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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학연구소, 스리랑카에서 ‘이동학교’ 처음 열어
싱할라족과 타밀족 청년들은 두 민족 간의 오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특히 2019년 부활절에 콜롬보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수백 명이 살상됐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자신들의 일로 여겨 오지 않았다. 여러 종교 및 민족들 사이의 혐오와 갈등, 그에 따른 잦은 분쟁뿐 아니라 자살폭탄 테러 이후 경제가 파탄 수준에 이르러 힘겨운 삶을 살고 있어 ‘화해’나 ‘평화’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5년 전 테러로 많은 교회 신도를 포함해 수백 명이 죽었다고 들었지만, 더 많은 이가 희생당한 소수민 타밀족에게는 그날 참극이 남의 일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타밀족도 아니고 싱할라족도 아닌 외부인이 개최한 이 프로그램에 참석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 아픔에 공감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 내면에서 화해가 싹트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말한 타밀족 출신 조 사운다람(Joe S. Saundarm, 32) 부제는 교황청 인준 국제 발룬타스 데이회(International Voluntas Dei Institute) 소속이다. 그는 오랜 적대와 투쟁의 대상이던 두 민족이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면서, 기성세대보다 청년들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우리신학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아시아평신도지도자 포럼(ALL Forum)은 11월 23-28일 스리랑카 콜롬보의 오블라띠회 신학원(Dew Arana Oblate Institute)에서 이동학교를 열었다. 스리랑카에서 처음 연 이 행사에는 주로 콜롬보 대교구 소속 싱할라족 청년들과 북부 자프나 교구에서 온 타밀족 청년 30여 명이 참가해 '스리랑카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야전병원’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을 대주제로 다뤘다. 이 대주제 아래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한 세대 동안의 내전, 2019년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자살테러 공격에 따른 50여 명의 외국인 포함 인명 살상과 경제 파탄, 여전히 성행하는 노예노동 등의 현안을 다뤘다.
이동학교에 참가한 조 사운다람 부제와 디누샤 페레라 씨. ⓒ황경훈 기자
싱할라족으로 콜롬보 교구 소속 디누샤 페레라(Dinusha Perera, 21) 씨는 스리랑카가 당면한 현실은 민족 및 종교 갈등, 카스트와 빈곤 문제 등 너무도 복잡하고도 민감한 여러 문제로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화해할 수 있으려면 정확히 문제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민의가 무엇인지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때때로 언론이 부정확한 뉴스를 퍼뜨리기 때문에 이에 근거한 잘못된 해결책은 오히려 또 다른 분쟁을 낳게 되며, 결국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
2009년 스리랑카 정부는 불교를 믿는 다수 싱할라족 정부군이 타밀족 무장반군 세력인 ‘타밀엘람타이거’(LTTE)를 완전 섬멸하자 종전을 선포함으로써 1972년부터 시작된 스리랑카 내전은 끝이 났다. 그러나 유엔과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인권기구는 내전 종식에 앞서 수개월 동안 정부군이 타밀족 주민 4만여 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나, 스리랑카 정부는 이를 부인해 왔다. 그럼에도 종전 이후로도 타밀족을 납치, 강간, 살해하는 등 심각한 인권 문제로 스리랑카 정부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아 왔다.
한편, 2019년 부활절에 콜롬보 인근 네곰보의 성 세바스찬 대성당을 포함해 교회 3곳과 관광호텔 3곳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외국인 40여 명을 포함해 270여 명이 목숨을 잃고, 500여 명이 다쳤다. 성 세바스찬 성당에서는 신도 115명이 사망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정부는 테러 배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을 지목하고 조사했다고 보고했지만 진상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스리랑카 인구는 약 2000만 명으로 다수가 싱할라족 불교도로 70퍼센트를 차지하고, 타밀족이 믿는 힌두교가 12퍼센트, 이슬람이 10퍼센트, 그리스도교가 7퍼센트다.
2019년 부활절 자살테러 피해자들의 선혈이 낭자한 성 세바스찬 성당의 예수상. ⓒ황경훈 기자
평화로운 성 세바스찬 대성당 정경. ⓒ황경훈 기자
테러로 숨진 신도들 이름을 적은 성당 내 추모비. ⓒ황경훈 기자
이동학교 참가자들은 11월 24일 워크숍에 앞서 5개 조로 나뉘어 성 세바스찬 성당, 성소수자, 성 노동자, 초계약직 노동자 등 사회 약자들의 연대체인 ‘스리랑카 공동연대’(Standup Movement Lanka), 말라야감 타밀족(Malayagam-Tamil) 노예노동 마을 등을 탐방하고, 관계자들과 질의, 응답 및 토론 시간을 가졌다.
‘2019년 부활절 자살테러와 그 이후, 그리고 현재 상황’을 강의한 언론인 타린두 자야와다나(Tharindu Jayawardhana) 씨는 이 사건 전에도 스리랑카에서 2014년 이래 소수 종교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았는데, 상당 부분은 이슬람이 공격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다르가 마을과 2017년 잘 알려진 관광지 갈리 지역의 긴토타 마을, 또 2018년 이슬람 제2의 도시인 캔디의 디가나 이슬람 사원에 대한 불교 극단주의자들의 심각한 공격과 방화가 있었다.
타린두 씨는 2019년 부활절 공격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배후에 있다고 알려졌지만, 당시 정치 권력을 쥐고 있던 라자팍세 정권이 깊숙이 개입해 있었고 종교 권력과 야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럼에도 다수 싱할라족 불교도와 소수 타밀족 힌두교, 또 소수 그리스도인 사이에 화해와 평화는 가능하다면서, “나는 싱할라족이지만 타밀족, 또 그리스도인과 연대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노력이 화해를 앞당긴다”고 덧붙였다.
콜롬보 소재 오블라띠회 신학원에서 열린 스리랑카 이동학교 참가자들. ⓒ황경훈 기자
타밀족 참가자인 안젤리카(Angelica Stepenrex, 24) 씨는 타밀인과 싱할리아인이 서로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시간이나 공간을 거의 갖지 못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두 민족이 함께할 수 있다는 그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면서 “여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며 또 여기서 배운 교훈을 실천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스리랑카 타밀족의 주거지인 자프나에서 청소년의 인성개발(personality development) 사업을 벌이고 있는 그는, 자프나에서도 이동학교를 공동으로 열면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힌두교인 및 다른 종교 청년들이 더 많이 참가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동학교는 아시아 평신도 지도자 포럼이 연례 청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아시아의 각 나라나 지역을 방문해 일주일 동안 진행하는 워크숍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그리스도인 청년 40여 명이 참가해 이동학교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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