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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bhāva:[m.] personality; individuality.
bhāva,(m.) condition; nature; becoming.
bhavati( > bhūta > bhava >bhāva)
慾界果報와 業이 없다면(abhavissa cond.3sg. of to be),
慾有(bhavo to become)가 알려질 수 있는가?
“kāmadhātuvepakkañca, ānanda, kammaṃ nābhavissa, api nu kho kāmabhavo paññāyethā”ti?
아난다여, 욕계의 과보를 가져오는 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욕계의 존재를 천명할 수 있는가?
무명에 덮인, 중생, 갈애에 결박되어 저열한 界에 識이 확고하게 머문다.
이와 같이 미래 다시 變成(bhava 有, to become)의 생겨남이 있다(hoti to be).
이와 같이 有(變成 bhava , to become)가 있다(/이다 hoti to be).
avijjānīvaraṇānaṃ sattānaṃ taṇhāsaṃyojanānaṃ hīnāya dhātuyā viññāṇaṃ patiṭṭhitaṃ
evaṃ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 hoti. …
evaṃ kho, ānanda, bhavo hotī”ti.
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저열한 [욕]계에 알음알이를 확립한다.
이와 같이 내생에 다시 존재[再有] 하게 된다. …
아난다여, 이런 것이 존재이다.
“seyyathāpi, bhikkhave, bījāni akhaṇḍāni apūtīni avātātapahatāni sārādāni
sukhasayitāni sukhette suparikammakatāya bhūmiyā nikkhittāni.
devo ca sammādhāraṃ anuppaveccheyya.
evassu tāni, bhikkhave, bījāni vuddhiṃ viruḷhiṃ vepullaṃ āpajjeyyuṃ.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씨앗들이 부서지지 않았고 썩지 않았고 바람과 태양에 상하지 않았고
완전하고 잘 보관되어 있어 비옥한 토지에 심은 뒤 비가 적절하게 내린다면
그 씨앗들은 싹이 트고 자라고 증장하고 풍성하게 되는 것과 같다.
yaṃ, bhikkhave, lobhapakataṃ kammaṃ lobhajaṃ lobhanidānaṃ lobhasamudayaṃ,
yatthassa attabhāvo nibbattati tattha taṃ kammaṃ vipaccati.
yattha taṃ kammaṃ vipaccati tattha tassa kammassa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diṭṭhe vā dhamme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비구들이여, 탐욕이 만들었고, 탐욕에서 생겼고, 탐욕이 원인이고, 탐욕에서 일어난 업은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곳에서 익는다. 업이 익는 그 곳에서 그 업의 결과를 경험한다.
그것은 금생이나 혹은 내생에서 일어난다.
upasaṅkamitvā — “bhagavato purato ṭhassāmī”ti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
na sakkoti saṇṭhātuṃ.
seyyathāpi nāma sappi vā telaṃ vā vālukāya āsittaṃ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ṇṭhāti;
evamevaṃ hatthako devaputto —
“bhagavato purato ṭhassāmī”ti osīdatimeva saṃsīdatimeva, na sakkoti saṇṭhātuṃ.
가서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땅으로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마치 정제된 버터와 참기름을 모래에 부으면 모래 속으로 스며들고 배어들어서 설 수 없는 것처럼
신의 아들 핫타까는 '나는 세존의 앞에 서리라.'고 하였지만
가라앉고 스며들어서 바로 설 수가 없었다.
atha kho bhagavā hatthakaṃ devaputtaṃ etadavoca —
“oḷārikaṃ, hatthaka, attabhāvaṃ abhinimmināhī”ti .
그러자 세존께서는 <*無煩天, Avihā> 신의 아들 핫타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핫타까여, 그대의 거친 몸을 만들어라.
“evaṃ, bhante”ti, kho hatthako dev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oḷārikaṃ attabhāvaṃ abhinimmin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
ekamantaṃ ṭhitaṃ kho hatthakaṃ devaputtaṃ bhagavā etadavoca --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신의 아들 핫타까는 세존께 대답한 뒤
자신의 거친 몸을 만들어서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결에 섰다.
신의 아들 핫타까가 한 곁에 섰을 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ye te, hatthaka, dhammā pubbe manussabhūtassa pavattino ahesuṃ,
api nu te te dhammā etarahi pavattino”ti?
“ye ca me, bhante, dhammā pubbe manussabhūtassa pavattino ahesuṃ,
te ca me dhammā etarahi pavattino;
ye ca me, bhante, dhammā pubbe manussabhūtassa nappavattino ahesuṃ,
te ca me dhammā etarahi pavattino.
“핫타까여, 그대가 인간이었을 때에 그대에게 나타났던 그 법들이 지금도 나타나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인간이었을 때에 제게 나타났던 그 법들이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었을 때에 제게 나타나지 않았던 법들도 지금 제게 나타납니다.
‘yadā, bhante, brahmā sanaṅkumāro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pātubhavati,
oḷārikaṃ attabhāvaṃ abhinimminitvā pātubhavati.
yo kho pana, bhante, brahmuno pakativaṇṇo anabhisambhavanīyo
so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cakkhupathasmiṃ.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할 때는
거친 자기 모습을 창조한 뒤에 출현합니다.
세존이시여, 범천의 본래 모습은 삼십삼천의 신들의 눈의 영역으로는 체험하지 못합니다.
atha, bhante, brahmā sanaṅkumāro oḷārikaṃ attabhāvaṃ abhinimminitvā kumāravaṇṇī hutvā
pañcasikho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pāturahosi.
세존이시여, 그러면 범천 사낭꾸마라는 거친 자기 모습을 창조하여
빤짜시카 동자의 용모를 하고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합니다.
‘atha kho, bhante, brahmā sanaṅkumāro tettiṃse attabhāve abhinimminitvā
devānaṃ tāvatiṃsānaṃ paccekapallaṅkesu pallaṅkena nisīditvā deve tāvatiṃse āmantesi —
세존이시여, 그러면 범천 사낭구마라는 서른 세 가지로 자기 모습을 창조한 뒤
삼십삼천의 신들의 각각의 자리에 가부좌하고 앉아 삼십삼천의 신들을 불러서 말합니다.
Rūpī cātummahābhūtiko kabalīkārāhārabhakkho, ayaṃ oḷāriko attapaṭilābho.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이루어지고,
물질적인 자양으로 부양되는 것, 이것이 거친 자아의 획득입니다.
etadaggaṃ, bhikkhave, attabhāvīnaṃ yadidaṃ — rāhu asurindo.
etadaggaṃ, bhikkhave, kāmabhogīnaṃ yadidaṃ — rājā mandhātā.
etadaggaṃ, bhikkhave, ādhipateyyānaṃ yadidaṃ — māro pāpimā.
sadevake, bhikkhav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tathāgato aggamakkhāyati arahaṃ sammāsambuddho.
imā kho, bhikkhave, catasso aggapaññattiyo”ti.
비구들이여, 몸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아수라의 왕인 라후가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자들 가운데서는 만다따 왕이 최고이다.
비구들이여, 지배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는 마라 빠삐만이 최고이다.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는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이 으뜸이라고 말해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attasañcetanā kamati
no parasañcetanā,
attasañcetanāhetu tesaṃ sattānaṃ tamhā kāyā cuti hoti.
세존이시여, 자기 존재를 획득할 때 남의 의도가 아닌 자신의 의도에 의해
자기 존재를 획득할 경우에 중생들은 자신의 의도 때문에 그 몸을 버리고 죽습니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parasañcetanā kamati
no attasañcetanā, parasañcetanāhetu tesaṃ sattānaṃ tamhā kāyā cuti hoti.
세존이시여, 자기 존재를 획득할 때 자신의 의도가 아닌
남의 의도에 의해 자기 존재를 획득할 경우에 중생들은 남의 의도 때문에 그 몸을 버리고 죽습니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attasañcetanā ca kamati
parasañcetanā ca, attasañcetanā ca parasañcetanā ca hetu tesaṃ sattānaṃ tamhā kāyā cuti hoti.
세존이시여, 자기 존재를 획득할 때 자신의 의도와 남의 의도에 의해 자기 존재를 획득할 경우에
중생들은 자신의 의도와 남의 의도 때문에 그 몸을 버리고 죽습니다.
tatra, bhante, yāyaṃ attabhāvapaṭilābho yasmiṃ attabhāvapaṭilābhe neva attasañcetanā kamati
no parasañcetanā, katame tena devā daṭṭhabbā’”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ā, sāriputta, devā tena daṭṭhabbā”ti.
세존이시여, 그런데 자기 존재를 획득할 때 자신의 의도에 의해서도 아니고
남의 의도에 의해서도 아닌 자기 존재를 획득함이 있습니다.
어떤 신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여겨야 합니까?
“사리뿟따여,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난 신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여겨야 한다.”
tena kho pana samayena kakudho nāma koliyaputto āyasmato mahāmoggallānassa upaṭṭhāko
adhunākālaṅkato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nno.
tassa evarūpo attabhāvapaṭilābho hoti —
seyyathāpi nāma dve vā tīṇi vā māgadhakāni gāmakkhettāni.
so tena attabhāvapaṭilābhena neva attānaṃ no paraṃ byābādheti.
그 무렵에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시자였던 꼴리야의 아들 까꾸다가
바로 그때 임종하여 마음으로 만든 몸을 얻었다.
그는 두세 개의 마가다의 마을과 들판에 해당하는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신과 남에게 해를 초래하진 않았다.
yaṃ kho, bhikkhave, kāmayamāno tajjaṃ tajjaṃ attabhāvaṃ abhinibbatteti
puññabhāgiyaṃ vā apuññabhāgiyaṃ vā, ayaṃ vuccati, bhikkhave, kāmānaṃ vipāko.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는 늘 그것에 어울리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만들게 된다.
그 존재가 공덕이 되건 악덕이 되건 말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각적 욕망의 과보라 한다.
yaṃ kho, bhikkhave, vediyamāno tajjaṃ tajjaṃ attabhāvaṃ abhinibbatteti
puññabhāgiyaṃ vā apuññabhāgiyaṃ vā, ayaṃ vuccati, bhikkhave, vedanānaṃ vipāko.
yaṃ kho, bhikkhave, avijjāgato tajjaṃ tajjaṃ attabhāvaṃ abhinibbatteti
puññabhāgiyaṃ vā apuññabhāgiyaṃ vā, ayaṃ vuccati, bhikkhave, āsavānaṃ vipāko.
idha me, bhante, sāmiko kālaṅkato aññataraṃ yakkhayoniṃ upapanno.
so me teneva purimena attabhāvena uddassesi.
na kho panāhaṃ, bhante, abhijānāmi tatonidānaṃ cittassa aññathattan”ti.
존자시여, 여기 제 남편이 임종을 하여 어떤 약카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기의 전생의 몸을 [만들어] 제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puna caparaṃ, bhante, mahāsamuddo mahataṃ bhūtānaṃ āvāso.
tatrime bhūtā — timi timiṅgalo timirapiṅgalo asurā nāgā gandhabbā.
santi mahāsamudde yojanasatikāpi attabhāvā, dviyojanasatikāpi attabhāvā,
tiyojanasatikāpi attabhāvā, catuyojanasatikāpi attabhāvā, pañcayojanasatikāpi attabhāvā.
다시 세존이시여, 큰 바다는 띠미, 띠밍갈라, 띠미라밍갈라, 아수라, 나가,
간답바와 같은 큰 존재들의 거주처입니다.
큰 바다에는 백 요자나의 몸을 가진 존재도 있고, 이백 요자나, 삼백 요자나, 사백요자나,
오백 요자나의 몸을 가진 존재도 있습니다.
mahā, upāli , attabhāvo gambhīre gādhaṃ vindati.
우빨리여, 그는 몸집이 아주 커서 깊은 곳에서도 충분히 발판을 찾기 때문이다.
“ahañhi, bhante, yāvatakampi me iminā attabhāvena paccanubhūtaṃ
tampi nappahomi sākāraṃ sauddesaṃ anussarituṃ,
kuto panāh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issām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 pe ...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issāmi, seyyathāpi bhagavā?
세존이시여, 저는 현재의 이 몸으로 경험한 것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제가 세존께서 하시는 것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여
즉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겠습니까?
ariyaṃ kho ahaṃ, brāhmaṇa, lokuttaraṃ dhammaṃ purisassa sandhanaṃ paññapemi.
porāṇaṃ kho panassa mātāpettikaṃ kulavaṃsaṃ anussarato
yattha yattheva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tena teneva saṅkhyaṃ gacchati.
khattiy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khattiyo’tveva saṅkhyaṃ gacchati;
brāhmaṇ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brāhmaṇo’tveva saṅkhyaṃ gacchati;
vess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vesso’tveva saṅkhyaṃ gacchati;
sudd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suddo’tveva saṅkhyaṃ gacchati.
바라문이여, 나는 참으로 성스러운 출세간법을 인간의 재산으로 규정하노라.
그러나 사람들은 어디에 태어나건
선조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족보를 상기하여 그것에 따라 이름을 얻는다.
끄샤뜨리야 가문에 만일 태어나면 끄샤뜨리야라고 하고,
바라문의 가문에 태어나면 바라문이라고 하고,
와이샤의 가문에 태어나면 와이샤라고 하고, 수드라의 가문에 태어나면 수드라라고 한다.
“‘attabhāvapaṭilābhaṃpāhaṃ, bhikkhave, duvidhena vadāmi — sevitabbampi, asevitabbampi;
tañca aññamaññaṃ attabhāvapaṭilābhan’ti —
iti kho panetaṃ vuttaṃ bhagavatā. kiñcetaṃ paṭicca vuttaṃ?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나는 자기 존재의 획득을 두 가지로 설한다.
받들어 행해야 할 것과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자기 존재의 획득은 서로 상반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연유로 이와 같이 설하셨을까요?
yathārūpaṃ, bhante, attabhāvapaṭilābhaṃ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 evarūpo attabhāvapaṭilābho na sevitabbo;
yathārūpañca kho, bhante, attabhāvapaṭilābhaṃ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 evarūpo attabhāvapaṭilābho sevitabbo.
세존이시여, 어떤 자기 존재의 획득을 받들어 행할 때 그에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들면, 그런 것은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기 존재의 획득을 받들어 행할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하면, 그런 것은 받들어 행해야 합니다.
“kathaṃrūpaṃ, bhante, attabhāvapaṭilābhaṃ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자기 존재의 획득을 받들어 행할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듭니까?
sabyābajjhaṃ {sabyāpajjhaṃ (sī. syā. kaṃ. pī. ka.)}, bhante, attabhāvapaṭilābhaṃ abhinibbattayato
apariniṭṭhitabhāvāya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세존이시여, 고통이 함께하는 자기 존재의 획득이 생길 때
그에게 생존을 끝낼 수 없도록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듭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자기 존재의 획득을 받들어 행할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합니까?
abyābajjhaṃ, bhante, attabhāvapaṭilābhaṃ abhinibbattayato pariniṭṭhitabhāvāya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세존이시여, 고통이 없는 자기 존재의 획득이 생길 때 그에게
생존을 끝낼 수 있도록 유익한 법들이 증장하고 해로운 법들이 줄어듭니다.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evarūpopi nāma satto bhavissati!
evarūpopi nāma yakkho bhavissati! evarūpopi nāma attabhāvapaṭilābho bhavissatī’”ti!!
‘참으로 경이롭구나. 참으로 놀랍구나.
이런 모습을 한 중생이 있고 이런 모습을 한 약카가 있고
이런 모습의 몸을 받은 자가 있다니!”
sādhu khvassa, bhikkhave, yaṃ idhekacco sakyaputtiyapaṭiñño
evarūpampi attabhāvapaṭilābhaṃ paṭisaṃvediyetha.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가 만일 자기 존재가 이러한 상태로 되는 것을 겪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자기가 석가족 후예인 [나]의 제자라고 주장해도 좋을 것이다.
“kathañca, thera, ekavihāro vitthārena paripuṇṇo hoti.
idha, thera, yaṃ atītaṃ taṃ pahīnaṃ, yaṃ anāgataṃ taṃ paṭinissaṭṭhaṃ,
paccuppannesu ca attabhāvapaṭilābhesu chandarāgo suppaṭivinīto.
evaṃ kho, thera, ekavihāro vitthārena paripuṇṇo hotī”ti.
6장로여, 그러면 어떻게 하면 혼자 머무는 것이 상세하게 완성되는가?
장로여, 여기서 과거의 것은 이미 버려졌고 미래의 것은 포기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자기 존재의 획득들에 대한 욕탐이 잘 제거되었다.
장로여, 이렇게 하여 혼자 머무는 것이 상세하게 완성된다.
atha kho bhagavā parittaṃ gomayapiṇḍaṃ pāṇinā gahe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 —
“ettakopi kho, bhikkhu, attabhāvapaṭilābho
natthi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ati.
그때 세존께서는 작은 쇠똥 덩어리를 손에 들고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자기 존재란 것은 결코 있지 않다.
ettako cepi, bhikkhu, attabhāvapaṭilābho abhavissa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nayidaṃ brahmacariyavāso paññāyetha sammā dukkhakkhayāya.
yasmā ca kho, bhikkhu, ettakopi attabhāvapaṭilābho natthi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tasmā brahmacariyavāso paññāyati sammā dukkhakkhayāya.
비구여, 만일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자기 존재란 것이 있다면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자기 존재란 있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첫댓글 지기의 존재 보다는 자아의 존재 가 옳을듯 합니다. 본문에서도 자기보다는 자아...
근데 이 경문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