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들은 올해 교육이 나갈 방향을 염원하는 사자성어로 ‘本立道生’(본립도생)을 선택했다. 본립도생은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며 말로 ‘기본이 바로서야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교총은 갑오년 새해, 교육의 지향점과 희망을 내포한 사자성어를 교육계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2014 교육 사자성어’를 선정했다. 1월 초부터 교총 교육나침반 등 1200여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53개의 사자성어를 추천 받아 내부 심의를 통해6개의 사자성어로 압축한 뒤, 16일~22일 전 회원 설문조사를 거쳐 최종 선정했다. 1750명의 현장 교원이 참여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던 설문 결과, 올해의 교육 사자성어로는 30.9%가 선택한 본립도생이 선정됐다. 이어 仁本創礎(인본창초)와 敎敎生生(교교생생)이 각각 20.5%, 15.5%로 2, 3위에 올랐다. 성적 위주의 교육을 인성교육 중심으로 전환하고 정치, 포퓰리즘, 톱다운 방식의 개혁에 휘둘리는 교육이 기본과 본질 회복으로 돌아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공통된 현장 정서가 묻어난 결과다. 본립도생을 추천·제안한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 공교육은 양적으로 발전했지만 질적으로는 아직도 많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며 “현 정부가 추구하는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은 인성과 지성을 겸비하는 기본이 바로 서야 꽃 피울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자성어 후보 6개 중에서 본립도생은 유일하게 30% 대 지지를 얻어 현장의 공감이 컸다. 교원들은 “기본을 망각한 지식 교육으로는 진정한 자아 실현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이룰 수 없다”며 “학교와 가정, 사회가 함께 기본을 바로 세우는데 협력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며 선택 이유를 한결같이 제시했다. 두 번째로 많은 교원들이 선택한 인본창초는 ‘바른 인성위에 기초를 튼튼히 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박응선 함평손불서초 교장이 추천했다. 박 교장은 “서로 자기 이익, 자기 목소리만 내세우고 학교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한 기초교육에 전 사회가 함께하고 기틀을 다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3위로 선정된 교교생생은 전홍섭 전 서울 일신여중 교장이 추천한 사자성어다. 공자의 ‘군군신신 부부자자’에서 유추해 조어한 말로 ‘교사는 교사답고 학생은 학생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 전 교장은 “지난해 우리 학교는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교원은 학생 지도와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학생 역시 본분과 의무를 소홀히 해 갈등을 겪었다”며 “교육은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서로 본래의 자세를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한결같은 희망
사자성어로 들여다본 敎心
창의·행복교육도 출발은 ‘인성’
가정-학교-사회 함께 실천을
정권, 정부 따라 교육 바꿔서야
정책의 답은 학교, 교원에 있다
정치적·실험적 포퓰리즘 끝내고
흔들림 없는 백년대계 세워야
올 교육 사자성어로 선택된 本立道生(본립도생)과 2, 3위에 오른 仁本創礎(인본창초), 敎敎生生(교교생생)은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교원들의 현장 정서를 한결같이 투영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 사자성어를 선택한 교원들의 이유를 들여다보면 인성교육, 정치중립, 백년대계, 본질회복 같은 키워드가 주를 이룬다. 그만큼 현재 우리의 교육이 기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교원들은 성적·입시 위주의 교육, 책임·배려보다 권리·갈등이 판치는 학교현장, 정부·정치권에 휘둘리는 ‘敎育一年小計’로 점점 황폐화되는 교육현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본립도생을 선택한 이유로는 우선 ‘인성 바탕 없는 지식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았다. 한 교원은 “행복교육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것도 기본교육에 충실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고, 또 다른 교원은 “기본 없는 지식은 사상누각이고 때론 남을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며 “가정, 학교, 사회가 기본을 세우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정권, 정부의 입맛대로가 아닌 현장에 기초한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는 의미로 본립도생을 읽은 교원도 많았다.
한 교원은 “정권이 바뀌면 장관을 바꾸고, 바뀐 장관이 자신의 교육적 경험을 전부로 착각하다보니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며 “교육의 근본은 학교에 있는만큼 교원과 학교가 받아들일 수 있고 현장을 도와주는 정책과 행정으로 교육이 바로 서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교육이 일자리 창출과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변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내에 실적을 내려는 조급함을 지양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는커녕 일 년에도 몇 번씩 임기응변식 처방으로 바뀐다”며 긴 안목의,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정책수립을 요구하는 의견도 쏟아졌다.
교육의 정치 중립을 선택 이유로 밝힌 경우도 많았다. “교육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집권기간에만 유행하는 유행가처럼 이뤄져 왔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또한 “포퓰리즘 정치에 휘둘리는 교육, 돌봄과 무상급식 등 공짜 복지에 교육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육의 본질에 입각한 정책 설계와 투자가 이뤄지는 한 해이길 기대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인본창초, 교교생생 선택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성이 바로 서지 않은 교육은 창의적인 도둑을 육성하는 것”이라며 인본창초를 꼽은 한 교원의 지적은 본립도생과도 맥이 닿아있다. “창의와 창조도 사람을 배려하는 인성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하다. 아이폰의 편리함, 페이스북의 세계화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요?” “아인슈타인은 ‘교실은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이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고 말했다. 바른 인성 위에 지식을 담는 사람이 되도록 모든 교사가 노력하자는 뜻에서 인본창초를 골랐다”는 의견들은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교교생생을 선택한 교원들은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무너진 사제관계를 지적하며 소통을 강조했다. “갈등은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올 한해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려 한다” “교원과 학생이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자각하고 지킬 때 교육의 본질을 수행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은 교사를 존경하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게 가장 시급하다” “교권과 인권의 조화를 통해 본연의 사제지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고 교원들은 선택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