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들고 오는 삼월이 있어서 몇 걸음 올랐을 뿐인데 버스는 높고 버스는 간다 차창 밖에서 가로수 잎이 돋는 높이 누군가의 마당을 내려다보는 높이 버스가 땀땀이 설 때마다 창밖으로는 봄의 느른한 봉제선이 만져진다 어느 마당에서는 곧 풀려나갈 것 같은 실밥처럼 목련이 진다 다시없는 치수의 옷 하나가 해지고 있다
신호등 앞에 버스가 선 시간은 짧고 꽃이 지는 마당은 넓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다음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서 휘날리지도 못하고 목련이 진다 빈 마당에 지는 목숨을 뭐라 부를 만한 말이 내게는 없으니 목련은 말없이 지고 나는 누군가에게 줄 수 없도록 높은 봄 버스 하나를 갖게 되었다
-『The JoongAng plus/시(詩)와 사색』2024.04.06 -
봄은 눈앞에서 놓쳐버린 버스 같습니다. 어느새 빠르게 지나가는 것, 손을 흔들며 세워보아도 잡을 수 없는 것,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언제나 더 익숙한 것. 그리고 이에 더해 핑계 삼기 좋다는 것도 이 봄과 놓쳐버린 버스의 공통점입니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서 늦었어.’라는 말과 ‘봄이라서 한번 연락해봤어.’라는 말은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지지요. 계단 같은 삼월을 밟고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벌써 사월입니다. 올해는 봄꽃이 조금 늦었다고 하지만 제가 머무는 동네의 목련은 이미 지고 있습니다. 이 짧은 봄날, 모든 것을 아껴가며 보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