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자 데레사 엔리케스 데 알바라도 (1456-1529년)
교황
새 가경자 6명 선포된다… 네 자녀의 어머니도 포함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시성부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과의 만남에서 세 명의 여성 수도자, 두 명의 여성 평신도 등 여성 다섯 명과 에콰도르 선교사로 활동한 살레시오회 사제 한 명의 ‘시복시성을 위한 성덕’에 필요한 영웅적 덕행을 인정하는 교령을 반포하도록 승인했다.
Tiziana Campisi / 번역 이정숙
교회가 여섯 명의 새 가경자를 갖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3일 오전 교황청 시성부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과의 만남에서 한 명의 사제, 세 명의 수도자, 두 명의 여성 평신도의 영웅적 덕행을 인정하는 교령을 선포하도록 승인했다. 이번에 영웅적 덕행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은 △카를로 크레스피 크로치(Carlo Crespi Croci) 신부(살레시오회) △마리아 카테리나 플래너건(Maria Caterina Flanagan) 수녀(성녀 비르지타의 거룩하신 구세주 기사단회) △성 세례자 요한의 레오닐데(Leonilde di San Giovanni Battista) 수녀(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전교 수녀회) △마리아 두 몬테 페레이라(Maria do Monte Pereira) 수녀(예수 성심의 구호 수녀회) △데레사 엔리케스 데 알바라도(Teresa Enríquez de Alvarado) 여사(한 가정의 어머니) △마리아 도메니카 라제리(Maria Domenica Lazzeri)(평신도)이다.
관대하고 배려심 많은 어머니
15-16세기 스페인에 살았던 데레사 엔리케스 데 알바라도 여사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자랐다.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의 시녀였던 그녀는 가족의 뜻에 따라 한 군주의 대신과 혼인했다. 네 자녀의 어머니가 된 그녀는 1503년 과부가 됐다. 그녀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스페인 궁정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기도와 자선활동에 전념했다. 톨레도 근처의 토리호스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검소한 삶을 살며 가장 약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전염병과 기근으로 고아가 된 청소년들의 어머니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며 거리의 소녀와 여성을 보살피는 한편, 병자를 돌보고 성체 공경 예식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또 총명하고 신중하게 가산을 관리하며 주로 자선활동과 교회 건축에 사용했다. 다양한 형제회, 하나의 수도원, 네 개의 수도회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1529년 3월 4일 선종했으며, 최근 성체대회에서 그녀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돈 보스코의 영성을 에콰도르 국민에게
1891년 이탈리아 레냐노에서 태어난 카를로 크레스피 크로치 신부는 에콰도르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다. 학업을 마치고 사제품을 받은 후 1923년 그는 에콰도르 쿠엥카로 떠났다. 그곳에서 59년 동안 복음화와 교육,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가치 증진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증거에 부합하는 복음 선포자로서의 자질은 물론, 식물학 및 고고학 분야에서 학자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의 영적, 선교적 삶의 초석은 성체성사와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이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전파한 요한 보스코 성인을 본받고자 했다. 말년에는 하루 17시간을 고해소에서 보내며 고해성사 사목에 헌신했다. 크로치 신부는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카를로 크레스피 크로치 신부 (살레시오회)
루터교인들과 대화하는 수녀
영국 런던 출신 마리아 카테리나 플래너건 수녀는 성녀 비르지타의 거룩하신 구세주 기사단회 수녀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그녀는 19세 때 로마로 이주했다. 로마는 지난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녀로 선포한 마리아 엘리자베스 헤셀블라드 수녀가 성녀 비르지타 수도회를 재창설한 곳이다. 플래너건 수녀는 서원을 하고 다양한 공동체로 파견됐다. 스웨덴에서는 무엇보다도 루터교인들과의 관계에 헌신하며 유익한 우정을 쌓았다. 영국에서는 환대 센터를 만들었다. 그녀는 관대하고 열린 마음 덕분에 어려운 환경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활기차고 명랑한 여성으로 열정이 넘쳤으며 고통받는 이들과 궁핍한 이들에게 언제나 기꺼이 자선을 베풀었다. 그러다 1935년 암 판정을 받고 6년 후 스톡홀름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모범을 보이며 모든 이를 교화시키다가 선종했다.
마리아 카테리나 플래너건 수녀
가르침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
트렌토 주 리시냐고 출신의 성 세례자 요한의 레오닐데 수녀는 10대의 어린 나이였던 1906년, 폴라 소재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회에서 수련기를 시작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구했으며, 항상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루길 간절히 원했다. 평생 동안 수도회 여정의 고난과 수많은 육체적 고통을 겪었지만 항상 주님을 신뢰하고 인내로 모든 시련을 참아내며 내면의 평화를 지켰다. 그녀의 관대함은 교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기준점이 됐다. 또한 가난한 이들과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도 그녀의 도움과 지원으로 혜택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녀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까지 희생했다. 레오닐데 수녀는 1945년 12월 12일 선종했다.
성 세례자 요한의 레오닐데 수녀
젊은 시골 소녀의 오상
평신도인 마리아 도메니카 라제리는 트렌토 주 출신으로 19세기 카프리아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서 신앙의 진리를 배우며 방앗간과 들에서 단순한 일을 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도왔고, 심각한 전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어머니와 함께 병자들을 돌보다 병에 걸렸다. 그녀는 식욕부진으로 고통을 받기 시작하다 호흡곤란, 발열, 오한, 경련 등을 겪은 후 심각한 거식증 진단을 받았다. 1835년 1월, 그녀는 손, 발, 오른쪽 옆구리에 오상을 받았고, 한 달 후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가시관 성흔이 발현해 머리가 생생한 피로 흠뻑 젖었다. 그녀는 이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기도와 봉헌의 기회로 삼았으며,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눈을 피하면서 이 현상을 견뎌냈다. 그녀는 주님과 그분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면서 그분께 속한 특별한 존재로 살았다. 라제리는 1848년 4월 4일, 33세를 일기로 지상 여정을 마쳤다.
마리아 도메니카 라제리
마데이라 병자들 사이에서
19-20세기에 살았던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 출신 마리아 두 몬테 페레이라 수녀는 병자들에게 헌신하기 위해 예수 성심의 구호 수녀회를 선택했다. 그녀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봉사와 사도직을 수행하며 수녀회 자매들의 존경을 받았고, 은둔 속에서 겸손하게 살며 특별한 현상을 체험했다. 그녀는 영적 지도자의 권유로 자신의 내적 체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위대한 도덕적 강인함을 지닌 그녀는 하느님과의 특별한 친밀함에서 비롯된 놀라운 자제력이 특징이었으며, 건강이 위태로운 힘든 상황에서도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몬테 페레이라 수녀는 1963년 12월 18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 두 몬테 페레이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