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쿠키(외 2편)
이혜미
쿠키를 찍어내고 남은 반죽을 쿠키라 할 수 있을까
뺨을 맞고 얼굴에 생긴 구멍이 사라지지 않을 때
슬픔이 새겨진 자리를 잘 구워진 어둠이라 불렀지
분명하고 깊은 상처라 해서 특별히 더 아름다운 것도 아닌데
마음이 저버리고 간 자리에 남은 사람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나
알맞은 테두리를 얻기 위해 도려내진 잔해를
덮지 못한 무덤이 되어 몸은 세계로 열리고
우리는 통증으로부터 흘러나와 점차 흉터가 되어가는 중이지
부푸는 것을 설렘이라 믿으며 구워지는 쿠키들처럼
여름 자두 깨물면서
풍선의 안쪽을 들여다본 적 있니, 말랑한 거품 속에서 일렁이는 희고 고운 숨소리를.
세상은 팽창하고 있어. 바람이 숲을 열어젖히면 나무들이 일제히 휘황해지듯. 어린 새들이 터지기 직전의 오후 쪽으로 황급히 날아오르듯, 과실들의 부피에는 비관이 없고.
행성의 심장을 딛고 서서 입안을 구르는 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과육에 점령당한 씨앗을 기다리는 일. 그건 우리가 함께 나눈 여름의 작은 유희였으니까.
빛의 궁륭을 짓고 새로 돋은 잎사귀를 모아 왕관을 엮는다면 자두의 환한 세계로 입장할 수도 있겠지. 좋은 냄새를 가진 동심원과 먼 곳들을 선물 받을 텐데.
기분의 단면을 본 적 있니. 아무리 얇게 잘라도 기어코 생겨나는 양면을. 그래서 포옹은 하나가 될 수 없는 서로의 확인이야. 껴안은 품이 환하게 열리는 자리에서 열매는 언제나 되돌아오고 이름의 모서리는 닳아 가지.
나무의 숨이 울창해지면 무구하고 무수한 색들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어.
숨은 새
책장을 넘기며 날개를 꺼낸다
어두운 페이지를 깨트려 주어진 여백을 따라
갈피의 빛을 배웠지 펼치면 달아나는 새의 기척을
작은 속삭임에도 눈가를 물들이던 떨림의 주파수를
숨은 우리가 창조한 공기의 단위 투명하게 펄럭이는 깃발이었어
좋아해 밭아진 소리를 주고받으며 여기를 만들어내는 모험을 오래 머금어 깊숙해진 부름을
책이 수많은 빈틈으로 이루어진 건축이라면 접힌 그늘만큼의 부피를 품어 안겠지
공중을 안쪽으로 당겨 앉히기 위해 호흡의 태엽이 조금씩 감기는 지금
엎질러진 의미들이 손가락을 딛고 날아간다
속삭여봐 호수를 은빛으로 채점하는 물수제비처럼
사이에서 자라난 낱말들이 새로운 방향을 얻도록
무수히 깃털을 내어놓으며 틈새를 태어나게 하는 휘황으로
—시집 『흉터 쿠키』 2022. 9 --------------------- 이혜미 /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빛의 자격을 얻어』 『흉터 쿠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