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달비라 하기에는
올해 장마는 행보가 좀 특이하다. 제주 근처에 며칠째 머문다는 장마전선이 어제 남부지방을 건너뛰고 중부권에 많은 비를 뿌렸다는데 우리 지역은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월 넷째 금요일은 장맛비가 예보되어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는데 새벽녘 강수량은 미흡했다. 가끔 들리는 동네 내과에 공복 상태로 검진받기 위해 아침밥을 거르고 진료 개시 시각 맞추어 다녀왔다.
검진차 병원을 다녀와 늦은 아침을 드니 창밖엔 비가 그쳐가는 즈음이었다. 오랜 가뭄을 해갈하려면 와달비가 와도 모자랄 판에 감질나게 내리는 비였다. 내가 어릴 적 소낙비를 달리 이르는 말로 와달비라 들은 적이 있다. 비가 후줄근히 내리는 모습을 ‘놋날같이’라고도 한다. 놋날은 돗자리 따위를 엮을 때 날로 쓰는 노끈인데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을 비유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다.
아침나절은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듣지 싶어 나들이는 계획하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을 다녀오는 오는 길에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꽃대감 친구에게 작두를 빌려 왔다. 꽃대감 친구는 내가 채집한 영지버섯이나 산국을 보냈더니 약재로 달여 먹기 위해 구한 작두였다. 지난번 나눈 밭둑의 음나무가지도 약차로 달여 먹기 좋게 토막 내어 말리면서 사진을 남겨 인정 샷으로 보내왔다.
나는 해마다 여름이면 무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근교 숲으로 들어 참나무가 삭은 그루터기에 붙는 영지버섯을 채집해 말려 둔다. 봄철의 산나물 채집에 이어 한여름 활엽수림을 누비며 삼림욕을 겸한 나만의 독특한 피서법이다. 이렇게 애써 채집해 말린 영지버섯은 형제나 주변 지기들에게 보낸다. 지난해 마련한 영지버섯은 울산 작은형님과 부산 여동생에게 넉넉하게 보냈다.
형제 말고도 연이 닿는 지기들에게 아낌없이 보낸 영지버섯인데 가족 가운데 환자가 있는 분은 무척 고마워했다. 그래 놓고 정작 영지버섯을 채집한 나는 여태 모양이 찌그러지고 작은 부스러기만 달여 먹고 있다. 남에게 보낸 영지버섯은 갓이 크고 모양이 반듯한 것이었고 흐드레로 처진 남은 찌꺼기는 내가 차지했다. ‘짚신장이 헌 신 싣는다’는 우리 속담이 여기 어울릴 듯하다.
작년 여름에 채집해 말려 둔 영지버섯은 인연 따라 나누고 이제 몇 조각 남지 않았다. 그 가운데 몇 해 전 어느 산자락에서 찾아낸 커다란 말굽버섯과 갓이 제법 넓은 영지버섯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잘게 조각으로 내지 않으면 약차로 달이기는 적절하지 못해 꽃대감 친구의 작두를 빌려와 조각을 낼 참이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하려고 그간 미루어둔 일 가운데 한 가지였다.
친구 집에서 가져온 작두는 한약 건재상에서 쓰는 날이 작은 작두였다. 내가 작두에 관한 추억은 어릴 적 쇠꼴을 베어 와 쇠죽을 끓일 때 썼던 커다란 날의 농구였다. 그 시절에는 쇠꼴은 물론 볏짚도 잘라 쇠죽으로 끓여 구유에 퍼주면 소가 먹어 치웠다. 집집마다 겨울은 물론 다른 계절에도 김이 나는 쇠죽을 끓여주었는데 지금 축산업에 비하면 비효율적인 소 사육 방법이었다.
베란다 시렁에 보관해둔 건재 버섯이 담긴 바구니를 내리니 부스러기 가운데 유난히 큰 버섯이 세 개로 말굽버섯과 영지버섯이었다. 친구에게 빌려 온 작두로 딱딱한 버섯을 잘게 조각으로 내었다. 작두의 날이 생각보다 날카로워 조심해 다루면서 말굽버섯과 영지버섯을 잘게 잘라 모았다. 작두를 가져온 김에 부스러기 영지버섯들도 약차로 달여 먹기 좋을 만큼 잘게 조각내었다.
내가 평소 약차로 달여 음용하는 재료는 여러 가지 건재가 동시에 섞여진다. 한의사의 처방전이나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지 않은 내 나름의 주먹구구식이다. 내가 사는 생활권 산천에서 손수 구한 건재들이다. 영지버섯과 운지버섯에 헛개나무와 음나무는 기본이렷다. 강가에 꺾어온 산국과 야산에서 캔 망개뿌리인 토복령도 들어가고 울산 친구가 보내준 당귀와 대추도 빠지지 않는다. 22.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