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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앤드루 뉴버그 저 ㅣ 이충호 역 ㅣ 한울림 ㅣ
신과 종교의 기원을 싱경생물학에 바탕해 연구하는 분야를 신경신학이라고 한다.
신경신학(neurotheology)의 창시자들인 미국의 앤드루 뉴버그와 유진 다킬리는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복잡하게 뒤엉킨 뇌의 신경경로와 생리학적 구조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다"(82쪽)고 주장하고 종교적 체험의 신경학적 기초를 밝히는 작업에 나선다.
티베트 명상 수행자와 프란체스코회 수녀들의 뇌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본 결과, 뇌의 특정 부위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13-20쪽)하게 된 것이 이들 연구의 출발점이다. 다시 말해서 명상 수행자나 수녀들의 신비체험, 즉 자신보다 더 큰 무엇과 진정한 정신적 일체감을 느끼는 것(151쪽)은 감정적인 착각이나 단순히 희망적인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나 관측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실재하는 일련의 신경학적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21쪽).
이러한 혁명적인 결론을 바탕으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신화를 만들어내게끔 만들어져 있는가(4장),
종교의식이 지닌 힘 뒤에 숨어 있는 신경학적 비밀은 무엇인가(5장),
위대한 종교적 신비주의자의 예지력은 정신적 망상에 불과한가 아니면 건강한 마음의 결과인가(6장),
종교적 무아지경과 성행위의 오르가슴 사이에는 어떤 진화론적 관계가 있는가(7장)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특유의 분석을 시도한다. 이들의 분석은 자못 흥미롭고 놀랍다.
예컨대 "신비주의자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난 신경생물학적 사건을 보고하고 있는 것이며"(207쪽),
"종교를 탄생시키는 초월적 상태가 신경학적으로 실재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203쪽),
"따라서, 모든 종교는 서로 친척이다. 어떤 종교도 독점적으로 실재적인 실체를 소유할 수 없다"(238쪽)는 것이다.
즉 "초월의 신경학은 최소한 그 안에서 모든 종교들이 화해할 수 있는 생물학적 틀을 제공할 수 있다"(243쪽).
결론적으로 이 책은
1) 신화는 생물학적 충동에 의해 만들어지며, 2) 종교의식은 직관적으로 일체 상태를 촉발시키도록 되어 있으며,
3) 결국 신비주의자들은 반드시 미친 것이 아니며,
4) 모든 종교는 똑같은 영적 나무의 다른 가지들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우리의 뇌가 지금처럼 만들어져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더 깊은 실체를 느낄 수 있는 한, 신은 우리가 그 웅장하고 신비스러운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247쪽).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의 주장은 과학계와 종교계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만큼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신경생물학으로 신과 종교의 실체를 밝혀내려고 시도한 신경신학자들의 독창적인 노력이 학문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세부적 내용 요약)
1. 초월감에 관여하는 뇌 영역
정위연합영역은 자신을 나머지 세계와 구별하는 것을 도와주고, 공간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주는 부분인데, 이 영역은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감각 정보를 계속적으로 공급받아야만 한다. 그러한 정보의 흐름이 차단될 경우, 정위영역은 이용할 수 있는 나머지 정보를 가지고 일을 수행한다. 신경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정위영역은 수입로((輸入路)가 차단된 것이다. 즉, 신경 입력 정보를 거의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입 차단은 자아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덜 명확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종종 경험하는 일체감의 원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자아와 공간감를 정의하는 곳 : 정위연합영역
두정엽 뒷부분에 위치한 정위연합영역은 촉감으로부터 감각 정보를 받으며, 그 밖에도 다른 감각 양식, 그 중에서도 특히 시각과 청각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이 때문에 정위영역은 '신체'의 3차원 감각을 만들어내고, 공간상에서 신체의 위치를 정하는 능력이 있다.”
정위영역은 두 군데가 있어서 뇌의 두 반구에 하나씩 위치한다. 서로 연관은 있지만 각자 별개의 일을 수행한다. 왼쪽 정위영역은 물리적으로 정의된 제한적인 신체에 대한 마음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오른쪽 정위영역은 신체를 그 속에 위치시킬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공간 좌표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좀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왼쪽 정위영역은 자신의 공간적 감각을 만들어내는 반면, 오른쪽 정위영역은 자신이 그 속에 존재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뇌가 종종 시간과 공간, 자신과 자아의 지각 변화를 포함하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체험을 느끼는 데 정위영역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정위영역은 이러한 기본적인 지각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영적 체험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감정 뇌 변연계
사람의 변연계는 감정 자극들을 높은 사고와 지각들과 엮어짜 혐오, 좌절, 질투, 놀라움, 기쁨과 같은 아주 복잡한 감정 상태들을 광범위하게 만들어낸다. 비록 기본적인 감정들은 다른 동물들에서도 어느 정도 발견되지만, 이러한 감정 덕분에 사람은 아주 다양하게 발음되는 감정 섞인 어휘들을 구사할 수 있다.
연구 결과들은 변연계가 종교적 체험 및 영적 체험에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피실험자들의 변연계에 전기자극을 가한 결과, 꿈 같은 환각이나 유체 이탈, 기시감(旣視感 : 실제로는 경험한 일이 없는데도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것-옮긴이), 환영을 일으켰는데, 이것들은 모두 영적 상태에서 느끼는 것으로 보고된 것들이다." 한편, 신경 정보가 변연계에 들어가는 것을 차단할 때에도 환각을 경험할 수 있다." 변연계는 종교적 체험 및 영적 체험에 이렇게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송화기(transmitter to God)'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 최고 통제자 - 시상하부(교감신경(흥분계)과 부교감신경(억제계) 작용)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시상하부는 변연계에서 가장 오래 된 구조로, 뇌간 위쪽 끝부분에 위치한다. 비록 시상하부는 변연계의 일부이긴 하지만, 자율 신경계를 제어하는 최고 통제자로 간주된다.” 시상하부는 기본적으로 내부와 외부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억제제에 연결되어 있어 마음을 진정시키는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외부는 흥분계가 연장되어 뇌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시상하부는 보통의 즐거움과 행복감과 같은 긍정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분노나 공포와 같은 기본적인 감정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파수꾼-소뇌편도
측두엽의 중간 부분에 위치한 소뇌편도는 뇌에서 가장 오래 된 구조 중 하나로서, 높은 차원의 감정적 기능을 사실상 모두 제어하고 조정한다." 소뇌편도는 사랑, 호감, 우정, 불신과 같은 미묘한 감정적 뉘앙스를 구별하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복잡하다. 소뇌편도는 이 구조를 뇌의 다른 영역들과 연결시켜주는 풍부한 신경망 덕분에 중요한 감시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 외교관-해마회
측두엽의 소뇌편도 조금 뒤에 위치한 해마회는 시상하부의 활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두 구조는 종종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흥미로운 감각 입력 정보에 마음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낸 감정을 상이나 기억, 학습과 연결시킨다.
2. 뇌의 작용기능들
마음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 인지적 오퍼레이터
인지적 오퍼레이터란, 사람 마음에서 가장 보편적인 분석적 기능들을 말한다." 인지적 오퍼레이터 자체는 뇌의 구조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지적 오퍼레이터는 다양한 뇌 구조들의 집단 기능을 일컫는 말이다.
1) 나무는 보지 않고 숲만 본다 - 전체론적 오퍼레이터
전체론적 오퍼레이터는 우리에게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서 보게 해 준다. 이러한 정신적 기능 덕분에 우리는 부분들(예컨대 나무 껍질,잎, 가지로 구성된 전체 모습을 보고서 즉각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론적 오퍼레이터는 우뇌의 두정엽 영역의 활동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본다 - 환원주의적 오퍼레이터
주로 분석적인 경향이 있는 좌뇌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환원주의적 오퍼레이터는 전체론적 기능의 안티테제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환원주의적 오퍼레이터는 마음에게 전체를 분해하여 그 구성 부분들을 보게 해준다.
3) 마음의 분류학자-추상적 오퍼레이터
좌뇌 두정엽의 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추상적 오퍼레이터는 지각된 개개 사실들로부터 일반적인 개념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4) 수학적 마음 - 계량적 오퍼레이터
계량적인 기능은 지각한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양을 추상화할 수 있게 해준다.
5) '어떻게'와 '왜' - 인과론적 오퍼레이터
인과론적 오퍼레이터는 마음으로 하여금 현실을 어떤 원인과 결과의 순서로 해석하도록 해준다. 인과론적 오퍼레이터는 원인을 예상하고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줄 뿐만 아니라,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도 인식하는 능력을 준다.
6) 이것이냐 저것이냐 - 이분법적 오퍼레이터
이분법적 오퍼레이터는 마음에 현실을 조직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를 제공하며,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가 자신감 있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이분법적 오퍼레이터는 가장 복잡한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서로 반대되는 성질들의 짝(위와 아래, 안과 밖, 왼쪽과 오른쪽, 이전과 이후 등)으로 간단하게 축소함으로써 우리 마음
으로 하여금 사물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7) 출구 없음ㅡ존재론적 오퍼레이터
존재론적 오퍼레이터는 뇌가 처리한 감각 정보에 존재감이나 현실감을 부여하는 마음의 기능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오퍼레이터는 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실재한다는 느낌을 준다.
8) 일어나는 일에 대한 느낌 - 감정적 가치 오퍼레이터
앞에서 언급한 모든 인지적 오퍼레이터들은 세계를 해석하는 정교한 방법(사람만이 가진 특별한)을 제공해준다. 그것들은 우리 주위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에서 원인과 양, 질서, 통일성을 추론할 수 있게 해주거나, 그러한 요소들을 서로 반대되는 것들로 바라보게 해주거나, 그것들을 더 작은 부분들로 분해하게 해준다. 이들 각각의 기능은 모두 명백한 생존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지각을 정신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뇌가 감정적으로 지각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평가를 하도록 해주지는 못한다.
감정적 가치 오퍼레이터는 지각과 인식의 모든 요소에 감정적인 값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지능이 높은 로봇처럼 세상을 돌아다닐 것이다.
사람의 추론과 합리적 사고에서 감정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적 가치 오퍼레이터의 작용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짝을 구하려는 충동도, 자식을 돌보려는 마음도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행위들에 감정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뇌는 우리에게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생존을 추구하게 만든다.
3. 의식의 진화론적 기원
관찰 결과 인간과 동물의 의식은 중요하고도 놀라운 방식으로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그 기본 형태에서 동물의 의식은 구조화되고 패턴화된 반응들-춤추기, 소리지르기, 머리 까닥거리기 등-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리드미컬하고 반복적이다. 이 행위들은 종종 아주 극적이고 특이하여, 의식 행위 외에는 어떤 실용적인 기능도 없다. 그 목적은 의식 행위를 정상 행위와는 아주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하여, 의식 행위에 참여한 동물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의식과 행사에도 동물의 의식 행위가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오 성가의 장엄한 리듬에서부터 폴리네시아인의 생동감 넘치는 다산의 춤의 리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식 행위에서 리듬과 반복은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또, 사람의 의식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아무런 실용적인 의미도 없는 독특한 행위-절,느린 행진, 손과 팔의 이상한 제스처 등-를 볼 수 있다.
비교적 원시적인 차원에서도 의식 행위는 동물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고, 다른 동물들의 의도를 해석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갈등을 낳을 수도 있는 서로간의 오해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인사를 하거나 털을 골라주는 의식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가 우호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복종의 의식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동물에게 '존경을 나타내고, 사회적 서열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행위는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개개 동물의 안전을 높여주며, 집단 내에서 사회적 균형을 안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행위들은 사람들의 생활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악수나 포옹, 선물 등은 종종 사람의 인사 의식으로 사용되며, 사회적 관습이나 상식은 선생님이나 상사 또는 그 밖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도록 가르친다.
4. 신비 체험의 신경생물학
1) 수동적 접근 방법
모든 신비적 영성은 의지의 행동으로 시작된다. 많은 불교 종파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시되는 수동적 명상은 모든 생각과 감정과 지각을 마음으로부터 없애려는 의도로 시작된다. 이러한 의식적인 의도는 뇌의 오른쪽 주의영역(의지 행동의 주요 근원에서 시작되어 마음을 감각 입력 정보뿐만 아니라 인지적 입력 정보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필요로 나타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의영역은 시상을 통해 변연계의 구조인 해마회(뇌의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서 중요한 정보 교환 센터의 역할을 하는)로 하여금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줄이게 만든다. 이 신경 정보의 차단은 정위영역을 포함한 많은 뇌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들은 점점 정보가 차단된다(수입로가 차단된다)."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수입 차단은 경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명상의 단계가 심화되면서 주의영역이 마음에서 생각을 없애려고 더 강하게 노력함에 따라 이 영역은 해마회와 협력하여 점점 더 많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차단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러한 차단이 계속됨에 따라 신경 자극의 에너지가 점점 더 증가하면서 수입로가 차단된 주의영역으로부터 변연계를 따라 내려가 시상하부라는 오래된 신경 구조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시상하부는 고차원의 뇌 활동을 자율 신경계의 기본적인 기능들과 연결시켜주고, 억제와 흥분의 감각을 모두 만들어내는 자율 신경계의 능력을 제어한다.”
이제 시상하부에 도착하는 자극들은 강한 억제 감각을 만들어내는 기관 구조 부분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신경 자극의 폭발적인 방출을 초래하여 그것을 변연계와 결국에는 주의영역으로까지 돌려보내게 된다. 주의영역은 이 억제 자극을 받아들이고, 회로를 따라 한 차례 더 되돌려보낸다. 이런 식으로 뇌 속에 반사 회로가 만들어지고, 신경 자극 신호의 흐름이 신경 고속도로를 따라 반복적으로 달림에 따라 강도와 공명이 축적되며, 그것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명상의 고요함의 수준은 점점 더 깊어지게 된다.
한편, 자신의 마음에서 생각을 없애고자 하는 명상자의 계속적인 의지는 신경 에너지의 축적을 초래하고, 이것은 정위영역으로 들어오는 감각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기울이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수입 차단을 가져오고, 변연계를 따라 시상하부까지 내려가는 신경 신호의 방출 속도를 더욱 증가시키게 된다. 이러한 계속적인 신경 폭격으로 곧 시상하부의 억제 기능은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대개 그러한 높은 수준의 억제 활동은 그에 비례하여 흥분 기능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러나 우리가 설명한 어떤 조건들에서는 신경학적 '일출(出넘쳐흐름)'이 일어날 수 있다. 이 상황에서는 억제제의 활동이 최대에 이르면 즉시 최대의 흥분 반응을 야기하게 된다.
억제제와 흥분계가 모두 활동이 증대되면, 마음은 동시에 억제 반응과 흥분 반응의 물결에 휘말리게 된다. 이것은 극도로 흥분한 신경활동의 폭발을 낳게 되는데, 그 신호는 시상하부에서 시작되어 변연계를 통해 주의영역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주의영역은 갑자기 고조 되면서 최대한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주의영역에서 정위영역으로 향하는 수입로 차단 효과가 지나치게 커져서 수백분의 1초 안에 정위영역의 수입 차단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신경 신호의 완전한 차단은 오른쪽과 왼쪽 정위영역 모두에 극적인 효과를 미친다. 우리가 물리적 공간으로 경험하는 신경학적 토대를 만들어내는 일을 담당하는 오른쪽 정위영역은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공간적 내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결여하게 된다. 감각 입력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 정위영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은 이것을 무한한 공간과 영원으로, 또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텅 빈 진공으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한편, 자아라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던 왼쪽 정위영역은 신체의 경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마음이 지각하는 자아는 이제 한계가 없어진다. 사실, 이제 자아라는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위영역의 완전한 수입 차단 상태에서 마음은, 궁극적인 영적 일체 상태에서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묘사하는 것과 일치하는 신경학적 실체를 인식하게 된다.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물체나 존재도 없고, 공간에 대한 감각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도 없으며, 자신과 나머지 우주 사이의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주관적인 자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일체감이라는 절대적인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생각도 없고, 말도 없고, 감각조차 없이 마음은 순수하고 아무런 구별도 없는 인식 상태에서 자아도 없이 존재한다. 주체와 객체를 초월한 인식 상태인 이러한 순수한 마음 상태에 대해 진과 나는 궁극적인 일체의 상태라는 뜻으로 '절대적 일체 상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들은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일체의 상태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텅 빈 의식, 해탈, 브라만 - 아트만, 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체의 본질로 떠받들고 있다. 신경학적 차원에서 이 상태들은 의식의 마음을 끄려는(이것은 수동적 명상이 전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다) 의지에 의해 작동된 일련의 신경학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능동적 명상(정신을 집중한 명상이나 기도)은 약간 다른 패턴의 뇌 활동을 촉발시키는데, 이것이 초월적 절대자라는 서유럽의 개념을 설명해줄 수 있다.
2) 능동적 접근 방법
능동적인 명상은 마음에서 생각을 없애려는 의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불교도는 만트라를 낭송하거나 타오르는 촛불이나 물이 담긴 주발을 응시하는 반면, 기독교 신자는 하느님이나 성인이나 십자가의 상징물에 마음을 향한 채 기도를 한다.
설명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초점의 대상이 예수라는 정신적 이미지라고 상상하자. 수동적 접근 방법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과정은 기도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주의영역이 신경학적 용어로 번역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특정 물체나 생각에 더 강하게 집중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주의영역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촉진한다. 우리의 모형에서 이러한 신경 정보의 흐름 증가는 오른쪽 정위영역을 시각영역과 협력하여 실제적인 것이든 상상의 것이든 마음속에 초점의 대상을 고정하게 만든다.
지속적인 명상을 통해 이 이미지에 계속 초점을 고정시키면, 오른쪽 주의영역에서 신경 정보를 방출시켜 변연계를 통해 시상하부까지 내려가게 만든다. 이것은 시상하부의 흥분계 부분을 자극하여 가볍고 즐거운 흥분 상태를 일으킨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이러한 신경 정보의 흐름 강도는 점점 증가하여 시상하부의 흥분 기능이 최대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일출이 일어나 즉각 시상하부의 억제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킨다.
흥분 기능과 억제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면, 최대 자극의 물결이 일어나 변연계의 구조들을 통해 왼쪽과 오른쪽 주의영역 모두로 돌아간다. 이러한 갑작스런 신경 정보의 홍수로 주의영역의 활동은 최고 수준으로 치닫고, 이것은 주의의 대상에 집중하는 마음의 능력을 증폭시켜 왼쪽과 오른쪽 정위영역 양쪽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다.
왼쪽 정위영역에서는 수동적 명상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결과가나타난다. 해마회의 신경 흐름 억제는 수입로 차단을 초래하고, 자신에 대한 감각이 흐릿해진다. 그러나 오른쪽 정위영역에 미치는 효과는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 주의영역은 오른쪽 정위영역에게 예수의 이미지에 점점 더 강하게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제 주의영역이 최대의 수준에 이르면, 신경 정보가 오른쪽 정위영역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왼쪽 정위영역으로 흘러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오히려 주의영역은 오른쪽 정위영역을 점점 더 강렬하게 예수의 이미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음을 이 이미지에 더 세밀하게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영역은 또한 오른쪽 정위영역으로부터 예수를 생각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닌 모든 신경 입력 정보를 없애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오른쪽 정위영역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의 기반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할 때, 주의영역에서 밀려오는 입력 정보 외에는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없다. 따라서, 오른쪽 정위영역은 주의영역이 오로지 생각하는 예수 외에는 공간적 실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가 아무것도 없다. 이 과정이 계속되어 쓸데없는 모든 신경 정보들이 없어지고 마음의 집중이 더욱 심화됨에 따라 예수의 이미지는 점점 확대되어가다가 마침내 그것은 마음에 아주 깊고 폭넓은 전체 현실로 인식된다.
이러한 변화들이 오른쪽 정위영역에서 펼쳐질 때, 왼쪽 정위영역의 수입로 차단도 함께 진행되어 자신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완전한 수입 차단과 함께 자신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없어지면, 마음은 자신이 예수라는 초월적 실체 속으로 신비스럽게 흡수된 듯한 놀라운 지각을 경험한다.
이런 식으로 신경학은 우니오 미스티카 - 마르가레타 수녀를 포함해 많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 경험한 영적 체험의 특징을 이루는 하느님과의 신비스러운 합일 - 를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은 인격화된 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어떤 신비 체험에 대해서도 신경학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우니오 미스티카의 경험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다. 그러나 이 신비적인 일체 상태는 궁극적인 초월 상태인 절대적 일체 상태와는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적 일체 상태에서는 자아에 대한 감각도 없으며, 신이나 심지어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능동적 명상이 신비주의자를 우니오 미스티카 상태까지 데려갈 수 있다면, 그것을 넘어서서 궁극적인 일체 상태까지 데려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일은 신비주의자가 지쳐서 주의영역의 의지가 약해질 때 일어날 것이다. 마음은 집중하려는 노력이 약해지고, 오른쪽 정위영역으로부터 유일한 신경 입력 정보를 박탈함으로써 그것을 왼쪽 정위영역과 함께 완전한 수입 차단 상태로 만들 것이다. 이 때, 마음은 수동적 명상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자아도 없고 실체의 경계도 없어지는 상태, 즉 절대적 일체 상태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신경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볼 때, 이 절대적 일체 상태는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은 신앙과 개인의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일 수가 있다. 하느님을 궁극적인 실체로 여기는 카톨릭교의 수녀는 어떤 신비 체험도 예수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인격화된 신을 믿지 않는 불교도는 신비적인 일체를 무의 상태로 녹아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때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서로 다른 이러한 해석들은 신비 체험이 일어난 후에 불가피하게 주관에 의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절대적 일체 상태에 있을 때에는 주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관찰을 할 수 있는 주관적인 자아가 존재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관찰할 만한 어떤 명확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은 하나이자 동일한 것이며,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거기에는 어떤 구별도 없고, 이것과 저것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인 일체뿐이며, 두 가지의 절대적인 일체가 있을 수는 없다.
초월감의 강도
일상생활에서의 음악듣기, 달리기, 목욕 등에서 느끼는 가벼운 일체감부터 본질적 근원적 역학의 절대적 일체감까지 강도는 다양하다.
초월적인 일체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의식의 능력은 리드미컬(리듬과 반복)한 의식적 행위가 시상하부와 자율 신경계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머지 뇌에 효과를 미친 결과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도나 종교 의식, 명상, 육체적 고행 등의 영적 행위는 혈압을 낮추고, 심박동을 감소시키고, 호흡 속도를 늦추며, 코르티솔 호르몬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면역계의 기능에 긍적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기능들은 모두 시상하부와 자율 신경계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이 자율 신경계의 상태에 효과를 미친다는 것은 명백하다.
5. 신비주의의 정의
이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은 신비주의적 영성에 관한 탁월한 연구서인 「신비주의(Mysticism)에서 '신비주의'란 용어를 '영어에서 가장 심하게 남용된 단어 중 하나'라고 불렀다.
그녀는 말한다.
"신비주의라는 종교, 시, 철학에서 서로 다르게, 그리고 종종 상호배타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다. 초월주의, 김빠진 상징주의, 종교적 또는 심미적 감성, 나쁜 형이상학 등 모든 종류의 신비학에 대한 변명으로 주장되어왔다. 반면에, 그것은 그러한 것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멸적인 용어로 자유롭게 사용되어왔다." "현대적인 용법에서 'mysticism'은 어원상 사촌 격인 'myth(신화) 처럼 종종 너절하고 미신적인 생각을 경멸적으로 무시하는 데 사용된다. 실제로 뉴 월드 사전(New World Dictionary)」에서는 'mysticism'을vague, obscure, or confused thinking or belief(애매하거나 모호하거나 혼란스러운 생각 또는 믿음)'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언더힐이 볼 때, 신비주의적 사고에는 조금도 애매하거나 혼란스러운 것이 없다. 언더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비주의는 하나의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다. 그것은 신비적 지식의 추구하고는 조금도 공통점이 없다. 그것은 신의 사랑이 완전하게 달성되는 것, 곧 지금 이 곳에서 인간의 불멸의 유산을 달성하는 것을 포함하는 유기적 과정을 일컫는 이름이다. 또는 원한다면 절대자와 인간의 의식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예술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것은 정확하게 똑같은 것을 의미하므로)."
언더힐의 정의는 신비주의자들의 말로도 뒷받침된다. 예를 들면, 14세기에 살았던 독일의 신비주의자 요한 타울러 (Johain Tauler)는 신비주의자의 영혼은 “신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사라지고,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의식을 잃는다. 모든 것은 한데 모여 신성한 감미로움과 하나가 되며, 사람의 존재에는 신성한 물질이 속속들이 배어들어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마치 물방울 하나가 포도주 통 속에서 사라지듯이."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신비 체험은 마술에 관한 것도, 독심술에 관한 것도 환각이나 영혼을 불러내는 것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보다 더 큰 무엇과 진정한 정신적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정의는 모든 시대와 모든 종교 전통에서 이루어진 기술들을 통해 일관되게 확인된다. 그러한 기술들은 또한 신비 체험이 일관된 패턴을 가진 특별한 현상임을 시사한다. 1997년, 신경학 연구자 제프리 세이버(Jefrey Saver)와 존 라빈(John Rabin)은 이 기술들에 바탕을 두어 신비체험의 특정 핵심 요소들을 정의하려 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신비적 상태가 종종 강한 모순된 감정의 특징을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온몸을 압도하는 환희와 극심한 공포감이 공존할 수 있다. 신비 체험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정상적인 합리적 사고 과정 대신에 직관적인 이해가 들어선다.
신비 체험자는 종종 신적인 존재의 암시를 경험하거나 사물의 가장 근원적인 의미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궁극적인 자유에 이르는 내면의 실체가 밝게 빛나는 것으로 묘사되는 열광적인 상태에 빠진다.
6. 현실보다 더 실제적인 세계
현실이 과연 궁극적 실체인가
꿈보다는 현실이 더 실제적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절대적 일체감'이 현실보다 더 실제적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자아를 어떻게 만드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는 개인적으로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마음이 자아의 요구와 세계의 물질적 현혹에 빠져 있는 주관적 편견을 버린다면 더 큰 실체를 지각할 수 있다. 신비주의자들의 실체는 마음의 생각과 기억, 감정과 사물들보다 더 깊은 곳에, 자아로 생각하는 주관적인 인식보다 더 깊은 곳에, 주체와 객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볼 수 있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우주에 머물고 있는 순수한 인식의 상태, 곧 더 깊은 자아가 있다고 주장하며, 신경학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7.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신의 은유와 과학의 신화
초월 과정을 논리적, 신경생물학적 극단으로 치닫게 하면, 마음은 절대적이고 비타협적인 일체 상태에 직면하게 되는데, 거기서 모든 갈등과 모순과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진리의 변형들은 사라지고, 조화롭고 일신론적인 하나로 통합된다. 만약 우리의 생각이 옳다면, 만약 종교들과 종교들에서 정의하는 신들이 실제로 초월적 경험의 해석이라면, 신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궁극적으로 초월적 일체라는 똑같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궁극적인 실체가 실제로 존재하든지, 또는 비정상적인 뇌의 상태에 의해 생겨난 신경학적 지각에 불과하든지 간에 상관 없이 성립한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서로 친척이다. 어떤 종교도 독점적으로 실재적인 실체를 소유할 수는 없지만, 모든 종교는 최상의 경우, 가슴과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초월의 신경학은 최소한 그 안에서 모든 종교들이 화해할 수 있는 생물학적 틀을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