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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4/11/understanding-stalin/380786/?utm_source=SFFB
아래의 글은 안네 애플바움(언론인, 퓰리처상 수상자)이 실은 작년에 새로 나온 Stalin 전기에 대한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영알못이라 번역투 쩔고 문장 난해하지만 감안하고 봐주시길.. ㅠㅠ
스티븐 코트킨의 2014년 저서 'Stalin: Paradoxes of Power, 1878-1928'
스탈린은 어떻게 스탈린이 되었는가? 아니면, 조금 더 정확하게: 어떻게 농노의 손자이자, 세탁부와 반문맹 구두장이의 아들인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잔인한 대량학살자 중 하나인 스탈린 대원수가 되었는가? 무명의 그루지야 마을에서 태어난 소년이 어떻게 유럽의 반을 통치하는 독재자가 되었는가?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기를 선택했던 독실한 젊은이가 열정적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시즘 이데올로그로 자랐는가?
프로이트의 영향 아래, 많은 야심 넘치는 전기작가들은 - 심리학자, 철학자, 역사가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 스탈린의 어린시절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꼭 히틀러의 광신이 그의 양육, 성생활, 혹은 고환이 하나밖에 없다는 주장 등으로 "설명될" 수 있었던 것처럼, 스탈린의 싸이코패스적 잔인함은 주로 스탈린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를 인정사정 없이 팼다"는 아버지의 영향이거나 지역 신부와 바람을 폈던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었다는 식이다. 다른 설명들은 특별히 한쪽 팔을 짧게 만든 사고, 스탈린의 얼굴에 나쁜 흉터를 남긴 천연두 감염, 혹은 발가락 두개가 접합되어 그에게 물갈퀴 같은 왼쪽 발을 안겨준, 악마의 상징과 같은 선천적 기형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정치 또한 스탈린의 전기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일생 동안, 동조자들은 그를 슈퍼히어로로 만들었으나, 반대자들은 그만큼 그들의 편견을 얹었다. 스탈린의 최악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레프 트로츠키는 20세기 스탈린 해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아이작 도이처로 시작하는 한 세대의 역사가들의 스탈린관을 만들었다. 트로츠키의 스탈린은 위트도 없고 흥도 없는 글을 못 읽는 편협한 촌놈으로, 그저 관료제를 조작하고 짐승같은 폭력을 써 권력을 얻은 것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트로츠키의 스탈린은 처음엔 레닌을 배신하고 그 다음에는 마르크시스트의 과업 자체를 배신한 변절자였다. 이런 식의 스탈린 초상화는 여전히 소비에트 혁명에는 지지를 표하는 트로츠키파들에게, 신중하고 시니컬한 음울한 사람인 스탈린 대신에 트로츠키가 권력을 차지했어야 한다는 점을 고무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소련 문서고가 1990년대에 개방된 이래로 이런 정치화, 심리학화된 스탈린 일생의 해석의 복잡한 실타래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정치는 그가 여전히 공적 영역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 영향을 끼친다. 최근 러시아 지도자들은 스탈린이 그의 국민들에게 했던 범죄에 대해 깎아내리나, 그가 유럽을 정복한 군사적 위업은 칭송한다. 그러나 기밀문서들이었던 수천개의 문서들, 숨겨진 회고록들과 편지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진지한 역사가들로 하여금 더 흥미로운 진실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예를들어, 역사가이자 언론인 Simon Sebag Montefiore는 트로츠키의 상상인 멍청한 관료와는 전혀 다른 젊은 대중선동가, 바람둥이, 시인, 팜플랫 작성자로서 스탈린을 보여준다. 무명의 문서고를 깊게, 길게 판 러시아 학자 올레크 흘레브뉵은 혁명기에 대혼란과 다름 없던 소련 공산당이 마침내 스탈린주의화되는 진화를 놀라울만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스탈린이 그의 두 부하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라자르 카가노비치에게 보낸 편지, 굴라그, 집단화, 우크라이나 대기근, KGB의 역사에 관한 출판된 문서들을 바탕으로 흘레브뉵의 책은, 스탈린이 단순히 협잡으로 소련 통치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 일을 그가 혼자 하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는 수천명의 광신적 비밀경찰만큼이나 헌신적인 그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스탈린의 탄생인 1878년부터 1928년까지를 다룬 3부작 중에서 오직 1부만 해도 무려 천쪽에 육박하는 그의 야심찬 전기에서 스티븐 코트킨(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은 다른 수백명의 학자들이 전념해온 '스탈린'을 종합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의 전기 '스탈린'에서 코트킨의 목표는 소련사 서술에 있어서 신화의 거미줄들을 영원히 쓸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프로이트적 해석을 즉각 묵살해버린다. 스탈린의 성장환경은 그의 나이대와 배경을 생각했을 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스탈린 파벌의 일원인 세르게이 키로프는 그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가족을 버리고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은 뒤 고아원에 들어갔다. 다른 친구인 그리고리 오르조니키제는 10살 때까지 양친을 모두 잃었다. 어린 스탈린은 반대로 어머니의 경우 그녀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야심차고 활기넘쳤으며, 그녀의 재능있는 아들을 위하여 그녀의 대가족을 동원했다.
코트킨은 더 중요한 것은 젊은 스탈린은 폭력배로서가 아니라 촉망받는 학생으로서 19세기 후반 티플리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주장한다. 16세에 그는 티플리스 신학교로 진학했다. 그곳은 "캅카스의 교육 사다리에서 가장 높은 단이자 ... 제국의 다른 대학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였다." 그는 결국 학교에서 나오고, 극좌 정치의 그늘진 세계로 들어갔으나, 카리스마적 성격은 여전히 남았다. 그가 석유노동자들 사이에서 선동을 하기 위해 1907년에 갔던 바쿠에서, 그는 기이한 정치적 암살만큼이나 "몸값을 위한 인질잡기, 집단 금품 갈취, 강도질"에 관여하였다. 그는 감옥에 들어갔으나, 극적인 탈출과 광범위한 가명 사용 및 변장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면서 감옥을 나올 수 있었다.
천천히, 코트킨은 스탈린에 대한 꽤 다른 해석을 만들고 다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을 한다. 책의 중요한 성과이자 핵심적인 결함은 그것의 광대한 시야이다. 코트킨은 스탈린의 삶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붕괴와 그 자리에서 새로운 소비에트 제국의 건설에 대한 최종적인 역사를 쓰는 것을 착수해온 것이다. 그의 캔버스는 초심자들도 접근하기 쉽게 레닌은 물론이고 트로츠키, 나데쥐다 크룹스카야(레닌의 아내), 니콜라이 부하린, 펠릭스 제르진스키(체카 수장), 차르와 황후, 세르게이 비테와 표트르 스톨리핀, 그리고 표토르 두로노보 뿐만이 아니라 비스마르크와 무솔리니의 삶으로 가득 차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기가 계속될 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지적성취의 세세한 부분도 드러난다. 잊기 쉬우나 그가 30대 후반이 될 러시아 혁명기의 여명기까지 그의 인생에서 스탈린은 별로 보여준 게 없다. 그는 "돈도 없고, 고정된 거주지도 없고, '의견 제출'(불법언론에 기사를 쓰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전문분야도 없었다." 그는 확실히 국정운영에 훈련도 못 받았고, 무언가 관리한다는 것에 대해 경험도 없었다. 1917년 볼셰비키 쿠데타는 그와 그의 동지들에게 최초로 영광스러운 성공의 맛을 보여주었다. 레닌이 한 도박의 결과로 성공한 그들의 가능성 없어보이던 혁명은 그들의 알려져 있지 않은 광신적 이데올로기를 입증해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의 성공이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변의 안전과 명성, 그리고 권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계속해서 방향을 찾았다. 그리고 스탈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추후에, 외부인들은 소비에트 지도부의 경직된 연설을 믿기지 않는 듯이 들어야 했고 그들이 진실된 것인지 아닌지 물어야 했다. 코트킨의 답은 진실되었다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상상 속의 교육 못 받은 냉소가와는 달리, 실제의 스탈린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의 모든 결정을 이데올로기적 언어를 사용하여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언어사용들은 스탈린의 생각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건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스탈린은 그가 말하는 자신의 계획을 정확하게 행했다.
이는 경제영역에서도 확실하다. 코트킨이 말하듯 볼셰비키는 "인정사정 없는 혁명적 수단의 정당화와 시장을 비롯한 부르주아적인 것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뭉친 생각"에 이끌렸다. 혁명 직후, 이러한 신념들은 그들로 하여금 사적 거래를 금지하게 하고, 산업을 국유화 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곡물을 압류하여 도시에 분배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대규모 폭력 사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1918년, 레닌은 농민들이 국가에 그들의 곡물을 납부해야한다고 말하고 이에 거부하는 사람들은 즉각 총살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곡물징발을 포함한 이러한 정책들이 1920년대에 임시로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20년대 말에 이를 부활시켜 끝내는 이를 더욱 확대시켰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는 그가 읽어온 책들과 정치적 논쟁들의 논리적 결과물이었다. 코트킨이 밝혀내듯 스탈린은 둔한 관료도 단순한 범죄자도 아니었다. 그는 청교도적인 독트린에 대한 완고한 집착으로 형성된 사람이었다. 그의 폭력은 그의 무의식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와 관계된 볼셰비키의 산물이었다.
이 이데올로기는 스탈린이 정치적, 경제적 장애물에 직면하였을 때에 그로 하여금 깊은 확신을 갖게 하였다. 만약 경제 정책이 번영 대신 가난을 만들어냈다면 설명은 간단하다. 이론이 잘못 해석된 것이고, 수행력을 적절하게 갖추지 못한 것이고, 공무원들이 실수를 하는 것이었다. 만약 소련의 정책이 심지어 노동자들 사이에서조차 인기가 없던 것이었다면, 역시 답은 간단하다. 계급 갈등이 심화되어 반감이 늘어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든, 반혁명과 보수주의적 세력, 부르주아들의 비밀스러운 영향이 항상 그 책임을 물어야했다. 이러한 믿음들은 1918년에서 1920년의 적백내전의 치열한 전투들 속에서 강화되었다. 반복해서, 스탈린은 폭력이야말로 성공을 위한 열쇠라는 걸 배웠다. "내전은," 코트킨이 말하길 "볼셰비키를 기형으로 만든 게 아니다. 내전이 볼셰비키를 만들었다. 내전은 착취계급과 국내외의 적들에 대한 투쟁을 발전시키고 입증시킬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볼셰비키는 내전을 통해 폭력적 방법을 쓰는 것을 적법성과 긴급성, 도덕적 열정을 들어 외견상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다."
스탈린에게는, 내전은 특히 그 개인의 형성에 중요하였다. 이는 그로 하여금 최초의 결정권자로서의 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다. 1918년, 그는 볼가 강변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철도 결절지인 차리친이라는 도시로 파견되었다. 그의 임무는 모스크와 페트로그라드의 굶주린 노동자들을 위한 곡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볼셰비키 강도들의 사령관"으로서 곡물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이 도전에 맞서 그는 기꺼이 군사력과 비밀경찰 지부를 사용하였고 다른 볼셰비키 그룹으로부터 1천만 루블을 훔쳤다.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철도가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지역 기술 전문가들을 계급의 적이라고 부르며 처형하였다. 그는 다른 의심가는 반혁명분자들도 처리했다. 코트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는 사디즘이나 공포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전략으로 대중들에게 충격요법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 혁명 내부에 있는 적들이 도시에서 반란을 일으켜 시를 다시 장악하고 백군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다며 경고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은 거의 차리친의 군사적 붕괴로 이어졌고, 레닌은 마침내 스탈린을 모스크바로 소환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곡물을 생산하지는 못했다. 내전이 끝난 후, 스탈린의 군사적 실패는 잊혀졌다. 차리친은 심지어 스탈린그라드로 명명되었다. 이 패턴은 스탈린 일생에 걸쳐 반복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한 위기를 만났을 때 그는 그것을 풀기 위하여 초법적이고 "혁명적 방법"들을 쓴다. 때때로 그 결과는 오히려 위기를 연장시키고 심화시킨다. 그러나 그가 충분히 무자비함을 보여줄 때면, 반대자들은 궁극적으로 으레 사라졌다. 코트킨의 스탈린 3부작의 1부는 소련 농업을 집단화 하겠다는 그의 연설로 끝맺는다. 이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강제이주, 투옥, 그리고 수백만의 기근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는 스탈린의 최종적인 정치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현재 서구에서, 우리는 종종 집단살해의 가해자들이 미쳤거나 비이성적이라고 단순히 가정하곤 한다. 그러나 코트킨이 말해준 이야기와 같이, 스탈린은 비이성적이지도 않았고 미친 사람도 아니었다. 스탈린은 그 나름대로 이성적이고 극단적으로 똑똑한 사람이었으며, 이데올로기가 스탈린이 수백만의 죽음조차도 정당화할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이 더 공포스러운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발트 국가들에게 핵무기를 쓰겠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정치인들의 연설이나 모든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죽이겠다는 ISIS 지도자들의 연설들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우리에게 그들의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이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그것에 설득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들이 궁극적 결정에 있어서 자신들의 내적 논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첫댓글 지난 글이랑 이번 글을 읽어보니 대숙청이 뭔가 감이 오는것 같네요. 특히 군부의 경우는...뭐 지휘관들이 유능한지 무능한지는 이미 따질 필요가 없었던 것 같네요
유능 무능 이전에 그건 군의 문민통제와 규율 및 기강과 관련 있는 거라서.. 스탈린도 누가 유능한지 누가 무능한지 정도는 알았습니다. 실제로 투하쳅스키의 능력을 인정하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로코솝스키 같이 유능한 지휘관도 비리랑 근무태만이 걸려서 숙청당했죠(...)
저 글에서 대숙청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면, 흘레브뉵이 강조한 "혁명기에 대혼란과 다름 없던 소련 공산당이 마침내 스탈린주의화되는 진화"가 제일 적절할 것 같아요. 당과 마찬가지로 군도 대혼란이었거든요 -_-;;
그러니 누구든 작은 스탈린을 건들면 음경되는 거에요. 당과 체제에 개기면 아주 음경되는 거야
@첝 젝트같은 양반이 스탈린한테 걸렸다면...음..
와 직접 번역하신건가요? 잘 읽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장비를정지합니다 ㅋㅋ 저도 네이버 영어사전과 함께 읽었습니다~ 아직 어휘력이 부족해서요 ㅠㅠ
원래 평가와 역사를 모르니 재평가가 이해가 안되네요
콧수염 대마왕 쏘련판 아이언맨
나의 죽음을 원하지만 않으면 완벽한 코바~
니콜라이 부하린이 한 말이었던가요? "코바 왜 나의 죽음을 원하지?"
확실히 권력 잡는거는 박정희 하고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천재적이죠... 뭐........... 반대 급부로 경영은 쪽박을 넘어섰다는 점이겠지만요.
스탈린의 국가경영을 쪽박을 넘어섰다는 정도로 말하기엔..
@첝 아 그런가요? 하긴 2차대전을 승리했으니... 그럼 그냥 '쪽박'으로 정정 하겠습니다.
@철갑 경영도 잘한거 아닌가요? 일단 정말 인간을 갈아 마셨지만 결과적으로 러시아를 세계 투톱으로 성장시켰으니깐요. 말 그대로 악덕 경영인 끝판왕
@Vv아마게돈vV 뭐.... 적백내전크리 때문에 권력잡을려면 폭력을 써야된다고 쳐도 집단 농장 같은 병크와 강제이주로 인한 국내갈등 등등... 사실상 이 때부터 소련이 서서히 곪아버렸다고 봐도 무방할텐데요? 우크라이나도 서부사람들은 러시아에 대해서 이를 갈정도면.... 그러면 왜 스탈린이 죽자마자 까내리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군요?
@철갑 공업화 성공, 문맹률 급락, 정치체제 안정화, 연 10% 경제성장 -> 2차세계대전 승리, 엄청난 속도의 전후 복구, 외교적 업적
이걸 모두 10년 안에 달성해야한다고 인민들을 미친듯이 갈아대서 이제 우리도 좀 쉬어야지 하는 차원에서 까내린 겁니다
@철갑 집단 농장, 국내 갈등 모두 병크라면 병크이지만 첝님이 말하듯이 엄청난 공업화와 정치체제의 안정, 세계 초강대국으로의 집권 등을 생각하면 장난 아니죠. 박정희도 까놓고 저런 병크가 없는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도 강조하듯이 '악덕' 기업인 끝판왕으로 봅니다.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을 착취하고 갈아서 신화를 이룩한거니깐요.
@Vv아마게돈vV 그건 인정합니다만, 소련을 뿜~! 하고 날라가게 한 원인을 제공 한 사람이 스탈린이란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독제를 반대하는거고요... 그래서 스탈린을 쉴드를 쳐 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스탈린이야 말로 교조주의에 찌든 대표적 인물인지라 상당히 안좋게 보는 입장이기도 하구요.
@첝 .........너무 갈아내서 문제죠.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이때 부터 비틀어진거죠. 뭐.......... 확실히 내용을 보니까 공산당선언에 있는 조항대로 그대로 한 사람이긴 하네요.
@Vv아마게돈vV 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나 말씀을 토대로 소스를 읽어보면 확실이 스탈린이란 인물을 잘 모르고 우리들이 그동안 살아왔다고 봅니다.
@철갑 안 갈아댔으면 전유럽에 나치 깃발이 휘날렸겠죠
스탈린은 개샊키고 갈아댄 건 ㅈ 같은 일이지만 성과만큼은 인정하자는 거죠
첝님은 대단하신게 대체 이런글을 번역하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통설과 달리 최신학계의견을 소개해 주신다는점에 아주 알찬 글인거 같습니다. 다음에는 모택동을 다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택동도 그 개인이 아닌 모택동 체제의 성과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봐야하지 않나 그 정도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중국엔 너무 무지해서 ㅠㅠ
@첝 모택동은 스탈린의 학살, 탄압, 독재는 그대로 본받으면서 중공업화같은 업적들은 반의 반도 따라오지 못했다는 느낌....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ㅠㅠ
인민을 엄청나게 갈아대고 굴라크와 대숙청 등의 대규모 탄압을 밥먹듯이 일삼기는 했지만(물론 그것은 필요악이었지만 정도가 지나치게 심햤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어쨌든 낙후된 농업국가인 러시아를 단 몇십년만에 세계 최강의 군사 물량과 중공업을 소유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고 유럽의 3류국가 러시아를 동유럽 대부분을 속국으로 만들고 미국과 견줄 정도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대단한 인물인건 사실이죠. 특히 한국전쟁때 미국의 어그로를 한반도로 돌리고 그 틈을 타 동유럽 공산화에 힘을 쓰려한 스탈린의 책략은 소름돋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