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내 탓이다
비가 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풀 먹인 모시옷을 입기는 안 좋은 날들이다. 입지 않던 기지 옷을 꺼내 입었다. 땀과 습기에 젖어 옷이 몸에 붙는다. 살을 빼야겠다. 남들이 내게 살이 쪘다고 말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날 때부터 우량아였다고, 절에 와서 찐 살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한다. 사실 말이 났으니까 말인데 출가 수행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고 살아야 한다.
만약 누가 좀 거칠게 말해 같이 받아치면 대뜸 이런 말이 돌아온다.
“스님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할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말 다 해놓고 내가 좀 뭐라 말을 하려고 하면 이렇게 말하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참고 나면 기분은 이내 좋아진다. 옛 스님들은 한 번 참으면 오랜 즐거움을 만난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사 모두가 그렇다. 모든 것이 다 내게서 비롯하는 것이다. 누굴 원망하고 탓할 것도 없다. 그냥 내 탓이오, 하고 살면 편하다. 순간적으로 참기 어렵기는 하겠지만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또한 세상일이다.
내가 둥글어지면 남도 둥글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아주 사이가 나쁜 고부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미워했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못 마땅하게 여겼다. 미워하는 마음이 극에 달한 며느리는 어느 날 시어머니를 죽이고 싶어 마을의 아주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를 죽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시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며느리가 인절미를 좋아하신다고 대답하자 점쟁이는 그렇다면 100일 동안 시어머니에게 인절미를 해드리라고 말했다. 그러면 시어머니가 죽게 될 것이라고. 이때부터 며느리는 지극 정성으로 인절미를 해 바쳤는데, 속사정 모르는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의 정성에 감복하여 며느리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며느리 역시 달라진 시어머니를 사랑하게 됐고, 사랑이 커가자 며느리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시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서 말이다.
며느리는 다시 점쟁이를 찾아가 착한 우리 시어머니를 살려달라고 했고 점쟁이는 말했다.
“그래! 인절미를 드시고 시어머니가 죽었구나. 자네를 그렇게 못살게 하던 시어머니는 죽었고 아주 착한 시어머니가 살아 왔구나.”
며느리는 그 말을 듣고 점쟁이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참을 울었다 한다.
세상을 푸념할 일은 아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은 달리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비심을 가지고 보면 세상은 다 예뻐 보인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싫어질 때 내게 자비심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즐겁게 받아들이고 미소로 흘려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번 장마에는 내 마음에 적체되어 있던 미움과 성냄을 다 씻어 내리고만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무슨 말에도 환하게 미소 짓는 그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출처 ; 성전 스님 / 관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