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고위산 잇는 문화재 답사 산행… 길 찾기 수월하고 경치 시원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 한국관광의 대표적인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행뿐 아니라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족을 동반한 나들이 겸 산행으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에 속한 남산(南山·494.6m)은 옛 월성 왕궁의 남쪽에 솟은 산을 뜻한다. 산 이름도 이 같은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했으며, 신라 사람들이 떠받들던 신앙의 대상지였다. 금오산(金鰲山·486m)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494.6m), 계곡 전체를 통틀어서 남산이라고 한다. 남산을 일러 흔히 노천박물관이라 말한다. 이는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남산 이무기능선은 암릉의 연속이다. 주변 풍광을 즐기며 산을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화유적을 더듬어보는 여유로운 산행을 그렸다. 삼릉에서 시작해 상선암을 거쳐 바둑바위~금오산~남산순환도로~이영재~칠불암~봉화대 터(473m)~백운재를 차례로 지나 남산에서 제일 높은 고위산에 오른다. 하산은 이무기능선을 따라 천우사로 내려서고, 용장마을을 지나 내남치안센터 앞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삼릉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소나무 숲속에 커다란 봉분의 무덤 세 개가 일렬로 자리한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 곳에 있어 지역 이름을 붙여 배리삼릉이라 한다. 이정표가 잘 설치돼 있어 애초부터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산속으로 접어드니 머리 없는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바위에 새긴 선각마애불 등이 연이어진다. 이 골짜기에는 11개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흩어져 있단다. 법흥왕 14년(527)에 불교가 공인된 뒤로 남산에는 수많은 절과 탑이 세워지고 불상이 조성되었다. <삼국유사>에 ‘절들은 별처럼 벌려 있고, 탑들은 기러기 날아가듯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행 시작 30분에 이를 즈음이면 자연석 계단과 목재계단을 차례로 올라 상선암에 닿는다. 암자 주변에도 선각보살입상과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절집을 벗어나 우회해 바둑바위라는 너럭바위에 서면 전망이 좋다. 북으로 경주시의 외곽지역이 보이고, 형산강을 낀 배리 들판 너머로 높고 낮은 산들이 꼬리를 이어 뻗어간다. 가깝게는 망산과 뒤편의 호암산, 벽도산, 선도산, 그 너머로는 용림산과 구미산이 경주의 서쪽 울타리를 이룬다. 멀리로는 단석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산줄기도 선명하다.
발걸음을 옮기면 경덕왕 때의 음악가인 옥보고가 가야금을 타고 즐겼다는 금송정(琴松亭) 터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금송정 터 너머로 금오산 묏부리가 머리를 내민다. 잠시 후 길옆에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빌면 병이 낫는다’는 거대한 상사바위를 만난다.
금오산에 가까워질 무렵 조망이 좋은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오른편에 지나온 바둑바위와 상사바위가 있는 봉우리가 보이고, 서남쪽 멀리로는 백운산·고헌산으로 뻗어가는 낙동정맥의 마루금도 확인된다. 통일 전 갈림길에서 곧장 오르면 금오산 정상이다.
숲속 널찍한 터에 남산 유래 안내판과 정상석, 삼각점(경주 478, 1995년 재설), 이정표 등이 있다. 남산의 실질적인 주봉이지만 전망은 기대할 수 없다. 정상석 옆 숲길로 내려서면 남산순환도로에 선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편 통일전 주차장 방향 도로를 따른다. 정면에 고위봉이 빤하다. 5분이 지날 즈음 용장골 갈림길이다. 가족과 함께라면 용장골로 내려서는 것도 권할 만하다. 용장골에는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용장사 터가 있다. 또 삼층석탑을 비롯해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 등을 볼 수 있다.
1 산행 시작점의 삼릉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다. 2 바둑바위에 서면 경주시가지와 형산강을 낀 배리 들판 너머로 높고 낮은 산들이 모두 펼쳐진다. 3 남산순환도로를 버리고 숲속 능선 길로 접어들면 이영재 갈림목이다.
최고 경치 자랑하는 신선암 마애보살상
그대로 도로를 따르면 삼화령 안내판을 만난다. 삼화령은 향가 ‘안민가’를 지은 충담사의 설화가 전해지며 왼편 산등성이에 연화좌대가 남아 있다. 용장골 위로 건너편 고위봉이 걸출하다. 이무기능선을 비롯한 일대의 산릉과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순환도로를 휘돌아 통일전 주차장으로 잇는 갈림길에서 숲속 능선 길로 접어든다. 5분 뒤 이영재 갈림목을 지난다. 이영재에서 봉화대 터가 있는 473m봉까지를 봉화대능선이라 한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 길로 올라서면 아기자기한 암릉이 나타난다. 남산은 바위로 이뤄진 골산답게 능선 따라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광을 안겨 준다. 조망도 좋아 함월산에서 토함산으로 잇는 호미지맥과 조항산에서 삼태봉으로 이어지는 삼태지맥이 보인다. 시원하게 뻗은 능선은 경주시의 동쪽 울타리를 이룬다. 발아래로 서출지가 내려다보이고, 뒤돌아보면 금오산과 지나온 능선은 물론이고 앞으로 가야 할 봉화대 봉우리와 고위봉도 훤하다.
남산순환도로와 헤어져 30분 정도면 칠불암 갈림길이다. 갈 길이 바쁘지 않다면 칠불암은 한번 들러보는 것이 좋다. 내려갔다가 되돌아와야 하지만 왕복 30분이면 된다. 남산지역의 유일한 국보(제312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비탈길로 10분이면 닿는 칠불암은 바위벽에 일곱 불상이 새겨져 있다. 큰 바위 아랫부분에 삼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삼존불 앞의 돌출 바위 사방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사면불은 부처의 은혜가 이 세상 어디에도 다 골고루 비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칠불암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면 신선암 마애보살상을 보게 된다. 신선암 보살상은 남산에서 최고의 경치를 뽐낸다. 보살상 옆으로 건너다보이는 호미지맥과 삼태지맥이 선명하고 발아래로 추수를 끝낸 평야가 펼쳐진다.
게다가 훨훨 나는 듯한 구름 위에 앉은 보살상은 천하걸작이다. 보관을 쓴 보살상은 구슬을 지녔으며 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있다. 주능선으로 올라서서 제주 고씨묘를 지난다. 고위봉으로 질러가는 샛길이 있으나 봉화대 터로 직진한다. 관목에 묻혀 석축만 남아 있는 봉화대 터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서쪽 고위산까지를 고위능선이라 한다.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만큼 한적한 숲길이다. 백운재에 내려서고, 다시 오르면 고위산 정상이다. 둔덕 같은 산정에는 봉분이 뭉개진 묘 2기가 있고, 정상석과 삼각점, 등산로 안내판, 소화기 비치함 등이 보인다. 수리산 또는 천룡산으로도 불린 고위산은 주봉인 금오산보다 높지만 금오산에 비해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 조용한 편이다.
정상에서 서쪽 능선은 황발봉(360m)으로 연결된다. 하산은 정상석 옆 북쪽 방향으로 내려선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에 헬기장 갈림길을 만난다. 태봉능선과 이무기능선이 갈라지는 이곳에서 왼편 길로 잇는다. 이 능선은 연속되는 암릉과 암벽으로 로프를 붙잡고 오르내리는 스릴이 있었으나, 최근 등산로 정비 사업으로 계단이나 데크를 깔아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스릴은 반감되었으나 주변 풍광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똬리를 튼 뱀이 대가리를 치켜든 형상의 토종 소나무와 암릉이 빚어내는 풍치가 그만이다. 건너편 태봉능선의 쌍봉과 금오봉의 뒷모습도 색다르다. 전망이 뛰어난 337m봉을 넘어 천우사 입구까지 50분이면 내려선다. 콘크리트도로는 용장마을을 지나 35번국도까지 이어진다. 국도변에는 경주국립공원사무소 남산분소가 있고, 내남치안센터 앞 버스정류장이 산행의 종착점이다.
1 봉화대능선을 오르며 뒤돌아 본 금오산. 2 남산지역에서 유일한 국보인 칠불암 마애불상군. 3 남산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신선암 마애보살상.
산행길잡이
■삼릉버스정류장~상선암~바둑바위~금오산~남산순환도로~이영재~칠불암~봉화대 터~고위산~이무기능선~천우사~내남치안센터 버스정류장 <5시간 소요>
■내남치안센터 앞 버스정류장~용장골~남산순환도로~금오산~ 바둑바위~상선암~삼릉 버스정류장 <3시간 30분 소요>
■삼릉버스정류장~상선암~바둑바위~금오산~남산순환도로~이영재~칠불암~염불암지~통일전 버스정류장 <4시간 소요>
교통 (지역번호 054)
경주는 대중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포항과 대구는 가까운 관계로 일반 직행버스 대다수가 경주시외버스터미널(ARS 1666-5599)을 경유한다. 남산의 산행 들머리인 삼릉까지는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500, 505, 506, 507, 508번 시내좌석버스(742-2691~3)가 수시 운행한다. 산행 날머리에서도 역시 같은 시내좌석버스를 이용하면 시내로 들어 갈 수 있다.
서울→경주 동서울터미널(ARS 1688-5979)에서 1일 26회(07:00~24:00) 운행.
서울→경주 강남고속버스터미널(ARS 1688-4700)에서 25~150분 간격(06:05~23:55) 운행.
부산→경주 노포동종합터미널(ARS 1688-9969)에서 10~15분 간격(05:30~23:30) 운행.
대구→경주 동부터미널(ARS 1688-0017)에서 8분 간격(04:30~22:00) 운행.
포항→경주 시외버스터미널(ARS 1666-2313)에서 5~10분 간격(05:30~23:30) 운행.
숙박 (지역번호 054)
관광지답게 호텔을 비롯해 장급 여관은 물론 콘도까지 있어 숙박에는 큰 불편이 없다. 시내버스가 출발하는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숙박시설이 많다. 또 관광지답게 깔끔한 음식점도 곳곳에 있다.
배동 포석정 인근의 삼미정(745-8761)은 직접 빚은 동동주와 두부가 맛있는 집. 식사는 두부전골이 좋으며, 된장국수도 별미다. 동천동 경주시청 인근의 해남참가자미(773-9766)는 자연산 참가자미 물회로 소문난 집. 황남동 대릉원 옆 전통시골쌈밥집(771-2764)의 불고기 쌈밥도 좋다. 소문난 암뽕수육 황성점(748-2458)은 암소에만 있는 소의 아기집을 뜻하는 암뽕수육으로 널리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