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범죄가 빈발하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 무엇보다 미군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실질적으로 가로막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불평등한 구절들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협정 22조는 주한미군 범죄의 형사관할권을 미군 당국에 폭넓게 귀속시키고 있다. 지난 2000년 말 22조를 일부 개정해 살인과 성폭행, 유괴, 마약 같은 12개 중대범죄에 대해선 기소 이전에 미군의 신병을 한국 쪽이 넘겨받을 수 있게 했지만, 미군범죄의 70%를 차지하는 교통사고나 절도, 폭행 등은 여전히 신병을 미군이 관리하게 된다.
특히 공무 중 범죄에 대해선 피해자가 한국민일지라도 미군이 재판관할권을 가진다는 조항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이에 따르면 형사관할권을 확정하는 주체는 한국 아닌 미군이 된다. 공무 중이었는지 아닌지를 미군이 통보해오기 때문이다. 미군은 한강 독극물 방류를 지시한 맥팔랜드에 대해서도 공무 중 사건이라며 한국 사법부의 재판을 거부했다. 이번 여중생 압사사건도 같은 이유를 들어 미군 군사법정에 피의자를 기소했다.
형사사건 733건 가운데 징역형 8건
미군 당국에 인도된 주한미군 범죄의 자체 처벌은 국내 법정에 비해 무척 미약하다. 지난 92년 법무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91년 미군 당국이 넘겨받은 미군 형사사건 733건 가운데 징역형이 내려진 것은 8건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 또한 미군범죄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의지가 미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67∼87년 사이 미군범죄 3만9452건 가운데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사건은 234건에 그쳤다. 98년 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율도 3.9%에 지나지 않았다. 운동본부 쪽은 “불평등한 협정 규정을 개정해야 하며, 그 이전에라도 공무 중 사건에 대해 우리 쪽이 재판권 이양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인 주권행사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서해교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서해교전의 배경과 교훈]
조민 "북한 평화의 딜레마에 빠진 듯"
박순성 "의도보다 현상의 파급력에 주목해야"
조민 :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은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중대한 시련이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햇볕정책 자체가 근본적 도전을 받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강경하게 대응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서해교전을 계기로 현정부의 대북정책 전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박교수님은 서해교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순성 : 저는 서해교전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먼저 사태 자체가 보여주듯이 한반도가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휴전상황에서 언제든지 교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과 서해교전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억제되었다는 점에서 남북이 최소한의 위기관리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국내여론은 이것과 정반대였습니다. 서해교전은 한반도의 불안정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전략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과, 남한은 위기관리 능력이 없다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하지요.
확전 피한 위기관리능력 보여준 사건
하지만 한반도 전체 상황을 외부에서 바라본다면, 역설적으로 서해교전은 안보위기를 강조하는 입장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한반도가 불안정하다는 것과 동시에 남북이 이성적으로 해결할 위기관리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서해교전을 통해서 한반도 긴장지수가 고조되었다고 보는 일본이나 미국의 언론은 적었다는 점에서 분명합니다.
또 북한의 언론도 자세히 봐야하는데, 서해교전 자체를 가지고 남한과 미국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지만, 과거와 다르게 전면적으로 남북관계를 훼손한다든지, 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나 적개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그리고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했다고 할까요. 저는 서해교전이 남한 사회가 안고 있는 내부갈등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향해 가는데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를 확인해주었다고 봅니다. 서해교전을 통해서 남북의 젊은이들이 사망했지만, 아마 평화통일의 숭고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조민 :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서해교전을 보는 시각차가 상당히 크다는 것입니다. 대개 서해교전의 발발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먼저 꽃게잡이와 관련된 우발적 사태였다는 것과, 북한의 계획된 군사작전으로 보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계획적이라고 보는 시각에는 다시 김정일 위원장이 모르는 수준에서 99년 서해교전에 대한 보복차원으로 군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시각과, 북한체제의 특성상 김정일 위원장의 인지하에 일어났다는 시각으로 나뉘어집니다.
저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북한 전략가 그룹의 기획된 작전으로 서해교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같은 특수사회에서 군의 움직임을 김 위원장이 모른다고 하는 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무지의 소산입니다.
서해교전은 기획된 도발
그러면 왜 이러한 군사도발을 했는가. 크게 세 측면에서 의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관계입니다. 흔히 한반도 문제에서는 지금 북미대화의 재개가 가장 절박한 사안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기에 북한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부시 대통령 취임이래 북한에 대해서 핵, 미사일 등의 대량살상무기(MDW) 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 감축까지도 요구해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북미대화의 의제는 명백히 밝혀져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느 하나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의제를 가지고 협상할 수 있는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죠.
특히 '94년 북미기본합의서와 관련,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2002년내 핵사찰 요구는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북미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으로서는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에서 남북한간 군사적 충돌을 부각시킴으로서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재확인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봅니다.
북한체제 '평화의 딜레마'에 빠진 듯
두번째 의도는 북한의 대내적인 체제유지의 문제입니다.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북한 주민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곧 남한이나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사회적인 기강해이, 주민통제력 약화 등으로 이어져 군부와 북한 당국을 긴장케 했습니다. 결국 체제위기를 다잡아야 할 필요성이 대외적인 긴장을 유도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마지막으로 서해교전으로 대남관계가 일시적으로 단절되더라도 결정적으로 손해볼 것은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지금 남한이 취할 수 있는 대북지원 중단은 금강산관광을 끊는 정도인데, 북한으로서는 크게 고통스러운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계산된 정책결정에 의해 서해도발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의 기운이 고조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북한 체제로서는 근본적으로 '평화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결국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가 수립될 때까지, 통일대장정의 과정에서 이런 군사적 충돌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순성 : 조박사님께서는 북한이 현재 처해 있는 대미관계, 대남관계, 내부의 문제를 고려해볼 때,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기체제를 개혁, 개방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체제를 단속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해교전을 기획된 것으로 해석하시는데, 저는 서해교전이 기획된 도발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북한이 취한 정책들과 서해교전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검토해 봤을 때, 실제로 이것을 기획된 군사도발로 볼 수 있는 지표 못지 않게 우발적이라고 볼 수 있는 지표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남한에서 개최된 월드컵을 방영하고 유럽연합과 접촉하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요구한 점, 그리고 최근 남북대화의 끈을 놓지 않은 점 등에서 의도된 도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의도보다 현상의 파급력에 주목해야
그래서 저는 서해교전의 의도를 분석하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현상 그 자체, 현상의 의미, 현상의 파급력을 보는 것이 훨씬 더 긍적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항상 긴장감이 감도는 서해지역에서 남북한 모두는 교전수칙을 정교화해 나가고 있는데, 그 기본 방향은 우발적으로 교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국지전이 항상 전면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확전을 두려워해서는 안보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보는 논리는 남북의 긴장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남한 사회가 가져왔던 북한에 대한 인식, 소위 흑백논리가 아니라 이제는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처한 '평화의 딜레마'가 아니라, 한반도가 처해있는 '긴장에서 평화로 가는 딜레마'를 보는 시각이 보다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민 : 서해교전과 관련된 우리 정부의 대응 과정을 보면서 화해협력정책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확전을 피하고자 한 정부의 입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긴급 위기상황에 대응한 정부의 대처방식과 안보관리 능력은 국민들로부터 회의를 품게 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과정에서 위기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효율적으로 구축하지 못했다는 진단이 그것입니다. 사실 현 정부 초기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구성, 가동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안보전문가들의 신중하고 집요한 능력이 요구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지요.
현정부 초기에 대북포용정책의 토대라고 밝혔던 튼튼한 안보는, 국방력이라는 물리력 못지 않게 안보관리능력, 위기관리시스템의 효율적인 구비와 작동에 달린 문제라고 말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유명무실하다면 심각한 상황입니다. 대북 포용, 햇볕정책 등의 전략적 차원과는 다른 전술적 차원에서 정부의 대응능력이 점검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박순성 :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남한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이 없다는 해석이 있는데, 정확하게 그러한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 남북한은 확전을 막아내었으며, 우리 어민의 희생이 없었고, 또 우리 해군이 입은 피해만큼의 적절한 대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확대해서 위기관리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북한의 기획된 도발이나 남한 군대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로 몰아가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대북관을 가지고 북한을 해석하거나 현재 남한의 대응 자체를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좀더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조사와 결과를 가지고 차분하게 평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숙하지 못한 야당의 모습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오히려 국민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경제활동을 유지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평화에 대한 안정감은 훨씬 강해졌습니다.
이제 소비자의 권리를 말한다
제조업자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배상 가능…7월1일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은 무엇인가
제일제당은 지난달 초부터 무려 3천여개에 이르는 제품마다 사용설명서를 일일이 바꾸고 있다. 캔 장조림 제품의
경고 스티커는 ‘개봉시 절단 부분에 손이 닿지 않도록 하시오’에서 ‘절단 부분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고쳤다. 포장김치에는 ‘새우젓을 넣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새로 집어넣었다. 새우젓 알레르기가 일어날 가능성을 미리 소비자들한테 알리는 것이다. 애완견 사료의 포장지에 붙은 ‘보관상 주의사항’에는 ‘어린아이들이 먹지 않게 주의하시오’가 새로 들어갔고, 김치 제품표시도 ’냉장보관하라’는 밋밋한 표현을 ‘1도에서 10도로 보관하라’로 구체화했다. 제일제당 PL사무국 고규석 상무는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되면서 표기상 오해의 소지가 있고 소비자들이 잘못 다룰 수 있는 부분을 대대적으로 바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체들 비상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제조물책임(PL·Product Liability)법은 소비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재산상 피해를 입었을 때 제조업자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배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제품 결함 및 기업 쪽의 고의·과실까지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함으로 피해가 있었다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 갑자기 세탁기에서 불이 나 하마터면 집을 다 태울 뻔했더라도 제품 결함이나 제조업자의 고의·과실을 가정주부가 무슨 수로 입증할 것인가. 그런 만큼 이번 PL법 시행은 소비자 주권시대의 개막을 뜻한다.
거꾸로 제조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PL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커버하기 위해 저마다 PL 관련 보험을 들고 있다. 보험가입은 가장 손쉬운 대책이지만 보험만으로 PL법을 비켜갈 순 없다. 제일제당이 제품 사용설명서를 바꾸는 건 이 때문이다. 정유업계 역시 ‘주유소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마세요’란 문구가 삽입된 스티커를 주유기 등에 붙이고 있다. 휴대폰의 불량 배터리에서 불꽃이 튀어 기름에 옮겨붙는 사례가 간혹 일어나기 때문이다. PL법에 따르면 제품 자체의 결함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사용상 부주의에 따른 사고도 ‘취급상 주의사항’에 명시돼 있지 않으면 제조업자의 책임이 된다.
업계에서는 PL법 시행으로 ‘제품 사고는 곧 제조자 책임’으로 인식돼 소비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95년 PL법이 도입된 일본에서는 그동안 침묵하던 소비자들이 저마다 소송에 나서면서 소송건수가 한해 1천건을 넘었다. 따라서 결함 있는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가 거액의 집단소송에 휘말리는 기업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지난 82년 석면 질환과 관련해 오랜 소송에 시달리던 세계 최대의 석면제조업체인 미국 맨빌사는 배상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파산했는데, 지금도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브랜드 이미지의 추락까지 겹쳐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는 기업이 속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PL법이 기업을 망하게 하는 법도 아닌데 우리 기업들은 무작정 겁부터 집어먹고 있고,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입했다가 사고가 나면 무조건 거액을 배상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기도 하다. PL법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PL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제조물이다. 제조물은 제조·가공된 제품으로 공산품(완제품, 부품, 원재료)을 뜻한다. 부동산·농수산물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부동산화된 동산, 예컨대 전기시설, 엘리베이터, 건축자재 등은 PL법이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자체는 형체가 없으므로 PL법에서 제외되지만, 소프트웨어가 디스크 등에 설치돼 함께 사용될 때는 제조물책임의 대상이다.
제조업자가 과실 없었다는 사실 입증해야
그렇다면 PL법에서 말하는 ‘결함’이란 무엇을 뜻할까. PL법은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함을 규정하고 있다. 결함은 △제품개발 단계에서의 설계상 결함 △제조과정에서 발생한 결함 △제품사용에 대한 안내 및 경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표시상의 결함으로 나뉜다. 산업자원부 유통서비스정보과는 “멀쩡하게 잘 쓰다가 느닷없이 문제가 생기는 등 상식적 수준의 안전성이 없다면 결함으로 인정된다”며 “물론 소비자가 오작동하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경우라야 한다”고 말했다.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귀가 멍멍해지면 전자파에 의한 결함으로 보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것을 결함으로 볼 수는 없다.
PL법의 핵심은 결함의 ‘입증책임’이다. 물론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입증책임은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에게 있다. PL법은 소비자의 입증 부담을 덜어준 것일 뿐 아예 없앤 것은 아니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제품을 잘못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만 입증하면 된다. 대신 제조업자는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 또는 ‘소비자가 잘못 다뤄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배상책임을 면한다. 물건을 만들고 파는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따라서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기업은 재판절차까지 가기 전에 소비자와 합의를 보려 할 것이고, 그만큼 소비자로서는 분쟁해결이 쉬워지는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배영일 수석연구원은 “PL법 이전에는 기업이 제품결함을 최대한 쉬쉬하다가 최후에 리콜을 실시했지만 앞으로는 결함 은폐가 불가능해져 기업 스스로 판단해 자발적으로 리콜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배상책임은 제조업자에게 있는데, OEM(주문자상표생산) 업체도 브랜드 업체와 마찬가지로 배상책임을 진다.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공급자 또는 판매자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유통업자는 자신이 파는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제조원을 모른 채 불량 수입품을 팔았다가는 수입업자가 모두 뒤집어쓰게 된다. 한국PL법연구원 최병록 원장은 “판매자가 책임을 면하려면 공급자 또는 제조자를 소비자한테 알려줘야 하는데, 정식 루트를 통하지 않고 정체불명의 제품을 판 경우 판매자가 배상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의 PL법은 미국과 달리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몇명이 대표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다른 모든 피해자들도 다같이 배상을 받는 제도다. 한국PL법연구원 최병록 원장은 “우리나라의 PL법은 집단소송제가 아니어서 누가 특정 제품을 쓰다 피해를 입어 막대한 배상금을 받은 경우, 동일 제품을 사용하던 피해자라도 개별적으로 따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도 그 제품으로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신도 소송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제품 결함으로 인해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는지는 사건마다 구체적인 정황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거액의 배상금 받는다는 환상 버려야
손해배상은 실제로 일어난 재산상, 정신적 손해를 보상해주는 전보적 배상과 결함을 알면서도 “사고가 터지면 배상하지 뭐” 하는 식으로 은폐할 때 물리는 징벌적 배상이 있다. 미국에서 몇몇 기업들이 PL법으로 쓰러진 건 거액의 징벌적 배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PL법은 징벌적 배상을 채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PL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거액의 배상금을 받기는 어렵다. 배상을 받더라도 사용상의 소비자 과실이 일부 있었다면 이 부분이 감안돼 배상액이 정해진다. 물론 소송에서 소비자가 기업한테 지면 당연히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제조업자라고 무한책임을 지는 건 아니다. PL법은 기업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다. △제품을 만들 당시의 기술 수준의 한계로 인해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거나 결함이 불가피한 경우 △제조 당시의 관련 법을 그대로 따르다가 어쩔 수 없이 결함이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는 배상책임을 면한다. 또 7월1일 이전에 출시된 제조물은 새로운 PL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법정 소송으로 가기 전에 업종별 PL상담센터(표 참조)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PL상담센터는 소비자 및 업종별 단체, 학계, 법조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분쟁해결기구로, 소비자와 제조업자의 중간에 끼어들어 화해를 알선·조정한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PL상담센터 안에 설치된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합의를 시도하는데, 한쪽이라도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
■ [쟁점토론] 음악파일 공유 '소리바다' 기소
《검찰이 국내 최대 음악파일 공유 사이트인 '소리바다' 운영자를 기소하자 네티즌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한국음반산업협회는 지난해 5월 소리바다 사이트 개설 이후 국내 음반 매출 손실액이 2000억원에 달한다면서 사이트 운영 중단을 요구해왔고, 검찰은 7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소리바다가 회원간 MP3 파일 교환, 전송을 중개한 것은 저작권법 위반 방조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반면 네티즌들은 정보 공유가 생명인 인터넷의 자유로운 이용을 저해하는 시대착오적 결정이며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은 과거와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 - 사적재산 무단공유 방조한 셈
어린아이가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내 먹으려 할 때 부모에게 먼저 묻고 꺼내 먹는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를 인터넷 세상에서 보는 듯하다. 내 물건이 아니면 적어도 손대지 말아야 하고(자료 내려받기 또는 복사), 또 그것을 내 것처럼 마음대로 처분(자료 올리기 또는 타인과 공유)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로부터 승낙(권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때 우리는 컴퓨터를 사면 프로그램들을 공짜로 얻는 데 길들여졌다. 이런 영향으로 결국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지적재산권 분야 평가에서 '감시대상국'에서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오르는 조치를 당했다. 공짜주의에 물든 결과와 무관치 않다.
'소리바다'를 살리자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정보공유'이며, '소리바다'에 대한 처벌이 '인터넷 발전을 가로막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종전 비닐 음반에서 CD, MP3로 이어지고 있는 음반은 정보공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법으로 보호받는 사적 재산이 공유의 대상이 된다면 은행을 모조리 공유하여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정보공유의 대상은 권리자가 이용자에게 처분의 제한을 해제한 것들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을 정보공유라고 한다면 더 이상 생산될 물건이 없을 것이다.
'정보공유'와 '인터넷기술 발전론'을 내세운 '소리바다' 운영자와는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 만나 중대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서로 인식하고 하루 속히 정상 운영(권리자 보상 또는 유료화)을 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번번이 약속을 어기고 시간을 지연시키다가 결정적일 때 협상이 결렬됐다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뒤에선 MP3를 재생하고 또 그것을 CD로 복사하는 기기 광고까지 해가면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소리바다'는 상업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들어서고 말았다.
인터넷기술 발전론을 주장하는 '소리바다'는 방조범으로 가장한 주범이며 네티즌을 주범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데 해 책임을 져야 한다. 소리바다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불법행위자가 큰소리를 치고 재산상에 막대한 손실을 본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요약된다. 소리바다와 관련하여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면 보이지 않는 손(소리바다를 지원하는 회사들)이 네티즌들에게 '공격하라! 사이트를 마비시켜라! 탄원서로 공격하라!'고 부추긴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인터넷 세상일까?
이번 검찰의 기소는 많은 관용을 베푼 것이라고 판단된다. 문화산업경제를 뒤흔들어 놓은 가해자에 대하여 검찰이 이처럼 관용을 베푼 것은 억울하게 주범의 누명을 쓴 네티즌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스스로 속히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도 현실 세상에서처럼 룰을 지키는 페어플레이를 해야 할 것이다. (이창주/한국음반산업협회 이사)
▼반대 - 정보 나눔은 인터넷의 생명
음반사들은 음악은 '상품'이며, 디지털화된 음악 파일 역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대목이 바로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과연 음악은 '상품'으로만 취급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MP3 음악파일을 포함한 디지털 저작물에 여타 저작물과 똑같은 방식으로 저작권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우선 정보의 디지털화와 인터넷의 진전은 '복제'의 개념을 변화시킨다. 책, 음반 등 기존의 저작물들은 그 내용에 대한 접근과 복제라는 행위가 별개의 것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복제는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즉,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와 일상적인 이용행위 자체가 ꡐ복제ꡑ를 요구한다. 과거의 ꡐ복제ꡑ 개념을 인터넷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 그리고 저작권자에게 ꡐ복제의 권한ꡑ을 과거처럼 부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ꡐ소리바다ꡑ 이용자들은 개인적이고, 비영리적으로 서로 파일을 공유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ꡐ사적 이용ꡑ에까지 저작권을 강요하는 것은 저작권자의 이익만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이용자의 정보에 대한 접근권도 적극적 ꡐ권리ꡑ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미국 ꡐ냅스터ꡑ의 경우에는 음악 파일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ꡐ소리바다ꡑ는 직접적으로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며, 단지 이용자의 위치를 알려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P2P 기술을 이용해서 이용자들은 저작권이 있는 음악파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설사 이용자들의 파일 교환에 불법적인 용도가 있다 하더라도, ꡐ소리바다ꡑ를 폐쇄해야 한다는 음반사들의 주장은 과도한 것이다. ꡐ소리바다ꡑ를 폐쇄하면 다른 정당한 이용마저 가로막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음반사들은 ꡐ소리바다ꡑ 살리기 사이트에 쏟아지는 음반사들의 횡포에 대한 비판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에 저작권법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고도 도서관에 직접 가서 자료를 볼 수 있는 모순처럼, 우리는 지금 문화, 예술의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더 많은 수용자에게 전파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로막고자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저작권을 보호해 상품화를 많이 해야 음악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제는 디지털시대에 적합하며,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ꡐ소리바다ꡑ에 대한 판결은 ꡐ소리바다라는 프로그램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ꡐ디지털 저작물 일반ꡑ에 대해 적용될 것이기에 무척 중요한 결정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 이해관계의 대립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조건과 장기적인 발전방향을 고려하여 신중한 판단이 내려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의 ꡐ소리바다ꡑ 기소는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병일/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 (동아일보 2001/08/17)
1. 징병제에 대한 논의조차 봉쇄하는 사회
지난 3월에 서울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에서는 인터넷상에서 게시판을 통해 병역거부를 선동하며 회원을 모집하는 병역기피를 조장했다는 혐의를 두고 사이트 3곳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였다. 이는 현재 사회단체들의 잇단 성명 발표와 게시판 관리자들의 소환 조사 이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이후 한 게시판에서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던 네티즌이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 대신 이 일을 실천에 옮겼고 그들은 수사 기관에 붙들려 갔다. 이럴 수가... 하마터면 정말 난 붙들려 갈 뻔했다. 내가 생각하고 조직하려는 일들이 국가를 위험에 빠트리는 수준의 일이란 것을 알았다. 이러다 정말... 나 언젠가 붙들려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는 글을 남겨 놓았다. 한겨레21에서 여호와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기사가 나간 뒤로 인터넷 곳곳에서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사이버 토론이 진행되었다. 지난 군가산점제 논쟁에서 볼 수 있었던 원색적 욕설은 별로 눈의 띄지 않았지만 논쟁의 고리가 되고 있는 것은 소위 '이단'으로 분류되는 여호와증인에 대한 특혜 시비, 남북한 대치상황 등을 이유로 징병제는 존속되어야 한다는 주장, 하기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웃기지도 않는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증인의 변호인단과 함께 했던 첫 군사재판에 방청을 갔을 때도 변론의 거의 많은 부분을 여호와증인들이 사회에서 이단시 취급되는 몇 가지 이유(예를 들면 수혈거부,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등)에 대한 해명(?)에 할애하고 있었다. 계속 느껴왔던 거지만 한국 사회는 특히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인정에 무척이나 박하다. 사람들은 '정통'과 '이단', '가짜'와 '진짜' 등으로 구분 짓는 것을 좋아하며 그 보편성에 조금이라도 벗어날 때는 가차없는 차별과 배제로 억압한다. 비단 여호와증인들의 병역거부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일상적 억압도 마찬가지로 작동되고 있다.
2. 양심적 병역거부권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하 양심적 병역거부권)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인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약 40여 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법을 통해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비전투 분야의 대체복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신념이나 행동에 강요당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에 기초하여 폭력과 살상을 준비하거나 행하는 병역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교리에 국한되지 않고 사상적 신념이나 양심을 포함하며 거부의 대상은 군복무 자체(절대적 병역거부), 군대내 특정 제도, 특정한 무기사용, 특정전쟁(선택적 병역거부)등 다양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거부당사자에는 군인과 징집대상자, 일반시민이 모두 포함될 정도로 광범위한 개념이며 다양한 거부운동이 가능하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속하는 것이며 이 기본권은 세계인권선언 18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호소의 수준을 넘어 국가의 의무와 연결시키며 양심상의 이유로 이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유럽인권규약 제9조에 의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에 각 나라별 국내법과 관행을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징집대상자로서 양심상의 이유나 종교적․인종적․도덕적․인도주의적․정치적 또는 유사한 동기로부터 나오는 깊은 신념에 따라 군복무 혹은 다른 직간접적인 전쟁 및 무력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 (국제엠네스티, 1991년).' 국제엠네스티는 또한 위 정의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구금 또는 투옥되었을 경우 그 사람을 양심수로 간주한다. 이러한 보편적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무엇을 양심적 병역거부로 볼 것인가 하는 범주에 따라 몇 가지 논란이 되어왔는데 첫째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절대적 병역거부와 특정 전쟁이나 특정 무기사용 등에 반대하는 선택적 병역거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이 있다.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선택적 병역거부는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둘째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종교적 의미에서만 국한시키는 경우인데 이것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는 이미 그 범위를 확대시켜 종교적 이외의 정치적, 문화적 신념까지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포함시키고 있다. 작년에 대체복무제도가 실시된 대만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종교적 양심에만 국한시키고 있다. 이외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고자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의 논란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 심의의 문제(양심을 판단하는 문제, 판단하는 주체의 문제 등), 대체복무제도의 역종과 기간의 문제(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권리로써 인정하기보다는 혜택이나 특혜 등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등이 논란의 지점이다.
3.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
이미 각 지면을 통해서 알려진 대로 여호와증인들은 해마다 5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집총을 거부하고 감옥행을 택하고 있다. 항명죄에 대한 처벌은 3년의 징역을 선고받으므로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호와증인 집총거부자들은 1600명을 헤아린다. 자세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제7일 안식일교에서도 종교적 양심에 따른 집총거부의 역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양심․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나 이것이 특수한 법적 이익(징병제와 같은)과 상충하게 되었을 시에는 보장되지 못했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한국에서 여호와증인과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흐름은 종교적 이유 이외의 역사가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군복무 도중 어떠한 이유에서건 병역을 거부하는 또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선택적 병역거부)의 흐름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문무대․전방입소철폐 투쟁․군인들의 각종 양심선언 등 양심적 병역거부의 흐름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었다.
4. 현재
전국의 각 교도소에 약 1600여명 정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수감중이다. 이들 병역거부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여호와증인 신도들로써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살생을 준비하는 군대와 집총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입영 자체를 거부하여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시 병역법 88조 입영기피죄 위반자로 1년 6월 내지 2년을 선고받으며 입영하여 집총을 거부하였을 경우는 군형법 44조 항명죄 위반자로 법정 최고형인 3년형이 구형된다. 최근 여호와증인의 변호인단이 구성된 후 항명죄로 처벌받은 70여명이 집단항소를 제기하여 이 중 부모나 혹은 형제가 같은 이유로 복역한 경우 6개월의 형량을 감형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양심의 자유는 '내심의 자유'일 경우에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표현되어 국가이익에 중대한 해를 미친다고 보여질 경우는 그것을 억압할 수 있다고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에게 3년형을 그대로 선고하였다. 법정 최고형은 살인 등의 아주 극악한 범죄일 경우 선고되는 것이므로 보통 사건의 경우 이러한 법정 최고형보다 낮게 선고되어 왔으나 이례적으로 항명죄의 처벌은 천편일률적으로 법정 최고형이 선고되어지고 있다. 또한 모범수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했을 경우 가석방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들 항명죄 위반자들은 보통 형기의 80% 이상 복역시 가석방되는데 이는 군복무기간보다 복역기간이 길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양심상의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이들에게 획일적인 제도 이외의 다른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수퍼초울트라 전체주의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어떤 사회적 위협보다도 정신이 번쩍 드는 있을 수 없는 일인가보다. 수십 년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지속되어온 이러한 관행 속에서 심각한 군사주의, 전체주의 대한민국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코드를 발견하게 된다.
5. 대체복무제도 혹은 민간봉사제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대다수의 나라들은 이들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대체복무제도(민간봉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도입시기나 나라별 특징별로 이러한 제도의 내용은 천차만별이나 대체적으로 군사분야와 관련 없는 사회봉사 분야에서 이들의 병역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물론 대만의 현재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 제도의 도입 초창기에는 양심을 규정하는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논의과정의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사회봉사 분야의 문제, 고용의 문제, 대체복무 기간의 문제 등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도출되고 실지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 관련법규만 100가지 이상을 고쳐야 하는 등 사회전체 시스템의 문제가 제기되고 도입 이후에도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개선되어져 나가야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아주 오랫동안 시행해 왔고 이제 징병제 폐지의 기로에 선 혹은 최근 폐지된 유럽 나라들은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는 부끄럽거나 남성답지 못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충분히 선택 가능한 보편적 권리로 자리잡았으며 개인의 양심에 차별을 두지 않고 절차가 까다롭지 않으며 신청서의 서면제출, 90% 이상의 인정 등으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전체병역의무자의 30%에 이른다고 한다.(독일사례)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도 이러한 대체복무제도까지 거부하는 완전거부자(total objector)의 문제는 계속되어 왔고 대부분 처벌받아왔다. 이들 완전거부자들은 국가에 의한 동의되지 않은 동원권에 반대하며 특히 전쟁시에는 대체복무를 시행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할지라도 전쟁에 동원된다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어 대체복무제도까지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전쟁이 흔한 나라에서는 전시에는 여성도 동원되기 때문에 여성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터키회의에서 만난 WRI 활동가 안드레아스 스펙도 완전거부자인데 위와 같은 사유로 대체복무를 거부하였고 8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으나 처벌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의 인권․평화활동가들의 고민을 간단히 설명하며 우리의 싸움에서 완전거부자들이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고백하였더니 현재의 국가시스템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완전거부자들은 대부분 전쟁과 군대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활동가들이고 이들의 신념은 전쟁과 그것의 원인, 지속시키는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내부토론회에서 이재승 교수의 말처럼 이 사회에서 자신의 양심을 온전히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법에 의해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존하기보다는 내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통한 또는 일상적인 집단화 교육을 통한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지난 터키회의에 모였던 활동가들은 운동의 물결이 대단했던 한국에서 모든 남성이 특히 운동권 남성이 병역의 의무를 당연시하고 군대에 갔다는 점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팔을 빼거나 굶는 경우는 있어도 이 자체를 개인의 양심에 따른 운동으로 생각지 못했었다는 것, 오히려 80년대 군입대를 앞둔 운동권 청년들에게 군대에서 사병들을 의식화․조직화시킬 것을 학습했다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와 조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핏 이해되지 않는 문제인 듯 했다. 1세계 운동권들에게 우리의 운동 역사가 재단 당한다는 조금의 거리낌도 있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지금까지 보다 큰 담론을 목표로 지금의 항복은 그 대의를 위해서 필요악이라는 자세로 일관해오지 않았는가 반성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양심의 자유, 혹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흔한 주제도 흔한 행동도 아니다. 양심에 꺼리더라도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혹은 좀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사소한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곤 했던 우리의 문화에서 특히나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너무나 버거운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를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은 입영을 앞둔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서 사격 훈련을 거부하는 것, 아이들에게 무기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 군사분야와 관련된 자료 및 홍보물의 부착을 해당 공간에서 거부하는 것 등 아주 다양한 분야의 운동이 가능하다. 잠시 접어두었거나 아니면 몰랐거나 아니면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우리의 양심에 따른 행동은 아주 조그만 곳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최근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그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인기가수 유승준의 병역의무 회피용 한국국적 포기, 장 상 총리 내정자 아들의 미국 시민권 보유, 그리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며느리의 소위 ꡐ하와이 원정출산ꡑ 등을 계기로 이중국적 문제가 다시금 도 마 위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이중국적 문제는 법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현실적 측면을 안고 있어 단선적 시각에서 접근, 처리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한 개념과 철학의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 여 본고에서는 이중국적의 개념을 살펴보고, 국제법에서는 이 문제를 어 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고찰한 다음 이중국적 문제의 해결 방향을 제시하 기로 한다.
이중국적의 개념과 종류
본래 국적은 국민으로서의 신분 또는 국민이 되는 자격을 가리키는 개념 으로서 개인은 국적에 의해 특정한 국가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국적은 ꡐ개인과 국가를 연결하는 법적 유대ꡑ이다. 국적의 취득은 출생에 의한 선 천적 취득과 혼인․귀화 등에 의한 후천적 취득이 있다. 선천적 취득에 대 하여는 입법례가 나라마다 다르나, 혈통주의(속인주의)와 출생지주의(속 지주의)로 대별된다.
그리고 이중국적이란 말 그대로 한 개인이 2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 우를 말하며, 그러한 사람을 이중국적자라고 한다. 오늘날 국가간에 교통․ 통신이 발달하고 인적 왕래가 증가함에 따라 2개의 국적을 갖는 사람들 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중국적도 역시 출생에 의한 선천적인 경 우와 후천적인 경우로 나뉘어진다. 먼저 선천적인 이중국적은 ① 혈통주 의 국민을 부 또는 모로 하여 출생지주의 국가에서 출생한 사람의 경우 (예: 한국 남성의 자녀로서 미국에서 출생한 자)와 ② 부계혈통주의 국가 의 남자와 부모양계혈통주의 국가의 여자 사이에 출생한 사람의 경우 (예: 한국인을 부로 하고 부모양계혈통주의를 택하고 있는 일본 사람을 모로 하여 출생한 자) 등에서 발생한다. 이에 반해 후천적 이중국적은 출 생 이래 하나의 국적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후천적으로 다른 국적을 취 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된다. 즉, A국 국민이 B국에 귀화하여 B국 국 적을 취득하게 된 상태에서 A국 국적을 상실하지 않고 계속 보유할 수 있 다면 그 사람은 이중국적자가 되는 것이다.
주요 국가들의 태도
세계 여러 나라들은 ꡐ출생에 의한 선천적 이중국적ꡑ을 인정하고 있다. 선 천적인 이중국적은 각 나라마다 국적법이 달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 이므로 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ꡐ허용ꡑ이란 말은 장려 또는 촉 진한다는 뜻이 아니고, 출생에 의해 이중국적이 발생하더라도 외국 국적 의 포기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선천적인 이중국적 상태를 인정하고 있다. 선천적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경우에도 대체로 성년이 되는 나이 또는 일정한 연령 도달 시 어느 하나를 정리하 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18세가 되는 때에 미국 국적과 혈통에 따라 취득 한 국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지를 선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단, 18세 이전에는 부모 또는 자녀의 의사에 의해 임의로 미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
반면 대다수의 국가들은 ꡐ원칙적으로ꡑ 후천적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다(다만, 호주, 과테말라, 파나마, 싱가포르, 세네갈 등은 이중국적을 허 용하고 있다). 미국도 미국 시민권자가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시민권을 자동 상실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외국인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 하면 종전의 국적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선서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법적 으로는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의 국적관리 행정상 미 국 시민권자가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했는가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 지는 시민권자로 처우하고 있고, 외국인이 본국의 국적 포기선서를 한 경 우 그 선서를 믿을 뿐 실제로 그 외국 국적을 정리했는지 여부를 엄격하 게 조사하지 않는다. 그 결과 현실적으로 이중국적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법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ꡐ사실상의 이중국적 상태ꡑ이지 결코 미국 정부가 법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것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한 편, 캐나다와 같이 이중국적자에 대해 상대방의 국적 포기를 강요하지 않 음으로써 사실상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원칙상 후천적 이중 국적을 부인하는 나라에서도 불가피하게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 (한국 국적법 제10조2항 단서에 의한 외국국적 포기의무의 예외와 동법 제15조2항에 의한 국적보유신고 참조)도 있다.
이중국적에 대한 국제법적 규율
이중국적은 국제법상 많은 불편과 곤란을 초래한다. 병역의무의 이행 등 어느 국가에 충성을 할 것인가, 또는 제3국에서 피해를 입은 경우 어느 국 가의 외교적 보호를 받을 것인가에 관하여 특히 그러하다. 징병이나 외교 적 보호권 행사를 둘러싼 국가간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종래부터 국제법 은 국적단일주의(국적유일의 원칙)를 이상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각국의 국적법이 상이한 이상 이중국적의 발생을 막는 데는 한계 가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이중국적으로부터 발생하는 저촉 문제를 국제조약 체결방식에 의해 조정해 왔다. 그 결과 이중국적 문제 에 관한 몇 가지 조약이 체결되어 있다. 1930년의 제1차 ꡐ헤이그 국제법전 편찬회의ꡑ에서 채택된 ꡐ국적법의 저촉에 대한 특정문제에 관한 협약ꡑ과 ꡐ이중국적의 일정 경우에 있어서 병역의무에 관한 의정서ꡑ가 그것들이다. 앞의 조약에서는 이중국적 방지를 위한 일방의 국적 포기, 국적 이탈에 의한 이중국적 방지, 출생지주의 채용 국가에 있어서 외교관 자녀에 대 한 이중국적 방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후자의 의정서에서는 자신이 상주 하면서 보다 긴밀한 관계를 갖는 국가에 대해 병역의무를 지며, 이 경우 타국에 대한 군사적 의무는 면제되고 그 국가의 국적을 상실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중국적자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소위 ꡐ실효적 국적의 원 칙(principle of effective nationality)ꡑ이란 것이 일반국제법상 확립되어 있 다. 이 원칙은 이중국적 중에서 법률관계의 존부, 애착의 사회적 사실, 거 주 요건, 당사자가 갖고 있는 이익과 감정 등 ꡐ진정한 관련성(genuine link)ꡑ을 기초로 하여 결정되는 실효적 국적의 소속국만이 외교적 보호권 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1955년 국제사법재판소의 노테봄사건 판결 참 조). 그리고 외국인의 법익을 침해한 가해국가는 해당 국가(실효적인 국 적의 본국)에 대해서만 외교적 보호권 행사를 인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약규정, 국제법상의 일반원칙과 법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실 제에 있어서 국제법이 이중국적 발생을 억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 이중 국적 문제를 국제법에 의해 완전히 해결하려는 발상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국적 문제에 있어서는 각국의 입법재량과 주권적 판단, 개 인의 인권(국적 보유 및 선택의 자유)이라는 요소가 개재되어 있기 때문 이다.
이중국적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 정립
흔히 이중국적자는 ꡐ삼각(三脚)의 괴인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말은 필 요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두 다리만 쓰면서 이익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새겨진다.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2000 년 6월의 총선에서 영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을 가진 짐바브웨 백 인들을 ꡐ다리가 세 개 달린 자들ꡑ이라고 칭하면서, 법조계나 정부 내 고위 직을 독점하고 있는 이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해서 유권자들의 큰 호 응을 얻은 바 있었다. 이것은 이중국적자에 대한 반감을 잘 드러낸 말로 회자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일부 선진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1999 년 독일 정부는 이중국적 허용을 골자로 한 국적법 개정을 추진하다가 여 론의 몰매를 맞고 결국 포기하고 만 적이 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63%가 이중국적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의 일반 정서 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이중국적자들 중 상당수는 국적법을 악용, 실리만을 취 하여 국민적 위화감을 조성해 온 게 사실이다. 즉, 병역기피용, 조기유학 용, 취업용으로 이중국적을 활용한다. 21세까지 부모와 한국에 살면서 의 료보험 등 한국인으로 받을 각종 혜택을 누리다가 정작 국민으로서 의무 를 다해야 할 경우, 한국 국적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이중국적 자들은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 인사들의 자녀가 대부분이어서 이중국적 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국제관계가 긴밀해지고 국가간의 인적 교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중국적 문제를 국수주의적인 시각에서 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과거에는 출생과 더불어 부여된 국적을 운명처럼 생각하면서 사망시까지 본국 하나만의 국적을 고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어도 외국의 국 적을 선택, 다른 나라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하 며, 더욱이 이민이나 유학을 통해 자신 혹은 자신의 자녀가 외국의 국적 을 취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원활한 경제활동을 위해 외국인에 게 부과되는 각종 제한의 장벽을 넘기 위해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는 일 이 발생한다. 그러기에 이중국적 그 자체를 선악의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개인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중국적 상태를 이용하는 것도 시기와 선망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를 범법 시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중국적자 를 적극 활용, 국가발전과 국위선양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국가전략을 수 립․추진하는 보다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중국적 문제의 해결 방향
하지만 방만하게 이중국적을 인정하는 것도 국가구성의 기본 틀을 흔들 위험이 있으며,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우선, 이중국적자에 대해서는 국가적 충성과 국내법 준 수(납세 및 주민등록 의무 등)를 요구하면서 모국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 지를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병역기피를 위해 한국 국적을 이탈한 경력이 있는 자는 일정 기간 동안 국내입국 금지와 더불어 국적 재취득 (회복)을 엄격히 금지 또는 제한하고, 한국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상업적 활동을 적정한 선에서 규제해야 할 것이다. 참정권 행사에 관하여 는 일정한 조건 하에 인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예컨대, 본인의 의 사, 국내 체류 기간, 주된 활동 근거지, 가족들의 거주지, 납세실적 등 일 정한 기준을 설정하고 이러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선거권, 피선거권 및 공무담임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것은 대통령, 총리 등 고위공직자의 선출 및 임명에 있어서 당사자 본인 및 가족의 이중국적 문제이다. 고위공직자에게는 고 도의 전문성과 청렴성 외에도 국가적 충성심과 도덕성이 요구된다. 따라 서 이중국적자를 장․차관 이상의 고위공직자로 임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가족의 이중국적 문제를 이유로 고위공직 취임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태도라고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국가와 국민을 이끌어 갈 정치지도자들에게는 한층 더 높은 수준의 국가관이 요청된다고 할 때, 고위공직 취임후보자가 자녀의 병역 기피를 위해 이중국적 상태를 이용하거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소위 ꡐ원정출산ꡑ을 하도록 방치하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 를 위해 앞으로 공직자 선출 및 임명과 관련하여, 자격상실을 위한 법정 요건이나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단계에서 이중 국적의 취득이 명백한 위법성과 악의성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를 지나치게 정략적인 목적에서 이용하는 것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고계현 <<< 경실련 정책실장
장상 전 국무총리 내정자 장남의 이중국적으로 인해 고위공직자의 검증 기준의 하나로 국적 문제가 새삼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이중국적 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 령 후보의 손녀딸이 이중국적 문제와 원정출산 문제로 정치적 문제가 된 바 있으며,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은 김영삼 정부 출범 초인 1993년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지만 딸의 이중국적 문제로 일주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 나야 했다. 2000년 양성철 주미대사도 자녀들의 이중국적 시비로 곤욕을 치렀고, 2000년 8월 교육부장관에 임명된 송자 씨는 부인과 두 딸의 이중 국적 문제로 24일 만에 사퇴했다. 이렇듯 개각 때마다 계속 문제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흔히 이중국적자란 외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 아 두 나라의 국적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외국 국적을 취득했 을 경우 호적법에 따라 이를 재외공관에 신고하게 돼 있으나 이를 지키 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적발도 쉽지 않아 그냥 이중국적으로 지내는 경우 가 대부분이다. 특히, 미국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하고 있어 미국 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부모의 국적에 관계없이 일단 미국국적을 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중국적자가 된 사람을 정부는 현재 2만 5천여 명 정 도로 추산하고 있다.
현행 국적법에서는 만 20세 이전에 대한민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모두 가 진 이중국적자는 만 22세가 되기 전까지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규정 하고 있다. 다만 남자는 병역법에 따라 만 18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까지 국적 포기 여부를 우선 결정하도록 돼 있다. 또 만 20세 이후에 이중국적 자가 된 사람은 이중국적자가 된 때부터 2년 내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 도록 돼 있다. 이중국적자로서 외국 국적을 선택한 사람은 정해진 기간 내에 법무부장관에게 ꡐ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한다ꡑ라는 뜻을 신고해야 한 다. 남자는 18세 이전에 국적 이탈신고를 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병역 대 상자로 편입된다. 다만, 18세가 넘었으나 병역미필이면 병역을 마친 뒤에 나 국적을 포기할 수 있어 병역미필 기간에는 계속 이중국적 상태로 남 게 된다. 이는 병역기피 목적으로 국적 선택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 기 위해서이다.
일부 지도층의 이중국적 문제가 왜 반사회적 문제인가?
문제는 이중국적자들이 국적법을 악용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대다수 이 중국적자들은 21세까지 부모와 한국에 살면서 의료보험 등 각종 혜택을 받다가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 인사들 의 자녀가 대부분인 이중국적자들은 군입대를 회피하고 취업목적 등으 로 외국 국적을 선택하는 부도덕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신병안전도 큰 혜택 중의 하나이다. 이중국적자의 경우 전쟁이 나면 자국 민 우선정책에 따라 한국인들보다 먼저 해당 나라 대사관의 협조로 다른 나라로 피신할 수 있다. 미 대학에 진학할 경우 입학은 물론 학자금 대출, 등록금, 장학금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미 공립학 교의 경우 등록금의 50%를 면제해 주는 곳도 있다. 거꾸로 한국의 대학 에 진학할 때에도 재외국민,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진학 할 수 있다.
이중국적이 주는 온갖 부정적인 특혜는 결국 자녀에게 이중국적을 갖게 해주기 위해 외국에 나가 아이를 낳는 ꡐ원정출산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 부 부유층 가정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ꡐ원정출산ꡑ은 아이에게 미국국적을 ꡐ선물ꡑ로 주는 차원으로 행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유력 일 간지는 5월 말 한 해 원정출산을 위해 미국을 찾는 한국인 임산부가 무려 5000여 명이라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특권처럼 여겼 던 해외 출산이 이제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 여행사들은 원 정출산 희망자들을 겨냥해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가는 3~4개월짜리 패 키지 여행상품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원정출산을 도와 주겠다는 전문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물론 불가피한 해외근무나 연수유학 때문에 외국에서 출산하는 사람들 도 많다. 이들까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령 정상 적인 방법으로 국적을 취득해 놓고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고의적 인 원정출산 같은 부도덕한 이중국적이 문제이다.
이중국적 허용은 국민통합과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혈통주의를 채택해 부계 또는 모계가 한국국적이면 이들 자 녀에게 한국국적을 부여한다. 미국과 프랑스 등은 속지주의를 채택해 자 국 내에서 출생하는 신생아들에게 자국 국적을 부여한 뒤 성년때(18세) 국적을 선택하게 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국가간 제도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세계변화에 발맞춰 이중국적 문제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해 이중국적 허용을 제기하는 주장 도 있다. 땅도 좁고 자원도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성공한 해외동포 의 투자나 해외 인력연구의 유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 중국적은 미국과 일본, 중국 등도 허용하지 않고 ꡐ국적유일ꡑ이라는 세계 적 원칙에도 맞지 않다. 또한 양 국가에 대한 국민의 권리 의무충돌, 외교 보호권 충돌 등의 우려도 있어 현실적 문제가 복잡하다. 특히, 미국국적 취득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일부 지도층의 이해를 적당하게 포장한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의 국적취득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기보 다는 대부분 무언가 불순한 의도에서 인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서 이중국적 허용은 불순한 의도를 합법적으로 현실화해 주는 꼴밖에 되 지 않는다. 이중국적 허용은 실리적 이익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크 다. 과연 현재의 대다수 이중국적 취득의 이유나 목적으로 볼 때 이중국 적을 허용했을 경우 얼마나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미 이민을 갔다가 돈만 벌면 미국으로 빠져나가 국부유출이 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일부 남미의 한국 이민자들과 국내의 경우에 있 어 급증하는 외화유출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과연 이중국적을 허용 할 경우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 설득력이 없다.
특히, 병역의무와 연관된 문제를 어떻게 다른 방도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병역 문제를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차별적으로 진행할 경 우 국민적 소외감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부모를 잘 만나 이중국적을 취 득한 사람들은 적당히 하고, 돈 없는 일반 국민들 자녀들에게는 전방에 서 총을 들게 한다면 아마도 국가에 충성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원래 국적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다. 국민 은 그 국가를 위하여 구성원이 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세금을 내고, 나라를 지킬 인적 자원이다. 그 인적 자원관리를 위한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국적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을 법률 로 정하고 있고, 한편에서 국가에게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우고 있 으며, 실무적으로 국적법과 재외동포법에 따라서 국적이 관리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해외거주 동포들에게 국내 에서의 안정된 경제활동들을 보장하기 위하여 지난해 12월부터 국적법과 는 별도로 재외동포법을 시행하고 있다. 재외국민이나 외국국적 동포가 거소신고증만 발급받으면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입촵출국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장 2년까지 국내에서 체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부동산 소유, 금융거래 등의 경제활동 등을 보장하고, 건강보험 혜 택 등의 자격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해외에서 성공한 동포들이 마음 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내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 는 것이다. 현재의 제도도 실효적으로 재외 국적자의 경우 국내 활동에 제약이 없도록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현재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그 나라의 독특한 역사성의 산 물이지 우리의 이중국적 허용 주장처럼 불분명한 사유로 시작된 것이 아 니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과거 식민지를 두었던 나라들은 해당 나라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대만은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에 흩어진 화교들을 보호하기 위해, 멕시코는 미국 에 거주하는 수백만명의 자국민들이 미국인으로 활동하는 데 법률상 문 제가 없도록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유대인의 본국 귀 환 촉진과 함께 경제적 목적에서 이중국적 제도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 리처럼 부정성이 정당성으로 치환되어 요구되어진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방 차원에서 국적 포기자를 등록해 놓았다가 이들에게는 국적회복도 공직취임도 원칙 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아마도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애국심 의 근거가 되는 것이 국적이 아닌가 하여 이렇게 구체화된 것이다. 우리 도 이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현재의 국적 관련 제도를 엄격히 시행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민통합과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 지도층의 되풀이되는 이중국적 문제는 우리나라의 적 지 않은 ꡐ상류층ꡑ 또는 ꡐ지도층ꡑ 인사들 사이에 자녀들에게 미국국적을 취 득하도록 해 한국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회피하되 권리는 향유하게 하려 는 가치관이 팽배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도층을 중심으 로 한 이들의 비뚤어진 의식은 대다수 서민들에게 열등감과 함께 분노감 을 갖게 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공직자 취임시 검증 기준으로 국적 문제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
자녀나 본인이 이중국적을 가지거나, 자녀가 외국 국적인 경우 고위공직 자 취임은 문제가 있다. 우리는 남북이 휴전 상태에 있고, 남자는 군복무 를 필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한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동시에 다른 기업에 적을 두고 있으면 한 기업을 위해서 전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이중적인 위치에 처한 사람들에게 한 나라에 전념 하라는 요구는 무리일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 전념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국정을 맡아서 운영하여야 할 것이다. 자녀나 본인이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위공직에 있거나 전문직을 수행하는 것은 별 문제 가 되지 않지만, 한 국가의 지도적 위치에서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 는다는 것은 무리이다. 지도자는 물론 가족이 모두 나라가 전쟁이나 공 황 등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국민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고, 국민에게 그러한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한국도 세계경제강국으로 도약하고 있고, 그 경제력이 밑받침되 어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와 월드컵 4강 위업도 이루어 냈다. 한국국적 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해외에서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으며, 자신감도 있 다. 외국 국적으로 그 나라에서 성공하여 유무형으로 조국인 대한민국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지만, 이중국적을 허용해야만 더 많이 도와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바 없다.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지만 공직자나 사 회지도층 그리고 그 자녀의 해외 국적 취득은 애국심의 관점에서 반드시 그 속셈을 검증하고 엄격히 제재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 결산 릴레이 좌담] 1. 무엇을 얻었나
"젊은 세대 품에 안은 우리 미래 밝다"
유홍준, 젊은이들이 축구를 축제로 승화
박명규, 월드컵 열풍 국가가 주도하면 역효과
김주훈, 히딩크 신화… 배타성 허무는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한국의 에너지가 대폭발했다. 우리 팀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4강에 진출했고, 건국 이래 최대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나와 응원의 함성을 질러댔다.
또 남녀노소가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되는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세계는 경악했다.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우리 스스로였다. 우리 사회 어디에 이런 엄청난 잠재력이 숨어 있었는지, 눈과 귀를 의심했다.
중앙일보는 전문가 3인을 초청해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할지 진단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유홍준=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를 품에 안았다. 이보다 값진 수확은 없다. 지금까지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사회나 국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행동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월드컵을 치르면서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월드컵을 축제로 발전시켰다.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았고, 축제가 끝난 뒤 말끔히 뒷정리를 하는 성숙함을 보여줬다. 외국인들이 이를 보고 "무섭다"고까지 했다.
▶박명규=청년들이 태극기로 옷을 만들어 입고, '대~한민국'을 응원구호로 사용했다. 이는 엄숙주의에 대한 타파요, 엄청난 사건이었다. 우리의 의식과 사회구조를 응원 패션처럼 자유롭고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값진 경고를 월드컵을 통해 얻은 것이다. 또 단번에 수백만명을 동원하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괴력도 보았다. 일종의 문화혁명을 경험한 셈이다.
▶김주훈=사회의 잠재력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분출하는지를 깨닫게 됐다. 히딩크 신드롬은 외국과의 접목을 통해 세계 수준의 지식을 끌어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또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줄 아는 신(新)세대를 발견했다. 이들은 누가 시킨다고 하지 않는다. 반면 자신이 좋으면 궂은 일도 마다 않는다.
▶유=우리의 사회적.역사적 경험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표출됐다. 우리팀의 첫 경기인 폴란드전 때 50만명에 불과하던 길거리 응원단이 독일전에서 7백만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응원 문화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잠재된 의식이 깨져 나가면서 긍정적인 면이 와락 쏟아져 나온 것이다.
▶박=젊은 세대가 열광적으로 참여한 배경에는 일상의 답답함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월드컵을 축제로 발전시키면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유=쇼비니즘(배타적 민족주의)의 표출로 보는 사람도 있다. 기우다. 붉은 악마의 응원은 공격적이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방어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고 할까. 이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고,그래서 붉은 악마라는 명칭을 고수할 수 있었다. 'AGAIN 1966(북한이 66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사실을 재현하자)'이란 카드섹션은 예전 같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붉은 악마들은 논리적으로 하면 수십년에 걸쳐 바꿔야 할 것을 한번에 해버렸다.
▶김=나는 유신시절 학교를 다녔다. 당시 국가는 짓누르는 개념이었다. 지금 20대는 6.10 민주항쟁 이후 시작된 민주화의 혜택을 받은 첫 세대다. 그만큼 자유롭다. 'AGAIN 1966'은 외국에 남북 대치상황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인상을 줬을 것이다.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은 북한의 군사적 위험을 점수로 환산해 신인도에 대입시킨다. 이 점에서 월드컵 기간에 젊은이들이 보여준 행동은 국가신인도 향상에 기여했다.
▶박=축제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번 의식이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월드컵 기간에 치러진 지방선거 투표율은 사상 최저였다. 우리의 힘을 확인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정 부분 유보가 필요한 잠재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선거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라기 보다 정치판에 대한 무관심이다. 현재의 정치판에서는 신명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을 봤다. 빨간색으로 통일한 젊은 세대를 보면 언뜻 획일성이나 집단주의가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자. 정작 이들이 보여준 것은 확실한 개성이다. 옷과 스카프를 제외하고는 패션이 모두 달랐다. 보디페인팅 등으로 수천 가지의 패션을 창조했다. 어떤 디자이너가 이런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박=우리가 결승에 갔으면 했다. 요코하마로 가면 정치인이 풀지 못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 민단과 조총련의 관계를 축구와 붉은악마가 부드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PRIDE of ASIA'라는 카드섹션에서 보듯 아시아적 유대감이 형성된 것도 큰 수확이다.
▶김=외국과 유대가 깊어진 만큼 이제는 밖으로만 눈을 돌리지 말고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히딩크가 '우리'라는 범주에 들어왔듯 이제는 인종을 초월한 우리 개념을 확립시킬 때가 된 것이다.
▶유=사실 우린 히딩크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그는 우리에게 맞는 축구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히딩크는 한국의 첫 외국인 영웅이 됐다. 사회의 배타성이 히딩크를 통해 허물어졌다.
▶김=우리 사회가 지향하던 바가 히딩크라는 포장지를 통해 재포장돼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연고주의의 폐해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얘길했나. 열마디.백마디의 말을 해도 안된 것을 히딩크가 해낸 것이다.
▶유=여성들이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특이하다. 사실 권투 다음으로 단순하고 원초적인 경기가 축구다. 우리 축구팀이 잘하고, 신명이 나면서 여자들을 끌어들였다고 본다.
▶박=여성들이 답답함을 분출하려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가부장적 엄숙주의가 지배한다. 그만큼 여성들이 눌려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등을 통해 조금씩 대리 분출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김=우스갯소리로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를 여자들이 가장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축구 자체보다 월드컵이 축제로 번졌고, 붉은 옷만 있으면 우리도 축구라는 광장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김=일부에서는 이번 월드컵에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아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관광객보다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가 올라간 것에 주목해야 한다. 좀 과장해 말하면 '무한 가치'에 가까운 효과를 얻은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천군만마다. 앞으로 월드컵 열풍과 히딩크 효과를 사회 발전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옛날에는 마을마다 느티나무 아래 광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자발적인 공동체 의식이 형성됐다. 하지만 일제 시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운동장 문화'가 이를 대신했다. 해방 이후에도 시위를 두려워 한 독재정권이 마당문화를 되살리지 않았다. 도심 속에 광장문화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김=97년의 외환위기가 외부로부터의 강제 개방이었다면, 월드컵 열풍은 내부로부터의 자발적 개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로 난 문을 열어 히딩크를 영입했고, 사고를 열어 공동체 문화를 증폭했다. 외부에서 선장.조타수 역할을 할 지식(인)을 과감히 끌어오자.
▶박=월드컵은 내부의 게임이 아니다. 학연.지역.이념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녀노소,영.호남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의 게임이 되면 상황이 다르다. 구태가 고스란히 재복원될 가능성이 있다. 젊은 세대 각자가 월드컵에서 느낀 감각을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 살려나가야 한다.
▶김=기초 체력을 중시한 히딩크식 사고는 경영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기업들은 투자액의 80%를 당장 쓸 수 있는 상용화 부문에 쓴다. 일본은 70%, 선진국은 50%을 상용화에 투자했다. 우리는 당장 따먹을 수 있는 것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이번 기회에 이런 기업 풍토를 바꾸자.
▶박=월드컵 열기를 발전.계승한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선 안될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국민적 에너지가 터져나온 것은 자발성에 뿌리를 둔 것이다. 국가가 가시적 효과를 노려 정책을 펴면 오히려 이번에 나타난 좋은 면을 모두 잃을 것이다. 중간단계(기업.학교.가정 등)에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만약 열기가 오염되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얽혀 이전보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김=사회지도층이 붉은 악마를 국가 에너지로 끌고가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자발적으로 하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구나. 이들의 욕구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진행=사회부 이규연 차장
정리=김기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월드컵 결산 릴레이 좌담] 2. 광장문화를 살리자
이혜경, 일회성 아닌 일상적 체험공간 필요
김석철, 세시풍속.장터 공동체 되살릴 기회
강형기, 지방마다 색다른 문화광장 세워야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국민의 열광적 거리응원이 펼쳐지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광화문.시청 앞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자동차 거리가 사람의 거리로 바뀌었다.
서양에서와 같은 자발적 광장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생성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놓쳐서는 안되겠다.
이 열기를 일상의 삶 속에서 다시 꽃피우게 할 순 없을까.'광장문화를 살리자'는 주제로 전문가 세 명이 좌담회를 열었다.
김석철=대학 강의를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자주 간다. 그 때마다 도시 전체가 수많은 광장의 조합으로 이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의 경기를 한 번은 경기장에서, 세 번은 광화문과 시청 앞 거리에 나가 응원의 열기를 직접 느끼며 보았다. 자동차가 차지했던 거리가 인간의 거리로 변화한 모습은 장관이었다. 우리에게 공동체를 실감하게 하는 공간이 너무 없었다.
이혜경=서구 근대사회의 공공성은 교회와 시청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광장에서 발달했다. 우리에게 마당은 있었으나 서구적 의미의 광장은 없었다. 분노의 거리이자 애도의 거리이기만 했던 우리의 시청 앞 공간이 축제와 기쁨의 광장으로 변하는 경험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강형기=세대간.계층간 벽을 넘어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낸 경험은 이번 월드컵의 큰 성과다.함께 살아 있다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선 문화적 감동을 공유해야 한다. 광장문화는 개인이 공동성을 체험하게 하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金=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한 계기는 과거에 두 가지가 있었다.하나는 새마을운동과 해외건설 같은 '잘 살아보세'이고,다른 하나는 민주화 운동이었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이 두 축의 거대한 흐름이 무너졌다. 국민은 냉소적으로 흩어졌다. 월드컵은 흩어진 민심을 다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
姜=문화에는 충전의 문화와 방전의 문화가 있다. 지난 세기 우리에겐 서구를 따라 배우고 배를 채우는 충전의 문화가 전부였다. 포식의 단계를 지나 방전의 문화로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놀이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방전이 일상화되면 폭발적 긴장도 완화된다. 이번 월드컵의 엄청난 열기는 방전의 계기를 찾은 것이다.
李=광장문화의 체험을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좌담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시청 앞의 일정한 공간을 상시적 문화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구의 광장이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만나고 나뉘는 상징적 공간이듯이 우리도 시청 앞을 누구나 나와 토론도 하고 축제도 벌이는 자유의 거리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金=오랫동안 구상해 오던 문제다. 광화문에서 남대문 사이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광장을 두개 정도 만들 수 있다. 응원 열기를 직접 체험하며 그 구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꼭 실현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姜=김석철 선생님의 구상이 실현되길 기원한다. 그런데 마음의 광장, 의식의 광장도 그에 앞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월드컵 개최 도시 중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개 도시에서 지역 주민과 외국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공간이 전무했다. 대한민국 문화는 서울 문화만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중앙집권화를 강화한 꼴이다. 지방의 젊은이들이 서울까지 와서 응원을 해야 1등 응원이 되는 것인가. 지역의 문화를 살려야 한다. 비빔밥을 먹어도 한국의 비빔밥이 아니라 전주에 가서 비빔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 주민이 생활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공간을 만들자는 뜻이다.
李=지역적으로 작은 공동체 문화가 큰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런데 아직 없는 지역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하위문화가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 그것은 결핍의 비주류 문화다. 내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성영화제라든가, 안티미스코리아대회 등도 그런 것이고,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대중스타들로부터 결핍을 보충하려는 것도 일종의 그들만의 공동체 문화라 할 수 있다. 하위문화의 입장에서 이번 월드컵의 의미를 평한다면 신동엽 시인이 4.19를 노래한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하늘을 잠깐 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위문화를 어떻게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 포용할지가 과제다.
金=우리 전통 속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게 했던 가치들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있다. 시간의 공동체로서 세시풍속이 있었고, 공간의 공동체로선 장터가 있었다. 공동체를 느끼며 에너지를 결집했던 요소인 세시풍속과 장터 문화를 현대 도시에서 새롭게 일상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할 수도 있다.
姜=우리에겐 마당과 공터가 있었다. 우리 전통은 공간성보다 시간성을 더 중요시한 것 같다. 골목에라도 돗자리 하나 깔면 그곳이 곧 함께 즐기는 마당이요, 광장이었다. 어디에서나 마당을 만들 수 있고 너무 많다 보니 오히려 없는 것처럼 보인다.
金=세시풍속을 새롭게 해석해간다는 전제 아래 오늘 우리가 생각할 과제는 세시풍속을 담을 장터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문화광장의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다. 과거에 일상생활이 6일 동안 계속되고 7일째 장터가 열렸듯이 우리가 만들 문화광장은 일상적 삶의 공간인 동시에 축제가 열리는 공간이다.
李=문화광장을 만들더라도 너무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이며 낡은 관념으로 접근해선 곤란하다. 지금은 농촌 공동체처럼 달의 주기로 공동체의 시간을 결정하는 시대가 아니다. 변화하는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인터넷 광섬유 시대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바뀐다. 이번 월드컵에서 전광판 문화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점만 봐도 그렇다. 인터넷은 다양한 하위문화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姜=우리의 사이버 광장은 세계에 유례가 없이 발달하고 있다. 과거 돗자리를 깔던 광장의 DNA가 사이버에서 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사이버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결국 땅에 발을 딛고 살게 돼 있다. 사이버 광장이 발달한 것은 그만큼 땅과 밀착된 광장이 사라진다는 의미도 된다.
李=그래서 함께 공유하는 문화광장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채워줄 다양한 하위문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姜=가무를 좋아하고 낙천적인 우리 국민이 21세기 거리에서 잊어버린 문화를 표출한 긍정적 측면을 물론 먼저 고려해야겠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지적해야 할 점도 있다. 외국이 흉내내지 못할 전체의 아름다움만 있고 개체가 없다면 문제다. 개체가 아름답고 나서 전체가 아름다워야 진정한 아름다움일 수 있다. 월드컵 기간에 일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본의 방송은 월드컵 말고도 여전히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고 있었다. 우린 축구만 보라고 강요한 측면도 있다.
李=꼭 그런 것만도 아니지 않을까. 자발적 참여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경험을 하게 됐다. 태극기로 옷을 만들어 입는 등 파격을 즐기는 여유를 만끽하는 과정에 개체와 부분 하나 하나가 살아 있었다. 시청 앞 잔디와 꽃이 거의 상하지 않았다는 것도 일시적이나마 성숙한 문화를 경험한 것이다. 지금까지 꿈과 팬터지의 세계를 방치해 왔다면 이번에 꿈을 현실화하는 체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姜=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잘 될 것 같다. 광장문화의 확산은 이를 촉진할 것이다. 문화적 감동을 공유할 광장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각 지역의 주민이 돼야 한다. 지역마다 차별화된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광장, 문화적 흡입요소가 풍성한 광장의 모습이 기대된다.
李=광장의 특징은 열림이고, 문화는 잠재성을 재현해내고 가시화하는 것이다. 광장문화는 이제껏 언어를 독점해 왔던 사람들이 더 귀를 열고 듣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의 독특한 이 시점에 도입될 광장문화를 통해 열림의 문화를 꽃피웠으면 좋겠다.
진행=문화부 정명진 차장
정리=배영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월드컵 결산 릴레이 좌담] 3. 놀이문화 살리기
"즐길 수 있는 축제의 場 자주 만들자"
주5일제 걸맞은 여가활용法 깨우쳐
한달간 계속된 장엄한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만들어낸 배우들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이제 객석에는 감동과 환희를 맛보았던 관객만이 남았다.
이제 우리는 잠시 눈을 감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전국민이 보여줬던 월드컵의 국민적 에너지 대폭발,그 이후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온 ꡐ우리ꡑ의 의미와 가치,그리고 월드컵의 열기를 어떻게 승화시켜야 할 지 전문가 좌담을 통해 짚어본다.
-월드컵에 쏟아부었던 열광과 흥분 뒤에는 허탈감이나 공허감이 올 수 있다고도 하고, "이제 무슨 재미로 사나"하는 탄식도 나온다고 하는데요.
▶김병후=물론 재미라는 자극이 없어지면 허전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정신의학적인 일종의 진공상태나 집단 우울증 같은 것은 없을 겁니다. 월드컵을 통해 보여준 국민의 열정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처럼 억압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놀이 그 자체였습니다. 에너지의 본질이 달랐던 거죠. 찌든 삶에서 신나는 삶, 즐거운 삶으로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국민의 정신건강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셈이지요.
▶정진홍=월드컵 패닉 현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거리 응원의 주역인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문화적 코드는 전혀 다릅니다.'대~한민국'을 외치는 세대에게선 근엄.권위 속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대한민국'세대와는 달리 경직성을 찾아볼 수 없어요. 그들은 유연하게 또 다른 재미를 찾아갈 겁니다.
▶김정운=젊은 세대는 과정이 재미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이라는 목표가 성취됐을 때 비로소 행복하다고 느끼는 기성세대와 다르죠.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기 때문에 공허감도 그다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폭발적인 열정이 국민 정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정진홍=바이러스에 감염되듯 젊은 열정이 기성세대를 포함한 전국민의 폭발적인 성원을 이끌어 낸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10여명의 젊은이들이 시작한 붉은 악마의 에너지가 폴란드전 때는 50만명, 독일전 때는 7백만명의 거리응원을 끌어내지 않았습니까. 플러스 발상의 감성 바이러스가 음울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국민적 에너지를 응집시켜 자신감.자긍심.자기 존중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병후=우리나라 사람들은 환경이 좋아져도 여전히 일 쪽에 무게중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보면 행복을 느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은 아니거든요. 우리를 놀 수 없도록 만드는 조건을 찾아내 제거함으로써 재미를 일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김정운=저는 이번 월드컵을 재미라는 측면에서 평가하고 싶어요. 전 국민이 함께 즐기는 재미의 코드를 찾은 것이지요. 어떻게 즐길 수 있느냐 하는 방법,즉 축제의 본질을 터득했습니다. 과거 독재정부 주도의 '국풍(國風)'이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한 것처럼 흥은 스스로 참여해야 절로 나는 것입니다. 이번의 신바람 문화를 확대 재생산해 나가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잃어버렸던 재미와 행복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찾았다는 말씀인데.
▶김병후=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잘 노는 것입니다. 기성세대의 경우 노는 것도 간섭을 하고 규제를 합니다. 공허함으로부터 탈피하려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찾아서 해보는 게 방법입니다. 인간의 재미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거든요. 결국 어른들의 엄숙주의.계몽의식.경건주의의 시각으로 월드컵을 보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심층에 분노가 담긴 세대와는 다른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시는군요. 그렇다면 기성세대에게 월드컵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김정운=우리는 노는 것을 보면 괜히 불안해 했죠.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놀이문화가 거의 없어요. 아버지는 가정이 아닌 곳에서 남자들끼리 어울리고,아이들은 부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로 놀았지요. 이제 사람들은 많은 돈이나 거창한 계획 없이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재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가족이 공유하는 재미의 코드를 찾은 것이죠. 아마 거리응원이든, 가정에서든 월드컵을 가족과 함께 즐긴 사람들은 주 5일 근무제의 여가활용 방법도 터득했을 겁니다.
▶김병후=우리는 본래 감성적이고 신명 있는 민족입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의 억압에 의해 이러한 흥이 감춰지고, 즐거워하거나 재미있으면 안되는 사회가 됐죠. 또, 누가 잘되면 끌어내리고 미워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직장에서 가정에서, 신이 나고 즐거워하는 방법을 다시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민적 축제의 장(場)을 정례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재미 속에서도 일사불란한 통일성이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정진홍=이번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억압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환희에 넘치고 자신감으로 충만한 포지티브 에너지이지요. 또하나 중요한 것은 열정을 발산하면서도 책임을 질 줄 아는 고품질의 사회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김병후=초대형 거리응원을 하면서 큰 사고나 행패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응원 후에 스스로 청소하는 모습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심성에선 찾아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것들이지요.
▶정진홍=이제 우리도 개별성과 전체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된 것이죠. 자기자신에 충실하면서도 집단에서 하모니를 찾는 새로운 인간 군(群)의 탄생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흥의 문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요.
▶김병후=우리 사회나 가정문화는 간섭의 문화지요. 퇴근해서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 즐거울까를 생각하기보다 아이들 공부 점검하는 것이 먼저지요. 이러한 규제 속에서 진정한 행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정진홍=이번 기회에, 목표를 좇던 사회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사회로 전환돼야 합니다. 사회발전도 축구와 같이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지요. 전반전이 목표를 향해 뛰었다면 후반전은 삶의 의미를 가꾸는 시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프타임은 바로 나의 존재.가족, 그리고 인생의 재미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하프타임에 와 있습니다.
▶김정운=중요한 것은 이 에너지의 승화 작업이 관(官)주도형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적은 행복해지고 즐기는 것입니다. 이념과 정책이 들어가면 판이 식어버립니다. 정부는 내적 동기를 유발할 수 있도록 놀이문화를 만드는 인프라만 깔아줘야 합니다. 말하자면 젊은이들에게 맞는 문화적 코드를 찾아주자는 것입니다.
▶김병후=상대방이 잘못하면 비웃고 헐뜯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네 풍토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게 살아왔지요.거리응원의 질서의식과 격려.지지.포용능력에서 보듯 이제 사회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남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 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우리는 썩 괜찮은 민족'이라는 걸 보여줬지 않았습니까.
▶정진홍=정치적 에너지가 아니라 문화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스페인은 1982년 월드컵을 통해 프랑코 총통이라는 독재국가의 이미지를 씻고, 대신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문화.관광 산업국가의 이미지를 부각했습니다. 관광수입이 당시 63억달러에서 10년 뒤엔 2백4억달러로 급성장했지요.
감성 바이러스의 사회가 만들어낸 '핫 소사이어티'에선 이렇게 '쿨(Cool)리더'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폭발적인 원자폭탄의 뇌관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처럼 감속제를 통해 완급과 강약을 조절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자 말입니다. 스페인도 월드컵을 승화시키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국민을 계몽하려고 해선 안돼요.
그리고 서둘러서도 안됩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에너지, 엄청난 감성의 힘을 주목하면서 분명한 방향감각과 유연성을 가지고 진행시켜 나간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베스트 원'이 될 수 있습니다.
월드컵 결산 릴레이 좌담] 4. 경기장 활용
"경기장 운영 민간에 맡겨 수익 꾀하자"
월드컵을 치른 국내 10개 경기장은 세계적으로 '환상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2조5천억원을 들여 잘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지금은 경기장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심거리다. 자칫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압박하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어서다.
어떻게 운영해야 수익도 내면서 '월드컵 상징'의 의미를 이어갈 수 있을까.'월드컵 경기장의 바람직한 활용'이란 주제로 전문가 세 명의 좌담회를 열었다.
▶김석중=지난달 26일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월드컵 경기장의 활용방안에 관해 다양한 대책이 나왔다. 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연구소 등도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별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듯싶다. 또 수익성은 얼마나 고려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박재룡=경기장에 어떤 수익시설을 유치할 것인가는 그리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경기장과 주변을 어떤 테마로 운영할 것인가 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 그런 후에 부대시설을 포함한 경기장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순서다. 경기장에 최첨단 극장과 대형 할인점.유흥시설을 유치했다고 하자. 그러나 시민들이 경기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가까운 곳의 비슷한 시설을 놔두고 굳이 그곳을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金=지자체 입장에선 경기장의 공익성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익성에 치중하다 보면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이는 경기장의 운영부실로 연결된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지역주민이므로 장기적인 측면에서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운영은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이 적합하다.
▶朴=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기장은 민간과 지자체가 함께 운영하는 '제3섹터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 지자체 단독운영보다 민간 위탁 운영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지자체의 단독 운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든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가 필요하다. 또 현재 시설만으로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주변지역을 연계 개발할 수 있는 권한도 지자체에 부여해야 한다.
▶정건일=지자체들은 사후 활용방안 수립을 위한 전담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자체에 적합한 기능.시설을 도입해야 한다. 지역주민들로부터 아이디어를 공모해 주민들의 관심을 적극 유도할 필요도 있다. 또 월드컵 이후에는 경기력에 대한 관중의 기대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다.'동북아 3국 대항전'이나 주요국의 유력 클럽팀간 경기를 유치하는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경기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金=문화.예술.공연활동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주민의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역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주5일제 근무로 레저.문화 수요가 급증할 텐데 그 대비책도 된다. 일본 고베 경기장의 경우 4만2천여석을 월드컵 이후 개폐식의 천장 설치 등을 통해 3만4천석 경기장으로 개조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공간에는 온수풀장.체육관.레스토랑 등의 부대시설을 설치해 시민체육.휴식공간의 기능을 강화한다고 한다.
▶鄭=경기장은 프로축구팀을 가진 기업이 장기임대 형식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경기장을 소유한 지자체 연고의 프로축구팀이 한두개씩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10개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도시 중 프로축구팀을 가진 도시는 다섯곳밖에 안된다. 정부가 서울.인천.대구.광주.서귀포에 2005년까지 6개 프로팀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세제 개편 등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 없이는 실현하기 힘든 제안이다.
▶朴=경기장 시설이 1백% 임대된다면 연간 20억원으로 추산되는 운영비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임대실적은 축구산업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축구산업이 활성화돼 축구경기장에 많은 관객이 몰린다면 경기장내 임대.분양이 순조로울 것이다.
▶鄭=프로구단을 유치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 10개 프로팀 중 흑자를 내는 구단은 단 한곳도 없다. 경기장 유지관리비용을 포함해 평균 70억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돈을 버는 팀은 없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회사 홍보 차원에서 팀을 운영할 뿐, 프로축구팀이 돈되는 사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을 연고지로 한 프로축구팀의 창단이 시급하다. 그러나 상암경기장을 짓는 데 건설비가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서울시는 창단될 팀에 수십억원을 분담시킬 생각이다. 이런 터에 누가 서울 연고 축구팀을 만들려 하겠는가.
▶朴=지자체의 개방적인 의식전환도 필요하다. 지자체가 마권세의 50%를 가져가는 점에 착안해 마사회가 한 지자체에 경기장 안에 장외경마장을 설치하기로 하고 시설을 임대받으려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지자체는 경마가 사행사업이라는 이유로 제안을 거부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공익성에 지나치게 얽매일 경우 수익성이 타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鄭=서울시는 상암경기장 개발로 인해 이득을 많이 봤다. 쓰레기 매립장인 난지도가 훌륭하게 변모했다. 덕분에 주변 땅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프로축구팀 창단 비용 등은 어느 정도 줄여줄 필요가 있다.
▶朴=기업들도 스포츠 마케팅에 눈을 떠야 한다. 외국기업은 경기장을 장기 임대해 구장 이름을 돈을 받고 판다거나 전광판에 광고를 내보내는 등 수익성 향상에 적극적이다. 선수를 키워 다른 팀에 높은 값으로 팔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우리 기업들도 축구경기만을 통해서 돈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金=결국 경기장은 축구산업이 활성화돼야만 수익을 맞출 수 있다고 본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주경기장이었던 파리의 생드니 경기장도 대형 콘서트 유치 등 수익활동을 많이 벌였지만 전용 구단이 없어 적자를 보고 있다. 정부가 매년 3천만~5천만프랑을 보조한다고 한다. 경기장을 활성화하려면 경기를 많이 치르는 방법이 가장 좋다. 이런 점에서 각종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유소년 축구도 월드컵 경기장을 활용하면 어떨지.
▶朴=지금까지 토론한 내용들은 수없이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기업이 어떤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는가 하는 점이다.
▶鄭=대표팀의 병역미필 선수들에게 정부가 병역혜택이란 조치를 취한 것처럼 각 분야에서 파격적 조치가 필요하다. 경기장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명분에 얽매이기보다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GDP와 GNP
GNP에서 GDP로 국내 총생산(GDP : Gross Domestic Product)과 국민 총생산(GNP : Gross National Product)은 모두 한 나라의 경제 활동 결과를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경제 지표이다. 다른 점은 GDP가 일정 기간에 한 나라에서 생산된 부가 가치의 총계를, GNP는 영토에 관계없이 한 나라의 인력이나 자본 등 생산 요소들이 일정 기간에 생산해 낸 부가 가치의 합계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한국 은행은 GDP가 국내 경제 사정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판단에 따라 1994년부터 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 GDP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번 돈을 더하고, 우리가 밖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빼는 것이다. 우리가 해외 투자로 벌어들이는 돈이 다른 나라가 우리 나라에서 벌어 가는 돈보다 많으면 GNP가 GDP보다 크게 된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대외 투자가 많은 부자 나라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월남에서 벌어들인 돈이 많았던 1970년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항상 GNP가 GDP보다 작았다. 외국 자본과 기술을 끌어다 경제를 돌려온 성장 패턴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은 과소비 등의 초과 수요로 발생하였다. 그러나 1973년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생산비가 급등하자, 불황 속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인플레이션의 개념을 뛰어넘은 것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즉,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의 재정, 금융 정책으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의 현상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으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하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해짐으로써 경제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필립스 곡선 전통적인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과 함께 실업의 감소를 초래하였는데 필립스 곡선은 이를 나타낸다. 이에 의하면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이 역(逆)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하에서는 물가 상승과 실업 증가가 동시에 일어나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합리적 행동가설
몇 년 전에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과소비'가 만연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일부 학자들은 그러한 행태를 천민자본주의 근성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경제주체의 비합리적 소비 행태는 스미스가 이기심을 중심으로 하여 설명한 자본주의적 속성과 같이 취급할 수 있을까?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앞서 도덕철학자였다. 인간의 본성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있는데, 보통 이기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고 보았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즉,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기심은 사회적으로 볼 때도 미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스미스가 이야기한 진정한 이기심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천민자본주의란 비합리적 사고와 행동, 도덕성이 결여된 이기주의와 같은 천박한 사고체계 위에서 행동하는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제 좀 살만해 졌다하여 자기의 진정한 소득수준을 망각하고 흥청망청 쓰고 보자는 소비 행태, '내 돈을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부도덕성을 막스 베버는 '천민성'이라고 하였다.
◉케인스 경제학과 『일반이론』
케인스는 1936년에 세계 대공황을 탈피하는 문제를 연구하여 그 결과 『고용, 화폐, 이자의 일반이론』을 발간하였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그냥 이론이 아니라 '일반(general)'이론이다. 이것은 신고전파경제학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함축적으로 의미한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고전파 이론에 대한 대응논리로 이 책을 쓴 것이다. 즉, 현실경제에서 완전고용과 시장의 균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하고 유효수요가 부족한 상황이 현실경제의 가장 '일반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일반적인 상황을 전제로 해서 쓰여진 자신의 이론이 가장 일반적인 이론이라는 뜻이다.
또한, 케인스는 시장가격메커니즘을 불신하고 정부의 경제개입과 통제를 주장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케인스를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가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케인스는 신고전파의 완성자인 마셜의 제자이다. 즉, 그는 시장가격메커니즘의 자동조정 능력을 불신한 것이지 그것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유재산제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이론과 실제
현대 경제의 불치병이라고 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의 배경은 무엇인가. 이 현상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1950년대 말 이후 1960년대의 정부주도의 자본축적체계의 한계와 경제구조의 변질, 석유파동 등 외부 요인들이 결합되어 나타났다. 1970년대 말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석유가격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비용 인플레이션이 결합되면서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우리 나라도 1970년대 말 이후 자주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현재 IMF관리 체제하에서의 경기침체와 고물가도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는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를 곧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경기불황은 구조적인 불황이며, 물가는 환율상승으로 인한 일시적 비용인플레이션이다. 따라서 총수요 증가나 통화량 증발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실업문제는 1930년 세계 대공황이후 심각하게 거시경제 지표로 등장하였다. 보통 실업과 인플레이션은 상호 역관계에 있다. 실업은 인플레이션(거품)이 해소됨으로써 그 동안 과잉 고용되었던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신규 고용이 감소하면서 나타난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봉급생활자와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데 비해 실업은 실업자 당사자에게 집중적으로 고통을 주어 상대적 빈곤감을 증폭시키는 자본주의적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1970년대 말의 석유파동이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당시, 1997년 말 이후의 기업도산과 외환파동으로 심각하게 나타나 1998년 현재 7%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노사관계
노사관계는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관계이며, 노자관계란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의 소유자 즉 계급적인 생산관계를 중시한 개념이다. 보통 노사관계의 본질은 노동-자본관계이나, 현대와 같이 개인주의가 일반화되고 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계급적인 노동 - 자본관계보다는 노사관계가 일반적인 유형이다.
본래 자본주의적 초기에는 가부장적인 관계 또는 장인-도제관계의 연속성 등과 같은 형태가 보편적이었으나 시장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노동자의 능력과 지위가 향상되면서 노사관계는 어느 정도 대등한 협력관계 또는 경쟁관계로 발전하였다.
노사관계의 유형은 크게 종신고용형과 시장중심고용형이 있다.
1) 종신고용형 : 전통적으로 공동체의식과 집단의식을 중시한 일본 등 동양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평생직장, 연공서열식 인사와 임금체계를 특징으로 한다. 이 유형은 서열과 직장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고 고용이 안정된 장점이 있지만,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비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즉, 연공서열로 인해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가 많은 임금을 받고 승진을 함으로써 소위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 시장중심 고용형 ;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발전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바탕을 이룬 미국과 서양에서 일반적인 형태이다. 보통 미국형이라고 한다. 종신고용형과는 반대로 평생직업 개념은 있지만 평생직장 개념은 희박하다. 능력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직장을 옮길 수 있고 능력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며, 수시로 능력을 평가받고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진다. 연공서열보다는 생산성이 중시되고 능력이 중시되므로 고용은 불안할 지라도 기업의 생산성을 매우 높다. 그래서 미국 등에서는 우리와 같은 해고 문제가 별로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노동시장이 그만큼 유연화되어 있고 노동자와 사용자는 이러한 조건에서 합리적으로 적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이나 한국 등도 종신고용의 경직적인 노동지상으로부터 유연화된 미국형으로 전환하는 추세에 있다. 그 대표적인 징후가 바로 연봉제이다. 연봉은 매년 성과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같은 직위에서도 9등급으로 나눔), 이를 토대로 계약을 통해 지급한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는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해야하고, 그것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높은 임금을 받게 되며, 높은 임금소득은 나아가 높은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나 '고비용 고효율구조'가 정착되게 된다. 이 때 노사관계는 노동조합이라는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정립될 것이므로 노동조합의 위상이 감소될 것이며, 학력별, 출신대학별, 경력별 임금격차도 점차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으로 고유의 인간관계, 공동체적 정서, 팀웍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Smith, A.)의 자유 방임주의
보이지 않는 손 :ꡒ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및 제빵업자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 이익 추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산물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공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또 얼마나 증대시킬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는 가운데 ꡐ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ꡑ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는 가운데 사회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킨다.ꡓ
자유 방임주의 :ꡒ여러분은 선의의 법령과 규제로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 방임하십시오.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십시오. ꡐ사리(私利)라는 기름ꡑ이 ꡐ경제라는 기어(gear)ꡑ를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잘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계획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통치자의 다스림도 필요 없습니다. 시장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ꡓ
◉케인스의 사상
케인스 사상의 특징 : 경제 문제 해결에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여 수정 자본주의의 기초를 세웠다. 여기에는 정부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공익을 위하여 헌신하는 존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케인스의 주장 지금 가령 재무성이 낡은 항아리에 은행권을 가득 채워 넣은 후 그것을 어느 폐광(廢鑛)에다 적당히 묻어 두고는 사기업가(私企業家)들로 하여금 자유 방임 원칙에 따라 마음대로 그 돈을 파가도록 내버려둔다고 가정해 보자. … 그 때부터는 실업이 발생할 이유가 없어지고(모두 그 돈을 파내기에 혈안이 될 터이므로) 그 사회의 실질 소득과 자본적 부(富) 역시 그 전보다 훨씬 증가할 것이다(굴착 장비 등이 날개 달린 듯 팔리고 생산과 소비가 늘어날 터이므로).ꡓ
정부의 실패 : 정부가 합리적인 존재라는 관점은 정치에 관하여 ꡐ보이지 않는 손ꡑ의 존재를 믿는 것과 같다. 경제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현실적으로 하나의 신화일 수 있듯이 정치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손도 신화일 경우가 많다. 즉, 정부의 관료들은 결코 합리적이고 공익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재정 적자가 발생하고, 이익 단체의 로비에 놀아나며, 사회의 효율성을 좀먹고 있다고 극단적인 비판을 퍼붓는 학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케인스는 정부를 지나치게 이상적인 존재로 미화하였고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믿은 순진하거나 우둔한 사람에 불과하다. ●
■신자유주의란?
신자유주의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도 실제에서도 별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요즘 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위기상황이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사회. 경제구조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더욱 가속화시키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자유주의의 역사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흔히 쓰이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자유주의가 어떠한 것인가를 딱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이 균형의 달성과 경제의 발전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파악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고전적인 자유주의와 동일하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이상을 표현한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선택 에 의해 경제가 조화롭게 발전해 갈 것이라는 이상이 그것이다. 자본주의는 태동이후 많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라는 이상은 단 한 번도 포기되어진 적이 없으며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역시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바꿔왔다. 자유주의의 변모는 역사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 케인즈의 개량적 자유주의, 그리고 현재의 신자유주의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자본축적에 대한 다양한 전근대적인 규제와 제한을 철폐하여 자본주의 시장의 일반적 원리를 전사회적으로 도입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조건이 달성되면 시장경쟁의 자유로운 운동의 최적의 결과를 보장할 것이라고 파악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시대는 1920년대(전간기)의 참담한 대공황을 겪으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대공황의 충격은 시장의 조화로운 원리가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의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었으며, 때를 맞춘 노동운동의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수정의 압력을 가했다.
이제 자본주의는 케인즈주의의 시대로 넘어간다. 케인즈의 개량적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자체의 제한성을 인식하여 그것을 보완하고자 하는 적극적 정책과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고양에 따른 방어적 정책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인즈주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한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많지만 케인즈주의의 시대와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시기적으로 일치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케인즈주의 역시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고, 70년대 이후 전세계적인 불황이 찾아오면서 케인즈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는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의 실패의 결과라고 지적하고, 세계화되어 가는 경제에 있어서의 국가적 경계의 제한성을 비판하면서 대두하기 시작했다. 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실험을 거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미국과 영국의 보수주의 정권 하에서이다. 이후 신자유주의는 미국에 거점을 둔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와 세계자본주의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전세계로 확장되었다.
2.신자유주의
케인즈주의의 실패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세계화', '자유화', '유연화', '사유화' 등의 언명으로 대표된다. 케인즈주의적 정책은 국가가 능동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공황을 방지하고 완전고용을 달성하고자 했다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준칙에 의한' 소극적인 통화정책과 자유화, 특히 국제금융에서의 자유화를 통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할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완전고용과 고임금이라는 케인즈주의적 타협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비용삭감 경쟁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해체되었으며 국가가 관장 혹은 보조해왔던 많은 영역들이 민간으로 이전되었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다양한 구조조정 정책들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화폐와 노동력의 관리형태의 변화로 볼 수 있다. 금융산업, 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탈규제는 국가가 화폐를 통제하려는 케인즈적 시도의 좌절을 의미한다. 정리해고, 파견노동제, 임시직과 성과급 제도의 확대 등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복지제도의 축소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재생산을 더 이상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이루어진 화폐와 노동력의 국가관리가 70년대 불황의 원인이었으며 이제 화폐와 노동력도 시장의 원칙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논리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이 완전히 부정되지는 않는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기능이 불완전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제대로' 기능 하는 시장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신앙을 굳게 믿으며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불안정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윤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무한한 자본축적의 논리는 자본주의에 본질적인 불안정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여기에 자유화된 국제금융의 확장은 불안정성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근본적인 오류는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전혀 새롭지도 올바르지도 못한 대안이다. 시장을 통한 경쟁을 최선으로, '정당한' 이윤의 추구를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는 전세계를 수탈하는 초국적 자본의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케인즈주의가 위기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다시 자유주의 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 사실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맑스의 말을 연상시킨다. 자유주의는 이미 한 번 대공황과 함께 비극적으로 종결된 바 있다. 이번엔 어떻게 그 막을 내리게 될까? ●
■신자유주의,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학신문 97.11.10 / 학술면에 게재된 내용을 이해를 돕기 위해 옮겨 싣는다)
근대사회의 태동과 함께 등장한 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의 실패, 사회주의의 몰락을 계기로 다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개입을 ꡐ사회악ꡑ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차 례]
"국가개입은 비효율의 근원이다" - (1)신자유주의의 논리와 전개
좌파 집권 속에도 기술혁신 앞세워 확산 중 - (2)서구의 신자유주의
시장논리 적용할 담당주체 없어 - (3)한국의 신자유주의
민주적 통제 속 사회적 조절 확대돼야 - (4)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대안
(1)신자유주의의 논리와 전개 - "국가개입은 비효율의 근원이다"
자유주의란 본질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한 개혁의 이론과 정책(운동)을 지칭한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장애물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중심적 내용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상이했다. 18~19세기의 자유주의자들은 절대주의 국가에 대항해서 법의 지배를 통한 인권, 사유재산권의 보장과 시장경제를 주창하였고, 20세기 후반의 자유주의자들은 현대의 비대한 관료국가에 대항해서 국가개입의 축소와 시장의 복원을 주장한다.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여 최근의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고, 과거의 자유주의를 고전적 자유주의라 부른다.
그러면 최근에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형성된 세계 정치경제질서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전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경제질서는 케인즈주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17세기에 등장하여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하던 고전적 자유주의 질서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침체, 대공황, 세계대전을 맞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케인즈는 국가의 적극적 경제개입을 통하여 시장의 불완전성과 사회정치적 파괴 효과를 수정함으로써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후의 선진복지국가체제는 이러한 케인즈주의 이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전후에 형성된 국제경제질서도 자본의 국제적 유동성과 환율변동을 제한함으로써 개별 주권국가들의 케인즈주의적 경제개입을 허용하도록 고안되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19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후반까지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후의 정치경제질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오일쇼크, 스테그플레이션, 세계금융의 등장으로 케인즈주의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었다. 국가의 경제개입이 지대추구와 비효율의 근원으로 지목됐고, 계속되는 재정적자 누적으로 인플레이션의 만연과 생산적 투자의 저하가 초래됐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공급중시경제학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국제적으로는, 브레튼우즈체제를 대신하여 변동환율제가 채택되었고, 주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금융자유화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등장한 국제적 자본유동성은 개별국가의 정책자율성을 크게 제한하게 되었다. 경제의 세계화가 케인즈주의적 정치경제질서를 붕괴시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시장기능의 복원과 확대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증대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자유주의의 전통에 따라 법 아래에서의 자유 확대를 주장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효율성을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고안에 관심이 크고, 이들에 의해서 법경제학, 신제도주의 이론이 발전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시장의 국제화 세계화에 따라 국제시장, 세계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협력과 국제기구의 역할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 이론이 발전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면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왔는가? 주요 선진국들에 서 신자유주의 이론과 이념의 득세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1980년대에 들어 외채위기를 맞은 다수의 제3세계 국가들은 선진채권국과 IMF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안정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평가절하와 대외 거래의 자유화를 선택하도록 강요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국가주도적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나라들의 경우에는 선진국의 지속적인 대외개방 압력과 강화되는 국제경제규범의 준수를 위해서, 그리고 더 이상 효용이 없는 경제개방모델의 전환을 위해서도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정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구공산권 국가들의 경우에서도 체제전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시장경제에 참여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 처방을 받아들였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선진국의 압력, 국제경제규범의 강화, 그리고 국내적 필요성 등 에 의해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물론 비민주적 정권에 의한 국가의 경제개입이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심화시키고, 시장을 보완하기보다는 오히려 왜곡시키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론과 이념의 세계화가 상당한 부작용을 낳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자유주의적 개혁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해야 하지만, 외적으로 강압된 자유주의는 종종 하나의 정책패키지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 정진영(세종연구소 연구위원/정치학)
(2)서구의 신자유주의 - 좌파 집권 속에도 기술혁신 앞세워 확산 중
지난 5월과 6월에 영국의 노동당과 프랑스의 좌파연합(사회당 중심의)이 집권함으로써 독일과 스페인 정도만 제외하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좌파가 집권한 셈이 되자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ꡐ신자유주의는 끝장 났다ꡑ는 성급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실 80년대 벽두부터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선도해 왔던 영국의 경우, 민영화 초기 경제성장률이 회복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축소되는 등 그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오히려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실업자는 늘어나는 등 중산층의 사회적 불안정성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확인돼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정권의 재등장은 분명 그간의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의 명백한 거부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규제완화와 자유화, 공기업의 민영화 그 리고 노동의 유연화와 복지삭감 등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는 애당초 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자본의 이윤증식을 보다 자유롭게 해 주고, 반면 노동에 대해서는 억압과 빈곤을 강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그리고, 현실 역시 그에 상응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구미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영국경제의 호전이란 말뿐이고 실상은 대중의 피폐가 오히려 가중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신자유주의는 종언을 고한 것일까. 일부에서는 그렇다고들 얘기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인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아직은 대중들의 선택이 우파에 대한 반발이었을 뿐, 좌파에 대한 적극적인 선택을 의미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시기상조라 느낀다.
돌이켜 보면 신자유주의가 20세기말 새로운 시대적 조류를 이루게 된 데는 그만한 경제적 배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전후 현대자본주의는 1950~60년대에 ꡐ황금기ꡑ라 부를 만한 장기간의 활황세를 보인 뒤 1970년대 위기의 시대를 겪었다. 이 위기로부터 돌파하려는 시도(즉 자본의 새로운 축적시스템 구축 시도)는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면에서의 새로운 혁신(이른바 마이크로 엘렉트로닉스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기술 개발)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축적환경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환경 구축(민영화, 규제완화/자유화, 복지삭감, 노동의 유연화 등)으로 표출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등장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현대자본주의의 중추를 이루는 국제적 독점체의 활동은 한층 높은 수준에서 국경 넘기에 여념이 없어 현대자본주의가 갖는 이러한 경향을 전세계로 신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흐름을 선도해 온 것은 사실 영국이 아니라 미국인데, 미국의 경우 ꡐ개혁ꡑ이란 이름의 규제완화를 선도적으로 실행하는 한편 신기술혁신을 주도하여 90년대 들어 그 성과를 향유하고 있는 듯하다. 90년대 초까지 계속됐던 일본의 미국추격이 ꡐ무위로 끝난ꡑ 것으로 보일 만큼 미국의 성과는 효율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90년대 들어 지속되고 있는 미국경제의 장기호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도 더 이상 과거의 군산복합체(군수의존의 비효율적 기업)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새로운 모습(신기술혁신을 주도하며 세계 곳곳에서 돈을 긁어모으는)을 하고 있다. 물론 절대빈곤층은 더욱 늘어나고 고용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를 효율의 부산물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가 앞장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신자유주의적 제도를 통해 효율이라는 성과를 얻고 있는 자본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각국에 신자유주의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무차별적 문호개방과 자유화를 강요하고 있고 각국은 이를 다시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화를 목표로 수입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효율의 새로운 원천, 즉 이윤획득의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대중생황의 악화와 상관없이 여전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이 오늘날 눈 만 뜨면 대하게 되는 '세계화'도 이러한 자본의 글로벌화를 본질로 한다. 세계화는 그 경제 적 본질이 자본의 글로벌화에 있는 만큼 신자유주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 이 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망령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향적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자유주의는 유럽의 우파를 좌절시킬 만큼 대중의 핍박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지만, 한편 신자유주의정책을 바탕으로 하고 신기술혁신을 무기로 한 미 국이 세계시장경쟁을 선도하는 한 이러한 반동의 축적체제는 더욱 확산될 운명에 있으며 미국을 바로 뒤에서 쫓아야 할 유럽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넓지 않다. 비록 좌파정권이 들어섰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프랑스의 죠스팽에게도 주어진 선택지는 협소할 뿐이다.
- 임휘철(성균관대강사/경제학)
(3)한국의 신자유주의 - 시장논리 적용할 담당주체 없어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순수 자본주의 시장경제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이것을 추진할 주체세력은 없다. 그런데도 매체들은 앞다투어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선전하고 있다. 그 정체는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그 주체인가?
흔히 한국의 재벌이나 대기업들을 신자유주의의 주체라고 하지만 실제 그들은 전혀 그럴 능력도 의사도 없다. 재벌이 자발적으로 족벌경영체제를 해체시켜 시장질서에 맞게 기업 을 공개해 나갈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리해고제 등을 그들도 주장 하지만 노동시장을 현대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인 노동조합의 정치참여, 공무원 노조 의 허용 등을 과연 좋아할 것인가?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자유시장의 논리로 옹호하고 자 기들에게 불리한 것에 대하여는 현실조건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면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주체가 되겠는가? 또 그들은 진입과 탈퇴의 자유, 인수와 합병의 무한자유 등을 부르짖지만 실제 이런 것들은 부분적으로 신자유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들이다.
***신자유주의 원칙은 '완전경쟁' 아닌 '순수경쟁'
ꡐ순수경쟁ꡑ과 ꡐ완전경쟁ꡑ은 구별해야 한다. 완전경쟁은 진입과 탈퇴의 자유를 허용해 도 좋을 만큼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지 않는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독점화가 구조 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규모의 경제도 존재하고 공공재가 존재하며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현실적 조건에서 시장경쟁의 이점을 살리자는 것이 바로 이론적으로는 ꡐ순수경쟁ꡑ인 것이다. '완전경쟁ꡑ과 모든 면에서 동일하지만 ꡐ진입 과 탈퇴의 자유ꡑ가 없을 때 ꡐ순수경쟁ꡑ이 된다.
그러나 우리 대기업들은 시장경쟁의 이점을 살리자는 명분으로 도리어 진입과 탈퇴의 자유, 인수 합병의 무한 자유 등을 외치고 있다. 정말로 시장논리에 모든 것을 맡겨 정부간섭을 배제한다면 아마 우리 나라 대기업의 90% 이상은 당장 부도처리 되어야 옳을 것이고 금융기관은 거의 1백% 문을 닫아야 옳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그들은 자유시장의 허구적 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본심은 정말 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민정부 이후 근로자나 일반 서민대중의 정치적 발언권이 강화되어 그것을 시장논리로 잠재우기 위해서이다. 국가권력이 자본의 수중에 확고히 장악되어 있다면 그런 논리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어중간하게 자본과 노동의 양편에 서 있을 경우에는 아예 경제논리에 모든 갈등구조를 맡기자고 하는 편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또 상대방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
***재벌, 정부가 아전인수격으로 이용
그러면 정부는 왜 신자유주의 논리를 내걸고 있는가? 정경유착의 뿌리깊은 관행이나 관료사회의 패거리문화는 신자유주의와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다만 골치 아픈 현실 경제문 제가 있을 때 ꡐ경제논리ꡑ와 ꡐ시장경쟁ꡑ에 맡긴다고만 하면 정부의 책임이 면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이점은 있다. 정부지출행위 자체가 경제에 대한 막강한 개입이며, 정부의 통화정책만 하여도 경제에 대한 결정적 간섭이고, 외환 및 금융시장에 정부가 한시라도 간섭하지 안으면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을 정도인데, 모든 것을 '시장원리'에 맡긴다 는 식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을 현대화시켜, 순수 자본주의 시장모델에 맞출 수만 있다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당장 이득을 보는 쪽은 근로자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블루칼라 노동시장은 진작부터 유연화 됐고 정리해고도 진작부터 당해 온 반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가 시장논리에 맞추어 개혁되면 많은 이점이 있을 수 있다. 수십 년간에 걸쳐 정경유착의 인맥으로 형성된 우리 사회 내부의 길드조직들 이 타파되고 내부담합으로 짜여져 있는 부패언론과 검찰의 결사가 해체된다고 생각만이라도 한 번 해 보라. 종교계의 비밀담합이 폭로되고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교육계, 의료계, 법조계의 담합구조가 타파된다고 생각만이라도 해 보라. 근로자들의 경제적 이득은 물론이고 정 신적으로 얼마나 신명나겠는가? 그런데 이런 작업을 담당할 주체세력이 우리에게는 있는 가?
***외국자본의 압력에 영향받아
어째서 정부나 재계는 도끼로 제 발등이나 찍는 그런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그처럼 강조할까? 그것은 세계적 규모의 자본간 경쟁에서 한국이 계속 외국자본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 해 그들이 취한 불가피한 국가적 선택이다. 우리 정부와 언론은 현 세계질서를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80년대 중반 미 재무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가 제시한 세계적 규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추종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신자유주의의 진짜 주체는 우리 사회 내부세력이 아니라 바로 외세이다. 공기업의 민영화, 재정적자 축소, 작은 정부,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병적 구조를 타파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처방이나 그 폐허 위에 새로운 무엇을 건설하는데는 아무런 대책 없이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인 것에 맡기자는 매우 파괴적인 사조이다. 국가기본이 덜 되어 있는 나라에서 사회개혁이라며 금융개혁 등을 한다고 해서 바로 그 위에 무엇이 제대로 세워질까? 바로 그런 날을 대 비하여 폐허 위에 세울 새 질서를 준비하는 세력이야말로 책임 있는 신자유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바로 젊은이들과 근로자, 전문가, 과학기술자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로부터 잃을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기에 나는 기대를 하고 있다.
- 이채언(전남대교수/경제학)
(4)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대안 - 민주적 통제 속 사회적 조절 확대돼야
70년대 중반 이래의 세계경제의 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위기가 아니라 전후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이 한계에 부딪쳤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위기, 즉 조절위기였다. 신자유주의는 이 조절위기가 사회민주주의 또는 케인즈주의의 국가개입과 복지정책의 남용의 결과라고 비판하면서 국가의 탈규제와 사유화, 사회복지정책의 해체, 생산과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적으로 신자유주의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하이에크, 프리드만 등으로 대변되는 영미권의 신자유주의와 ꡐ사회적 시장경제론ꡑ으로 발전한 독일의 신자유주의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중요한 정책론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적응 아니면 몰락' 강요
영미권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적 색채가 보다 강하고, 현대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모에도 불구하고 케인즈주의와 사민주의 이전의 자유주의로 돌아가자는 반동적인 시장주의정책을 선전한다. 반면, 독일적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국가의 질서정책(그 중에서도 규제적 질서정 책, 즉 반독점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통해 변화된 현대자본주의의 조건하에서 시장경쟁 질서를 유지한다는 보수적 개혁정책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공히 사민주의와 케인즈주의의 정책에 의해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심각하게 침해되었다는 인식 위에서 국가의 개입을 제한하고 시장으로의 복귀를 주장한다.
세계경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정치적, 이론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과학기술혁명의 급속한 진전 하에서 자본의 세계화와 자유화가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다다름으로써 자본이 이 경향에 조응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선전되고 있다. ꡐ적응인가 아니면 몰락인가ꡑ라는 세계화의 위협적인 논리 하에서 시장과 이윤논리에의 적응, 시장에서 자본 의 무제한적 활동공간 보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앞에 어떤 이견을 제기한다는 것이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돼버린 것 같다.
***성장률, 실업률 오히려 악화
그러나 현실의 객관적 과정을 조금만 돌이켜 보아도 신자유주의의 정책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안이 아니며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고 심화시켜 왔음을 이해할 수 있다. 거의 20년에 이르는 신자유주의정책의 성적표는 사민주의/케인즈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와 비교해도, 또 그 위기가 표출하였던 70년대 중반과 비교해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나쁜 점수를 보여준다. 선진공업국의 성장률은 1980년대이래 2~3% 수준으로 현저하게 하락했고 실업률은 악화돼 실업자 수는 1975년 1천6백80만 명으로부터 1993년 3천2백39만 명으로 증대했다. 케인즈주의와 사민주의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정부의 재정적자와 정부채 무도 20년 사이 GDP 대비 비율에서도, 절대규모에서도 큰 폭으로 증대하였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1975년 4천3백73억 달러로부터 1994년 3조 5천4백21억 달러로, 또 독일은 같은 기간 중에 2천5백64억 마르크로부터 1조 6천5백47억 마르크로 급증했다. 유일하게 A학점 을 받은 것은 인플레이션의 진정 뿐이었는데, 이는 다른 위기들을 희생하여 얻은 것이며 그것도 위기의 지속 하에서 디플레이션적 효과로서 실현된 것이다. 일상적인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조작에 노출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런 성적표는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자본주의의 위기와 불안정은 극복되지 않고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탈조절 정책과 결합해 최근의 전세계적 금융외환시장의 위기에서 보듯 세계화, 지구화 되었다.
이러한 성적표가 의미하는 바는 첫째,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달리 현대 자본주의하에서 국가 경제개입의 배제와 탈조절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점(국가의 경제개입은 독점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에 대응한 비가역적 역사과정이라는 점), 둘째,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와 탈조절의 이데올로기 아래서 실제로는 국가개입의 강화를 획책했고 다만 그 개입을 반노동자 계급적, 친콘째른적 방향으로 전환하였다는 점(즉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 기만이라는 점), 셋째, 그러나 그러한 친콘째른적, 시장주의적 탈위기 정책은 결코 경제를 위기로부터 구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현대의 세계경제위기와 자본의 세계화경향의 파괴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법칙적인 대안은 국내외적으로 사회적 조절(그리고 그 전제로서 사회적, 공공적 소유)의 확대에 의한 시장조절의 제한, 사회적 조절에서의 민주적 통제의 강화에 있다. 그것은 국가 독점 자본주의론의 논쟁사에서 '민주 대안론'과 함께 정식화된 것이다. 민주 대안론은, 고도로 발전한 현대 의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재생산의 조절은 더 이상 사적 자본과 시장에 의해 담당될 수 없고 사회적 형태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기본 인식 위에 구상됐다. 이에 따르면 '시장과 자 본의 이윤논리를 통한 축적의 회복ꡑ이라는 고전적인 탈위기론은 현대자본주의하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통제에 의한 시장과 이윤논리의 제한, 축적의 사회적 강제, 사회적으로 조절되는 축적범위의 확대를 통해서만 현대의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민주의는 대안 될 수 없어
신자유주의정책의 파괴적 효과가 대중들에 의해 현실적으로 인식되고 급기야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정권들이 사회당 또는 사민당에 의해 대체되고 있지만, 현대 사민주의는 결코 위기의 대안이 아니며 또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대안도 아니다. 유럽연합의 사회당/사민당들은 신자유주의의 파산 위에서 권력을 다시 장악했지만, 신자유주의정책이 강제조항으로 관철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이행을 약속하는 데서 보여지는 바처럼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에 포섭돼 있다. 이처럼 사민주의가 재집권해도 신자유주의는 지속되고 있고 따라서 경제위기의 지속과 새로운 위기는 예고되어 있다.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민주대안이 대중들 속에서 대안으로 발전할 때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 김성구(한신대교수/국제경제학)
▶ Reference
특별 기고글과 관련된 관련 자료 목록입니다. 주요 단행본을 중심으로 하였고, 최근 IMF 국면과 관련하여서는 올 해 나온 계간지 등에 많은 관련 자료가 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였습니다.
△미셸 초스도프스키 등, {빈곤의 세계화}, 당대
저자는 IMF와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로 대표되는 브레튼 우드 체제가 후원하는 이른바 구조조정계획이 빈곤의 세계화를 낳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란 결국 금융자본의 전세계에 대한 신개입주의를 의미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개혁'은 많은 나라에서 노동비용을 통제함으로써 소비시장을 축소시키고, 그에 따라 많은 기업과 공장을 도산시키는데, 결국 이러한 구조조정은 개도국의 국민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지배는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 민주주의와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를 '경제를 살리자'는 천편일률적인 구호 속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르틴 슈만,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이란 부제가 드러내듯이 독일의 시사주간지인 "슈피겔"의 기자인 두 저자는 세계화란 지구 인구 가운데 5분의 1만이 안정되고 유복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다. 그들은 세계화란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의 당연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가들에 의한 목적의식적인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중 특히 금융경제시장에서 성행하는 투기자본이야말로 실물경제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통제불가능의 이윤사냥에 날뛰고 있다는 것이다. 94년 말에 있었던 멕시코 통화 위기에 대한 매 우 상세한 보고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식인연대,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문화과학사
한국 사회의 현실흐름, 즉 금융위기와 이에 대한 지배세력의 대처 방안은 전세계적인 자본의 신자유주의 적 공세 속에서만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이 책은 이러한 공세를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전지구적 금융투기와 그것의 내적 모순들 속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정치구조, 사회복지정책, 나아가 문화적 변화까지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각각의 논문들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또한 유럽 등에서의 사민주의적 좌파의 대응이 왜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면서, 그렇다면 다른 형태의 대응방향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 진지한 모색을 보여주고 있다.
△올리비에 돌퓌스, {세계화}, 한울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미국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와 세계질서의 재편을 포함한 현대세계와 관련된 주요한 쟁점들에 대해 보여주는 이해와 비판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좀더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분야에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와 프랑스 사회의 차이는 주제에 따라 엄청난 시각차를 느끼기도 하는데, 본서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나름대로의 관점을 갖기 위해 각 권마다 해설 을 덧붙였다.
△김경원․임현진 공편, {세계화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 나남출판
이 책은 우선 세계화가 우리 시대에 이미 역전하거나 정지시킬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 되었다는 명제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세계화라는 도전이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도 세계화라는 객관적인 역사적 흐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화라는 신앙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화를 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세계화에 도전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며, 이를 위한 모색을 보여주고 있다.
■노암 춈스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신자유주의 야만성 고발, 미국 거대자본의 이권보장책
노엄 촘스키(71) 미 MIT대 석좌교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학자다. 그는 7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을 펴냈다. 그 가운데 절반은 언어학 전문서지만, 나머지 절반은 <워싱턴 커넥션과 제3세계 파시즘> 등과 같이 미국의 제3세계 정책을 호되게 비판하거나 언론의 여론조작을 폭로하는 정치․언론비평서들 이다. 이미 60년대부터 그는 세계의 모든 언론이 침묵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인 학살을 비판했고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니카라과 내전개입, 나토의 유고공습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그를 뉴욕타임스는 '20세기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일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그는 여전히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신자유주의는 레이건 정부에서부터 클린턴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내․외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이다. 이 이념의 구체적 강령은 국가의 개입을 없애고 경제를 시장의 기능에 맡기며, 국제적으로는 자본과 상품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국경을 없애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정책을 통해서만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고 결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촘스키는 이 책에서 글로벌리즘과 함께 전세계로 번져나간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을 복지부문의 축소, 모든 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꼽는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질서에 따른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성장이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철저하게 친자본-반노동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과 생산의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왜곡된 분배, 착취와 불평등, 생태계 파괴 등 수많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강조한다.
단적인 실례를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이 됐던 남미 국가에서 찾고 있다. 미국의 강요에 의해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브라질은 알바니아의 뒤를 잇는 최저임금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멕시코에선 투기성 외국자본이 대거유입 됐을 뿐 아니라 국민의 절반이상이 최저생활자로 전락했다. 또 칠레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과 실업, 임금삭감 등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소수의 기업가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란 것은 신자유주의의 발원지인 미국의 사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93년 미국 노동자의 27%는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다. 반면 같은 해 대기업 회장의 평균수입은 공장노동자의149배나 됐다.
한편 미국은 대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확립을 외치며 모든 나라에 빗장을 열라고 다그친다. 94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는 미국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무기다. 그러나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강요하는 자유무역은 정작 자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올 경우 바로 무역장벽을 치는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레이건 이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의. 또다른 경제정책이었다. 미국의 이 두 얼굴은 세계경제를 멋대로 지배하면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욕망의 뻔뻔스러운 산물이다,
촘스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미국중심의 거대자본을 위한 '자본주의라는 탈을 쓴 악마'에 비유한다. 그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경제위기에 봉착한 국가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에 대항한 각국 민중의 저항과 범세계적인 국제간 연대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
1. 두 가지가 잘못된 박정희 기념사업
김대중정부는 700억 원이 소요되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에 200억원을 국고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가을 정기국회에 특별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나머지 500억원은 민간 모금으로 메운다고 한다. 이 뿐 아니다. 정부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부근 공원의 5,000평을 기념관 터로 무상제공하기로 했다. 박정희 기념관이 만들어지게 되면, 그 내력이야 어떠하든, 2002년 월드컵 관광객에겐 축구경기 외에 또 하나 눈요기감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처럼 박정희 기념관은 역사명소이자 관광지로 자리잡게 될 것인가? 박정희 기념관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물론 박정희를 찬양하거나 미화하려는 세력들은 분명 존재하며, 이들은 박정희를 '기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 정부 또한 화해와 용서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지역 감정의 해소를 위해 그리고 대통령이 공약한 사안이라는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기념관 건립사업에 정부가 나선 까닭을 변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각자 처한 위치가 다를지라도 다양한 동기와 이해 관계 속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일치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기념관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결코 추진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박정희는 우리가 기념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정희는 21세기로 나아가면서 우리가 청산해야 할 20세기의 낡은 유산이다. 박정희의 일생과 삶의 방식 그리고 그가 현대사에 끼친 악영향을 보자면 박정희는 역사의 '반면교사'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박정희가 우리 역사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우리가 인정하고 수긍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 대다수가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국고를 지원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어떤 형식이든 박정희 기념관 자체가 거부되어야 한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사업이 부당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사업을 추진하는 동기가 대단히 불순할 뿐 아니라 역사를 또한번 왜곡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라는 민간 기구가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인데, 굳이 정부가 이 사업에 앞장서는 까닭은 무엇인가? 국민의 정부, 인권대통령이라 자처하는 김대중대통령이 스스로 기념사업회의 명예회장을 맡아 이 일에 앞장설만큼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일 현 정권이 박정희를 기념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반대급부를 노리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기만하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라 하지 않을 없다.
그런데도 사태는 비관으로 흐르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에 정부가 나서고 야당이 지지하는 현재의 분위기를 볼 때 박정희 기념관은 예정대로 건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대다수 국민이 한결같이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것만이 이 불행한 사업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박정희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 검토함으로써 박정희가 왜 기념 아닌 청산의 대상인지 명확하게 해명하고, 현재 진행되는 기념관 건립사업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널리 밝힐 필요가 있다.
2. 박정희를 옹호하는 논리들
박정희를 옹호하는 근거 가운데 크게 논란이 되거나 주요한 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박정희는 친일파라고 하지만 그 친일 행위는 미미하다. 그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한 것은해방 직전 1,2년에 불과하며 실제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참가한 적도 없다.(어떤 이들은 이 시기 박정희는 광복군과 연결되어 독립운동을 모색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해방 후 한 때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담했지만, 특무대에 체포된 후 박정희가 군부 내 남로당 조직원들의 명단을 고백함으로써 군부 내 좌익세력을 발본색원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박정희의 일생에서 친일 또는 좌익전력은 극히 일부분의 시기에 국한되며, 이후 그가 끼친 역사적 공로를 볼 때 사실 무시해도 무방하다.
2) 4.19 이후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민주당은 무능했다. 더욱이 혁신계 세력이 급진적인 통일운동을 전개해 적화통일의 위험마저 있었다.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회는 더욱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박정희의 쿠테타는 그 형식이야 어떠하든 '사회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다.
3) 박정희 유신체제는 후진국(또는 제3세계) 근대화(혁명)의 한 유형으로 파악해야 한다. 후발국가에서 근대화를 빠르게 이룩하기 위해 지도자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비록 인권문제는 소홀했지만 박정희는 '빵문제'를 해결하고 고도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은 일종의 고도성장의 착수금을 확보하는 과정이었이며, 박정희의 이러한 정책 결단은 현실적이며 올바른 것이었다. 박정희 집권기는 '위대한 조국근대화의 시기'로 재조명해야 한다.
4) 역대 정권 가운데 박정희 정권만큼 민족주의적인 정권은 없었다. 박정희는 민족주체성과 민족정기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주한 미군 철수나 독자 핵개발을 추진했다. 아마 박정희는 독자 핵개발이 성공했으면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의 죽음을 당해 종신독재자의 오명을 써야 했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박정희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상당 부분 기초적인 역사 사실을 왜곡하거나 그 근거가 대부분 박약하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조국근대화 신화' 또한 박정희 시기 우리 경제를 과대평가하거나 잘못된 가치관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박정희 집권기에 시행된 여러 정책을 그 전후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임의로 떼어내어 자의적으로 미화하고 있다. 마치 병들어 죽어가는 환자의 몸을 분리시켜 이 가운데 손가락, 발가락은 싱싱하니 결국 전체 몸도 싱싱하다는 식으로 견강부회, 침소봉대하고 있다. 심하게는 이들은 민주사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가치관까지 박정희를 옹호하는 논리로 동원하기도 한다. 이제 이들의 주장이 왜 잘못된 것인지, 왜 우리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3. 대통령이 되기 전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희의 친일 전력은 그 동기나 행위 면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는 대구사범학교를 마치고 국민학교 교사를 하다가--그의 말을 빌리자면 "큰 칼을 차고 싶어"--스스로 일본제국 장교의 길을 택했다. 가난, 무지, 만용, 징병 등의 이유로 일본군에 들어간 것과 다른 자발적 친일의 전형이라 하겠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1944년 만주군 제5관구 예하 보병 8단에 배속받은 박정희는 그곳에서 조선인`중국인 항일빨치산을 적으로 삼고 싸웠다. 그가 실제 전투에 참여해 몇 명의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살상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항일독립운동세력을 적으로 삼는 제국군인의 임무를 충실히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박정희가 이 시기 광복군의 비밀조직과 연결되었다는 소문 또한 박정희가 집권한 이후 그의 충성세력이 만들어 낸 허구일 뿐이다.
박정희는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그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박정희는 일제 패망 때까지 일본제국주의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일체화시킨 최후의 제국군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박정희의 전력을 두고 그가 중위로 제대했기 때문에 친일혐의가 미미하다거나, 또는 극히 짧은 '젊은 날의 방황'으로 변호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그가 거물 친일파로 성장하기에는 일본의 패망이 너무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특히 박정희가 일본 파시즘의 꽃이라 할 제국군인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훗날 대통령 박정희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그리고 통치 형태에는 이 시기 그가 체득한 일본파시즘의 논리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했다. 극우주의에서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유사시에 군부 내 좌익을 이끌고 무장투쟁을 전개할 임무를 받았으나, 여순사건을 전후해 김창룡이 이끄는 육군 특무대에 발각 검거되었다. 박정희는 군부 내의 좌익 명단을 제공하는 대가로 목숨을 부지했으며, 군부 내 좌익은 박정희의 자백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가치관을 떠나서 보자면 박정희는 숱한 동료의 목숨을 판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군문을 떠난 박정희는 6`25전쟁을 계기로 군에 복귀했다. 그리고 5`16쿠테타를 통해 마침내 권력을 장악했다. 이 때 박정희가 내세운 혁명공약 제1조는 "반공을 국시로 한다"였다.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에서 공산주의자로 그리고 다시 반공 극우주의로 이어지는 박정희의 끝없는 변신에는 어떤 이념이나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개인의 생존 본능과 권력욕 만이 유일한 동기였다 할 수 있다.
한편 5`16쿠테타는 결코 그 주역들이 말하는 주관적인 "구국의 일념"과 거리가 멀었다. 이미 박정희는 4`19가 일어나기 전 세 번이나 쿠테타를 준비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사정이 뜻대로 되지 않아 쿠테타를 결행하지 못하다가 4`19를 맞이했고, 4`19 이후 이른바 혼란정국을 틈타 쿠테타를 통한 군사통치의 서막을 열었다.
그런데 박정희 옹호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4`19 이후 정국 혼란이 일시 있기는 했지만 점차 사회질서가 잡혀가고 있어 군사쿠테타를 결행할 명분은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사회가 혼란하다고 해서 군인이 쿠테타에 나서야 할 이유는 더욱 없었다. 오히려 박정희는 쿠테타를 거듭 모의하다 정부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다. 위기에 몰린 박정희는 쿠테타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켰을 뿐이다. 5.16은 "역사의 필연"이 아니었다.
문제는 박정희는 군부쿠테타(군의 정치 개입)를 전혀 부당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군국파시즘 아래에서 청년 장교로 지낸 박정희는 메이지유신과 소와유신을 매우 높게 평가했으며, 그 자신이 군국파시즘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었다. 정당정치와 대중의 다양한 여론을 사회 혼란으로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국가의 '적'으로 설정한 일본 우익의 사고방식은 박정희의 그것과 동일했다. 사회혼란을 군부가 일시에 제거하고 강력한 지도력을 중심으로 국가를 개조한다는 군국파시즘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 5`16군사쿠테타였다.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것도 따지고 보면, 6`25전쟁 이후 국민 사이에 높아진 냉전 의식과 자신의 좌익 혐의의 불식 그리고 남한을 강력한 반공기지로 만드려는 미국의 의도가 맞물리면서 등장한 것이다. 박정희의 반공은 쿠테타의 명분이자 정략적인 것이며 그 바탕에는 파시즘과 메이지유신의 환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따라서 애초부터 "국시 반공" 안에는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다. 민주주의는 사회 혼란과 북한의 적화통일을 가져올 '남한 자멸의 요소'로 파악되고 있었다. 5.16쿠테타는 이미 유신쿠테타의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4. 유신체제 : 총체적 후진성의 구조화
20년 가까이 유지된 박정희 지배체제는 유신체제를 통해 그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었다. 박정희 옹호론자들은 유신체제가 불가피했다든가, 유신체제가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고도성장을 마련한 박정희의 '경제치적'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하게는 유신체제를 한국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독재정치란 것은 하나의 상식이므로, 여기서는 유신체제가 어떤 속성을 지녔으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간단히 살펴 보기로 하겠다.
10월유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박정희가 남북통일을 악용해 영구집권을 꿈꾼 제2의 쿠테타였다. 박정희는 7`4남북공동선언을 통해 국민들에게 통일의 환상을 불러일으킨 후 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유신을 선포했다. 그러나 10월유신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는 커녕 오히려 남북의 냉전구조만 강화했고, 총력안보란 구실 아래 유래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유신체제는 1930년대 일본 파시즘의 지배원리와 '근대화론'을 접합시킨 '일본파시즘의 한국적 변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신(維新)이란 용어 자체가 일본의 메이지유신, 소와유신에서 따온 것이며, 유신체제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구조와 통치체제의 근본 원리 그리고 수많은 정책들이 일본 파시즘의 그것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었다.
'반상회(班常會)'는 조선인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애국반'이,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는 천황의 "교육칙어'와 "황국신민의 서사'가 연상될 만큼 그 연결이 자연스럽다. 박정희가 주창한 총력안보체제와 학도호국단과 교련 그리고 극단적 배외주의 또한 일제 파시즘의 정책과 동일했다. 새마을운동과 새마을지도자 양성책은 일제가 추진한 농촌진흥운동, 신촌(新村)운동과 농촌 중견인물 양성책에서 시사를 받은 것이었다.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극단화시켜 국가주의적 전시통제체제를 강화하고 이를 개인의 권력 강화로 귀결시키는 유신체제에는 파시즘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통치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병영국가로 재편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아의 확립 대신 국가(지도자)에 대한 충성만을 오로지 요구했다. 국가와 개인, 그리고 국가와 개인을 이어주는 명령계통의 국가기구와 어용단체만 존재했을 뿐,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 시민, 또는 단체는 아예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박정희의 눈에 벗어난다면 가차없는 박해만 따를 뿐이었다. 박정희시대에 '시민'아닌 '재야'라는 독특한 저항진영이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4`19 이후 막 피어나던 우리의 시민사회는 태어나기도 전에 박정희 국가주의에 의해 태아살해된 것이다.
물론 유신체제가 일본 파시즘을 모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일본 파시즘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유신체제를 뒷받침하는 정신구조와 통치의 근본 원리 그리고 여러 정책이 일본 파시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남한사회가 다시 제국군인출신의 대통령에 의해 일본 파시즘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조국근대화'의 원리로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5. 박정희는 민족주의자였는가
박정희의 반미감정 또는 핵개발로 대표되는 자주국방론을 두고 박정희를 민족주의자로 규정하는 것도 이만저만 곡해가 아니다. 박정희가 미국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16쿠테타 이후 박정희는 미국의 쿠테타 승인과 각종 지원을 얻기 위해 출발부터 미국의 대외노선과 지도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가 미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터뜨린 시점은 유신체제가 등장하면서였다. 자신이 영구 집권으로 가려는 길목에서 이를 문제삼는 미국의 간섭이 거세어지자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제3세계의 반미주의나 고전적인 민족주의와는 그 동기나 내용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설령 그가 민족주의자라고 해도 국가주의가 유신체제를 받치고 있는 한 박정희의 민족주의는 반동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 그리고 자주권의 회복과 민중 주체의 사회 발전을 주장한 진보적 의미의 민족주의는 유신체제의 정반대편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박정희가 "민족주체성을 함양"한다고 미풍양속 부흥, 특히 충효사상을 들고 나온 것도 민족주의 또는 민족문화와 무관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가부장적 유교이념을 천황제 파시즘으로 연결시켰듯이, 박정희 또한 봉건적 충효사상 등 중세의 유령을 전통문화, 미풍양속이란 이름으로 부활시켜 국민들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일본 제국주의 대신 박정희가 주체로 등장했을 뿐 그 문화적 속성은 일본 파시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박정희와 그 이데올로그들은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고 부르면서 그 정당성을 우리 역사 속에서 끌어내기 위해 수많은 전통을 고안하고 찬미했다. 이 또한 독재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민족문화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예를 들어 화백회의와 정사암제도와 같은 만장일치제의 귀족합좌회의는 일인 후보에 대한 찬반을 묻고 백 퍼센트 가까운 지지로 선출되는 "체육관 대통령"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각광받았다. 박정희가 추구한 전통은 대개 이런 따위였다.
박정희의 대중문화정책은 검열과 규제를 앞세운 처벌주의였으며 그 기준 또한 작의적이었다. 일례로 우리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아침이슬"이나 "행복의 나라로"와 같은 노래는 가차없이 금지 처분을 받았다. 앞의 노래는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의 "붉은"이라는 단어가 용공의 혐의를 받은 것이다. 뒤의 노래는 지금 대한민국이 행복한데 여길 두고 또 어떤 행복의 나라를 찾아간다는 심산이냐는 지배층의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박정희 시기 시작된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은 가부장제 획일주의의 극단적 표현이었다. 경찰이 자와 가위를 들고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박정희가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미국의 버릇없는 젊은이의 못된 문화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무조건 배척하고 자신을 기준으로 한 사회의 문화적 내용을 전단하려는 문화적 독단을 민족문화의 보호육성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곤란하다. 결국 그가 용인한 것은 자신이 익숙했던 유교 가부장제와 파시즘 문화였다.
유신체제는 당대에만 악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다. 박정희는 각종 관변단체 특히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 자라나는 세대마저 파시즘형 인간으로 훈육하려고 했다. 규율과 복종정신의 내면화를 통해 민주적으로 훈련받아야 할 학생층은 정반대의 길을 강요받았다. 그가 만든 각종 유신체제의 보조 기구는 박정희가 사라진 지금도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아 일상 속의 파시즘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정희가 남긴 부정적 유산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아직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6. 개발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박정희가 걸어온 길이 이렇듯 뚜렷하게 부정적이기에 그의 추종자들 조차 박정희의 공로로 자신있게 드는 것은 오직 하나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경제성장이었다. 필자 또한 어찌되었건 박정희 집권기에 뚜렷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동의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내용과 질을 따져보면 성장의 그래프보다 더욱 깊게 그 부작용과 후유증이 남겨져 있다. 쟁점이 되는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일부 학자들은 박정권이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워 한일협정을 맺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추켜 세운다. 이 때 일본으로부터 받은 자금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느냐고 이들은 반문한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박정권이 한일회담을 추진했다는 '사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박정권이 한일회담을 '잘못된 시각'에서 시작했고, 이들의 부도덕하고 무능한 외교로 말미암아 한일협정은 '차라리 추진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문제삼는 것이다.
박정권이 일본정부로부터 제공받은 유무상 5억달러의 청구권 자금은 일제 식민지 지배 아래 우리가 겪은 피해에 비하면 극히 보잘 것 없는 액수였다. 게다가 박정권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범죄와 민중의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도 묻지 않은 채 36년의 피해보상을 서둘러 매듭지었다. 그 결과 '정신대' 문제, 원폭피해자, 재일동포 지위 등 일제 식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가 한 가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렀다.
한일회담을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한 근본 원인은 쿠테타 이후 볼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정권의 무능함을 일본의 경제 지원으로 메꾸려는 조급함과 정권 담당자가 지녀야 할 역사의식의 부재에 있었다. 사실 한일회담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제대로 못받았으니 무책임외교, 무능력 외교의 본보기로 지적되어야 한다. 게다가 한일협정을 전후해 일본으로부터 거액이 공화당창당자금의 뒷돈으로 제공되었다는 의혹은 도덕성의 시비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편 한일회담은 한국, 일본, 대만을 연결해 동아시아 반공라인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떠밀려 더욱 급하게 추진되었다. 박정권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쿠테타의 합법성을 구하려는 속셈이었다. 이 때문에 한일회담은 우리의 내재적 요구와 주체적인 태도로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 집권 시기 경제성장은 베트남전이라는 또 다른 성장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박정권이 베트남 참전을 결정한 것은 경제개발의 재원을 조달하고 미국의 하위동반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프랑스-일본-미국으로 이어지는 100년의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려는 베트남민중의 '민족해방투쟁'이었다. 따라서 한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해야 할 명분은 없었다. 식민지의 고통을 겪은 우리가 남의 나라 독립운동에 개입하러 간다는 것도 온당하지 않으며, 젊은이의 피를 대가로 성장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월남전 특수'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고도성장을 논하기 전에 한국 군인과 월남 민중의 피의 희생이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경제성장을 위해 월남파병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면, 일본 우익이 과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것을 일본 경제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얘기하는 제국주의 논리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최근에는 박정희의 치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주목하기도 한다. 새마을운동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농민에게 심어주었으며, 성공적인 농촌개혁운동이었다고 격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이 시기 농촌경제를 살펴보면 새마을운동이 과연 농촌을 살렸는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박정희정권이 몇 몇 성공 사례를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서 그 성과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시 농가경제의 파탄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새마을운동은 그 경제적 동기보다는 박정희정권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농촌에게 구하고, 정치적으로 낙후된 농민을 동원 통제하려는 보다 거시적인 통치전략 측면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일제시기 농촌진흥운동이나 신촌운동 그리고 농촌중견인물양성책이 그러했듯이, 새마을 운동 자체가 갖는 대내외의 거대한 정치적 선전`동원기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론은 국가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해 경제의 틀을 짜고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어 이를 육성.지원하는, 국가주도.재벌 중심의 수출지상주의였다. 경제성장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강력한 권력이 독재를 행사하는 것도 정당화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휴유증은 엄청났다. 재벌의 정경유착과 부실경영, 한국경제의 미일의존성, 부와 소득의 불균형, 농업의 희생, 노동자들의 인간적 권리 말살, 만성적인 외채경제는 박정희가 주조한 경제구조의 핵심이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박정희식 경제개발론의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박정희와 그의 추종자들은 안보와 경제지상주의를 내세우면서 이를 위해 인간의 모든 가치가 유보될 수 있다고 주장해, 인간을 오직 빵으로만 사는 동물적 존재로 돌려버렸다. 박정희가 민주화를 훼손시켰지만 경제성장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희생해도 좋다는 전도된 가치관으로 연결된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자들은 이러한 전도된 가치관에 입각해 박정희는 조국근대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쿠테타를 하고 유신체제를 선포했다는 식으로 그를 억지미화하고 있다.
춥고 배가 고팠지만 인정이 있고 이웃이 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의 향수, 저마다 소중한 추억을 박정희에 대한 향수로 바꿀수는 없다. 오직 '대망의 80년대'만을 기다리며 초인적인 인내력과 헌신적인 노동으로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 온 박정희시대의 민중들에게 조촐한 술 한상을 차리지 못할 망정 그 가운데 호의호식하던 박정희를 기리다니 말이 되는가. 박정희식 경제성장은 결코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으며, 박정희의 고도성장을 찬양하기 전에 그 깃발 아래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경의와 명예회복이 앞서야 할 것이다.
7. 결론 :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투쟁의 역사적 의미
박정희가 집권한 시대는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독재, 그리고 통일과 반통일이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치관이 투쟁하던 시대였다. 이 빛과 그림자의 투쟁에서 박정희는 언제나 반민족으로, 독재로 그리고 반통일의 화신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이 암흑의 지배 아래 수많은 친일잔재와 파쇼 세력이 기만적인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때로는 '박정희 신도'로 자처하면서 박쥐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정희 집권기 구축된 권력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21세기까지 연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상징화 작업이 바로 박정희 기념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자신의 허약한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보수세력을 끌어들이고자 이 기념사업에 적극 뛰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기념관 건립사업은 박정희 시기 그의 '공범'들과 박정희가 남겨놓은 관변 시스템에 유착한 세력 그리고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현 집권층의 권력욕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의 자의적인 역사 해석이 엉키어 진행되는 추악한 권력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인권대통령으로 자처하는 김대중대통령이 이 사업에 적극 나서는 것은 대단히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대통령은 자신을 가해한 박정희를 "이미 용서"했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지나 개인의 자격에서 가능할 뿐이다. 문제는 박정희는 김대중대통령의 '개인적 박해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한 시대 국민을 볼모로 삼은 역사의 죄인이랄 수 있다. 이런 박정희를 김대중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역사와 국민을 대표해 임의로 용서하고 게다가 기념할 수 있단 말인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속에 국민의 혈세 200억원을 박정희 기념사업에 바치는 것은 이만저만 월권이 아니다. 알량한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한편으로 박정희에게 희생당한 이들의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가해자를 기념하는 이 엄청난 역사의 기만을 어찌 두고만 볼 것인가.
박정희는 결코 기념할 대상이 아니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독재로 이어진 오욕의 20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 민족의 새지평을 열기 위해 반드시 극복 청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더욱이 박정희는 2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면서 각종 국가기구와 관변단체를 통해 이른바 박정희이데올로기라는 파쇼적 가치관을 국민 속에 감염시켰다. 이제는 올바른 역사 반성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은 박정희 기념사업이 아니라 박정희 청산사업이 시작될 때이다. 우리가 한 시대의 역사를 바르게 규정하지 못함으로써 전도된 가치관이 횡행하게 되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박정희 기념사업과 그의 후예들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