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두를 신어면 바람 꾼이란 시절이 있었다.
어디 백구두뿐이랴. 머리칼에 무스 잔뜩 발라 빗어 올리고
와이셔츠 깃 올려세우고
혁대는 구찌의 최고급으로 허리에 힘을 넣어 묶었다.
그 밑을 보니 바지 선이 자르르 흐르며 찰랑댄다.
금방이라도 홀드 하면 하늘을 날 것 같은 느낌의 멋쟁이 신사.
그의 가슴에도 순정의 불이 타오르고 있을까?
아니면 홀 안의 불나방으로 나방 털만 잔뜩 날리고 가버릴까?
혼자만의 생각은 늙음을 정지하려는 듯 잔뜩 부풀어 있다.
춤 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백구두 신은 멋쟁이 신사.
칠순은 훨씬 더 되어 보이는 데 중절모에 꿩 깃털을 마음 흔들리게 꼽고
적당히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 할머니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단장을 짚고 들어서는 모습이 부티가 난다.
붉은빛 손수건 돌돌 말아 흰색 슈트 왼쪽 주머니에 꽂은 모습이
보통 난봉꾼이 아닌듯해 보인다.
중후한 어느 사모님의 겨드랑이 옆을 지나는 소맷동엔 커프스가 반짝이고 있다.
가끔가다 살짝살짝 드러나 보이는 넥타이핀의 모조 다이아몬드 빛이
상대방 가슴에 와 닿는다.
모양만 멋진 것이 아니라 춤사위가 보는 이의 눈동자를 고정하는 매력이 있다.
이제 막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것 같은 또 다른 바람기 있어 보이는 남자.
중년을 넘어 장년의 멋쟁이는 신발에 유독 광이 난다.
그 광나는 발길이 요란을 뜬다.
얼마나 부드럽게 돌려대는지 홀드 한 상대방은 춤에 취해 비틀 된다.
음악에 취하고 춤사위에 취한 저 모습의 황홀함을 훔쳐보는 맛도 무아경지에 이른다.
춤 배운 거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댄스를 배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런 옷매무시를 할 수 있겠는가.
장안 최고의 한량의 모습.
음악만 나오면 끼가 발동해 천하가 내 것 같은 저 신들림의 흔적은 죽기 전엔 절대로
고치질 못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건강한 댄스를 한다면 고칠 필요가 있겠는가?
부지런해 자신의 모습을 깔끔하게 하고 다니면 남 보기도 좋고, 자신도 늘 밝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고, 이래저래 좋은 것 같다는 생각에 머문다.
남성들의 의상은 그렇다 치고 이번엔 여성들의 의상이나 춤 장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처음엔 수줍어 레이스 너들 거리는 옷도 수줍어 하드니 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 그에 버금가는 댄스들의 날개 달린 유희는 걷잡을 수가 없어진다.
춤의 경지보다 옷의 경지가 더 높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지 화려한 드레스의 눈높이를
못 맞추고 발길의 허우적거림은 상대의 리드를 원망하고 있어 보인다.
좀 더 깨물어 먹고 싶은 춤사위의 절정에 도달 할 때 호랑나비 보다 더 멋진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눈앞을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위험수위까지 갈 것 같은 현란함의 느낌을 주는 댄스들의 옷차림엔 마력이 있어
불빛 찬란하다 못해 배고픔을 몰고 오는 눈동자엔 희망이 채워진다.
저 이름 모를 여인과 홀드 한번 해 봤으면 좋으련만 내 손길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내가 못 생겼는가? 어두컴컴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눈길을 고정시킨다.
지나만 가도 손 내밀든가 아니면 눈길의 초점이 따라 와야 하는데
보는 척도 안으니 민망하다 못해 허전하다.
춤의 화려함과 현란함이 교차하는 곳엔 늘 그늘이 있게 마련이다.
붉은 빛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어느 중년 부인의 하얀 속살이 뽀얗게 들어나 보이는 모습.
저 아름다움은 댄스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눈요기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바라보는 황홀함도 일순간 늙음의 정지신호이니,
이 또한 보약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머물기 시작한다.
춤은 인생의 멋이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신바람 실은 완급 조절이 되는 관절속의 연골 같은 존재이다.
삶에 지쳐 허덕일 때, 축 늘어져 사는 맛을 잃을 때 작은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만 사는 게 아니라 상대와 마주서서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우며 함께하는 이를 배려할 줄
아는 지혜를 얻게 될 때도 있다.
백구두 지나간다.
그냥 그동안 지나간 사람들은 손가락질 당하기 일 수 이었지만
요즘의 백구두는 오 멋쟁이 아저씨로 불려 지기도 한다.
삼복더위에 하얀 모시옷 곱게 입고 백구두 광나게 신고 아름다운 여인과 멋진 댄스의
향연을 벌여 이 더위를 이겨 내는 방법도 장안의 피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결론은 백구두를 사기 위해 시내를 나간다.
건데 백구두 파는 집이 잘 없다.
수요가 적은 탓이겠지만 가끔가다 나 같은 겉멋이 잔뜩 들어 있는 사람도 있나 보다.
백구두 코에 검정이 살짝 배색 된 신발을 찾아 나선다.
이번 삼복더위엔 하얀 모시옷 위아래 걸쳐 입고 허리띠 명품은 아니더라도 하얀색 벨트로
허리 동여매고 백구두 속도 내어 신고 어린애처럼 미지의 아름다운 여인과 홀드 하여
사람 사는 맛 나는 댄스를 한 번 해볼 생각이다.
백구두 신었다고 댄스의 매력이 더 발산될지는 모르지만,
늙어가는 마당에 인생 끝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마지막 멋의 몸부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산 역에 해 걸리면 돈이 많아도 어깨 늘어져 멋이 나질 않기 때문에 팔딱대는
몸부림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더 꼬부라지기 전에 아니 꼬부라지지 말라고 허리 펴는 운동을 실시간으로 한다.
복잡한 길도 사뿐사뿐 빠져나가는 두 발의 균형은
잠재된 댄스의 마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직도 청춘이란 착오에 젖은 객기 부리며
백구두 사 신고 남은 끼를 마음껏 발산해 보려 한다.
첫댓글 예전 밤무대의 화려한 무대를 연상케 하는 추억속의 무대를
생각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