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로 찾은 곳은 왕곡마을입니다.
5년 만의 재방문입니다만 별로 변화가 없습니다.
다만 영화 '동주'를 촬영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데
간도돠 가옥 구조가 비슷한 영향 때문인 듯합니다.
고려말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분인
양근함씨(楊根咸氏) 함부열(咸傅烈)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으로 낙향하였는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양근(楊根)은 양평의 옛 지명이니
함씨는 양평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인 것입니다.
함씨의 원조 함혁(咸赫)은 삼한 시대
양평 용문산 서쪽에 성을 쌓고 웅거한 부족장입니다.
지금도 옥천 사나사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함혁이 태어났다는 바위 구멍인 함왕혈과
그가 세운 석성 터인 함왕성지를 볼 수 있습니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간성왕으로도 불리는데
고성군 간성에 머문 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지요.
1392년 폐위된 공양왕은 강원도 원주로 유배된 뒤
다시 공양군으로 강등돼 간성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때 공양왕을 뒤따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예부상서를 지냈던 함부열이라고 합니다.
왕곡마을은 동학과도 관계가 깊은 곳입니다.
2대 교주인 최시형이 이 마을에서 포교활동을 했고
1894년 동학혁명 기간에는 동학군이 이곳에서
전력을 재정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내린 효자각이 두 개나 될 정도로
효자가 많은 마을이어 그런지
6.25전쟁의 참화는 물론 1996년 고성을 휩쓴
대형 산불도 비껴갔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의 80%가 양근함씨라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마을을 둘러봅니다.
다섯 개의 산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정겨운 가옥들이 포근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에 대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겨울철 눈이 많은 지역임을 감안해
지붕 경사가 급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뒤에는 담을 둘렀는데
앞에는 담이 없는 개방형이었습니다.
겨울철 일조량을 가능한 충분히 확보하고
외부와의 고립을 피하기 위함이겠지요.
또 대부분 기와집 앞에 초가가 있었는데
바로 분가한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 합니다.
집집마다 굴뚝 모양이 다른 것이 특징인데
진흙과 기와를 한 켜씩 쌓아 올리고
항아리를 엎어 놓아 굴뚝을 통해 나온 불길이
초가에 옮겨 붙지 않도록 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추천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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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성 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