안한 마음이었다. 깨달음이 있음이 분명히 믿어졌다.
그대로 확철대오를 했다면 인가를 받거나 법상을 뒤집어 엎으므로써 역대 조사스님들의 은혜를 갚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경계를 잊어버리고 즉 기억속에는 분명코 있는데 현실에서는 전과 같이 화두 의심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경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79년 군제대후에 같은 시간에 도선사로 가서 같은 시간에 선방에 앉아보는 등 몸부림 치면서 노력했지만 복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선사스님들의 법문을 처음으로 들어보았는데 뭔지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가 80년 8월 경에 용화사에서 송담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바로 이분이다 싶었다. 여러 말 할 것없이 ‘이뭐꼬? ‘의심하라는 말씀이 절실하게 마음에 닿았다. 어떤 때는 송담스님께서 법상에서 ‘이뭐꼬? 이뭐꼬?...’하고 화두만 계속 소리내서 하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법문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전강스님도 똑같이 믿어졌다. 어서 정진해서 그 경계를 회복해서 확철대오해서 인가를 받겠다고 결심하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전강,송담스님 법문을 듣다보니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이뭐꼬?’하고 화두를 추켜들 필요가 없이 잠자는 속에서도 화두의심이 지속되는 그런 경계가 반드시 오고야만 마는 것이여, 그렇게 되면 깨달은 것보다 더 좋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 말씀이 내가 경험했던 그 경계를 말씀하시는 듯해서 한 번 질문을 드려서 ‘제가 과거에 그런 비슷한 경계를 맛본 듯한데 말씀하시는 그 경계와 제가 경험한 경계가 같은 것인지요?’라고 질문하고 싶었으나 지금 없는 경계를 말하는 자체가 과거에 우리집에 금덩어리 있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어서 어서 노력해서 그 경지를 회복하고 확철대오 해서 인가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감히 질문할 생각을 하지않고 나름대로 정진을 했었다. 하지만 법문 들을때 마다 자주 그 경계 말씀을 하시길래 딱 그 경계를 말씀하시는 듯 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감히 혼자 생각으로 ‘아, 내가 맛봤던 경계를 얘기하시는 것이야’라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의 법문을 통해서 경지 점검은 반드시 믿어지는 선지식에게 직접 질문드리고 점검받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선공부에 관한 의문점이 생기면 법회후 친견시간에, 직접 질문하거나 다른 분의 질문과 큰스님의 답변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법회가 아닌 때에도 용화선원을 방문하여 아무리 사소한 점일지라도 큰스님께 직접 질문하여 답변을 듣고 확인 할 지언정 스스로 유추하여 '아마도 그럴 것이야'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말씀하신 경계와 같은 것인가라고 알고자하는 자체가 병이 된듯하여 비록 견성은 못했지만 맞는 경계인지를 송담스님께 확인받는 것이 앞으로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질문을 하게 되었고 송담스님께 먼저 질문 드리고 다른 스님들께도 질문을 드리게 되었다.
지금은 없는 과거의 경지를 기어코 회복하여 견성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지금은 없으니까 초라한 심정으로 큰 스님들께 그 경지가 도대체 맞는(제대로 한 경계)것인지를 질문을 하여 보았다.(경봉 큰 스님은 못 만나 뵈었고, 월산 큰 스님은 80년대 중반에 우이동 보광사에서 인사만 드렸고 89년 8월에 수덕사 원담 큰스님과 해인사 원당암의 혜암 큰스님은 찾아갔으나 병원에 가셔서 안계셔서 못뵈었고 성철큰스님을 뵈러 백련암을 올라갔는데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여 그냥 내려왔다.)
A (용화사 송담 큰 스님)
-얘기를 들어보니 해온 과정을 화안히 알겠다.
(그러면 제대로 한 것입니까?)
- 지금 해온 대로 그대로 공부해나가면 된다. 그렇다고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고...
B (송광사 구산 방장 큰 스님: 법련사에 오셨을 때 뵈었다. 몸이 아프시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을 들어갔는 데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몸이 아프니까 누워계실 줄 알았는 데 면벽하고 꼿꼿이 앉아 좌선하고 계셨다. 정진만이 할 일인 선승의 기상을 느꼈었다.)
-그러다 깨닫는 거여...
(차라리 나는 한 방망이를 내려주셨으면,'헛소리말고 더 열심히 정진해!'라고 호통을 쳐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느꼈다.)
C (해운정사 진제 조실 큰 스님: 해운정사에서 뵈었다.)
-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게
(아니 큰 스님께서 판단을 해주셔야 하지않습니까?)
-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게
D (통도사 월하 방장 큰 스님: 통도사 방장실에서 뵈었다.)
-본인이 알아서 판단하세요
E (의성 고운사 근일 큰 스님: 고운사 선방을 새로 지을 때 뵈었다)
-그 다음 단계(?)에 이르기 전이었구만. 거기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야.
-저의 참선기 끝-
2. 송담 원장 큰스님께 백중법회날(2015년 8월28일) 질문하려 했던 내용입니다.
(2017년 9월 27일)
1974년 3월부터 현재(2017년 9월)까지 40여년 동안 나를 알고 나를 깨달아 대자유인이 되어서 중생제도 하겠다는 원을 삶의 목표로 세우고 나름대로 참선을,이뭐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깨달은 선지식은 생사해탈하고 대자유인으로서 다시 와 중생제도 한다고 하고서는 실제로는 다시 온 이가 거의 없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참선법은 결국 말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허황된 것, 허언(虛言)일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밀려오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궁금한 둘째 질문을 다시 묻습니다. 생사해탈해서 대자유인이 되었다는 선지식들이 왜 지속적으로 다시 오지 않는 것입니까? 오조 홍인이 매한 채로 5조 법연으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합니까?
금방 몸 바꿔서 다시 왔으면 40세가 넘어야할 전강스님은 40년이 지나도록 본인이 온다고 한 용화선원에 왜 안오시는지 제발 대답을 해주십시오.
현 시점에서 허언(虛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는 참선을 그만둘까 하다가 그래도 그만두지는 않고 이뭐꼬?를 계속하여 일단 내가 깨달아서 다시 온 선지식이 왜 이렇게 희귀한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2016년 4월 24일)
백중법회때 하지 못한 아래 질문들을 그 후에 원장스님 오신 법회(동안거 결제, 조실스님추모법회, 동안거 해제법회등) 때에 할까 하다가... 하지 않기로 일단 마음을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이라도 확철대오하여 원장스님께 인가받은 전법제자가 나오시면 특히 첫번째 질문은 할 필요가 없게 되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너, 나 할 것 없이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9월 19일)
원장스님께서 백종날(2015년 8월28일) 오신 다고 해서 법문을 다 하신 후에 다시 주장자를 들어 보이시기 직전에 법상 앞에 나가 3배를 올리고 '원장 큰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린후 아래의 질문 3가지를 드리려고 했는데 오지 않으셔서 질문을 못했습니다. 원장 큰스님의 시자스님이나 상좌스님께서 아래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원장스님께 말씀드려서 법회에서 사부대중들께 답변을 해주시거나 별도로 질문과 답변을 녹음한다든지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질문입니다.
아직 원장스님이 인가하신 전법제자가 안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에 전법제자가 안계신 채로 원장스님이 열반하신다면 그리고 그 후에 견처가 나면 누구에게 질문하여 점검을 받으며 견성을 했을 경우 누구에게 인가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열반하신 후에도 참선방법은 조실스님과 원장스님 녹음 법문을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겠지만 견처 점검과 인가는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송담스님 법문 201번-선지식 점검 필수 49분 경)
두번째 질문입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는 목적은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하여 대자유인이 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태 주태 출태에 매하지 않고 다시 몸받아 태어나 중생제도 한다는 이 가르침에 감격하여 그리 하고자 참선을 합니다.
그런데 달마, 조주, 경허,마조, 황벽, 임제, 태고보우, 만공스님등 수많은 선지식들은 분명코 견성해서 생사해탈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이분들이 견성후 몸 바꿔 다시 이 사바세계에 오신 경우가 왜 이렇게 희귀하며 그리고 지속적으로 오신 경우는 왜 더더욱 희귀한지 궁금합니다. 특히 원장스님의 51번 법문(65분중 42분경)과 추모재 법문(113번 법문 33분중 21분경)등에 따르면, 조실스님께서는 열반후 금방 몸 받아 바꿔가지고 사바세계 용화선원에 다시 와서 만나 함께 정진할 것이니 도량을 잘 가꾸어 놓으라고 부탁하셨다는데
-열반후 40년이나 지났는데 조실스님이 용화선원에 왜 아직 안오셨습니까?
-5조 홍인스님은 왜 입주출태에 매한 채로 오조법연으로 태어났습니까?
-역대 선지식들중에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몸 바꿔서 지속적으로 다시 온 분이 왜 이렇게 희귀합니까?
(법상앞에서 두번째 질문하려던 내용은 여기까지이고 아래 내용은 여기에 글로 적다보니까 두번째 질문의 배경으로 생각해본 내용입니다.)
신심이 있어서 열심히 정진하면 하늘에 빛나는 태양, 물소리, 새소리에서 조실스님을 뵙고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말씀도 믿어지고, '내가 6조다'하고 선지식이 오시는 것이 아니고 언제 어떻게 오실지 알수 없다는 보편적인 말씀도 이해가 되고 믿어지지만(원장스님 법문 157번. 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 10분경) 한편으로는 사람 몸으로 곧(원장스님 법문 134번 조실스님 6주기 추모재 5분 경) 오시겠다고 하셨고 원장스님도 조실스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믿는다고 하셨으니, 법신불이 화신불 석가모니불로 몸받아 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 처럼, 조실스님께서도 스스로 약속하신대로 몸 바꿔서 오신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이 불법의 확실함을 믿고 환희심을 내어 더욱 가행정진하게하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을 의심하는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말로만 생사해탈이고 대자유인이지, 입주출태시에 매하지 않고 다시 이 사바세계에 지속적으로 몸 받아 와서 중생제도를 하신 분이 도대체 누가 있느냐? 전강조실스님께서 쌍림부대사(전강스님177번), 포대화상(전강스님 177번 법문)이 미륵불의 후신으로 금생에 출현하셨다고 법문하셨는데 설화적인 요소가 있지만 미륵불도 몸을 받아 출세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선지식들도 중생제도하기 위해서는 몸을 받아 와야한다(179번 법문,70분중 30분경)고 하셨고 720번(아난 발심대오 고령신찬선사 종불사 69.07.06, 총 1시간 33분중 1시간 18분 무렵 ) 법문에서도 견성하면 용무생사(用無生死)하여 어머니 뱃속에서도 걸림이 없이 여기가 어머니 뱃속이구나 알고 있고 거기서도 참선하고, 출태해도 깨달라가지고 그대로라고 말씀하셨다. 즉 확철대오하면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용무생사하여 중생제도위해 몸받아서 출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장스님께서도 삼세제불도 선지식들도 인간세에 환생할 때는 몸을 받아 오는 것이라고 법문하셨다. 즉 393번 법문(법당 앞에 비치되어있는 천도재 법문2 팜플렛에 일부 풀어정리되어있음)에서 원장스님께서는 '...( 전략 ) 그리고 진리에 있어서는 생사가 없는 것이지만 인연 따라서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이 몸뚱이를 이 세상에 받아 난 사람은 인연 따라서 다시 또 이 몸뚱이를 벗어버리고 새 몸을 또 받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라고 할까? 풍류라고 할까? 삼세제불도 역시 일단 몸뚱이를 받아 난 이상에는 인연따라서 또 그 몸을 벗고 ,또 새 몸을 받어. 역대 조사도 역시 그렇고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후략 )'라고 하셨고 51번 법문(65분중 45분)에서도 ‘육체를 가진 이상은 부처님도 역대 조사도 몸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전강스님, 원장스님 법문처럼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다시 몸 받아 지속적으로 와서 중생제도한 선지식이 누가 있는가? 달마, 육조, 조주, 원오 극근, 마조, 임제, 황벽, 태고보우,서산,경허, 만공스님이 새 몸 받아서 다시 온 적이 있는가? 다시 온 적이 없지 않은가? 그 분들이 태어날 때는 못 깨달은 채로 태어나서 정진하여 깨달아 금생에 선지식이 되었으니까 이미 깨달은 선지식에 더하여 그만큼 선지식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고 그리고 그분 들이 대자유인으로서 중생제도를 위해 사바세계에 인간의 몸을 받아서 다시 왔다면 믿고 의지할 선지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난 것이다. 즉 시간적으로 먼저 깨달은 선지식인 달마, 조주, 대혜,몽산, 완산스님등에 더하여 태고보우, 서산,경허, 만공이 그 분들보다는 나중에 깨달아 선지식이 되었으니 선지식은 계속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이 다시 몸 받아 와서 방장과 조실이 되기도하는 등 여러 방편으로 중생 제도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한 분이 있는가?
전강조실스님이 33세에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것처럼 금생에 깨달은 선지식과 전생에 깨달아 금생에 다시 태어난 선지식들이 조실과 방장을 해야 마땅한데 이런 조실과 방장이 누가 있는가? 오히려 날이 갈수록 믿고 의지할 선지식은 줄고 있지 않은가? 다시 온 선지식이 조실, 방장으로 지도하여 금생에 깨달은 선지식들이 여기 저기 출현하고, 다시 온 어떤 선지식은 출가 않고 결혼해서 온 가족이 정진하여 유마거사, 부설거사, 방거사 가족 같은 가정이 여기, 저기 늘어서 온 누리에 법향이 가득찬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참선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깨달은 선지식이 다시 몸 받아 와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한다는 얘기만 있고 그렇게 한 분이 왜 이렇게 희귀한가?
처음에는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대자유인으로서 다시 온 선지식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환생한지 6년 만에 너무 일찍 열반했고 지속적으로 다시 왔다는 기록은 없지만, 마조스님의 법손인 귀종(歸宗)선사가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환생한 사례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환생한 선지식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도 이어지는 의문점은 선지식의 환생사례가 왜 이렇게 극소수이며 그 극소수의 선지식들마저도 왜 지속적으로 환생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참선법에 따르면 무수한 선지식들이 인연있는 중생제도위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환생해왔어야 하는 것이다. 즉 다시 몸받아 인연중생제도위해 환생한 많은 선지식들이 천년전 당나라에도 고려에도 조선에도 청나라에도 서양에도 지금 여기에도 지속적으로 출현했어야 한다. 참선공부를 시작할때 환희심을 내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다시 올 수 있다는, 생사에 매이지 않고 대자유인이 되어서 중생제도위해 다시 온다는, 다시 올 수 있다는' 이 부분이 아닌가? 그런데 1000여년전의 전등록(傳燈錄)에 실린 극소수의 사례만 얘기할 뿐 그 후에 지속적으로 다시 온 선지식이 없다면, 참선은 공허한 얘기가 된다.
다시 온 선지식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의 없는 듯하고 따라서 철두철미하게 지도하는 선지식이 점점 줄어드니까 깨닫지도 못하고 인가가 없어도 문중에서 연세 많고 수십 안거 성만하기만 하면 조실, 방장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방장스님들은 본인이 깨닫고 인가받은 적이 없으니까 불교 교양강좌나 덕담수준으로 안거 결제, 해제 법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달마스님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참선법을 전했으며, 지공스님은 인도에서 고려까지 오셨고 태고보우스님이 중국에서 법맥을 이어왔고 여러 스님이 중국에서 참선법을 배워 신라에 고려에 전했기 때문에 우리가 간화선 수행을 할 수 있는데 정작 중국에 참선법이 현재 단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달마,조주,대혜,육조,남악회양,몽산,완산,서산,임제,마조,황벽,석옥청공,태고보우,나옹이 지속적으로 몸 바꿔 다시 와서 중생제도 했다면 한국, 일본, 중국 간화선 맥은 끊어질 리가 없이 계속 이어져 왔을 것이고 참선법이 온 세계에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선지식들이 한번 열반하면 다시 오지 않으니까 아니, 오지 못하니까 한국은 단절되었다가 경허가 살려냈다는 것이고 중국은 경허같은 선지식이 출세하지 않아서 선종의 맥이 단절된 것이 아닌가? 경허도 전생에 깨달았다가 금생에 다시 온 선지식은 아니고 못 깨달은채 태어나 금생에 정진해서 금생에 선지식이 된 것인데 그렇다면 전생에 깨달은 선지식이 다음 생에 다시 몸 받아 지속적으로 온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선지식들이 언제 어떻게 오실지 알 수 없다는 말씀(원장스님 법문 157 과 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은,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을 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죽는 것처럼 선지식들도 언젠가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분명히 오신다는 말씀인데 다시 오신 분이 왜 이렇게 희귀한가?
기라성 같은 조주,달마, 마조,원오극근,대혜,몽산,태고보우,서산,완산,경허, 만공스님은 다시 오지 않은채로 왜 침묵속에 있는가? 뭐하고 있나? 못오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견성하면 대자유인이 되어 다시 몸 받아와 중생제도할 수 있다는 말을 한 선지식들이 본인도 실천못하면서 즉 다시 오지도 못하면서 다시 올수 있다는 공허한 말과 법어집과 사리탑만 남기고 갔지,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천하여 몸받아 지속적으로 다시 온 선지식이 왜 이리 희귀한가? 경허스님은 열반한지 100년이 지났고 열반한지 1000년,1300년이 이미 지나간 선지식들 중에서 지속적으로 다시 온 자가 누가 있느냐? 다른 중생계에 혹 태어나서 제도를 한다고 해도 적어도 이 사바세계에도 왔었어야(송담스님 세등 49번 63분중 17분 경) 할 것인데 미륵불이 포대화상, 쌍림부대사로 몸받아서 출세했다는 설화적 얘기에 더하여 깨달은 선지식들중 지속적으로 몸 받아 이 사바세계에 다시 온 분이 있느냐? 미륵불이 포대화상으로, 쌍림부대사로 온 것 처럼 달마,육조,조주,대혜종고,원오극근,남악회양,마조,백장,황벽,서산,태고보우도 이런선사와 저런 거사로 다시 오고 부설거사, 방거사 부인이나 딸처럼 이런 보살님, 저런 보살님,즉 여성으로도 환생하여 중생제도 했어야만, 참선해서 깨달아 생사해탈하고 윤회에서 벗어나 중생제도 한다는 참선법의 진리성은 확보된다. 이렇게 되면 선지식들이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대자유인이 되어 원하는 곳에 태어나 여러 생에 걸쳐 중생제도한 환생록(還生錄)이 부처의 전생기록인 본생담처럼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번 환생해서 중생제도한 자가 누가 있느냐? 전강스님은 열반한지 40년이 넘었는데 어디에 다시 오신 근거가 있느냐?
온 세계에 충만한 법신으로 오신다든지 하는 말은 진리이지만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예수교나 만물이 한울님의 드러남이라고 보는 동학에서도 보편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구체적 관점에서는 법신불이 석가모니 화신불로 몸받아 인도가비라국에 출현한 것처럼 선지식은 몸받아 이 사바세계에 출세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지속적으로 중생제도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조실스님과 원장스님도 선지식과 제불보살이 이 세상에 올 때는 몸 받아 오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마조가 왔는가? 임제가 왔는가? 달마가 왔는가? 태고가 다시 왔는가? 경허가 다시 왔는가? 전강조실스님은 왜 안오시는가?
그리고 오조 홍인이 입주출태에 매한 채로 오조 법연으로 태어난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오조 홍인이 매한 채로 오조법연으로 태어난 것은 견성하여 생사해탈하고 대자유인이 되어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는다는 참선의 근본이 통째로 부정되는 일이다. 오조법연스님은 5조 홍인대사의 후신인데 5조 홍인대사 열반후 수백년 뒤에 몸받아 다시 태어났는데 참선하여 견성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5조 후신인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아니, 견성한 5조 홍인대사가 5조 법연으로 환생했는데 5조 법연이 견성하고 나서야 자신이 홍인대사의 후신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되는가? 5조 법연은 자신이 5조 홍인의 후신인 줄은 모른채 즉 입주출태시에 매한채로 아이로서 태어나, 깨닫고자 출가하여 경전공부의 한계를 느끼고 참선하여 백운수단선사에게서 인가를 받은 뒤에야 자신이 5조 홍인의 후신임을 알게 되고 5조 탑앞에서 자신이 5조의 후신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견성한 5조 홍인대사가 입태,주태, 출태에 매했다는 것이며 다시 참선하여 다시 깨달았다는 것이니 도대체 5조 홍인스님의 깨달은 경지는 어디로 간 것이며 참선하여 깨달아서 생사해탈하여 입태,주태, 출태에 매하지 않고 대 자유인으로서 중생제도한다는 참선의 기본교리와 상충되는 얘기가 아닌가? 더구나 오조 법연스님은 열반하면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중생제도 위해서 다시 와야지 왜 안온다는 것인지 더더욱 이해가 안된다.
금생에 참선정진하여 깨달아서 구경각에 올라 다시는 매하지 않고 대자유인이 된다고 믿고 참선하는 것이지 깨달아도 또 매하게 되고 또 다시 참선해서 다시 깨닫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선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 않은가? 전강조실스님 법문( 179번 체중현,도솔천발원 70분중 29분경, 715번 재송법문,자사는 개구즉착, 종불사의 94분중 66분 무렵)에서, 5조 홍인의 전신인 재송도인은 4조 도신의 법을 잇기 위해 처녀 몸에 잉태하여 다시 태어난 후 4조 도신스님에게 와서 본인이 징표로 심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재송이 다시 환생하여 왔다고 밝히고 4조의 법을 이어서 5조 홍인이 되었다고 법문하시면서 이것이야 말로 재송도인이 입태, 주태, 출태에 매하지 않고 생사해탈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러한 예가 수없이 많다고 법문하셨다.
그렇다면 조실스님은 재송도인의 사례외에 매하지않고 생사해탈한 수많은 다른 사례도 법문하셨어야하는데 재송도인 사례만 여러 차례 법문하셨을 뿐이고 정작 오조홍인이 다시 환생한 오조법연스님에 대한 법문은 한 번도 안하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오조법연이 매한 채 태어난 것이 부각될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 않으신 것인가? 그러니까 재송도인이 5조 홍인으로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환생했다고 강조하면서 입주출태에 매해서 환생한 오조법연스님을 오조홍인의 후신으로 연계하여 언급하지 않는 것은 참선법이 허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환생한 재송도인의 5조 홍인으로의 환생은 처녀몸에 입태했다는 등 설화적인 요소가 강한 반면 그로부터 약 400년 뒤에 5조 홍인의 후신으로 환생했으며, 오조문하 삼불(五祖門下 三佛)인 불과(佛果 圜悟), 불감(佛鑑 慧動), 불안(佛眼 淸遠)의 스승인 5조 법연의 행장에서는, 오조법연이 5조 홍인의 후신으로 다시 왔다고 5조 탑앞에서 고(告)하자 5조 홍인의 진신(등신불)이 손을 들었다는 부분 말고는 설화적 요소가 거의 없고 객관적이다. 이러한 5조 법연의 행장으로써 본다면 5조 홍인스님도 입주출태에 매한 것이고 이는 곧 생사해탈을 못했다는 것이고 대자유인이 못되었다는 결론이 된다. 이를 정리해 본다면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환생한 재송도인=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환생한 오조 홍인≠입주출태에 매(昧)하여 환생한 오조법연이 되어서 결국 동일한 선지식이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았다가 다시 매하기도 하는, 참선법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참선의 기본 교리(견성하면 생사해탈,윤회에서 벗어남, 대 자유인이 되어 태어나고 싶은 곳에 자유자재로 탄생하여 중생제도,입태주태출태에 매하지않음)가 다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들을 설레게 하는 그 귀한 가르침, 참선하여 견성하여 확철대오하면 윤회에서 벗어나 대 자유인이 되어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고 생사해탈하여 원하는 곳에 태어나 중생제도 한다는 감격스런 가르침(전강스님 720번,아난 발심대오 고령신찬선사 종불사 69.07.06, 총 1시간 33분중 1시간 18분 무렵)이, 5조 홍인이 입주출태에 매한채로 5조 법연으로 환생했다는 객관적 사실앞에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이렇게 기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이런 의심을 하고 있다면 그 사실관계가 무엇인지 말을 해주고 다시 묻거니와 오조 홍인이 입주출태에 매한 채로 오조법연으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알려다오.
다시 와서 함께 정진한다는 것은 나의 삶이 금생과 내생(천국과 지옥)으로 마무리된다는 기독교와 다른, 불법만의 독특한 가르침 즉 이 몸을 바꿔서 다시 온다는, 생사에 자유롭다는 구체적인 진리의 드러남이 아닌가?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에서 처럼 아이로서 출가하여 견성한 후에 시방법계 다니면서 많은 중생을 건지면서 여러 갈래 몸을 나퉈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몸을 받고 지속적으로 다시 온 선지식이 왜 이렇게 희귀하며 전강스님은 열반후 금방 몸을 바꿔서 다시 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용화사에 왜 아직도 안오시는가? 이미 오셨는데도 본인이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달마의 9년 면벽처럼 출세하기 위한 시절인연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천년이 넘도록 대부분의 선지식들이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는 것인가? 시절인연이 되어서 드러낸 분들이 왜 이리 희귀한가?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이 견성직후에 녹야원으로 직접가셔서 다섯수행자를 제도하시고, 제바닷타에게, 앙구리말라에게, 코삼비 비구들에게,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여인에게, 물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다투는 사람들 앞에, 외도들앞에, 가비라국을 침공하는 코살라 국왕 앞에, 병들어 신음하는 제자에게, 버릇없는 자신의 아들 라훌라 앞에 자신을 드러내어 제도하셨고 미륵불도 포대화상으로 쌍림부대사로 몸 받아서 출세한 것으로 알고 믿고 있는데 다시 오신 선지식들이 ,그리고 전강스님이 다시 오셨는데도 고의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지 모른 다는 것은 인연중생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석가모니, 미륵부처님과 비교하면 무책임한 주장이다. 송담스님은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송담스님 157번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 15분중 4분)에서 '갈 때는 뿌리로 돌아가지만 올 때는 말(口)이 없느니라‘는 육조스님의 말씀은 불보살의 화현께서 ‘언제 어떻게 오실는지 그것은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다’는 말씀이라고 하셨는데 대자유인으로서 다시 올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므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정해진 모습이 없고 인연중생에게만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는 의미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오기는 왔는데 안 드러낸다는 의미라고 한다면 이해가 안된다. 육조가 당나라에 사람 몸받아 태어나 나뭇군하다가 출가 정진하여 인가 받아서 불조의 혜명을 잇고 남악회양등 여러 제자를 인가해주고 육조단경 속에 행적을 남기는 등 자신을 드러내 중생제도했는데, 열반한 후에도 대자유인으로서 계속해서 다시 몸 받아 와서 당나라때 처럼 인연중생에게는 자신을 드러내고 제도해야하지 않는가? 중생제도하려고 스스로 선택하여 왔는데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무엇하러 다시 온다는 말인가? 부처가 깨달은 후에 전법도 안하고 고요히 열반했는가? 미륵의 후신이라는 포대화상,쌍림부대사가 아무도 모르게 환생했다가 아무도 모르게 다시 열반했는가?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마다의 중생제도 방편으로 몸받아 사바세계에 와서 인연중생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불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가 그 행적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지식들은 화신불 석가모니처럼, 포대화상, 쌍림부대사처럼 다시 받은 몸으로 자신을 드러내어 다시 받은 몸의 손으로 방을 내리고 다시 받은 몸의 입으로 할을 하고 법문을 하여 인연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몸뚱이가 없는 중음신이 왔을리가 없는데 입태,주태,출태에 매하지 않고 다시 몸받아 온 본인은 자신이 육조인지,조주인지, 달마인지,경허인지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다시 온 목적이 중생제도인데 경허가 다시 온 자신을 굳이 숨기고, 육조와 조주가 환생한 자신을 숨길 필요가 무엇인가? 부처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연중생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어 제도하고 그 행적은 전해져왔어야 하는 것이다. 오조홍인이 오조법연으로 환생할때는 매했을지라도, 4조 도신앞에서 재송이 환생하여 다시 몸 받아 왔다고 확연하게 밝힌 후에 법맥 잇고 중생제도했으며, 법신불이 화신불 석가모니불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중생제도한 것처럼 다시 온 선지식들이 인연중생에게는 자신을 드러내고 제도하는 것이 타당한 도리가 아닌가? 알아볼 만한 근기가 없으면 눈앞의 선지식도 못알아보겠지만 선지식을 알아볼만한 근기가 있는 인연 중생에게 자신을 드러낸 선지식의 행적이 왜 이리 희귀한가? 환생하여 중생제도한 사례가 지나치게 희귀한 것은 선지식이 다시 와서 중생제도한다는 주장 자체를 믿지 못하게 한다.
간화선으로 깨달은 분이 너무 희소한 것을 보니 참선보다는 비파사나가 더 나은 수행이라는둥 ,티벳불교의 가르침을 따라볼까라는 등 혼돈상태인데 바로 이때 선지식들이 무엇하고 있는가? 비파사나와 티벳불교가 잘못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티벳식의 린포체 환생은 수긍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주태와 출태시에 매했는지 환생한 후에 본인 스스로가 다시 태어난 린포체인지를 모르고 있으니까 고생해서 찾아내야 되고 전생기억도 못하며 때로는 추첨으로 선발하고 특히 린포체만이 린포체로 계속 환생하고 일반중생이 린포체로 되는 사다리가 없는 방식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어느 스님이 일부 린포체들의 오만함을 비판하시면서 린포체분들이 티벳에만 태어나실 것이 아니라 아예 중국에 태어나 중국의 유력 정치지도자가 되어서 자신의 조국인 티벳 독립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참선공부의 세 요건(도량,도반,선지식)중 도량과 도반이 잘 갖춰진 이런 시대에 선지식들이 왜 안오시는가? 원장스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제대로 하도록 지도해주는 분이 바로 선지식이 아닌가? 지금의 한국은 조선시대처럼 불교 탄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찰과 정진하고 싶은 분도 늘고 중국도 참선할만한 여건이 무르익었으며 서양에서도 불교 수행을 하는 분들이 늘고 있는 이런 좋은 여건에서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하여 대자유인으로서 입태주태출태에 매하지않고 다시 환생하여 중생제도한다고 했던 선지식들인,달마가, 조주가 원오극근이 ,육조가, 경허가, 만공이 몸 받아 와서 지도해야 하지 않는가? 못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나? 송담스님께서는 포대화상이 56억7천만년뒤에 오실 미륵불이지만 미리 오신 이유는 중생제도를 한명이라도 더하기 위해서 56억7천만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오셨다(송담스님 98번 50분중 13분 무렵)고 했을 정도로 선지식들은 아직 못 깨달은 중생을 제도해서 깨닫게 하려고 애를 쓰신다는 것이고, 도솔천 내원궁 발원을 하는 이유도 다시 와서 중생제도하기 위해서 인데(전강스님 536번 법문, 89분중 66분무렵)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어서 내가 깨달아서 그렇게 해야지하는 하는 마음이지 않은가?
대자유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하여 사바세계에 지속적으로 다시 온 선지식이 이렇게 희귀하다면 중생제도는 결국 그 선지식이 생존한 기간에 설법하고 선문답하면서 점검,인가해준 것과 열반후에 남긴 그 선지식의 법문집, 행적만이 중생제도한 내용이 될 뿐 열반후에 몸바꿔 여러 번 다시 와서 설법, 점검지도한 내용은 없게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금생에만 선지식 노릇하고 다시 못오는 선지식이 되기위해 우리가 참선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금생에도 내생에도 끝없는 윤회속에서 대자유인이 되어 윤회속으로 뛰어들어와 다함 없는 중생제도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참선하는 것이 아닌가? 선지식이라는 분들이 정진,견성,남과 다르게 자유롭게 몸을 벗는 금생에서의 도인의 모습만 보이고 금생이후에도 육도윤회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환생의 모습을 못 보인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만 있는 가르침이 참선이란 말인가? 윤회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어 다른 세계에도 태어나겠지만 사바세계에도 몸받아 지속적으로 다시 와서 중생제도 한 사례를 보여다오.
선지식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으니 내 마누라, 내 남편, 시어머니, 아들,딸이 불보살의 화현(송담스님 No 157. 15분-불보살의 화현이 남편, 시어머니, 아들, 딸, 며느리로서 내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11분)일수 있다는 말씀은 견성한 선지식이 바로 내 남편,아내로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내가 깨달으면 내 주변의 불보살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송담스님 No 157. 15분-발심(發心)한 눈과 마음으로는 도처(到處)에서 항시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는 것 11분)는 데에 촛점이 맞춰진 말씀이 아닌가?
전강스님은 열반후의 내 모습을 굳이 찾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열반후 금방 몸(色身) 받아서 용화선원에 다시 오신다는 구체적인 말씀(송담스님 51번 65분중 43분 무렵)을 하셨다. 그런데 금방 몸바꿔서 온다는 분이 40년이 되도록 온 징표가 없지 않은가? 역대 선지식이란 분들도 다시 온 징표가 대부분 없고 한번 열반한 후에는 꿩궈먹은 소식아닌가? 그나마 열반시에는 열반일자를 미리 얘기한다든지, 제자들이 명절을 쇠게 하려고 열반을 연기한다든지, 남이 안한 열반상을 보이기 위해 물구나무서서 열반한다든지,달마가 짚신남기고 간다든지, 보화스님의 보화천화(遷化)얘기등에서는 생사를 해탈한 대자유인인듯한 모습을 보이는 가 싶지만 역시 이것도 부질없는 일, 그러면 뭐하나, 그렇게 그럴듯하게 열반한 분들이 다시 오신 사례는 왜 이렇게 희귀한가? 입태에 자유로운 듯한 모습만 보여줄 뿐 주태,출태에 매하지않고 다시 온 경우는 누가 있는가? 법문곡(경허집 331쪽, 동국대학교 출판부, 이상하옮김)에서 ‘...생사에 불관이요 빈부에 불관이요 시비에 불관이요 홀연히 한 무사인이 되었으니 이것을 부쳐라 하나니라 이 몸을 벗고 가더라도 가고 오기를 자재하야 죽고 살기를 제 마음대로 임의로 하야 죽는 사람 같지 않고 무심무사 심상하니...’라고 했던 경허스님이 다시 왔는가? 만공스님이 다시 왔는가? 조주스님이 다시 왔는가? 열반하기 전까지의 선지식이란 분들의 모습은 남다른 열심정진-견성-견성했음을 인가받음-중생제도-열반일 예고, 열반송 읊기, 다시 올 것이다등 범접할 수 없는 멋진 말씀을 남기고는 열반... 그러나 이것이 끝이고 다시 환생해서 다시 왔음을 공표하고 중생제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선지식이 왜 이리 희귀한가?
참선에서 말하는 선지식의 길중에서 금생의 과정(정진 견성 금생의 중생제도)만 있지 그 다음의 길( 환생하여 다시 중생제도)은 쏙 빠져있지 않은가? 부설거사가 다시 왔었는가? 방거사가 다시 왔는가? 부설거사와 방거사 가족이 열심히 정진해서 멋지게 이몸을 자유롭게 버리는, 잘 죽는 모습만 보였지 지속적으로 다시 와서 중생제도한 얘기는 왜 없느냐?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잘 죽기 위한 것이 참선의 목적이 아니다. 방거사가족과 부설거사가족과 그리고 선지식들의 경우를 보면 살아있는 이 몸을 자유롭게 버리는 것은 멋지게 한 듯한데 다시 오지않았다고 한다면 아니 못왔다고 한다면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나는 환생을 못한 것이고 이는 곧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못한 것이다.
왜 환생에만 집착하냐고? 지속적인 환생을 할 수 있어야 참선의 목적인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함이 완성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사해탈함과 대자유인이 됨과 입주출태에 매하지 않음의 근거로서 지속적 환생은 필수 요소라고 본다. 확철대오=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대자유인=입태,주태,출태시에 매하지 않음=출태시에 태어날 환경을 스스로 정해서 지속적인 환생=중생제도. 이 공식에서 보면 다시 중생계에 자유롭게 오지 못하면 견성을 못한것이고 생사해탈을 못한 것이고 입주출태에 매한 것이고 대자유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환생은 확철대오와 동격이다.
자꾸 강조하거니와 전강스님이 어떤 모습으로 올지는 모르지만 바로 몸 바꿔서 용화사에 오신다고 하지 않았는가? 몸바꿔서 사람몸으로 온다는 것인데 왜 40년이 넘도록 안오시는가? 안오는 가, 못오는 가? 송담스님은 51번 법문(65분중 43분)에서 말씀하시기를 ,전강스님은 외국에 태어나셨을 수도 있고, 아직 안 오셨을 수도 있고, 더 있다가 오실 수도 있고, 또는 설화자료를 보면 전강조실스님이 새로운 몸으로 올 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의지하여 오실 수도 있다고 했는데(송담스님 51번 65분 중 46분) 설령 그렇다해도 그러한 경우들은 금방 몸을 받아 바꿔가지고 용화선원에 새 몸으로 온다는 전강스님의 약속(송담스님 51번 65분중 43분)과 다르며 다른 사람 몸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왔다쳐도 약속대로 용화선원에 왜 안 오시는가? 원래 약속대로 금방 금방 몸 바꿔서 다른 곳이 아닌 용화선원에 새 몸으로 와야하지 않는가? 그리고 수많은 선지식이 열반후 바로 새 몸 받아 온 경우, 서양에 태어난 경우, 몇 해후에 다시 온 경우 ,다른 사람 몸에 의지하여 다시 온 경우등 많은 다양한 사례들이 전해져왔어야 하지않나? 그런데 그렇게 여러 방편으로 다시 온 사례가 왜 이렇게 희귀한가?
전강조실스님은 ‘...사람이란 것은 아무리 깨달랐다 할 지라도 모태에 들어갈 때, 그리고 나올 때에 깜박 미하는 것이니 다시 몸을 받아 날 때는 반드시 선지식의 한마디가 필요한 것이니라...’라고 송담스님에게 말씀(송담스님 51번 65분중 43분) 하셨다. 이것은 또 무슨 말씀인가? 이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결국은 선지식도 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해안되고 알 수 없는 부분은 과거 선지식들의 일대기를 통해 보면 그들도 자신보다 앞선 선지식들이 참선하고 견성하여 환생해서 중생제도를 해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확신을 갖고 참선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생사해탈을 하고 싶어서 참선을 시작한 경허입장에서 서산대사,조주,태고보우가 환생했는지를 여러 모로 확인하지 않고 참선해서 견성했다고 볼 수 있고 태고보우입장에서도 자신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선지식인 조주, 대혜종고, 원오극근이 다시 환생했는지 안했는지를 따지지 않은채 참선해서 깨달으면 생사해탈한다고 믿고 정진해서 견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왜 경허, 태고,조주,원오극근,몽산등은 과거 선지식들이 확실히 견성해서 대자유인으로 환생해서 사바세계에 몸받아 왔었는지를 굳이 따지지 않은 채로, 참선해서 확철대오하면 생사해탈한다고 믿고 공부한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참선공부해서 확철대오하여 생사해탈하겠다는 신심으로 출가하여 선방에서 정진하는 요즘의 수좌스님들도 전강, 만공,경허,혜월,수월,서산,태고보우,조주스님등이 먼저 견성해서 해탈한 선지식이라고만 믿지 그 생사해탈의 근거로서 그 분들이 다시 지속적으로 오셨었는지는 따지지 않고 참선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출가하여 선방에 방부들인 수좌스님이 질문하기를 '...그러면 생사해탈하여 입태,주태,출태에 매하지 않고 중생제도위해 다시 온 해탈 도인은 어느 ,어느 분이 계신시요? '라고 자연스럽게 질문한다면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 당나라때 귀종선사가 1번 환생하셨다가 6년 만에 다시 열반하신 기록이 있고 몇몇 선지식이 환생하신 기록이 있으니 화두타파하면 생사해탈하고 대자유인이 된다고 확실하게 믿고 열심히 정진하라고 말할 것인가? '다시 올 때는 정해진 모습이 없느니라'고 6조스님이 말씀(송담스님 157번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 15분중 4분)하셨으니 따지지 말고 정진이나 열심히 하라거나 네가 깨달으면 알게 된다고 말할 것인가?
원장스님께 직접 질문을 드리고 답을 얻기 위하여 2015년 추석전날 원장스님이 머무시는 경우가 있다는 서울의 사찰에 갔더니 오시지 않았다고 하여 질문을 못드렸고, 70이 훨씬 넘으신 북한산의 구참수좌스님께 여쭸더니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고, 서울근교의 비구선원 5곳과 비구니선원 3곳의 수좌스님께 질문했고 전화로도 수좌스님이나 강사스님께 문의했더니 그냥 화두의심이나 잘하라거나 잘 모르겠다거나 수많은 선지식이 이미 오셨다 갔는데 알아보지 못한다는등의 답변들을 하셨다. 부처도 출가 초기에 믿을 만한 스승을 찾아다니지 않았는가? 이 부분은 답변을 해야하는 영역이 아닌가? 이렇게 따지는 자체가 참선할 근기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따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화두를 의심하지않고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은 안되지만 전강스님,조주스님,경허스님, 만공스님이 다시 온 징표가 왜 없는지를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참선수행을 위한 믿음의 근거로서 환생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며 대자유인이 되어 환생해서 다시 중생제도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때 더 열심히 정진하는 근거가 된다고 본다.
선지식이란 분들이 현생의 남다른 모습만 보여주고 현생이후에 지속해서 다시 온 모습을 못 보여준다면 참선을 모르고 훌륭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과 선지식이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참선법 모르고 훌륭하게 사신 분의 훌륭함( 인격자,금욕하고 자선사업,학문적 업적,정치인으로서 업적,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성실한 삶,고난극복하고 열심히 살았다든지 등등)과 선지식의 훌륭함(인격자,금욕, 언행일치,무서운 정진,견성등등)은 겹치는 부분( 인격자,금욕, 극기,자비,노력, 언행일치등등)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선지식이 생사해탈하여 다시 온 모습을 못 보여준다면 저마다의 분야에서 참선법이 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인격자로서 훌륭하게 살고 돌아가신 분들과 도대체 무슨 차별이 있는가? 생사를 해탈했다면 이 세상에 지속적으로 몸 바꿔서 오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 후학들도 일반적인 훌륭한 분들의 삶을 뛰어넘어서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다는 신심으로 참선공부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대자유인의 모습을 보인다면 포교는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참선해서 깨달으면 대자유인이 되어서 환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로만 가능하다고 하지 말고 지속해서 다시 온 선지식의 증표를 보여다오. 이 세상에 계속 다시 오신 선지식이 이렇게 희귀하다면 무엇을 근거로 참선해서 깨달으면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해탈하여 대자유인이 되고 입태 주태 출태에 매하지 않는 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참선해서 견성했다는 선지식이나 참선을 안한 사람이나 다시 오지 못하고 영원한 죽음의 침묵속에 빠져있는 것은 똑같지 않은가? 그 죽음의 침묵,윤회의 고리를 스스로 깨고 계속 해서 다시 와야 하지 않는가? 이치를 제대로 모르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면 그 이치가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설명해다오. 깨달으면 알수도 있겠지만 깨달으려는 노력을 하기 위한 근거를 먼저 아는 것도 필요하다.
다시 묻는다. 생사해탈해서 대자유인이 되었다는 선지식들이 왜 지속적으로 인연중생에게 다시 오지 않는가? 오조 홍인이 매한 채로 5조 법연으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금방 몸 바꿔서 다시 왔으면 40세가 넘어야할 전강스님은 40년이 지나도록 본인이 온다고 한 용화선원에 왜 안오시는지 제발 대답을 해다오'
라고 질문 한다면 뭐라고 답변할 수 있겠습니까?
세번째 질문입니다.
조주 무자 화두 드는 방법이, 조실스님께서는 '있다 없다의 무가 아니고 단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라고만 의심하면 된다고 주로 법문(조실스님 497,500,502번 법문)하셨는데 498번 법문에서는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는고?‘ 라고(44분) '없다'에 초점을 두고 의심하라고 하셔서 두 방법이 대립됩니다.
(전강스님 No 002. 일대기 1호(어린시절 출가, 직지사 용맹정진)(70.11.20) 126분-어째서 없다 했는고 이렇게 찾는게 아니고 무 이렇게 찾아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있네 없네 뭐 그거 다 때려 치와버리고 그냥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음(音)으로,음(音)으로 무! 87분)
(전강스님 No 497. 초심(끝), 무자화두간택(만공, 용성)(74.05.20) 34분-경허 만공 혜월스님이 옳다는 것을 십절목도 보면 그렇다 그말이여 첫 철을 없다고가 옳다고 하다가 애를 먹었다 말이여 29븐)
또한 원장스님께서도 '있다 없다의 무가 아니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라고 의심하라고 주로 말씀(세등 03번, 세등 08번,423번등)하셨지만 14번(76년 2월 관음재일법문,54분중 41분경)에서는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라고 '없다'에 촛점을 두고 의심하라고 법문하셔서 역시 무자 화두 드는 법이 대립됩니다.
그리고 용화선원에서 간행(선학간행회ㆍ송담선사역)한 선가구감 53쪽(개가 불성이 없다),56쪽(어째서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에서도 무자화두의심방법을 '없다'에 촛점을 두고 의심하라고 하였습니다.
두 가지 방법다 똑같이 괜찮은지요?
두 가지 방법 다 괜찮지만 그래도 수승한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있다 없다가 아니고 단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만 올바른 방법인지요?
조실스님과 원장스님께서는 왜 두가지를 말씀하신 것인지요?
네 번째 질문입니다.
조주 무자를 ‘있다 없다의 무가 아니고 단지 어째서 무라 했는고?’라고 화두를 들 때에 ‘무’의 한글 발음의 의미가 먹는 무(우)도 있으므로 한자의 없을 ‘無’자라는 글자임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없다는 의미로서의 무(無)는 아니지만 어째서 ’없을‘ 無자라는 글자라고 답했는고?’라고 해야 하는지요?
(전강스님 No 002. 일대기 1호(어린시절 출가, 직지사 용맹정진)(70.11.20) 126분-어째서 없다 했는고 이렇게 찾는게 아니고 무 이렇게 찾아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있네 없네 뭐 그거 다 때려 치와버리고 그냥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음(音)으로,음(音)으로 무! 87분)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송담스님 생활11. 89년 3월 첫째일요법회(89.03.06) 64분-순일무잡 타성일편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새벽에 눈을 딱 뜨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엊저녁에 탁 들고 있던 화두가 그대로 들고 있게 된단 말이여 몽교일여 56분 경
-송담스님 No 056. 77년 10월 관음재일 법문(77.10.24.음) 42분-잠에서 깨어나도 화두가 고대로 있는 경계가 온다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하고 청량함은 무어라고 비유할 수 없지만 여기에서 계속 화두의심 37분 경
-송담스님 생활11. 89년 3월 첫째일요법회(89.03.06) 64분-순일무잡 타성일편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새벽에 눈을 딱 뜨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엊저녁에 탁 들고 있던 화두가 그대로 들고있게된단 말이여 몽교일여 56분 경
-전강스님 No 250. 고담화상법어2(72.06.03) 64분-시심마 화두해나가는 법 20분 잠은 잤지마는 눈 뚝 떠보면 이뭐꼬 뿐이다 39분 자고 일어났는디 화두가 고대로 가만히 있어 42분 경
-전강스님 No 581. 참선법( . . ) 22분-몽중일여 지옥고 받는 거 다 보고 꿈이 깼는데 화두는 화두가 고대로 있다 6분 경 인가 필수 고대생 인가받으러 왔었다 4분 삼라만상을 내가 만들었다 17분 경
전강스님과 송담스님의 위 5개 법문에서 ‘잠에서 깬 직후에 엊저녁에 들고 있던 화두가 그대로(고대로) 있다’고 법문하셨는데 제 체험에 따르면 잠에서 깬 직후에도 화두의심이 저절로 계속 커지고 있어서 화두의심 강도가 잠자기전과 비교하여 고대로(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전강스님과 송담스님이 말씀하신 “고대로(그대로)”라는 표현을 첫째 해석은 잠자기전과 잠에서 깬 직후의 의심강도가 동일하다(고대로, 그대로, 똑같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고, 둘째 해석은 그대로(고대로)의 의미는 화두의심이 없어지지않고 그대로(고대로)있다는 것이고, 그러나 의심강도는 저절로 강해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어느 해석이 옳을 런지요?
(법상앞에서 하려던 5 가지 질문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5가지를 질문하고 나서 답을 들은 후에
원장스님 방에 가서 추가로 질문하고 싶은 5가지가 있었습니다.
-이뭐꼬? 의심을 할 때에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하거나 ' '이'한 이 놈이 도대체 무엇인고?' 또는 '이뭐꼬?'라고 의심을 하는데 참선의 목적이 내가 나를 알고 나를 깨닫기 위한 것이므로 '내가 무엇인고? '라고 의심을 해도 되는지요?
-조실스님께서는 전법제자를 반드시 세우기 위해서 10년간을 노심초사하시면서 원장스님을 지도하시고 인가를 하셨는데 송구스럽지만 원장스님께서는 조실 스님 열반후 40년이나 지났는데도 왜 아직 전법제자를 못 세우셨는지요? 전법제자를 키우는 것도 시절인연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요?
-조실스님등 일제시대에 계셨던 선지식들 께서는 활발하게 법거량을 하시면서 탁마하시고 그 내용이 알려져서 후학들이 열심히 정진하게 되는 자극이 되는데
왜 원장스님께서는 법거량을 하신 내용이 알려진 것이 이리 적은지요?
예를 들어 숭산스님 49재 법회때 북송담 남진제가 만나셨고 법전스님등이 계셨는데 법거량 한마디가 없었던 것이 중생심으로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활발발한 법거량을 하셨다면 고조사의 법거량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대의 법거량을 보고 더 신심을 내서 정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1700공안외에 화두를 제 멋대로 만들어서 해서는 안된다고 법문하셨는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손가락을 튕기게 했는가'를 화두삼아 의심하게 하는 스님도 계신데, '이뭐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한 이런 방식으로 참선하는 것도 가능한지요? 아니면 오직 '이뭐꼬?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만 올바른 방법인지요?
- ‘무자 화두를 들고 있는 이 물건이 무엇인고’라고 공부해도 되는지요?
(법당을 나와서 추가로 5가지 질문하고 싶었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부처님도 열반상을 보이셨고 원장스님도 연세가 있으신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위 질문내용을 시자스님과 문중 스님들께서 판단하셔서 원장스님께 건의말씀을 드려서 원장큰스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답을 해주시면 정진에 큰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엎드려 간곡히 건의합니다.
3. 인가의 중요성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 인가의 중요성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출처: 경허,만공,전강,태고,몽산법어(주안 용화사 판),경봉스님서간집,진제스님법어중
-경허스님 참선곡중에서
...깊이 궁구하여가되 일념만년 되게하야 폐침망찬 할 지경에 대오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 절묘하다 아미타불 이 아니며
서가여래 이아닌가 젊도 않고 늙도 않고 크도 않고 적도 않고 본래 생긴 자기영광
개천개지 이러하고 열반진락 가이없다 지옥 천당 본공하고 생사윤회 본래없다
선지식을 찾아가서 요연이 인가맡어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하고
수연방광 지내가되 빈배같이 떠놀면서 유연중생 제도하면 보불은덕 이아닌가...
-만공법어 252쪽 19번.명안종사의 인가도 없이 자칭 선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는 죄가 가장 크니라.-
-태고법어 161쪽 참선명중에서
이 소식을 혼자 기뻐하지말고 無智人에 말하지도 말고서 반드시 종사를 찾아보아 기회드려 간절히 請益(청익)하소 그래야 조사의 전통잇게되어 가풍이 편벽되지 않을 걸세
-태고법어 272쪽 행장중에서
중국의 중인 무극은 재주있고 말솜씨가 능하다.우리나라에 와서 여러 곳으로 다닐 제 감당할 이가 없었다.어느 날 스님을 찾아와서 이야기 하여 보고는 크게 감복하여 말하기를 '나의 소견이이것뿐입니다.어찌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중국의 남방에는 임제선사의 법통이 끊어지지않고 전하여 옵니다.한번 가서 인가를 받음이 좋을 듯합니다.아무와 아무는 唱導師이고 아무와 아무는 본분의 작가로서 아무 산에 있어서 그럴만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읍니다.'하였다.그가 작가라고 말한 이는 임제 선사의 법통으로 설암선사의 적손인 석옥청공같은 몇사람을 지적한 것이다. 스님께서 그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서 至正원년 신사(충혜왕 2년)에 중국의 남방을 찾아가려 하였으나 ......
-태고법어 273쪽
병술년(충목왕 2년)봄에 원나라 연도에 건너가 대관사에 유하니 도덕의 장한 소문이 원나라 황제에 까지 들렸다......
-태고법어 279쪽
석옥화상이 미소하면서 말씀하기를 '부처님의 법이 동방으로 갔구나'
-몽산법어(용화선원간행) 64쪽(몽산화상시총상인)
문득 댓돌맞듯 맷돌 맞듯하야 졸지절하며 폭지단하야 자기를 훤하게 밝혀 불조가 사람에게 미움받은 곳을 옭아 잡거든 또 마땅히 대종장을 친견하야 단련을 구하야 대법기를 이룰지언정 조금 얻은 것으로 만족함을 삼지 말지니라. 깨달은 뒤에 만약 대종장을 만나지 못하면 뒷일을 요달치 못함을 면치 못하리니 그害가 하나만이 아니니라. 만약 불조기연상에 막힌 곳이 있으면 이는 깨달음이 옅어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리라.
-몽산법어(고담화상법어)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機味(기미)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蕩蕩(탕탕)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전강스님법문 테이프에서
경허스님이 인가가 없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경허스님이야 위음왕불이 다시 오신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여... (전강스님 법문 501번 58분중 42분 경)
-전강스님 법문(용화선원홈페이지에 실린법문중에서 가져옴:법문 전체 내용은 용화선원 홈페이지 참조)
(전략)대중들이여! 위음왕불(威音王佛) 이후에는 스승없이 스스로 깨친 자는 모두 천연외도(天然外道)라 했으니, 법을 받은 명안종사(明眼宗師)에게 인가도 받지 않고 자기가 제일이라 하며 묘한 언구문자선(言句文字禪)을 활구(活句)라 하고 학자들을 속이고 있다면 이러한 외도들은 부처님도 구하지 못하리라. 금일 최상승 활구참선법을 닦는 대중들은 명심할지어다(후략)
-송담스님 (No.058)—1977년 동지차례(77년 12월 22일)(정사년 11.12 음) (35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에 "깨닫기 전에도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의 지도하에 화두를 타서 정진을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인가를 받아서 깨달은 뒤에 수행하는 지도를 또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스승 없이 독학할 수도 있고 자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여러 가지 경전을 사다 놓고, 조사어록을 사다 놓고, 참선에 관한 일본 서적 · 한국 서적 · 중국 서적을 사다 놓고 혼자 이 책 저 책을 읽어 가면서 혼자 자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백 명 만 명 속에도 제대로 공부가 되질 못하는 것이고, 만 명 가운데 한 사람도 깨달은 사람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는 몰라도 위음왕불 이후에는 스승 없이 깨달은 사람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음왕불은 부처님 가운데에 최초의 부처님이십니다.
땅속에서 땅을 파 가지고 금을 찾는다든지, 바닷속을 뒤져 가지고 보석을 찾는다든지 하는 것은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혹 눈에 띄기도 하겠지마는,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은 것은 스승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언제나 나와 같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벌써 찾으면 그르치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것은 화두를 항시 의심을 해서 깨닫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지마는, 정말 바로 말하자면 찾음으로 해서 자기를 잃게 되는 소치인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찾되 선지식의 지도에 의해서 찾아야만, 찾음으로써 잃어버리는 그것을 보게 되는 까닭이 되는 것입니다.
-삼소굴 소식(경봉스님과 선지식간의 편지 모음:통도사 극락선원간행,1997)해제(삼소굴 시자 명정스님이 쓰심)중에서
이 서간문 가운데 정묘년인 1927년 동짓달 스무하룻날 경봉노사께서 견성하시고 오도송과 당신의 견처를 제방 선지식들께 보냈는 데 한암,제산,용성스님께서 보내신 글들은 깨달은 뒤의 보림소식을 친절히 답하여 보내주신 글들이며 만공스님께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 뒤 선학원에서 만나 "어째서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까?"하니까 "그 소중한 일을 어떻게 편지로 하겠소."하기에 경봉스님께서 "그러면 말씀해주십시오."하니까 "그 깨달은 경지를 잘 照察하시오."하기에 팔목의 아픈 부분을 꽉 눌러주었다고하신 말씀을 시자때 들었다.
여러 선지식들께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거의 悟後 보림소식은 당신들의 경지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답신이 왔다고 하신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난다.
-진제스님법어(해운정사 홈페이지 법문중 '금모선원대중과의 문답'에서 퍼옴)
문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천오백년 전에 새벽별을 보고 깨치신 그 경지와 스님께서 깨치신 경지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만일 이 물음에 대한 답에 털끝만큼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스님께서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져서 헤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답 : 허허허허.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성품을 보았다는 것 아니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성품을 보셔서 각(覺)을 이루신 것이고, 역대 도인들께서도 다 자기 심성을 보셔서 깨달으신거고, 견성(見性)자리에 차별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천마(天魔), 외도(外道)라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면밀히 정법(正法)을 이어 온 선사로부터 인증(印證)을 받으라고 하셨던 것이고,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내가 견성했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견성법 문중에서는 조작이 없고 거짓이 없게 하기 위해서 먼저 깨달은 선사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하는 가풍(家風)이 서 있는 것이다.
4. 참선의 열 세 고개 : 禪-마음의 길 188쪽(청담스님著 남강출판사 간,1973년 6월 10일 초판발행)-이 내용은 청담스님이 인용하신 내용인데 최초 말씀하신 분이 어느 분이며 이 내용이 실린 최초 원본이 궁금합니다.
,
이제부터 정진하여 열 셋의 일여한 단계를 지나서서 성불하게 됨을 밝힌다.
첫째 송화두(誦話頭)이다. 이것은 화두를 입으로 외우지 아니하면 의심은커녕 화두마저 들리지 아니하므로 부득이하여 입으로 소리를 내어 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야 간신히 화두가 들리며 의심이 조금 일어나는 정도이다. 다른 사람의 공부에 방해가 되므로 선방 밖으로 나가서 ‘송화두’를 짓는다.
둘째 염화두(念話頭)이다. 남보기에 창피하기도 하지만 목숨을 떼어 놓고 화두를 애써 외우다가 보니 지금은 소리쳐 외우지 아니하여도 화두가 마음에 잡히고 희미하나마 의심은 일어나다가 말다가 한다.
셋째 주작화두(做作話頭)이다. 위의 ‘염화두’로써 죽자하고 애를 쓰니 어떤 날은 제법 화두가 힘차게 들리고 의심이 번쩍 일어서다가 또 며칠 동안은 잔뜩 애만 태우고 공부는 잘 아니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생사를 해탈하고야 말겠다고 한번 작정한 이 마음은 물러가지 아니하므로 잘 되는 날이 차차로 많아져 간다. 참선이 잘 되다가 말다가 하여서 애써 주작하는 것이므로 ‘주작화두’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 진의돈발(眞疑頓發)이다. 이렇게 간절히 애써 가므로 공부가 점점 진보되어서 홀연히 8만 4천 망상이 뚝 끊어지고 화두에 대한 의심이 바짝 들고 일어나서 앞을 가로막으며 알고 싶은 의심이 정말로 간절하여 참을 수가 없어지며 앉고 선 줄도 모르며 또한 시간이 가는 것을 모르고 딱 버티고 힘차게 앉아 있게 된다.
다섯째 좌선일여(坐禪一如)이다. 그리하여 단정히 앉아서 참선을 하는 때에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앉은 줄을 모르며 화두의 의심 한 생각만이 순일하여 쭉 일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어나서 일을 하는 때는 화두가 희미하거나 없어지거나 하고 만다.
여섯째 동정일여(動靜一如)이다. 이 ‘동정일여’가 된 공부에 또한 세가지 단계의 구별이 있으니 좌선일여를 지나 서서 일을 하여도 화두의심이 그대로 버티고 있으나 말을 하는때에는 화두가 끊어지며 또한 말할 때에도 잘 되다가 소설이나 잡지 같은 것을 열심히 읽으면 끊어진다. 그러나 소설을 숙독하여도 화두는 제대로 힘차게 나가야 하며 또한 일부러 저질러서 남에게 죽도록 매를 맞는 때에도 화두가 그냥 힘차게 나가야 공부가 비로소 ‘동정일여’에 도달한 것이다.
일곱째 몽교일여(夢覺一如)이다. 비록 ‘동정일여’는 된다 하더라도 또한 꿈을 꿀 때에도 공부는 그만두고 중도 아닌 속인의 행세를 하는 일이 있다. 번번이 꿈에도 딴 짓을 하고 있다. 그럴수록 공부를 더욱 돈독히 힘써 가면 꿈 가운데서도 ‘동정일여’ 때와 같이 3단계로 진보하여서 꿈에서도 오직 힘찬 화두의 의심이 앞서 있게 된다. 그리하여 비로소 완전한 ‘몽교일여’가 되는 것이다.
여덟째 오매일여(寤寐一如)이다. 이와같이 비록 ‘몽교일여’는 되었다 할지라도 잠이 폭 든 때에는 화두가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잠을 깨어 일어나면 화두를 다시 챙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들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잠만 자는 것이 아니고 희미한 잠에 희미한 화두가 들려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드러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이라도 잠은 점점 희박해지고 화두의 의심은 점점 드러나서 확실해지는 때에는 잠은 아주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로 이 육신이라는 것이 진공의 무가 변화한 환상이기 때문에 이 몸은 당초부터 자고 깨고 할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다만 이 마음이 스스로 상대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인 끝에는 반드시 권태증을 일으키고 더하여 피로를 생각하고 피로가 잠이 된다. 이것이 다 심리상태인 것이요. 아무 것도 아닌 이 환신 자체와는 상관이 없는 일인 것이다. 이 화두의 의심이 돈독해져서 잠이 없어지고 ‘오매일여’가 된 지경에 이르면 불원간에 인생의 본래면목인 이 마음자리를 크게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아홉째 생사일여(生死一如)이다. 이 마음자리를 분명히 깨닫고 또한 깨친 후의 공부를 완전히 마친 도인들은 다 생로병사에 자유자재하였다. 병도 앓을려면 앓고 말라면 말며 죽는 것도 병으로 죽지 않고 이 육체 버리기를 옷 벗듯이 자유로 한다.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버리고 가며 이야기 하며 걸어가다가 벗어 놓고 가버린다.
열째 입태일여(入胎一如)이다. 비록 이 몸 버리기를 자유로 하여 생사일여가 되었다 할지라도 내생에 부모될 인연을 만났을 때에 문득 망상을 일으켜 ‘생사일여’가 없어지고 태중의 피 덩이가 되어서 생리(生理)에 묻히고 만다.
열한째 주태일여(住胎一如)이다. 설사 입태할 때에 ‘일여’하였다 할지라도 ‘주태’ 열달동안에 미혹하는 수도 있고 태중 열 달 동안에 ‘일여’했다 하더라도 출태 할때에 깜박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열두째 출태일여(出胎一如)이다. 이 출태 할 시에 ‘일여’하면 영겁에 ‘일여’한다.
열세째 영겁일여(永劫一如)이다. 이렇게 영겁에 ‘일여’하여 ‘아누다라 삼먁 삼보리’를 얻어서 성불한다.
그러나 앞에서 만한 열세 가지 단계를 밟아서 성불하는 것은 가장 참선하기 어려운 사람의 근기가 하는 공부법이거니와 만약 정말로 억세고 성미 급한 놈이 있다면 7일만이면 화두를 완전히 타파하고 당장에 ‘영겁일여’가 되는 것이다.
이상의 열세단계의 공부는 혹시 이만하면 내 공부가 불조를 지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자부심이 생겼을 때에 참고로 보면 좋을 것이다.
-여러 도반님들의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도반 중에서 두번째 질문(다시 지속적으로 오신 선지식이 왜 이렇게 희귀한가?)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해주실 수 있으면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메일(leemany5@naver.com) 로 답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전강스님, 송담스님의 참선법문 사이트입니다.
*Control바 누르고 클릭하고 들어가거나 바로 들어가지는 경우도 있음
용화선원: 송담스님 - YouTube
용화선원 법문듣기(주제별) :: 용화선원 법문듣기 (tistory.com)
참선법문(통법문-매 법문 전체 녹취) (tistory.com)
참선사전 :: 참선사전 (tistory.com)
송담전강게송집 :: 송담전강게송집 (tistory.com)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택배비포함 2만원,입금후 입금확인전화필수)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