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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류선성(高柳蟬聲)
높은 버드나무의 매미소리라는 뜻으로, 청량함을 일컫는 말이다.
高 : 높을 고(高/0)
柳 : 버들 류(木/5)
蟬 : 매미 선(虫/12)
聲 : 소리 성(耳/11)
출전 : 김윤식(金允植)의 운양집(雲養集) 제2권 詩
조선말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윤식(金允植)의 운양집(雲養集) 제2권 시(詩)에 이 성어 구절이 나온다.
次素山李令公 應辰 新居 三十首
소산 이 영공 응진의 '신거(新居)'에 차운하다 30수
癸酉夏, 余自楊根移居于漢城北山下毓祥宮傍.
계유년(1873) 여름, 나는 양근(楊根)에서 한성 북산 아래 육상궁(毓祥宮) 옆으로 거처를 옮겼다.
時素山李丈亦移居楓溪, 示新居雜絶三十首.
그때 소산(素山) 어른 역시 풍계(楓溪)로 이사했는데 '신거잡절삼십수(新居雜絶三十首)'를 보여주었다.
余依韻和之.
나는 그 운에 의거해서 화답했다.
(첫수)
十載江湖鷺夢空
向來志事愧桑蓬
강호 십 년에 해오라기 꿈은 비고, 지난 날의 뜻은 상봉에 부끄럽네.
如何晩作騎驢客
誤了鵶溪一釣翁
어찌하여 만년에 기려객 되어, 아계의 낚시하는 노인을 그르쳤는가.
(註)
○ 육상궁(毓祥宮) : 서울 종로구 궁정동 1-1에 위치한 사적 149호이다. 조선 시대 영조의 생모인 숙빈(淑嬪) 최씨(崔氏)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725년(영조1) 영조가 즉위하면서 생모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었는데, 지을 당시에는 숙빈묘라 이름 하였다. 1744년에 육상묘로 고쳤으며, 1753년에는 육상궁으로 승격하였다.
○ 상봉(桑蓬) : 상호봉시(桑弧蓬矢)를 말한다. 뽕나무 활과 쑥대화살을 뜻하며, 남아가 출생하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로 천지 사방에 쏘아서 남아가 마땅히 사방에 뜻을 두어야 함을 상징했다. 남아의 큰 뜻을 말한다.
○ 기려객(騎驢客) :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골똘히 시를 읊다가 경조윤(京兆尹)의 행차와 부딪힌 적이 있다. 이후 기려객은 시인을 의미하게 되었다.
(생략)
桃花洞口接仙源
萬點春來落水痕
도화원 입구가 선원에 접해있어, 봄이면 꽃잎 떨어져 흔적을 남기네.
聖代元無逃世客
尋常秖作賣花村
성대엔 본디 세상 피하는 객 없으니, 그저 보통의 꽃 파는 마을일 뿐.
나의 집 뒤에 도화동(桃花洞)이 있는데, 거주민들은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高柳蟬聲夏亦寒
談風吟露夕陽欄
키 큰 버드나무 매미 소리에 여름도 춥고, 바람을 이야기하고 이슬을 읊자니 석양이 지네.
滿城滾滾緇塵裏
地位超然占淨乾
온 성 가득 메운 검은 먼지 속에, 이곳만은 초연히 깨끗한 땅 차지했네.
祠官本是職淸閒
去住猶愁不自關
제관은 본디 청아하고 한가로운 자리라, 떠남과 머묾에 대한 근심은 신경 쓰지 않네.
欵段借來無棧豆
乘凉權放菜花間
관단을 빌려왔으나 구유에 콩대가 없어서, 서늘한 틈을 타 풀꽃 사이에 짐짓 풀어 놓았네.
余時官景慕宮令.
나는 이때 경모궁령(景慕宮令)으로 있었다.
(註)
○ 관단(欵段) : 원래는 말이 느릿느릿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데, 더 나아가 말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 고류선성(高柳蟬聲)
뉘엿한 저녁 연구실을 나서다가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차 시동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내다보니 하늘이 문득 높고, 매미 소리는 이제 막 목청을 틔우느라 나직하다. 테니스장을 지날 때 다시 한번 창을 내렸지만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색(李穡)은 '매미 소리(蟬聲)'에서, "매미 소리 귀에 들자 내 마음이 움직인다(蟬聲入耳動吾情)"고 썼다.
윤기(尹愭)는 '매미 소리를 듣다가(聽蟬)'에서, "빈 산에 해묵은 나무가 많아, 여기저기 매미 울음 그윽도 하다. 그대여 시끄럽다 싫어 말게나, 시끄러운 가운데 고요함 있네(空山老樹多, 處處蟬聲邃. 請君莫嫌喧, 喧中有靜意)"라고 썼다.
과연 매미 소리는 주변을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윤식(金允植)의 '신거(新居)' 시에도, "키 큰 버들 매미 소리 여름에도 서늘한데, 석양 무렵 난간에서 바람 이슬 노래하네. 성 가득 자옥한 검은 먼지 가운데, 이곳만 초연하게 깨끗한 땅 차지했네."
高柳蟬聲夏亦寒, 談風吟露夕陽欄.
滿城滾滾緇塵裏, 地位超然占淨乾.
서울로 이사한 벗의 새집을 축복한 글이다. "그대가 서울로 이사를 오니, 자네 집 버들엔 매미가 울어 시원하군. 티끌뿐인 서울에 특별한 청정 구역이 만들어진 느낌일세."
송시열(宋時烈)이 창강(滄江) 조속(趙涑)을 위해 쓴 만시는 이렇다. "여러 날 매미 소리 맑더란 얘기, 글에 써서 어른께 보내드렸지. 그 어른 이제는 계시잖으니, 이 마음 마침내 뉘게 말할까?"
數日蟬聲語, 書之寄丈人.
丈人今不在, 此意竟誰陳.
앞의 두 구절은 전거가 있다.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편지를 보냈다. "며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들을 때마다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이 17자가 편지의 전문이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대의 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송시열은 앞선 편지에서 조속에게 이 편지의 사연으로 그리운 마음을 전했는데, 이제는 그런 편지 쓸 곳마저 없어져서 서운하다는 얘기다. 나무마다 가득한 매미의 합창을 기다린다.
⏹ 매미소리에 대한 단상(斷想)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뻐꾸기소리가 지칠 때쯤 매미소리가 이어서 배턴을 받는다. 칠월의 폭염과 녹음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뻐꾸기소리로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이 산 저 산에서 적막하게 주고받는 뻐꾸기소리와는 달리 매미는 여러 마리가 떼로 운다. 여름 숲의 매미소리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시끄럽다고 꺼버리거나 볼륨을 줄일 수도 없다. 여름 한철 산천초목은 매미소리와 함께 떨며 녹음방초 우거진 진경을 이룬다.
매미는 3~7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다가 밖으로 나와서는 우화하여 한 달 가량을 산다고 한다. 캄캄한 땅속에서 오랜 세월을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왔으니, 뜨겁게 내리쬐는 폭양과 녹음 우거진 이 세상이 얼마나 눈부시게 찬란할 것인가.
삶이란 이렇게 떨리도록 아름다운 거라고 온몸으로 구가(謳歌)하는 매미소리에 산천초목이 공명하는데, 인간사회에는 오히려 살 떨리고 치 떨리는 끔찍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전쟁과 테러와 폭정이 끊이지 않고 그로 인해 살상과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부지기수다. 세상사 벗어나 한나절 여름 숲 그늘에 앉아 매미소리를 들어보라. 삶의 온갖 소란과 고달픔을 까마득히 잊고 찬란한 생의 환희에 떨게 될 것이다.
청량한 매미소리에 여름 한낮이 떤다/
녹음 우거진 상수리 숲이 떨고/
높다란 키를 세우고 미루나무가 떤다//
캄캄한 땅속에서 오랜 세월 꿈꾸어온/
이 세상 얼마나 찬란한 곳이냐고/
매미는 온몸을 떨며 온종일 노래한다//
살 떨리고 치 떨리는 인간사 너무 많아/
차라리 눈 감고 귀 막고 싶은 세상인데//
삶이란 떨리는 거라고, 목청껏 노래를 한다’
- 졸시 ‘매미소리’
옛날 유학자들은 매미가 다섯 가지 덕(德)을 갖추었다고 칭송했다. 머리에 파인 줄무늬가 선비의 갓끈과 비슷하다고 문(文)을, 나무의 수액만 먹고 산다고 청(淸)을, 곡식을 축내지 않는다 하여 염(廉)을, 살 집을 따로 짓지 않는다하여 검(儉)을, 계절에 따라 오고감에 믿음이 있기에 신(信)을 덕목으로 꼽았다.
그래서 임금이 쓰던 익선관과 오사모의 양쪽 뿔도 매미의 날개를 본떠서 만든 거라 한다. 하지만 매미가 저를 내세우려고 시끄럽게 울어댄다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무성한 미루나무가 매미소리를 쏟아낸다. 매미소리가 아니면 미루나무 수만 이파리가 침묵할 수밖에 없고 여름날이 그만큼 숨 막힐 것이다.
미루나무가 수액으로 매미를 키우는 것은 결국 매미소리를 키우는 것이다. 매미가 미루나무 수액을 빨고 내는 소리는 그러니까 미루나무의 소리인 셈이다. 여름 숲은 잎만 있고 입이 없어서 온갖 새소리와 매미소리, 바람소리를 키운다.
온종일 청량한 매미소리가 들리는 여름 숲은 광합성으로 뭇 생명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커다란 공장이다.
저 공장에는 굴뚝이 없네/
무한정 햇빛을 가공해서/
뭇 생명의 양식을 만드는/
저 초록공장에는 매연이 없네/
온종일 신경 긁는 소음대신/
청량한 금속성이 들리네//
노동자와 고용자가 따로 없어//
분규도 쟁의도 파업도 없이/
이 한 철 성업 중인 저 공장으로/
도시락 싸들고 출근하고 싶네‘
- 졸시 ‘여름 숲’
⏹ 인고의 세월 거쳐 세상 밖으로 “매미 우화(羽化)”
‘맴~맴~맴’ ‘매에에에에~~’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더위가 시작되자 한동안 잠잠했던 매미울음 소리가 또다시 힘차게 들린다. 특히 덩치도 크고 목청 좋은 말매미의 울림이 크다.
암컷매미에게 전하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아니 며칠 남지 않은 자신의 생 동안에 번식을 하려는 수컷들의 진한 울부짖음이기도하다. 암컷은 발성 기관이 없어 소리를 내지 못한다.
갑자기 성경(시편 27:7)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매미 애벌레들은 종에 따라 대략 땅속에서 3~6년 살다가 세상으로 나와 탈피를 하고 겨우 열흘에서 길게는 한 달 만에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본능적으로 알을 낳고 돌봐야하는 암컷 매미는 조금 더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봤자 며칠 더 사는게 고작이다.
장맛비가 잠시 멈췄던 지난 20일 저녁 뚝섬로에 위치한 서울숲을 찾았다. 땅거미가 지자 한낮 매미전문사냥꾼 직박구리 등 천적을 피해 나무뿌리에서 땅표면까지 올라와있던 매미 애벌레들이 여기저기서 날카롭고 단단한 앞발로 수년간의 어둠을 헤치고 땅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길게는 10년 넘게 땅속에서 유충으로 사는 종도 있단다. 매미는 번데기 단계 없이 알, 애벌레 2단계만을 거쳐 성충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매미의 종은 녹색 바탕에 검정 무늬를 가진 참매미를 비롯해 말매미, 애매미, 털매미, 소요산매미 등 13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확인이 가능한 종은 10종이 넘지 않는다고 동아시아환경생물연구소 김성수(63) 소장은 말한다.
이날 우화(羽化‧곤충이 유충 또는 약충이나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성충이 되는 일)를 위해 땅 밖으로 나온 매미는 대부분 말매미였다.
이들은 자신이 탈피를 해서 날개를 성공적으로 피고 잘 말릴수 있는 나무나 관목을 찾아 힘차게 이동을 시작했다. 이들의 장도에 개미들과 억센 풀들이 훼방을 놓지만 거침없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앞발로 헤쳐나가며 등정을 시작한다.
얼마나 올랐을까 매미들은 탈피에 적당한 장소를 찾으면 다시한번 강한 앞발톱과 뒷발톱들로 단단히 고정한 후 몸을 좌우로 흔들어 우화하기에 안전한 장소인지를 확인한다. 20~30분 휴식을 취한 후 드디어 탈피를 시작한다.
기자가 컴컴한 나무 앞에서 삼각대에 카메라를 받쳐놓고 무언가를 찍고 있자 산책하던 시민들이 기자 옆으로 다가와 질문한다. “어두운 밤에 무얼 찍으세요. 나무에 뭐가 있나요?” “지금 막 매미가 허물을 벗으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함께 지켜본다.
김성수 소장은 “자연 속 생태환경은 수학공식과는 틀리다. 특히 매미들이 땅속과 땅위에서 얼마나 사는지 우리나라에 몇 종이 분포하는지도 정확히 조사된 데이터가 아직 없다.”면서 “울음소리가 가장 요란한 말매미는 원래 남방계열이어서 제주도를 비롯해 남쪽지역에 주로 분포했으나 온난화로 인해 남한 전역으로 확산되어 있다.”고 말했다.
20여분이 흘렀을까. 나무 표피에 달라붙어 정중동 하던 매미의 등이 굽은 새우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천천히 탈피 각이 머리 쪽부터 세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매미의 눈이 먼저 보였다.
매미의 눈은 두 개의 커다란 겹눈과 머리 한가운데 홑눈 세 개를 포함 총 5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꼬리부분만 빼고 머리와 몸이 서서히 껍질에서 빠져나온다. 한동안 껍질에서 빠져나온 몸을 일으켰다 눕혔다 하는 동작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허물을 벗는 단계마다 힘에 부친 듯 중간 중간 동작을 멈추고 숨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한참이나 껍질과 거의 일직선으로 누워 접혀 있던 날개가 3분의 1쯤 펼쳐지자 이내 몸을 세워 앞다리로 나무와 붙어있는 껍질 머리를 잡고 마지막 남은 꼬리부분을 껍질 밖으로 빼냈다.
수년간의 유충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경건한 순간이다. 이후 나머지 날개도 서서히 펼친다. 대략 땅에서 올라와 2~3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우화과정이다.
나무에서는 우화 도중 개미들의 공격으로 안타깝게 그들의 먹잇감이 되거나 날개돋이를 하는 도중 외부 자극이나 선천적인 이유로 고만 중도 탈락하는 유충들도 눈에 띄었다. 이같이 모든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통과한 매미들만이 날개를 말리고 몸을 단단히 굳히면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