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난 중에 포탄이 날라가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뾰오...하는 소리는 포탄이 높이 떠가는 소리라는 것을 압니다.
잠시후에 또 한방이 대구시내에 떨어졌고
잠시후에 또 한방이 대구시내에 떨어졌고
네번쩨포탄은 뾰오가 아니고
"슈슈슈슈...."
이는 포탄이 낮게 떠가는 소리입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꽝 !"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터졌습니다.
그러자 조용하던 대구시내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 처럼 와글와글 거리기 시작하였고 차량들이 빵빵 거립니다.
인민군들은 전라도를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점령했으며 들려오는 소문에는 국민들의 환영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대구와 부산만이 남아 있는데, 대구에는 전국의 피난민들이 다 모여서 대구가 터질 지경 입니다.
인민군들이 대구를 점령하려면 이 피난민들이 거추장 스러운 것이기에 포를 쏴서 분산시키느라고 `심리전`을 사용한 것입니다.
아침에 군인들이 우리환자들을 차에 태우고 역으로 가는데 인파에 밀려 차가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몽둥이를 가지고 나와서 휘두르자 간신히 길이 트여 우리는 대구역으로 왔습니다.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디에나 인산인해입니다.
형이 군인들에게
"어디로 가나요?"
라고 묻자
"비밀 이야"
라고 합니다.
우리가 내린 곳은 밀양역입니다.
66년 전의 밀양은 아주 한적한 시골 입니다.
표를 파는 조그만 대합실이 하나있을 뿐입니다.
군인들은 환자들을 한곳에 다 내려두지 않고 부산까지 가는동안 모든 도시에 분산시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밀양역에 내린 것은 불고 7명 뿐입니다.
한참 있자 한국 군인이 트럭을 몰고와서 우리를 데려 가는데 우리가 간곳은 밀양국민학교 입니다.
밀양 국민학교정문에는
밀양 제7육군 병원
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학교 전체를 병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교실 하나에는 군인환자들이 45명씩 담요를 한장 깔고 3줄로 누워 있고 담요 한장은 덮는데 나에게도 담요 2장이 지급되었습니다.
사무 착오인지 일부러 그런 것인지 군인들 틈바구니에 일반 피난민인 조그만 소년인 내가 낀것이 신기한듯 모두 바라봅니다.
내가 총을 맞은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너 퇴원하면 우리집에가서 같이 살자"
라고 하는 군인도 있습니다.
군인들은 부상당한 상태가 모두 달라 각양각색입니다.
팔다리가 하나없는 사람 여기저기에 총을 맞은 사람 엉덩이가 패인 사람
어는 군인은 낙동강 전투에서 낮에는 고지를 뺃고 밤에는 빼잇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민군이 던진 수류탄이 날라오자 그것을 받아다시 던지다가 앞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온 몸이 쌔까맣게 작은 파편들이 달라붙었고
의사가 핀셋트로 하나하나 뽑아 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양쪽 눈에는 파편조각이 두 눈동자에 박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이제 곧 일본으로 간다고 합니다.
하룻밤만지나면 한두명이 죽어서 나갑니다.
내일은 누구차레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