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새로 나
코로나로 새로 나 “우리가 격리되어 보니 동물원 동물의 심정을 알겠고, 인간의 간섭이 없으니 지구는 더 빨리 회복되고, 위생적인 삶도 그리 어렵지 않으나 삶은 깨지기 쉬워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 한 영국인이 SNS에 남긴 ‘코로나19로 배운 것들’의 일부입니다.
그의 주장대로 인간의 행동반경이 제한되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사자가 도로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새끼 퓨마가 돌아다니며, 이탈리아 베네치아운하에는 물고기와 백조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 곁엔 항상 동물이 있었습니다. 꼭 반려동물이나 가축을 키우지 않더라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을 보며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도 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고기반찬을 먹었습니다. 또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신발을 신으며, 동물 실험을 거친 샴푸로 머리를 감고, 실험동물에서 효과가 입증된 약을 시간 맞춰 꼬박꼬박 먹었습니다.
총칼보다 세균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처음으로 가축화한 동물은 ‘개’입니다. 약 1만 5,000년쯤 전이라고 하니 당시는 수렵채집사회였고, 개는 사냥의 동반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점점 늘면서 개에 이어 염소, 양, 돼지, 소, 말등이 가축화됐습니다. 동물을 가축으로 키우며 인간은 노동력과 단백질, 부富를 얻었습니다. 사회가 안정되자 인구가 늘었고, 도시가 생겼으며, 분업이 발생했습니다. 더 가지고 싶은 욕심에 전쟁도 일어났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책 <총, 균, 쇠>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 중에서 전투 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세균’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세균전이라도 벌였다는 의미일까요?
아니, 그게 아니고…
18세기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은 세계지도의 절반을 채운 사람입니다. 세 차례의 대항해로 하와이, 이스터섬, 누벨칼레도니, 뉴질랜드 같은 남태평양의 섬들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항해에서는 남극에 이어 알래스카 최북단까지 진출했으나 얼어붙은 북극해에 가로막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와이에 들렀다 1779년 원주민에게 살해됐습니다.
선장이 남긴 항해일지에는 침략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민과 선원들에게 했던 당부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일테면 원주민의 문화를 존중하고, 전염병이 옮겨가지 않도록 원주민의 배 출입을 금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쿡 탐험대가 다녀간 뒤 하와이 인구는 1779년 50만 명에서 1853년 8만 4,000명으로 83% 감소했습니다. 탐험대로 상징되는 유럽인과 함께 들어온 성병, 결핵,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그리고 천연두 면역력이 하와이 원주민에 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쿡 선장은 어쩌면 지금이라도 자신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세균은 전파됐고 사람이 죽었으며 강대국은 같은 방법으로 계속해서 식민지를 확장했습니다.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유럽 사람들에겐 있는데 하와이 원주민에겐 면역항체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농업’입니다. 농경사회 사람들은 정주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 오물이며 분뇨가 쌓인 환경에서 살아갑니다. 또 창고에 곡식이 있으니 쥐가 모이고, 가축을 키웁니다. 이렇게 한울타리 안에서 사람과 동물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세균과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와이 원주민보다 일찍 전염병을 앓고 면역항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개의 동물은 인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생존하기 때문에 서로 안전합니다. 하지만 먹을 것을 인간에게 의존하고, 번식을 제어당하며 사는 가축에게 기생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물론 인간에게 기생하는 세균과 바이러스도 가축에게 옮겨갔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 동물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를 통해 발생되는 전염병을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이라고 합니다. 1800년대 후반 독일의 의사이자 정치가였던 루돌프 피르호가 이름 붙였죠. 하지만 병을 옮긴다고 해도 가축으로부터 얻는 게 많으니 가축을 없앨 수는 없고, 아마 당시 사람들도 할 수만 있다면 세균을 박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공동의 집에서 공존
하지만 지구는 ‘공동의 집’입니다. 인간과 똑같이 진화하는 생명체인 세균도 이집의 엄연한 주인입니다. 만약 옆집에 사는 사람이 내가 맘에 안 든다고 공격해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항하겠죠. 세균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체로서 세균이 인간이나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혼자 이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곤충과 같은 매개체를 이용합니다. 더 진화된 세균은 숙주에게 재채기 등을 일으켜 일시에 확 퍼져나갑니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스스로 증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세균과 같은 방식으로 종족을 번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는 아주 약은 바이러스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감염된 줄도 모르고 활동하도록 아주 얌전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감염되자마자 증상이 나타나면 자신이 공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아예 증상을 느끼지 못하거나 감기 정도로 알고 평소와 같이 활동했고, ‘슈퍼전파자’가 발생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졌죠.
사실 코로나19가 출현했을 때 우리는 내심 의학기술로 금세 제압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첨단’이나 ‘최신’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에 처음 붙여진 이름이 ‘신종 코로나’였듯 세균과 바이러스도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행동 백신 투입
그러나 우리는 세균과 바이러스의 타고난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자력으로는 숙주를 옮겨 다닐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동을 차단하고 감염된 사람을 잘 치료하면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자주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친구나 이웃 간에도 잠시 서로 떨어져 지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어떤 신종 세균 혹은 바이러스가 출현해도 감염병 발생 초기에 이보다 더 확실한 백신은 없을 것입니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는 이것을 ‘행동 백신’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열심히 개발되고 있는 ‘화학 백신’은 그 다음입니다. 전염병의 특성을 파악해 안전성과 효과 검증까지 마치고 백신이 세상에 나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화학 백신은 늘 ‘뒷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낭만 거리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힘이 빠지든 인간의 면역력이 올라가든 전염병은 한풀 꺾이는 순간이 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죠. 그러나 인간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자연을 건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더 강한 세균, 더 강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올 것입니다.
사람과 동물 생태계의 건강은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중 누가 자기 욕심만 차린다면 연결은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되 서로는 혼자인 현악기 줄처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얼마만큼이 적당한 거리냐고요? 글쎄요. 서로 사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보일 만큼이 아닐까요?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는 지혜로 연결되려면 일상의 안정을 되찾되, 코로나로 새로 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환경이 지금보다 호전된다면 ‘생태 백신’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923년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참나무와 삼나무만이 아닙니다. 공동의 집의 집주인들도 그렇습니다. 글 / 이수인
Gabriel Light - Summer Love (Official Music Video) 2020.mp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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