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길목에서 서성이다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 졌다. 상구네 배가 방파제 끝을 돌아오다가 바위에 부딪힌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 인간 틀림없이 술 먹고 운전했을 거라고 수근 거렸다. 평소에 상구가 하는 짓을 봐서도 염치없는 말은 아니었다. 상구의 술주정에 대해서 말하자면 밤새도록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다.
매년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어 난류와 한류가 바뀌는 순간, 육지에서는 따듯한 공기가 생기고 바다 한류의 찬 기운 생기면 그것들이 서로 박치기 하여 수증기가 생기는데 그것이 해무다. 작년인가 금진항 앞 바다에는 해무가 피어올랐을 때다. 해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보인다. 그날 상구가 술 먹고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다음 날 새벽에 해경 배에 생포되어 돌아와서, 상구는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두들겨 맞고, 그날 홧김에 술이 더 취해 집안 살림 다 때려 부수고, 마누라인 성산댁은 그 바람에 도망 가버렸고, 며칠 후, 묵호 여관방에서 상구에게 잡혀서 돌아오는 적도 있다.
그렇게 몇 번을 도망가도 상구의 술버릇은 심해지기만 하고, 그래서 성산댁은 기여코 약을 먹고 말았다. 금진항 여자들 중에 약을 먹은 사람이 꽤 되는데, 그 약이라는 것이 주로 수면제다. 절대로 치사량 이상은 먹지 않고 속이 망가질 정도로만 먹고 며칠 후 깨어난다. 그리고 또 두들겨 맞고, 그러다가 남편은 술병이 나고, 마지막으로 마누라 또 고생시키다가 죽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왕 시작되었으니 상구의 얘기를 더해보자. 내가 강릉 시내서 금진항으로 막 이사왔을 때의 일이다.
"야! 이 놈아! 오늘 대 줄까? 하고 싶어?"
"야! 개새끼야! 니가 사내야! 그러고도 사내 구실 하려고, 인간아!"
왜소하다 못해 병약해 보이는 쪼그라든 그녀의 몸집에서 천박하고 폭발적인 욕설이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저 아줌마 왜 저래요?"
고모에게 물어 보았으나, 고모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평소의 그녀는 무척이나 소박하고 수줍었다. 도저히 지금의 그녀가 믿어지지 않았다. 고모 역시 금진 어촌 바닥에서 저렇게 확실한 여자는 드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런 그녀가 왜? 같이 있는 사내는 누구일까?
"저 아저씨는 누구예요?"
"신랑이잖아. 저 인간이 상구다"
"예?"
더구나 남편에게 저럴 수가 있을까? 그녀는 여느 어촌의 아낙네처럼, 남편과 같이 배를 타고, 트럭을 몰고 그물 손질을 하고 고기를 팔았다. 그런데, 그녀의 몸집은 억센 금진항 여느 아낙네와는 다르게 몹시도 연약했다.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과 아무렇게나 걸친 옷차림만 아니었다면, 강남의 귀부인 못지않은 품성이었다. 여기 어촌의 아낙네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면이 있었다.
"야! 씨발놈아, 동네 사람들에게 다 물어봐라. 니 놈이 인간이냐고. 장모 왔는데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통장 가지고 도망을 가? 예이, 썩어빠질 인간..."
그녀의 악다구니는 극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상구는 창피한지 자리를 뜨고 말았다. 술 안먹었을 때 상구는 양반이었다.
"옥희야! 여기 술 한 병 더 갖고 와라"
"그만 먹어라. 너무 취했다"
"이년아! 니가 먼데 그만 먹어라하고 유세떠냐"
옥희는 고모 이름이고, 그녀는 고모보다 두 서 너 살 나이가 많다.
고모는 안쓰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모네 집에 놀러 오려던 동네 아줌마들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자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야! 조카야, 니가 술 가져와라. 니 술 한 번 얻어먹어 보자"
아! 드디어 불똥이 나에게로 왔다. 잠시 망서리며 고모의 눈치를 보다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소주 한 병을 가져다주었다.
"야! 조카, 앞에 앉아 봐!"
"네........"
성산댁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날 성산댁이 술이 취해 쓰러지고 나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저 언니, 벌금 600 만원 맞아서 저래"
"네? 왜요?"
"대게 새끼 잡다가.......요즘 뭐 잡을 게 있나....나가 봐야 적자고..그나마 그거라도 그물에 걸리니.....600 만원 어디서 구해.....그러니, 신랑에게 저러지....저 언니..얼마나 착한데..."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고모와 마주 앉았다. 고모로부터 그녀의 사연을 들었다.
제주도 성산포에서 경찰관에게 시집을 갔다가, 경찰관 남편이 밀수 업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일본에 밀수를 하다가 걸려서 경찰 그만 두고, 계속해서 그 짓거리 하다가, 같은 밀수업자들에게 살해당해서 바다에 던져지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녀는 육지로 올라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서울 술집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금진항으로 내려와 남편과 같이 배를 탔다는 것이다. 그녀의 보증으로 배를 샀기 때문에 도망을 가고 싶어도 갈 수도 없는 처지란다. 빛더미 남편을 따라 와서, 그 빛이 자신에게 씨워지고, 그러다 600 만원 벌금을 맞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평소에 소녀 같이 청순한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구 저 인간 저래도 마음만은 착하다.”
“저런 사람이 뭐가 착해요.”
“아니다. 저 인간 술 안마시면 양반이고, 숫기도 없고.......옛날에는 금진항에서 젤 잘살았다. 워낙 꾀가 없어 남들에게 다 사기 당하고, 지 마누라 고생만 시키고 있지. 그게 다 술 좋아해서 그래. 저 인간 그래도 노름은 안하니 다행이지.”
해경 구조대가 상구는 간신히 구했으나, 바위에 걸려있는 배를 크레인 선으로 빼내는 도중에 태풍이 몰려오기 시작해서, 그만 배는 포기하고 말았다. 성산댁은 어판장에 퍼질러 앉아 실성한 사람처럼 넋을 놓고 말았다. 이제는 상구에게 욕지거리를 할 힘도 남아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그녀였다.
“저예요. 저 시집가요.”
“............”
“대전에 돈 많은 늙은이래요. 한번 봤는데 점잖게 생겼어요. 우리 xx이 잘 키워준데요.”
“그래.......”
갑자기 가슴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집채만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왔다.
“오빠는 괜찮아요? 저 이럴 수 밖에 없는 거 아시죠?”
“그래, 잘살아라. 내가 미안하다.”
“괜찮아요. 오빠도 뭐 잘못이 있나요. 저가 워낙 가진 거 없어서 그렇죠.”
훈춘에 있던 그녀의 딸아이가 서울로 도망을 와서 남자아이와 동거를 하고, 뒤따라 나온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하고, 내가 딸아이가 동거하는 집으로 들이닥쳤을 때, 같이 있던 남자 아이가 나를 방 밖으로 몰아냈다. 나는 간신히 집으로 들어가서 딸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딸아이는 엄마가 이혼한 것이 나 때문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고, 나는 굳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어떡하든 돕고 싶었다. 아이를 자극해서 싸우기는 더욱이 싫었다. 겨우 설득을 해서 남자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두 모녀를 서울에 남겨두고 돌아 온지 서너 달이었다.
“오빠도 이제 잘 살아야 해요. 술도 많이 드시지 마시구요. 저도 이를 악물고 잘 살거예요.”
“그래.......그래야지. 이를 악물어야지.”
“저, 이만 끊을게요. 오빠에게 마지막 인사 드리려고 전화했어요. 흐흐흑.”
“그래, 이제 절대로 전화하면 안된다. 알았지.”
“네.....흐흐흑.”
전화기에서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방파제 쪽을 바라보았다. 상구네 배는 산산조각이 나서 파도에 넘실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고, 성산댁은 여전히 망연자실 퍼질러 앉아 있었다. 갈매기도 바람에 날개짓이 기우뚱거렸다.
문득, 그녀의 집에서 넘어오던 북동리 왕고개가 생각이 났다. 구정뜰 그녀의 집에서 2 달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그녀와의 사랑놀음에 더 이상 아내는 참을 수 없었다. 아내의 이혼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옷가지 몇 개만 들고 집을 나와야 했다. 빈털털이 나를 그녀는 받아 주었다.
"장성열씨는 이 길 어떻게 알았어요?"
"네, 사냥꾼 따라다니다가........"
선배의 물음에 어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사실 그 말은 반은 거짓말이었다. OK길 북동리 피래산구간 의 솟대 표시와 리본 작업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길이었다.
"선배님, 피래산 넘어서 다른 길이 있어요."
나의 제안에 서내는 선선히 응해주셨고, 길을 확인한 결과 구간 일부를 그쪽 방향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그 길은 겨울에 나무가 앙상해지면 북동 저수지와 낙풍뜰을 내려다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몇 년 전 겨울, 난 그 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구정뜰 건너편 그녀의 집에서 글을 쓰다가 운동 삼아 걷던 길이었다. 마음 속에는 아내와 딸들 생각 뿐이었다. 가슴 속으로 얼마나 흐느꼈던지 가슴에 주먹만한 응어리가 잡힐 정도였다. 그 길은 운동삼아 걷던 길이 아니라 나를 자책하던 길이었다. 지척이면 갈 수 있는 집에 가지도 못하고 난 그 겨울 몹시도 방황하고 있었다. 가슴 아픈 길이었다. 더구나 아내에게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도 않는 길일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런 나를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 가세요."
그녀는 비장했다. 나는 비겁했다. 다시 짐을 들고 왕고개를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고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백산맥에서의 칼바람이 낙풍 벌판을 지나 내 볼을 아프게 때리고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상구와 성산댁은 금진항에서 사라졌다. 성산댁은 일주일간 자리에 누워 있다가 고향 제주도 성산포로 가버리고, 마누라를 기다리며 술만 퍼마시던 상구도 한 달만에 제주도로 따라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성산포에 간 상구는 술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성산댁으로 부터 고모에게 전화가 왔는데, 상구가 골프장에 취직이 되고, 성산댁은 집에서 살림만 한다고 했다.
“이제야, 그 언니 팔자가 필려나.......이 놈의 팔자는 언제나 필려나......”
성산댁의 전화를 받고 고모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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