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의 축구스타 클래식- 37.
리누스 미셸 감독을 다루었으니 이어서 그의 제자인 로날드 쿠만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쿠만은 미셸 감독의 제자이자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제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에....
1983년 암스텔담 아약스에 입단하면서 급성장을 한 로날드 쿠만은 입단 1년 후인 84-85시즌에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2시즌 정도 요한 크루이프 감독(아약스 감독 85-88시즌)의 지도를 받았는데 이미 이 때 크루이프 감독은 쿠만을 점찍어 두었다. 86년 PSV아인트호벤(당시 감독 거스 히딩크)으로 이적한 쿠만은 3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리그 우승 3차례, 컵우승 2차례 그리고 유럽 챔피언스컵(88-89시즌)우승까지 차지했다.
쿠만은 89/90시즌, 스승인 크루이프 감독의 프로포즈를 받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는데 이적료가 무려 65억원이었다. 이 금액은 당시 수비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이었다.(뿐만 아니라 쿠만은 팀내 연봉 랭킹 1위였다.) 크루이프 감독이 이렇게 막대한 금액을 들여 쿠만을 영입한 것은 단순히 수비 강화 때문 만은 아니었다. 쿠만은 수비수로서의 능력도 탁월했고, 전술 이해력도 높았지만 무엇보다 공격수 못지않은 빼어난 득점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크루이프 감독에게 있어서 쿠만 만큼 이상적인 리베로는 전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이적 후 초창기엔 쿠만이 제 페이스를 찾지 못했으나 그 시간은 그다지 길지않았다. 곧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쿠만은 팀의 최종 수비수이자 리더로서 존재감을 나타내며 바르셀로나가 90/91시즌~93/94시즌까지 리그 4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91-92시즌에는 바르셀로나가 염원하던 챔피언스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삼프도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쿠만이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쿠만은 아인트호벤 시절에 이어 두 번째 챔피언스컵 우승을 차지한 것인데 한 선수가 팀을 옮긴 뒤 유럽 챔피언스컵 우승을 또 다시 차지한 경우는 축구 역사상 3명 밖에 되질 않는다고 한다.)90년대 초~중반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는 '드림팀'으로 불리었는데 당시 미하엘 라우드롭(89/94)-스토이치코프(90/95) 그리고 호마리오(93/95) 등이 쿠만과 같이 활약을 했다.
쿠만은 1983년 네덜란드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리고나서 5년 후 EURO88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 리누스 미셸이었다. 그 대회에서 네덜란드는 오렌지 3총사(굴리트, 라이카르트, 반 바스텐)를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지만 쿠만도 빼어난 활약을 했다. 그 대회에서 미셸 감독은 리베로인 쿠만을 적절한 위치까지 전진 배치시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쿠만은 월드컵에 두 차례 참가했다. 90년 이태리 월드컵에선 네덜란드가 강력한 우승 후보로 주목을 받았으나 대회가 개막되자 예상과는 달리 강한 맛을 전혀 풍기질 못했다. 네덜란드는 조별 예선에서 졸전을 펼치며 잉글랜드, 아일랜드에 이어 조 3위(와일드 카드)로 간신히 16강에 진출했는데 결국 16강전에서 서독에게 2대1로 패하고 말았다.(그 경기에서 종료 2분 전, 네덜란드가 페널티킥을 얻어 1골을 만회했는데 그 때 킥커가 쿠만이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는 로날드 쿠만이 주장으로 참가했다. 조별 예선에서 네덜란드는 벨기에에게 0대1로 패했으나 사우디, 모로코를 이기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전에서는 베르캄프-욘크의 골로 아일랜드를 2대0으로 완파하고 8강 진출을 결정 지었는데 8강전 상대는 대회 우승 후보 1순위인 브라질이었다. 전반전을 조심스럽게 0대0으로 마친 양팀은 후반전 들어서 본격적인 난타전을 전개했다. 후반전 12분과 22분에 브라질의 호마리오-베베토에게 각각 골을 허용한 네덜란드는 바로 반격에 나서 베르캄프와 빈터가 추격골과 동점골을 터뜨리며 달라스 커튼볼 스타디움에 운집한 6만여 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후반 33분 경 브라질의 백전노장인 왼 쪽 사이드백 블랑코에게 통렬한 장거리 프리킥 골을 허용하면서 3대2로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네덜란드VS브라질戰은 미국 월드컵 최고의 빅게임이었다.
로날드 쿠만은 80년대 말~90년대 중반까지 이태리의 프랑코 바레시와 세계 넘버원 리베로 자리를 놓고 경합한 선수다. 바레시가 '지능적이고 수비적인 리베로'였다면 쿠만은 '파워풀 하고 공격적인 리베로'라고 볼 수 있다. 쿠만이 어느 정도로 공격적인 리베로였는지는 현역 시절 소속팀에서의 기록을 살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로날드 쿠만의 현역 시절. (시즌-팀: 시합수/골 순서.) 1980/81 그로닝겐: 24시합/4골 1981/82 그로닝겐: 32시합/15골 1982/83 그로닝겐: 33시합/14골
1983/84 아약스: 32시합/7골 1984/85 아약스: 30시합/9골 1985/86 아약스: 32시합/7골
1986/87 아인트호벤: 34시합/16골 1987/88 아인트호벤: 32시합/21골 1988/89 아인트호벤: 32시합/14골
1989/90 바르셀로나: 36시합/14골 1990/91 바르셀로나: 21시합/6골 1991/92 바르셀로나: 35시합/16골 1992/93 바르셀로나: 33 시합/11골 1993/94 바르셀로나: 35 시합/11골 1994/95 바르셀로나: 32시합/9골
1995/96 페예노르트: 31시합/10골 1996/97 페예노르트: 29시합/9골
기록만 봐서는 수비수 그것도 최종 수비수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쿠만은 역대 세계적 리베로(스위퍼)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리베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리베로의 상징적 존재인 프란츠 베켄바워 그리고 78년 아르헨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다니엘 파사렐라(스타클래식 28)도 공격력이 매우 좋았지만 쿠만 정도는 아니었다. 아인트호벤 시절 한 시즌(87-88시즌)에 32시합/21골을 터뜨린 걸 보면 그 공격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쿠만은 현역 시절 대표팀이든 소속팀이든, 팀이 3-5-2 혹은 3-4-3 포메이션을 쓸 경우에 공격시 3의 위치가 아닌 5 또는 4의 위치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EURO88 때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그 대회에서 쿠만은 스토퍼인 라이카르트 보다 오히려 앞 쪽에서 플레이를 했다.
쿠만은 '중거리슛의 명수'로도 유명하다. 쿠만은 150km 속도의 강력한 킥력을 자랑했기에 쿠만이 프리킥을 차려고 하면 벽을 쌓고 있는 상대 선수들과 골키퍼들이 큰 위협을 느꼈다. 게다가 킥도 정확했기 때문에 쿠만의 롱킥은 전술의 일부분으로서도 크게 활용됐다.
맨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쿠만은 리누스 미셸 감독의 제자이자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제자이기도 하다. 특히 요한 크루이프는 쿠만에 대해서 늘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크루이프는 수제자인 로날드 쿠만을 이렇게 평했다. ‘내 감독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수가 쿠만이었다. 그는 시합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다. 쿠만은 내가 추구하는 축구에 공감해 주었다. 그랬기에 아약스에서 내가 감독으로 있는 바르셀로나로 와 준 것이다. 쿠만은 노캄푸 스타디움에 두 번이나 찾아와서 바르셀로나 이적을 결정했다. 선수라면 돈 보다도 이러한 멋진 결단이 필요하다! 그는 수비수로서 이상적인 선수이고 득점력도 겸비하고 있다. 스페인 리그 아니 세계 어느 리그에서 한 시즌 15골 이상을 넣을 수 있는 수비수가 있겠는가!‘라고.
로날드 쿠만은 리더쉽도 풍부해 장래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라는 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벤피카 감독으로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 임하고 있는 쿠만)
로날드 쿠만(Ronald Koeman) 국적: 네덜란드 나이: 1963년생 신장: 182cm 포지션: 리베로(스위퍼) 소속팀: 그로닝겐(80/83)-아약스(83/86)- 아인트호벤(86/89)- 바르셀로나(89/95)-페예노르트(95/97)
네덜란드 대표팀 데뷔: 1983년 A매치 기록: 78시합/14골 월드컵 출전: 90년, 94년 대회
주요 타이틀 84-85시즌 리그우승(아약스) EURO88 우승 88-89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우승(아인트호벤) 91-92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우승(바르셀로나) 90/91~93/94 스페인 리그 4연패(바르셀로나)
참고: 로날드 쿠만의 두 살 위의 친형인 에르윈 쿠만(179cm)도 네덜란드 대표 출신입니다.[아래 사진] 에르윈 쿠만은 현역 시절 미드필더였는데 왼발잡이로서 측면 돌파가 상당히 예리한 선수였어요. 90년, 94년에 참가를 했습니다. 대표팀 경력은 동생인 로날드 보다는 짧습니다.
 (아인트호벤 시절의 에르윈 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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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약스랑 아인트호벤 페예를 다 뛴선수는 이선수가 처음이 아닐까;;;;;
아~ 챔스예선볼때 어디서 본것 같은 얼굴인것 같았는데 이사람이였군
98월드컵 한국 vs 네덜에서 선제골 넣었던 분이 아마 이 분이지요?
그분은...다름아닌 코쿠 옹 이시죠.^^
아; 선제골이 아니었나요; 이 분도 골 넣긴 했던 것 같은데; 발로; ㅎㅎ
쾨만은 98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는데요..ㅎㅎ 그 이전에 은퇴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님께서 생각하시는분이 로날드 데부르 가 아닐런지요.^^ 한국전에서 득점을 했죠. 그 선수의 쌍둥이형이 프랑크 데부르 였고, 그 당시 네덜란드의 주장이었죠.^^
아아; 데부어 형제랑 착각했었군요; 그랬구나...
이분은 이제 psv감독이시죠....
32경기 21골.... ㄷㄷㄷ 최종수비수가```
최종수비수이신 이분이 우리나라....아니 전세계의 왠만한 공격수들보다 훨씬 낫네요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존경존경~
이분 벤피카 감독 아닌가요? 아닌가
06-07시즌부터 PSV아인트호벤의 감독님이 되셨습니다..
오 이감독.. 대단한 사람이네...
-_-그럼 공격적인 수비수 김진규를 데려가보시지않으실라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분이 맛타리그에서 쏠쏠한 재미를 주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는사람만 알아요, 유망주는 아니라서~_~ 슛팅부문 능력치 대박!
총 골이 193골;;; 대박이십니다 쾨만 감독님!
무슨 수비수가 시즌당 10골 넘어;;-_-;;
이분이 ronald koeman이시군요
감독으로의 역량도 대단한 분이죠.. 차기 한국감독이길 바랬는데..
네덜란드어 발음으론 로날트 쿠만이죠.쾨만은 영어식 발음
왜 위닝에서 중거리슛특능이랑 슛파워가 95였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한글로는 이름이 뭐죠 ㅡㅡ??..맛타에서 좀 찾아봐야겠는데 ;;
히딩크님 감독 뒤를 이어 PSV감독을 맡으시는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