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의 연방기자협회(BPK) 강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한 기자가 “오는 9월 26일 오후 6시에 어디에 있을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자신의 후임 총리를 정하는 총선일 저녁에 무엇을 할 예정이냐는 질문이었다.
메르켈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아직 생각 못 해봤네요. 아마도 나한테 소중한 정당과 관련된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총선이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데다, 이날은 정당 대표가 아니라 독일의 국정 책임자로서 기자회견장에 섰다는 점을 고려해 일부러 여당인 기독민주당(이하 기민당)의 당명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메르켈은 “제가 그 당의 당원입니다”라고 했다.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메르켈은 이날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인 단체인 BPK 초청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1949년 출범한 BPK는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총리를 초청해 국정 현안은 물론이고 총리의 개인사까지 질문을 쏟아낸다. 이날 메르켈은 지난주 독일 서부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와 백신 접종에 대해 13분에 걸쳐 모두 발언을 한 후 80분간 사방에서 날아드는 질문에 답했다. 늘 그랬듯이 메르켈은 준비된 원고가 없었다. 메르켈의 BPK 기자회견은 2005년 총리 취임 이후 이날이 29번째였으며,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독일 언론들이 집중 조명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메르켈의 개인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질문이 나왔다. 어떤 기자가 “당신 인생에서 동독 출신이라는 게 여전히 중요한가”라고 물었다. 메르켈은 “뿌리 없는 미래는 없다”며 “(어린 시절 동독에서 자란 것은) 당시 무슨 일들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해줬기 때문에 좋은 정치적 커리어를 갖기 위한 바탕이 됐다”고 받았다.
메르켈은 동독에서 공부하던 시기를 회상하며 “나는 과학자”라고 했다. 그는 정확하게 현안을 바라보자고 강조할 때 이 표현을 자주 쓴다. 메르켈은 1986년 동독 시절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그가 앉은 자리 앞에는 ‘메르켈 박사(Dr. Merkel)’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과학자답게 그는 숫자를 정확하게 제시하려 애썼다. 홍수 높이를 설명하다가 “8.8m”라고 말한 메르켈은 곧바로 “8.87m”로 정정했다. 그는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GDP(국내총생산)의 3.5%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소수점 단위의 숫자를 그는 술술 이야기했다.
메르켈은 공격적인 표현을 자제하며 포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그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캠페인을 세번 언급했지만 한번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실행에 옮겨달라며 금요일마다 학교에 결석하는 캠페인으로서, 다소 급진적인 환경운동으로 평가된다. 여당인 기민당의 우파 정치인들은 이 캠페인에 대해 지나치다며 자주 비난하지만 메르켈은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자기편을 과도하게 감싸지 않았다. 이날 기자들은 기민당 총리 후보인 아르민 라셰트에 대해 기후변화 정책을 놓고 우왕좌왕하고 홍수 피해에 적절히 대비하지도 못했다며 맹공을 가했다. 라셰트는 홍수로 직격탄을 맞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지사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메르켈이 라셰트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셰트를 적극 방어하지도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국정 현안을 놓고 쏟아지는 질문을 메르켈은 막힘없이 설명했다. 기후변화 대책, 러시아와의 천연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를 둘러싼 논란,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메르켈은 93분에 걸친 회견을 마치면서 “언론인 여러분 고맙다. (BPK 기자회견에 참가한 것은)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http://naver.me/xorlJq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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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처럼 덕망있는 여성지도자가 다시 나올수있을까... 앞으로는 없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