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매우 즐겁습니다.오늘 제가 드릴 말씀은 불교에서의 참회와 기도에 관한
것들입니다.사람이 몸에 때가 많이 묻어 있으면 목욕을 해야 하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아 입어야 하듯이 참회라는
것은 사람의 몸속에 든 죄업을 씻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참회란 하나의 양심선언과 다를 바
없습니다.사람이 참회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한마디로 무의미한 일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은 죄를 가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쇠가 녹이 슬면 닦아내야 하듯 사람도 참회를 해야 합니다.스스로 참회를 하는 사람은 자기의
양심을 항상 씻어 가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오늘 제가 불자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법문도 몸과,입,마음으로 지은 삼업에 대한 법문입니다.
불자 여러분은 저를 따라서 합장하십시오
지난날 제가 지은 모든 죄악은 끝이 없는 탐심,진심,치심,탓이니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모든 것을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참회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그동안 겨쳐 간 많은 조사 스님들은 참회를 통해 많은 수행을 해왔습니다.그중에서도 무착 선사는 오대산 문수보살을
만나 뵙기 위해 삼년 동안 일보일배로써 참회를 하신 분입니다.또한 고심율사는 삼보일배로써 수행을 하였으며
자장율사도 고된 수행을 통해 참회를 하신 분 입니다.이와 같이 참회수행은 우리 스님들만 한 것이 아니라 옛나 ㄹ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님들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보현보살 행운품에는 열 가지 수승한 공덕을 닦는 데 있어서
제일 우선하는 것이 참회라고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오늘은 참회를 통해서 도를 이루신 무착 선사에 대한 법문을
하나 할까 합니다.수십 년 동안 무착 선사는 수행을 하였지만 견성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고민 끝에 중국 오대산에 가면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님이 항상 상주하여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일보일배를 통해
그를 만나기 위해 수행참회를 시작하였습니다.무려 3년이 지나 오대산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작은 주막집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 무착 선사는 그 노파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문수보살님이 계신 오대산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착 선사가 다시 말을 하였습니다."3년 동안 일보일배를 하여 문수보살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저녁 푹 쉬고,내일 아침에 내가 친견하러 갈 터이니 한 상 잘 차려 가지고 오십시오"
이에 노인은 이렇게 답을 하였스니다. "성인을 대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으면 성인을 대하고 난 후에 먹고자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지 3년 동안 힘들게 와서 성인을 친견도 못한 그런 마음을가지고 먼저 푹 자고 잘 먹고 내일 친견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
노파의 말을 들은 무착 선사는 크게 깨달았습니다.듣고 보니 노파의 말이 맞았던 것입니다.그는 하루 동안만이라도
쉬려는 생각을 이내 그만 두고 다시 산길을 올라갔습니다.그때 한 노인이 소를 거꾸로 타고 피리를 불면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그것을 본 그는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노인이 어찌하여 소를 거꾸로 타고 산길을
내려 오는가.궁금한 생각이들어 그 노인에게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문수보살님이 상주하고 있는 오대산 금강굴이 어디에 있으며 여기에서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금강굴은 이 모퉁이를 바로 돌아가면 있는데 거리는 얼마 안 되니 부지런히
가보시오"
무착 선사는 드디어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계신다는 긍강굴 입구에까지 도착했습니다.그곳에는 조그마한 초가집이
하나 있었는데 안에서는 한 노인이 새끼를 꼬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금강굴입니까.문수보살님을 친견하러
왔는데 안에 계십니까" 노인이 무착 선사의 물음에 이렇게 대꾸를 하였습니다.
"금방 소를 거꾸로 타고 내려가는 노인이 있었는데 못 봤습니까? 그분이 바로 문수보살입니다"
"봤습니다" "그대가 문수보살을 봐도 못 알아 본 것은 당신 마음의 눈이 아직 열리지 못한 것이니 문수보살을 만났지만
못 본 것이나 다름이 없소"
무착 선사는 순간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꼈습니다."그럼 그분께서 언제 다시 금강굴에 오십니까"
"성인이 하시는 일이라 알 수 없소 .중생을 교화하러 갔으니 금방 올 수 도 있고 아니면 시일이 걸릴 수도 있으니
성인이 오고 가는 자체를 내가 용단해서 말할 수는 없소"
"그럼 오실 때까지 며칠 되든지 간에 안에 들어가서 쉴테니 문 좀 열어 주시오"
"이 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시험을 보아서 통과를 해야 합니다."
"금강굴의 도량은 그 넓이가 얼마나 되며 어떠한 분들이 살고 계십니까"
"금강굴 문수보살님이 계신 이 도량 안의 크기는 동서 십만,남북 팔천으로 용사혼잡,범성교참 즉 용과 뱀이함께 살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곳이요"
"그럼 문수보살은 이 안에서 무슨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가요" "전전삼,후삼삼 앞에도 셋,셋,뒤에도 셋 셋이요"
"전삼삼,후삼삼이란 무슨 뜻입니까?"
노인은 무착 선사의 질문에 기가 막힌 듯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다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찌하여 그대는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왔으면서도 전삼삼,후삼삼을 모르는가.당신의 몸에서는 인간 세상의
오탁악새의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그런 사람은 이 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또한 이 밖에서도 오래 머무를 수도 없소"
이에 격분한 무착 선사가 노인에게 호통을 탁 치면서 흥분을 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
"여보시오! 새끼 꼬는 농막의 노인아,그동안 이 무착에 대해 소문을 듣지 않았소.내가 이래 보아도 남방에서는
큰스님 중의 큰스님이야,고승 중의 공승이란 말이다.어디다 대고 반말을 써.거기다가 여기서 재울 수 없다고 하니
여러 소리 말고 문 좀 열어봐"
노인은 무착 선사의 소리를 듣자 오히려 콧웃음을 쳤습니다. "허허 이것 참 모진 중생이 하나 왔구나.균재 동자야
여기 거친 스님 하나 왔는데 밖으로 모셔내라."
그랬더니 초가집 안에서 덩치가 산만하고 더벅머리를 한 총각이 걸어 나왔습니다.
"인간세상에서 까불던 놈이 감히 어디에 와서 아만탱천해서 큰소리를 치고 기기다다 고집을 부리고 있느냐"
더벅머리 총각은 새끼줄로 무착 선사를 개 묶듯이 묶고는 바윗돌과 가시밭길로 질질 끌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무착선사의 손과 발,얼굴에는 상처가 심하게 나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끌고 다니다가 무착 선사를 번쩍 들어 시궁창에다가 휙 집어던져 버리고는 가버렸습니다.
그때 무착 선사는 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더욱 참기 힘든 것은 당해의 큰스님이었던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었습니다.
무착 선사는 격분한 나머지 노인에게 욕을 퍼붓자 어디선가 아주 좋은 음악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面上無嗔 이니 供養具 요
口裡無嗔 이니 吐妙香 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면상무진이니 공양구란 짜증나는 얼굴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문수보살님께 드리는 공양이요,또한 구리무진이니
토묘향은 악한 말을 하지 않고 좋은 말,그것이야말로 묘한 향을 토해내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법문이었습니다.무착 선사는 그 소리에 깊은 감동을 받고 누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법문은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금방 자기를 새끼줄로 묶고 끌고 다녔던 더벅머리 총각이었습니다.
그는 멀리서 아주 자비로운 얼굴로 미소짓고 있었는데 손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무착 선사는 쫓아가서
게송은 항상 네 구절로 이루어져 있으니 나머지 두 구절의 게송을 일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더벅머리 총각은 문수보살의 시중을 듣고 있던 균재 동자였습니다.
그는 나머지 두 구절의 게송을 노래했습니다.
心裡無嗔 이니 是眞寶요
無念無想 이 是眞想 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소 짓는 그 얼굴이 한량없는 공양거리요,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자비롭고 착한 마음이
가장 귀한 보배이며 분별시기마저 없어지면 부처님의 모습이다.
나무아미타불
그제야 무착 선사는 군재 동자의 진면목을 알았던 것입니다.균재 동자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무착 선사는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문수보살의 시중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그제야 자신이 만났던
초가집의 그 노인도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되어 황급히 그 노인을 찾아 나섰으나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어쩌면 서두르지 않으면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문수보살을 마나기 위해
주막집을 찾아갔습니다.그러나 그곳에 당연히 잇어야할 주막집의 노파도,균재 동자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결국 무착선사는 자신이 만났던 소를 거꾸로 타고 내려오던 노인 주막집의 노파와 동굴 초가집에서 만난 노인
그리고 균재 동자까지 적어도 문수보살을 친결할 기회를 무려 네 번이나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스스로 크게
뉘우치게 되었습니다.자신의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서도 문수보살을 못 본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못 본 이유가 바로 전삼삼 후삼삼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 순간 무착 선사는
눈물을 흘렸습니다.삼년이란 긴긴 세월 누굴 위해 고생했나.전삼삼,후삼삼에 눈물 뿌려 돌아가네
나무아미타불
우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할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문수보살을 만나왔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이렇듯이 문수보살을 간절히 원하지만 만나게 되면 어떻게 친견해야 할 것인지조차모르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그날 비록,무착 선사는 문수보살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주 중요한 화두를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그 화두란 전삼삼,후삼삼이었는데 그 때부터 무착 선사는 부지런히 그 화두를 가지고 팔 년 동안 용맹정진을 한
끝에 깨치고 도를 통하게 되었습니다.즉,풍성,수성이 진여래설이었습니다.바람 소리,물소리가 설법 아닌 것이
없고 천 문수,만 문수 등 모든 두두물물이 전부 문수보살이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는 눈먼 봉사에게는 꽃을 손에 갖다 주어도 꽃인 줄을 모르지만 눈밝은 사람은 멀리에서만 봐도 저것이 꽃이며
저것이 곡식이고,저것이 들판이고,다 알아내는 것과 같습니다.이것이 바로 도를 통한 사람의 이치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을 떠야만 합니다.이 마음의 눈만 열린다면 애써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멀리가지 않아도
바로 목전에서 문수보살을 만날 수가 있게 됩니다.
그 후부터 도를 통해 마음의 눈을 뜬 무착 선사는 늘 문수보살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한번은 무착 선사가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문수보살이 와서 팥죽 끓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이때 무착 선사가 팥죽 ㅈ걱을 가지고 문수보살의
귀때기를 한 차례 보기 좋게 후려갈기면서 "무착은 자무착이요,문수는 자문수인데 너는 문수요 나는 무착인데
어찌하여 팥죽 끓이는데 와서 오두방정을 떨고 있느냐" 하였다고 합니다.이에 귀때기를 얻어맞은 문수보살은
"내가 삼아승지겁을 다 돌아다니면서 봤지만 이렇게 잘 익은 도는 처음 봤다"하면서 무착 선사에게 비로소 인가를
내렸습니다.
무착 선사가 이렇게 크게 도를 깨친 연유는 마음속의 눈을떠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참회수행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또한 문수보살이 내린 전삼삼,후삼삼의 화두를 들고 타파하기 위해 용맹정진을 한 결과였습니다.
무착 선사의 문수보살의 이야기는 우리 스님들의 행자교육과 습의를 시킬 때 자주 하는 법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주제는 사람이 말과 행동을 할 때의 방법인데 즉 말과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며,마음은 어떻게 써야
하며 앞으로 스님이 되어서는 그 거동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가입니다.사실 무착 선사는 도를 통했지만
습의는 제대로 못 배워 말과 행동에 있어 다른 신도에게 대접을 받지 못할 정도로 거친 언행을 일삼았습니다.
어느 마을에 매우 큰 부자 신도가 살고 있었습니다.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법덕이 매우 훌륭한 스님에게 맛있는
음식과 옷 한 벌,집 한 채 이렇게 세 가지 공양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수소문 끝에 무착 선사가 그런 인물임을 알고
찾아갔습니다.그런데 가는 날이 바로 장날이었습니다.옛날 우리 스님들은 가난하였기 때문에 옷이 겨우 한 벌
밖에 없었습니다.때문에 속내복과 바지저고리를 빨 때는 다 벗고 두루마기나 장삼만을 걸치고 여름날 햇볕에익은
바위 위에 앉아 있곤 합니다.그때 무착 선사도 속내의와 바지저고리를 빨고 장삼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신도가 찾아왔습니다.
"무착 선사가 어디에 계십니까?" 신도가 무착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바로 무착이요"
행색이 꾀죄조하고 볼품이 없는 스님이 무착이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정말 무착 선사가 맞습니까?"
무착은 몇 번이나 다시 묻는 신도의 말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맞는데 왜 자꾸 묻는가?"
"그럼 오늘 제가 스님에게 공양을 하려고 집에 음식을 준비해 두었습니다.함께 가시겠습니까?"
신도의 집에 가기 위해 무착 선사는 산길을 내려갔습니다.그때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해 순식간에 개울이
멈쳐났는데 신도는 발목을 걷어 올리고 건넜으나 무착 선사는 주장자를 땅바닥에 짚고 펄쩍 뛰어 개울을 넘으려다가
그만 개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그런데 문제는 드러난 알몸이었습니다.신도는 이것을 보고 경악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도인이라도 그렇지 장삼만 걸치고 속옷을 입지 않은 알몸의 무착 선사에게 의심이 들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개울조차 뛰어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저 사람은 도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달리 먹기 시작했습니다.그래도 이왕 내가 모셔 가는 스님이니 집을 지어 드리는 것은 하지 않더라도
밥 한 끼 공양하고 옷이나 한 벌 공양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걷던 중 다시 도랑이 나왔는데 무착 선사가 말했습니다.
"아까는 내가 넘어졌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주장자로 뛰어넘을 수 있다.노인은 잘 보시오"그러나 무착 선사는 도랑을
건너기는커녕 또다시 홀라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이것을 지켜 본 신도는 아까 밥 한 끼와 옷 한 벌 이라도
대접을 하려던 생각조차 순식간에 달아나고 말았습니다.아까는 자신이 스님을 모셔 가는 것이었지만 이젠 자신이
스님을 데려간다는 생각을 햇던것입니다.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는 돌중임이 틀림없다는 것과 글너 스님에게
옷을 공양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옷을 한 벌 지어 줘봤자 이내 흙탕물에 빠트릴
위인이었기 때문입니다.다시 산길을 내려가자 세 번째 도랑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무착 선사는 "웬 놈의 도랑이 이렇게 많아'하고 이번에는 뛰어넘지를 않고 도랑 속으로 그냥 걸어 들어가 건넜는데
이를 본 신도가 참고 참다 화를 내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까 두 개의 도랑은 폭이 넓어서 옷을 그냥 걷어 올리고 건너가면 되는데 뛰어넘다가 옷을 다 버리고 이번에는
그냥 폴짝 뛰면 되는데 오히려 걸어서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나는 당신하고 산길을 걸어오면서 옷 한 번
버리지 않았는데 스님의 옷은 온통 흙탕물이니 어째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건가요"
무착 선사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도랑을 뛸 때는 넘어져 집 한 채가 날아갔고,두 번째 도랑을 뛰어넘다가 넘어져 옷 한 벌이 날아갔으니
이번에 또 넘어지면 밥 한끼도 못 얻어 먹을 수 있으니 그냥 건넜소.건너뛰어도 탈이요 건너뛰지 않아도 탈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옳은 일인가"
신도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만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큰스님께서 타심통 하신 것도 모르고
겉모양만 가지고 제가 평가를 해서 반말을 쓰고 그 분별시비에 의해 제가 보시할 수 있는 집도 보시를 안 하고
옷도 보시를 안 한다는 생각이 잘못이었습니다.다 스님께 지어 올리겠습니다."
이에 무착 선사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대 마음이 이미 다른 스님에게 집과 옷을 지어 드리기로 했으니 집도 내 것이
아니요,옷도 내 것이 아닙니다.그냥 점심만 공양을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날 무착 선사는 점심공양만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내가 오늘 무착 선사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참회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입니다.무착 선사가 참회를 통해 견성을
하였으며 그 신도 또한 참회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이를 통해 불자들은
왜 깨우침이 그토록 중요한가를 이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두 번째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과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들려주겠습니다.불자들은 따라서 합장하세요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고 관상이 바뀌면 내 운명과 팔자도 바뀐다.
불자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절을 많이 하게 되면 분명히 관상이 바뀐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수행을 많이 한 분들의
얼굴을 보면 벌써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는 마음에 사심이 없고 맑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의 곁에 다가가면 향기로운 향냄새가 납니다.고려 7대 묵종 대왕 때의 일입니다.지금도 강원도 철원에 가면
심원사라는 절이 있는데 당시 그곳에 어느 주지 스님이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절 안을 돌아보니 범종이 없어
자신이 주지로 부임을 했으니 범종불사라도 해놓고 후임주지에게 인계인수를 하리라 마음을 먹고 범종불사를 위해
관세음보살님에게 백일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백일기도 회양 날 그이 꿈속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지정이라고 하는 사람과 감천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그 사람에게 화주를 주어라.
그러면 범종불사는 걱정 없이 될 것이다"
주지 스님은 권선문을 가지고 지성과 감천을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길을 떠났으나 가도 가도 도저히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려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작은 초가집에 들어섰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두 사람이 비를 피하기 위해 앉아 있었는데 한 사람은 앉은뱅이고 한 사람은 눈먼 봉사였습니다.
앉은뱅이의 이름은 박춘식이고 눈번 봉사의 이름은 이덕기였습니다.자신들의 하루 끼니조차 걱정할 사람들이었으니
도저히 범종불사를 할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지 스님은 그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로부터 지성과 감천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까?" " 저희들은 범산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았는데
과거 세상에서 살생을 많이 한 인연업보로 인해 눈이 멀게 되고 다리가 못 쓰게 되는 이런 업보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고 참회를 해서 다음 생에서는 건강한 몸을 받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하루 천 번씩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그 숙제가 끝난 뒤에는 평생을 하루 만 번씩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부르되,욕심 부리지 말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불사를 현금으로 보시를 못하더라도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든지 노력불사를 하면 그것이 공덕이 되어 다음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그래서 정성을 잘 드리면 부처님이 감동하고 하늘이 감동할 수 있다고 해서 각각 지성과 감천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주지 스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꿈속에 나타난 관세음보살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들은 범종불사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이것은 관세음보살이 당신들에게 계시를 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하루 한 끼도 먹기기 힘들었지만 범종불사를 위해 탁발을 나서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리와 눈이 되어 탁발을 돌기 시작하면서 버려진 놋그릇,숟가락 등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그러기를 3년 드디어 범종불사를 할 만큼의 쇠붙이가 모이게 되었습니다.마침내 범종불사 회양날이
다가왔습니다.눈먼 봉사인 감천이는 마치 자동차가 되고 앉은뱅이인 지성이는 핸들이 되듯 한 몸이 되어
범종불사를 보기 위해 심원사로 향했다가 층암절벽험한 길 위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서로서로 눈이 되고 발이
되었던 그들은 각각 넘어져 "지성아", "감천아" 하고 서로를 애타게 불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하늘에 오색광명 무지개가 환하게 솟아 있었는데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그 위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보자 그 순간 앉은뱅이인 감천이는 벌떡 일어나게 되고 눈먼 봉사였던 지성이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감천아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지성아 나는 이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심원사 주지 스님은 그들을 위해 이렇게 축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앙고 심원사 범종대작불사 설판대회주 지성이 눈을 뜨게 하고 감천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다리를 고쳐주십시오.관세음보살님"
주지 스님이 거듭거듭 축원을 하자 이미 소원을 성취한 지성이와 감천이는 "이제 축원을 그만하시오.우리는 이미 눈을
뜨고 다리를 폈습니다 스님"하고외쳤습니다.
이 법문은 운명과 팔자가 아무리 불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기도하고 참회하고 염불을 하면 능히 자기 운명과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예입니다.지성이와 감천이가 본 오색광명 무지개가 찬란했던 철원의 그곳을 지금도
대광리라 부르고 있으며 부처님과 보살을 본 고갯길을 견불령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바로 용심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즉 자신의 마음을 잘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배록 수십 년 동안 도를 닦고 시주를 많이 하고 팔만대장경을 줄줄 외운다고 하더라도 용심을 잘못 쓰게 되면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그러므로 항상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내가
최고라는 하는 마음,남을 깔보는 마음 이런 마음을 다 쓸어내야 합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일체 모든
중생들이며 또한 일체 모든 중생들 중에서 가장 부족하며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러므로
나 말고는 전부 부처님으로 생각하고,부처님으로 받들고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마음의 눈을 가졌을 때만 이 복이 생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따라하고 합장을 하세요
얼굴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불공(선물)이요 부드럽고 고운 말은 묘한 향을 토해내는
것과 같다.자비롭고 착한마음 으뜸가는 보배이며 분별시비 없어지면 진리(부처님)의 모습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착 선사는 문수보살 덕분에 전삼삼,후삼삼 화두를 타고 면상무진이 참불공이라는 훌륭한
법문을 듣고 돌아왔다고 봐야 합니다.그야말로 분노하는 마음과 독한 말 한마디가 모든 죄의 온상이되고,부드러운
말과 미소 짓는 얼굴모습이 가장 좋은 선물이요 불공입니다.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을 조심하고 항상 웃으면서
바르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 제가 좋아하는 요일법문을 소개합니다.
월요일은 원래 웃는 날입니다.
화요일은 화가 다도 웃은 날입니다.
수요일은 수도 없이 웃은 날입니다.
목요일은 목이 터지도록 웃는 날입니다.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금방 웃는 날입니다.
토요일은 토라져도 웃는 날입니다.
일요일은 일이 없어도 웃는 날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스마일 운동을 생활화해야 합니다.이것은 돈 안들고 불공하는 최상의 법입니다.
그리고 월요일은 보시를 하되 달처럼 온 세상을 비춰주는 사람이 됩시다.
화요일은 불을 조심하듯 몸과 입과 마음을 조심하여 오계를 지킵시다.
수요일은 물로써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듯 타오르는 분노를 수행의 물로 끄도록 합시다.
목요일은 한 그루 나무가 끊임없이 성장하여 큰 그늘을 이루는 것처럼 부지런히 노력 정진하여 모든 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됩시다.
토요일은 아무리 더러운 오물이라도 흙으로 덮어주고 묻어 주면 훌륭한 거름을 만들어 내듯 잘못한 사람을
덮어 주고 묻어 주면 훌륭한 복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