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70장 (구 455장) / 로마서 9 : 24 - 33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70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로마서 9장 24절 – 33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오늘 본문은 먼저 “오직 주의 은혜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이 세상을 지금도 주권적으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할 수도, 또 그 주권에 대항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앞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 아무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주권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유명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롬 9:20-21) 이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의 필요에 따라, 귀한 그릇도 만들고, 천한 그릇도 만들고, 간장 종지도 만들고, 밥그릇도 만들고, 국 그릇도 만들고, 장을 담그는 커다란 독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릇을 만드는 재료인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귀하게 대접받는 이조백자나 고려청자로 만들지 않으시고 간장종지나 장독으로 만들었습니까?” 하고 항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흙은 다만 토기장이가 만드는 대로 만들어질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진흙덩이가 토기장이에게 따질 수 없듯이, 피조물인 우리들이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따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토기장이의 비유는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 토기장이의 비유에 보면,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 두 가지 종류의 그릇이 나옵니다. 바로 이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귀히 쓸 그릇은 유대인으로, 천히 쓸 그릇은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유대인을 귀한 그릇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의 귀한 도구로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귀히 쓸 그릇인 유대인과 천히 쓸 그릇인 이방인, 이 둘 사이에 역전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25절과 26절을 보겠습니다.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원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원래 선택받았던 그들은 복음을 거부함으로 인해 멸망의 길로 달려갔고, 우리 이방인들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유대인으로 태어났든지 이방인으로 태어났든지 혈통이 아닙니다. 어디에서 태어나느냐? 귀히 쓸 그릇이냐? 천히 쓸 그릇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아멘입니까?
다음으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남은 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27절 말씀입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 그러면 여기 남은 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첫째로, 남은 자는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났다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도 하갈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이 아니라, 오직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만이 선택된 약속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이삭의 몸에서 난 에서와 야곱이 있지만, 선택된 야곱과 그 후손을 열두 지파로 지정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인 저와 여러분만이 하나님께 속한 선택받은 남은 자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자기의 소유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남은 자는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 신약의 경우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에 구별은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된 자 만이 남은 사람들입니다.
셋째로, 남은 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이들이 마지막까지 남은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였습니다.(마 10:22)
그러면 이렇게 마지막까지 남은 자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 첫째로 환난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셋째로 구원의 체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일생을 뒤돌아보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남은 자는 끝까지 환난을 통과하고, 믿음을 지키고, 구원의 체험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훌륭히 싸운 자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칭찬과 면류관을 받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환난을 통과하고, 믿음을 지키고, 구원의 체험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훌륭히 싸운 남은 자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의미 없는 생명을 존재하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참새 한 마리까지도 다 간섭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사람 중 하나님께서 남겨놓은 사람에게는 그 역할과 임무를 부여 하신 것입니다.
1) 남은 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지쳐 쓰러져 있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마지막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에 새로운 종교 개혁을 이룩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도록 역할을 주셨듯이 말입니다. 오늘 남은 자로서의 저와 여러분에게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2) 남은 자로서의 축복의 증거가 되도록 역할과 임무를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아니하는 난공불낙의 성벽처럼 승리의 증거로 남게 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며 교훈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나는 축복의 표적이 되고 모델이 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성도답게 남은 자로서 해와 같이 빛나는 축복의 모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