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진짜 일본만화의 세계(4회)-만화와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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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화이론가들은 “우리가 만화왕국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었
던 까닭은 만화매체에 ‘시민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연간 20억 권이 훨씬 넘는 만화책을 찍고,출판만화 판매액만 6천억
엔(약6조원)에 달한다.인구 1명이 연간 20권 이상의 만화를 구매하고 최근에
는 영화계 마저 만화가 지배하고 있다.‘모노노케 히메’란 극장용 만화영화
는 97년 한햇동안 1천2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그해 전체영화 가운데 흥행1위
를 차지했다.일본인은 만화 속에서 태어나 만화홍수에 떠밀려 죽어간다.
일본의 현역 대장상 미야자와 유기치.그가 75살이던 지난 95년,한 잡지에
정치칼럼을 연재한 바 있다.놀랍게도 ‘빅코믹 스피리츠’란 주간만화잡지에
서였다.일본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원로정치인으로 ‘수상’까지 역임
한 미야자와가 만화잡지에 칼럼을 연재했다는 사실은 우리식 잣대로 재자면
‘충격’일 수밖에 없다.그러나 정작 미야자와 대장상 본인은 태연했다.“젊
은 독자의 정치적 식견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태도다.
‘빅코믹 스피리츠’는 당시 1주일에 1백40만 권을 찍었던 청년만화잡지로
우리가 보기에는 ‘음란 만화잡지’랄 수도 있는 표현도 마구 등장하는 만화
책이다.
일본만화가 대접받고 있는 위치는 ‘대중매체’(mass media)라는 확고부동
한 자리다.국민 전 계층의 의사소통도구 혹은 오락거리로 ‘시민권’을 부여
받고 있다는 뜻이다.몇 해전 필자는 우리 시사만화작가들과 함께 일본의 도
쿄를 방문한 적이 있다.그때 만난 일본의 만화 영화평론가 오노 고세이와는
한일간의 만화산업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이야기 도중 오노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한국의 만화매체를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면 안 된다”
고 선언하듯 말했다.그는 “일본의 만화를 한국 대중매체와 비교하고 싶다면
,한국의 영화나 소설과 비교해야 옳다”고 잘라 말했다.한국에서는 만화를
아직 청소년층을 기준으로 ‘유해매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
고 있다.말하자면 극히 제한된 계층의 의사소통 도구로 대접받는 셈이다.‘
시민권’은 고사하고 ‘사람대접’마저 제대로 못 받는 형편이다.
우리 정부는 90년대 들어 줄기차게 만화산업을 “21세기의 첨단산업으로 육
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물론 경쟁 대상은 일본이다.일본만화가
‘시민권’을 획득하고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동안 우리 만화는 언제
나‘유해매체 감시’속에서 살아야 한다.그래서 우리 청소년 사이에도 “한
국만화는 재미없어 안 본다”는 막말까지 나오고 있다.이러고도 우리 만화가
일본과의 경쟁이 가능할까.우리 문화당국이 대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