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삶 (렘33:14-16)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오늘은 주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대강절은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합니다. 주님의 탄생을 미리 기대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것으로 오늘부터 12월 3째 주까지를 대강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 절기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과거 수리아 사람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부정한 것을 제단에 세운 것을 몰아내고 성전 청결 작업을 함으로 종교적 자유를 다시 찾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행했던 히브리인들의 빛의 축제가 지금은 성탄을 즈음한 대강절에 빛의 축제로 변경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촛불 대신에 다양한 색 전등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탄을 즈음하여 거리거리를 밝히는 아름답고 밝은 빛은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에 큰 기쁨을 줍니다. 그것은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스스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 대강절은 과거의 죄에 대한 참회를 하고 신앙적인 새 결단을 하는 기간입니다. 심판주로서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고 참회를 하는 기간입니다. 신앙적인 새 결단이 있어야 하는 의미 있는 기간입니다.
이 대강절 기간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능력이 여러분의 심령에 차고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삶, 그것은 ‘나그네 의식’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닙니다. 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본향이고, 그 본향을 향해 우리는 지금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나그네인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나그네 인생길에 어둠을 밝히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들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 하는 사업에 따라 혹은 자녀나 가정의 형편에 의해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모습이 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세상이나 내가, 가정이, 자녀가 기준이 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풍요할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절망적인 이 세상에 희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타락과 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은 좋은 소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받아 보는 신문과 방송들의 대부분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누가 암에 걸렸다더라, 누가 죽었다더라는 소식이 즐거운 소식보다 더 많습니다. 그래서 혹시 나에게도 이런 일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을 합니다.
2022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서 있는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수도 없이 좋지 않은 소식, 불행한 소식, 무서운 소식들을 접해야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주신 소망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대강절은 우리에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찬송가 70장과 같이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없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찬송가 96장과 같이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임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는 예수님,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의 평화 되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대강절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에, 교회에, 이 사회와 국가에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신앙과 윤리에 가치관까지 상실해 가는 사회를 바라보며 오직 메시야만을 사모하며 기다렸던 그 마음, 그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 자신이나 사회를 보세요. 당시 이스라엘 못지않게 윤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너무도 타락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주셨던 그 때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하나님에 대한 좋은 소식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절망적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희망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망하였습니다. 그러면 남쪽 유다는 이것을 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불순종하다가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이 하나님을 버리더니 어떻게 되었는지를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한은 좀 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경제 무역 시대라고 하지만 이 나라가 사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고 진심으로 돌아서야 하는데 오히려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즘에 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텔레비전에 가장 먼저 비추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20장과 33장에서 우상을 섬기고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이들을 향하여 망한다는 사실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깨닫고 회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보기에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겠습니까? 나라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서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를 해 주십니다. 다윗의 가지는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의 상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종교 등에서 희망이 보입니까? 누구를 믿고 살아가고 누구를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신나게 살고 싶습니다. 생기가 넘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살맛 나게 살고 싶습니다. 힘차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살기가 힘듭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혹한기에 가구당 필요한 연탄은 300장이라고 합니다. 160,000가구는 연탄 지원이 절대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 수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북한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과학이 발달했어도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은 과거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하여 온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암의 공포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화려하고 의미 있는 것 같지만 짐승보다 못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짐승은 어때요? 죽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으며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는 모든 것을 비뚤게 바라보게 합니다. 오해와 미움을 낳게 합니다. 탐심을 가지게 합니다. 질투를 낳게 합니다. 질투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행복을 파괴합니다.
죄는 살인하는 마음과 시기하는 마음을 낳게 합니다. 죄는 좌절과 실망을 낳아 결국 자살하게까지 합니다. 죄는 우리를 불순종의 자녀로 만듭니다. 그 조상이 아담과 하와요,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결국은 사망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한 인간, 불순종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죄 용서받아야 할 죄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범죄한 사람들에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7:51절에서 스데반은 이렇게 절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망이 없는 곳에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케 하셨습니다. 다같이 오늘 본문 15-16절을 읽으시겠습니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할렐루야!
이 대강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며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십니다. 이 예수 형님, 예수 오빠 만나서 구원받고 고침받고 위로받고 해결받아 신나게 살맛 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일어설 힘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지금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들어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비천한 자를 들어서 귀하게 사용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영원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건축물을 만들었지만 그들은 이 땅에서 다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나라만이 영원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 나라, 이것을 위한 준비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정착하고 살 곳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6:31-33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대강절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은사와 달란트, 이러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중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열매 맺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에서 사랑은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고전13:1-3절을 다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또 고전13:8절에서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사용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맞을 준비하는 이 대강절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이 사회에, 우리 자신에게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사랑이 있어야 진심으로 주님을 맞을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서로 인사합시다. 두 손을 들고 인사합시다. “사랑합니다.”
우리는 모두 입술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닮아 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만나면 인사할 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말하기 전에 “사랑합니다”를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엔 추운 공기도 달아납니다. 얼음도 녹아집니다.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면 평안과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복과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폐에 산소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듯이 우리의 삶에도 생명이 있어야 영생을 유지합니다. 인생의 산소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위로의 주님, 희망의 주님, 생명의 주님, 해결의 주님, 고침의 주님, 이 주님이 오시는 절기를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순종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실 주님을 영접하는데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순종으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 사랑으로 충만하여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사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아멘-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삶 (렘33:14-16)|작성자 change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