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 땀 내음
요즘 시장은 지역마다 몇 갈래로 분화되어 상거래가 이루어진다. 도심의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은 고객 흡입력이 대단해 매출액은 상당할 테다. 상품의 질에서나 서비스가 최상이고 주차장 시설도 좋아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 여기다 생활권마다 재래시장이 있어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의 틈새를 파고들어 손님을 맞는다만 경기가 예전만 못함은 상인이나 행정당국에서 다 아는 처지다.
전통 5일장은 시골에서는 물론 도심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보다 상품의 질은 낮으나 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장터다. 덜 다듬어진 채소나 과일에서 고향의 흙냄새나 농부의 땀 내음을 맡을 수 있어 내 취향에 맞아 물건을 살 의향이 없으면서도 나는 가끔 둘러본다. 그리고 5일장 말고 특정 요일에만 장터를 운영하는 곳이 생활권마다 몇 군데 있다.
오랜 가뭄을 해갈해줄 비가 흡족히 내려야 하는데 장맛비는 주춤한 유월 하순 일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하루 일정이 어떤가 생각해보니 별다른 약속은 잡혀 있지 않았다. 나는 워낙 이른 아침형 인간이라 늦은 오후나 밤에는 웬만하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다. 그런데 어제는 이웃에 사는 지기가 다른 일행과 함께 영화관람 제의가 왔지만 즉답을 주지 못하고 머뭇거려야 했다.
날이 밝아온 이튿날 아침엔 첫차로 운행하는 101번 시내버스로 월영동 종점을 향해 갔다. 내가 사는 생활권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댓거리 번개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나선 걸음이었다. 댓거리 번개시장은 일요일 새벽에 장이 서서 아침나절만 반짝하다가 사그라져 번개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같은 이름의 장터가 마산역 광장 동편에도 있는데 거기는 이제 상설시장으로 되었다.
댓거리 번개시장은 일요일 새벽에만 형성되어 인근 주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장터라는 얘기만 들었지 처음 가는 길이었다. 연세병원을 지난 문화동에서 내려 댓거리 장터 입구로 향하니 시장바구니를 챙긴 장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터 들머리부터 근교 텃밭에서 가꾼 여러 가지 푸성귀들이 가득 펼쳐져 장날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호박잎이나 비름나물이 눈에 띄었다.
동이 터오는 여명에 일주일을 기다려온 상인들은 제각각 파려는 물건들을 챙겨 장터에다 펼쳤다. 창원에서는 3일과 8일에 서는 진해 경화장이 아주 컸는데 댓거리 번개시장은 거기보다 더 커 보였다. 경화장은 경화동 주택지 도로에 직선형으로 길게 형성되는데 댓거리 번개시장은 롯데마트 주변을 에워싼 방사선형이었다. 나는 장터 들머리서 수염이 달린 옥수수를 예닐곱 개 샀다.
댓거리 번개시장은 생필품보다 채소와 과일이 중심이고 일부 구역에 해산물이 조금 보였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마늘이나 양파도 팔았지만 근교 농업에서 생산된 푸성귀와 섞여 있었다. 처음 가 본 번개시장을 두 바퀴나 둘러보고 해안도로로 진출해 초등 동기가 운영하는 고깃집으로 가봤더니 이른 아침이라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아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다시 번개시장으로 왔다.
농협 앞에는 줄을 서서 대기하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즉석 수제 어묵을 사려는 이들이었다. 아마 번개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인 듯했다. 나는 장터를 한 번 더 둘러보다가 수레에 송기떡을 파는 할머니에게 떡을 사면서 송기는 어떻게 구하셨느냐고 여쭈니 벌목공들이 구해 준다고 했다. 춘궁기를 건너온 추억의 떡이라 그 떡의 맛이 궁금해 쑥떡과 함께 한 봉지 사 배낭에 채웠다.
장터 골목에서 생선을 구워 파는 가게를 지나다가 그냥 스칠 수 없어 명태전을 시켜 맑은 술을 몇 잔 비웠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장터 손님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가득했던 물건들은 자취를 감추고 상인들도 하나둘씩 떠나 거리는 한산해졌다. 나는 파장에서 한 상인이 팔다 남은 수박을 한 덩이 사서 손에 들었더니 묵직했는데 집으로 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기다려 탔다. 22.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