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서해의 수도 없이 많은 섬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인구 24만의 작은 도시다. 이곳도 경찰은 있다. 이곳도 나름대로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사건들. 내가 하지 않았다고, 내가 당하지 않았다고 마냥 팔짱만 끼고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좋건 싫건 다 우리사회의 모습이다. 적거나 많거나 책임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그 일에 조금씩 관여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목포에 항구가 있는데 그 옆으로 수산시장과 어선들이 많이 있다. 일직선으로 죽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육지쪽으로 들어가면 목포역이 있다. 이곳이 번화가다. 젊은이가 적은 도시라 번화가의 크기를 가늠하자면 종로의 골목길 길이의 반틈 정도다. 그것도 한 두번 휘었다 뿐이지 복잡하지도 않다. 통 크고 낭만적이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목포는 맞지 않겠지만 이런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택시를 타도 끝에서 끝까지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고 어지간한데는 걸어서 한 시간안에 돌아다닐 수 있는 곳. 작고 낙후됐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심은 기본적으로 포부가 크지 않은 사람이다. 몇 십 년전 보안과에서 근무하고 난 이후 형사과로 발령받아 여기까지 내려왔다. 그렇지만 심은 오히려 이런 도시에 젖어들었다. 자기와 맞기 때문일까. 인간사에 대해 냉소적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 얼핏 보면 이런 이미지를 느낄 것이다. 작고 상처받고 억압받은 사람. 다른 사람도 쉽사리 그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 역시 사람들과 부둥켜 사는 것을 다소 불쾌해했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한 번 이혼한 뒤로 다시 결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결혼을 못한 것은 그가 인간이란 존재를 싫어해서도이지만 실상은 그가 흔히 말하는 병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육체적으로 생리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직 정신적인 문제다. 그러나 그는 만족한다. 이렇게 사는 것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툭 터지는 사건을 기분 좋은 음식을 먹은 후의 포만감처럼 멋지게 해결하고 난 후의 만족감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 뿐이다. 시체는 수산 시장과 다소 떨어져 있고 항구와도 떨어진 어선들을 정박해 놓는 곳의 바닷물 속에서 발견되었다.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기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이 범인의 DNA를 모두 씻어버렸을 것이다. 범인들이 머리를 지나치게 굴린 것일까. 그들은 그런 장비도 없거니와 아마 국과수에서 없을 것이다. 단지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이 아닐까. “야! 빨리 끌어내! 무서워? 후딱후딱 하란 말이야!” 심은 되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사건이다. 사건이다. 그의 가슴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옷도 벗겨버렸어? 뭐 아무것도 안나오것그마잉.” 주형사가 말했다. 한 때 앰뷸런스의 구급요원들과 시체의 상황을 비디오와 카메라로 찍고 있었던 사람들이 엉켜버렸다. 사람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기 할 일을 했다. “주형사. 다 찍었어?” “대강요” “이리 줘 봐” 심은 나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정력적으로 행동했다. 주는 그런대로 신경질을 참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이 차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심은 비디오카메라의 버튼을 함부로 꾹꾹 눌러대며 씨부렁거렸다. “아. 고장나겠네. 이거요. 이거. 빨간거.” “알어. 새끼야. 가만 좀 있어봐” “거. 현장에서 눈으로 보면 돼지. 굳이 비디오로 볼려 그래요?” 심은 묵묵히 비디오의 작은 화면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현장의 모습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이 까맣게 변하자 대강 비디오를 정리하고 주의 가슴에 던져버렸다. “지문은 나왔어?” “예. 그대로 있습니다.” 그들은 구급 침대에 뉘여있는 시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맨들맨들 하그만. 일단 지문으로 신원확인은 되겠그만. 이봐 강형사. 뭐 나왔어?” “아니오. 여 뱃사람들 시켜서 옷가지 좀 찾아볼라요.” “응. 그래 그래” 남형사가 모래밭에서 시멘트로 된 보도로 올라왔다. “아따. 시체는 오래 안됐는디?” “그래?” “하낫도 안 뿔엇당께. 버린지 얼마 안됐능가벼. 차라리 다행이제.” “어떤 개 호로 썅넘의 새끼가 이딴 짓을 해쓰까잉.” 심은 아무렇게나 욕을 씨부리며 범인을 저주했다. 피살자는 생전에 그다지 큰 곤욕을 치른 것 같지는 않았으나 발가벗겨져 바다에 내던져진 모습은 심의 공포를 자극했다. “심형사님 그만 정리해블죠. 암것도 없어라우.” 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해 볼 것이 없었다. 여기는 시체가 유기된 장소지, 살해된 장소가 아니었다. 시신의 신원이 확인돼고 사인이 밝혀질 때쯤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될 것이다.
2.
최고참인 심형사는 경찰서 한 구석에 앉아 검시를 하러간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조그만 파출소의 문이 열리고 주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가져왔어? 뭐래?” 주는 주섬주섬 소견서를 꺼내 심에게 가져갔다. 심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견서를 들었다. “사인은 교살? 목졸라서 죽였단 말시. 음...바다에 버려졌다. 시체 유기.” “예.” 시끌벅적하며 강형사와 남형사가 들어왔다. “아! 심형사님. 강간은 안당했다든디” “안당한게 아니라 모르는거제. 바닷물에 다 씻겨부럿당께. 정액이고 뭐고 암것도 없어.” 남형사가 토를 달았다. “주형사 너는 어쪄? 강간 당한 것 같어. 안당한거 같어?” 강이 물었다. 주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당한 것 같습니다.” 일행은 낄낄거렸다. 그들은 주형사를 놀렸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발견되지 않았다면 사건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건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심이 국면을 전환시켰다.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단 가족부터 만나봐야지. 피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원한관계 확인하고 여자니까 남자새끼들 잘 정리해봐바.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만.” “아따. 깝깝하요. 가족들 별 말 안하믄. 영구미결인가?”강형사가 말했다. “그렇겠지. 강형사랑 남형사는 가족부터 만나보지. 나랑 주형사는 전과자들 한번 살펴볼테니까.” “그래라우” 가벼운 작전회의가 끝나고 나서 다른 반에서 연락이 왔다. 소매치기 검거를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친구들을 도우러 갔다.
3.
피살자의 집은 단독주택들이 밀집된 곳에 있었다. 골목과 골목을 지나 그의 집을 찾는 것이 힘들어 보였으나 아직 치우지 않은 장례표식이 있어서 그나마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장례는 끝났다. 시신을 돌려보낸지 열흘이 지났으나 가족들의 상처가 치유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사건은 해결해야 하고 그들은 몇백톤의 모래 언덕을 작은 불도저로 밀어내는 듯한 부담감이 들었다. 벨을 누르자 한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피살자의 동생이나 오빠 쯤 되보였다. 눈에는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어려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사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남자는 목이 메여 말을 길게 하지 못했다. 강형사 역시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몇 가지만 간단하게 묻고 가겠습니다. 마지막 날 연희 씨는 어디를 간다고 했습니까?” “광주.” “아. 광주에 갔다가 몇 시에 온다고 했지요?” “도착할 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온다고 했습니다.” “아. 택시요.” “예. 택시 안에서” “아. 택시안...그럼 분명 택시를 타긴 탓었군요. 혹시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던가 의심가는 사람 없습니까?” “연희는 사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격이 나긋나긋해서 적이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 강형사는 남형사를 돌아봤다. 그도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생각지 않은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남자는 멀어지는 형사들을 나지막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건지 다만 생각을 하는 도중인지는 모른다.
“심형사한테 전화해봐” 강형사는 굳이 심형사에게 보고를 당장하라고 했다. 남형사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어차피 목표도 없는 전과자를 찾아본다고 경찰서에 눌러앉아 있는 노인인데. 그러나 남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 남형사요” “응” “피살자가 마지막에 택시를 탓다는디. 택시에서 집에간다고 전화를 했다하요.” “알았어” 전화가 끊겼다. 남은 코웃음을 쳤다. 정나미가 떨어지는 심의 성격이다.
4.
심은 전화를 받고 곧바로 전과자들을 검색했다. 택시강도다! 가장 유력한 것은 이 지역에 사는 전과자다. 광주. 전남. 14명. 광주 7명. 전남 7명. 목포에서 극점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3명. 목포에 사는 전과자. 1명! 나머지는 여수와 나주였다. 나주도 멀다. 무안이라면 모를까. 주소 : 목포시 용당동 용당아파트.......거기 살고 있을까. 한 번 찾아봐야지.
“아. 무턱대고 여기서 기다리면 잡힌다요. 이게 뭔 짓인지 나는 도통 모르겠당께요.” 남이 불평을 했다. “나도 몰라. 새끼야. 목포가 넓냐. 바다가 여기밖에 없잖아. 창 밖으로 봐라. 니 눈에 보이는 바다가 목포 바다여. 글지? 여기 콕 처박혀 있으믄 수상한 놈들은 다 보일 거 아녀.” “아. 용의자 집에서 잠복하는 것도 아니고” “심형사. 그 사람도 다 생각이 있겄지.” “야밤에 잠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교대해줄꺼다. 아마.” “에”
5.
김용범. 강도다. 택시강도. 심과 주는 문을 두드렸다. 낡아서 엇나간 초인종은 일부러 누르지 않았다. “없능가요?” “있을거야. 야! 용범아 형님 왔다. 문 열어라. 이 십새끼야.” 주는 처음보다 세게 문을 몇 차례 두드렸다. 쾅쾅쾅. 발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비교적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은 빼고 말이다. “어디 나가나?” “에” 누구냐고, 왜 왔냐고 묻지도 않았다. 전과자라면 으레 겪을 일을 그는 겪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경험과 가치관과 감성으로 하여금 그의 앞에 있는 사람들이 형사라는 것을 직감하도록 한 것이다. “어디?” 심이 물었다. “산책이요.” “흥” 주는 적어도 형사들이 왜 찾아왔는지 설명은 해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누군지 그냥 짐작만 하고서 전개되는 대화는 별로 소득이 없을 것이다. “아. 우리는 형사야. 알지. 택시강도를 당해가지고 여자가 죽었는데 말야. 뭐 아는게 있나?” “흥. 택시강도......아는 것 없어요.” “정말 몰라. 새끼야? 너 그 때가 언제였어?” 심이 말했다. “92년이요.” “그럼 인제 나온지 일 년 된거 아냐. 직업은” “공장 알아보고 있습니다.” “공장 다닐려면 대도시로 가야지. 이......” 심은 뚜렷하지도 않은 용의자를 모독하는 것이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욕으로 말을 끝맺으려 했으나 목구멍안으로 거둬들였다. 대신 심은 미래의 잠재적 용의자의 손을 찬찬히 살펴봤다. 손톱이 부러져있었다. “돈은 필요하지 않나?” 그의 표정은 대번에 어두워졌다. “후. 많이 필요합니다. 병원에 빛을 지고 있습니다.” “음. 가족이 아픈가 보네.” “내 혐의가 뭐요?” 형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뚜렷한 혐의는 없다. 단지 예전의 택시강도라 참고상 찾아왔을 뿐이다. 상대가 그들을 내치면 물러서야 한다. 법과 절차. “음. 그래 다음에 오지” 형사들은 그들이 처한 지위의 불안정함과 정직하지 못함을 깨닫고 순순히 얌전히 물러났다. 아파트를 나서자 주가 물었다. “손톱은...” “상대를 제압할 때 생기지. 목을 졸르거나 싸움을 하거나 칼을 잡거나” “그럼...” “기다리자고.” 형사들은 항로를 읽어버린 고깃배와 같았다. 뚜렷한 진로를 설정해줄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타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불안정한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 택시 강도. 확실한 건 그것뿐이다. 목포의 등록 택시는 수천여대. 기사는 몇 명일까. “가자 잠복해야지.”
6.
택시는 사납금을 낸다. 원칙적으로는 10시에 수납을 한다. 지금은 10시 30분. 택시 회사. 수백대의 택시가 모여들고 있다. 일부는 차를 놓고 집으로 가고, 일부는 다시 차를 몰고 거리로 간다. 무얼하러 가는 것일까. 밤바람이 거세게 분다. 온도가 바뀌면서 육지와 바다사이에 불던 바람의 방향이 역전됐다. 엄청난 바람이다. 목포 조금 안쪽으로만 가도 이 정도 바람은 겪지 않겠지만 외지 사람은 목포 어디에서건 이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금기 머금은 짠 바람이 부는 목포는 항구다. 소금기에 찌든 그들의 몸이나, 집단을 공포와 고통으로 몰아넣는 폭력 사건들에 찌든 우리 사회나 같다. 범죄자들은 낙오자이며 쓰레기다. 마냥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주는 그들 대부분이 부모에 의해 그들이 사회에 증오를 갖게 만든 냉대와 학대를 받았다. 이것이 굳이 대응시키면 사회의 소금기겠지. “들어가자. 주형사” 심은 앞장서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들이 모여있었다. 몇몇은 잡담을 하거나 고스톱을 치며 형사들을 신경쓰지 않거나, 문이 벌컥 열리는 것을 보고 낯설은 얼굴이 보이자 의아해 했다. 그들은 사장실로 곧장 향했다. 사업상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던 사장은 많이 놀란 듯 했다. 화를 내려 했으나 그들은 자기 휘하의 기사가 아니었다. 그는 화를 낼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들은 누구인가. “안녕하십니까.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사장은 당황했다. 경찰이 무슨일이지. 그는 사업상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 얘기를 들었을까. 그러나 형사들은 안에서 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고 알아도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좀...좀...앉으시죠.” “아.아. 긴장하지 마시고 그냥 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다만 참고상입니다. 참고상.” 사장은 다소 긴장이 누그러졌다. “아. 예. 그럼 일단. 저. 야! 차 좀 내와봐. 야. 김양아” 사장은 목이 쉬어라 악을 질러댔다. 잠시나마 억압된 감정을 풀려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긴장이 지나치게 풀려있었다. “이 부근에서 택시강도가 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상대는 여잔데......” “아. 택시가 우리회사건가요?” “그것도 아직 모릅니다. 여자는 죽었고요. 여자가 택시안에서 전화를 걸었답니다. 그래서 우린 택시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사장은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혹시 여기 기사중에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까?” “허허. 여기 사람들은 다 가난하지요.” “갑자기 돈이 많이 필요하거나 돈을 헤프게 쓰거나 이런 사람은 없습니까?” “아. 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비라든가. 동생 학비라든가. 하는 것들 때문이죠.” “뭐 대강 말씀을 해주시죠.” “에. 김복수라는 양반이 대출이 되냐고 물어보더군요. 동생 학비 대야된다고.” “대출이 됐습니까?”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병원비는?” “아. 그 사람은 대출 받았습니다. 해결됐습니다.” “그러시군요. 혹시 그 대출을 못했다는 사람 좀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사장은 휴게실에 머물러있는 기사들을 한 번 ?y어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밤바람이 아주 차가웠다. 사장은 주차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더니 기사 하나를 잡고 물어봤다. 사장이 말했다. “다시 차를 끌고 나갔다는데요.” 사장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차의 외양과 사진, 사양과 특징들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형사들은 모두 메모를 한 다음 숙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형사들이 회사를 나설때 사장은 따라나오지 않았다. 몇몇 기사들은 택시를 몰고 다시 시내로 몰려갔다. 장시간의 노동이었다. 형사들은 운좋게 김이라는 기사의 동료를 만나게 됐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김복수라는 사람의 동생이 대학에 다니는데 돈이 없어 휴학을 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동생의 학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병원비보다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치관과 생활, 사상을 모르는 이상 그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7.
강과 남은 용당동에 있는 전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동한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공장에 갈려면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한 달이 넘도록 하루 반나절 정도의 짧은 외출만을 하고 있었다. 누구를 잠깐 만나고 의견을 교환할 만한 시간.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일까. 그들의 화제는? 형사들은 그것이 궁금했다.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라?” “응. 긍거 같애. 안그러믄 지금 뭔가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새벽에 나가는지 모르잖여.” “잠복해야지라. 오늘부터.” “걸리믄 저 놈 인생도 진짜로 끝이여.” 전과자가 손을 든다. 버스인가 택시인가. 황토색 레간자! 택시가 멈춘다. 강은 급히 메모를 뒤져본다. 큰 글씨로 몇 줄 적어놓은 대략의 특징. “뛰어!” 강형사는 전력을 다해 뛰었다. 보이지 않는다. 대강의 특징은 맞다. 확실하게 그의 짐작과 사실을 대응시켜야 한다. 번호가 몇 번이지? 보이지 않는다. 보일 때까지 뛰어야 한다. 택시가 출발한다. “헉헉. 몇 번이여?” 강은 보지 못했다. 젊은 남형사가 그를 앞질러 택시를 ?i았다. “전남 가에 2584” “맞어?” “에” 우연이 아니다. 택시강도 전과자가 우연히 택시를 탓다. 형사들은 그것을 부인하고 싶다. “둘이 한 패 아녀?” 강형사가 노골적으로 의혹을 드러냈다. “맞다고 하고 싶은디. 둘 다 증거가 없응께.” “개뿔. 감으로 맞다 싶으믄 다 맞는거지.” “자.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고요. 저놈은 전과자여. 택시강도.” “응” “근디 택시 기사는 또 돈이 없어.” “응. 그럼 된 거 아녀?” “아니제. 기사가 돈이 급하게 필요한 건 아니잖여.? “전과자는......직업을 안 갖고 있잖여. 병원비는 잘 내고 있나?” “전화 한 번 해보까?” 전과자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다. 누가 병원에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는 어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확인해 볼 결과 언제인지는 아무리 추궁해도 답해주지 않지만 병원비는 모두 지불이 끝났다. 꽤 많은 돈인데도 친척도 없는 그가 능히 간병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택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회사에서도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택시를 가진 공범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군지 알아내야 한다. 증거. 필요하지만 반드시 절차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날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 수법, 정체. 그러나 범인들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택시? 택시에는 흔적이 남아 있을까. 강과 남은 잠재적 피의자의 택시를 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회사로도 찾아가지 않았다. 문제는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내는 것인데 이 작은 남자는 지나치게 깔끔하다. 머리카락 하나 남아있지 않을 성 싶다. 갖은 짜증과 실망을 겪은 끝에 일행은 용의자의 택시를 탓다. 강은 조수석에, 남은 뒷자리에 탓다. 뒷자리에 무언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다. 시트와 바닥 자체가 어두운 색이라 머리카락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았다. 시트 아래에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시트는 대나무 방석으로 덮여있었는데 남은 그것을 들춰봤다. 옆 부분 살짝 보이는 반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핏자국이었다. 아주 작은 점들이 잘개 흩어져 있었다. 족하다. 적어도 택시강도를 포함한 범죄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다. 강과 남은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남이 말했다. “발가벗겨진 시체가 더 있었으까?” “어. 있어. 택시강도인지는 몰라도.” “언제요? 그것이?” “우리가 발견한 게 마지막이여. 그 이상은 안나왔어.” 범행이 끝났을까.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인지. 같은 수법으로 숨진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공범 사이에 남은 일은 이제 무엇일까. 돈을 나눠갖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질 것이다. 수사를 하기엔 참 난감한 일이다.
8.
사건이 난 지 한 달 보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심은 느긋하게 자기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형사님 사건입니다.” “뭔 사건?” “김용범이 죽었답니다.” 심은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게 누군데?” “택시강도요. 전과자요. 예전에 한 번 만났지 않습니까? 지금 사건 때문에요.” “어떻게 됐는데?” “바다에서 발견됐습니다. 발가벗긴 채로 피살됐습니다.” 심은 얼굴을 찌푸렸다.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심히 불쾌했다. “뭐 별다른 건?” “지금 검시중입니다.” “함 가보지” 검시실엔 이미 남형사와 강형사가 들어가 있었다. 더 볼 것은 없는 것인지 그냥 둘러서서 잡담만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피살자가 아니었다. 심과 주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남형사가 그를 알아봤다. “아. 심형사님. 이놈 보로 오셨구마이.” 심은 대꾸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시신을 봤다. 익사인가. 그것은 몸을 갈라봐야 알 일이다. 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는다. 칼에 찔린 흔적도 없다. 머리쪽을 살펴보자 외상이 보였다. 둔기로 얻어맞은 모양새였다. 심이 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인이 이거야” “예. 아마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습니다.” “특이하군. 그럼 도구가 어디 있을텐데.” 형사들은 심에게 어떤 희망이 보일만한 지시가 내려지기를 기대했다. 계단을 수 십 칸을 뛰어넘어 고지를 점령하자. 지금은 액!숀!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하지만 실상 누구를 수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막막한 건 사실이었다. “계좌추적해봐.” 심은 그 한마디를 남겨놓고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계좌추적! 획기적인 변화다. 지금까지의 답보상태보다는 무언가 나올만한 여지가 있는 행동이다. “이 사람 죽은지 얼마나 됐지?” 주가 물었다. “얼마 안돼. 몇 시간 전이라는데.” “그럼 살인자도 얼마 경황이 없겠군.”
9.
계좌추적결과 특이한 사항이 발견됐다. 요 몇 달 사이 김용범이란 사나이는 엄청난 돈을 얻었다. 모두 병원비로 다시 지출하긴 했지만 정황상 그가 무언가를 했을 것이란 생각은 타당했다. 어제 늦은 저녁 다시 김복수라는 사람에게 거의 전 금액이 이동했다. 택시기사와 전과자가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란 가설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지금 몇 시지?” 심이 물었다. “오전 8시요.” “택시회사로 가보는거야. 그 기사라는 놈 택시를 뒤져봐야겠어.” 형사들은 모두다 사건을 논리적으로, 절차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도록 수사하고 싶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합리적이고 근거가 충분한 가설은 명탐정이나 훌륭한 경찰관이나 버러지 경장이나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넘겨짚는 것은 가설을 뛰어넘어 억측이다. 그렇지만 정황상, 느낌으로 짚는 짐작으로 수사가 진행이 된다. 명확한 단서를 기다리다간 영원히 답보상태가 될 것이란 게 주형사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망치를 갖고 싶었다. 기사의 택시에서. 그들은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느낌상으로 사장은 벌써 사무실에 앉아있을 것이다. 굳이 만나볼 필요는 없다. 그들로서도 택시 문을 열 수 있다. 열쇠 없이 열 수 있다. 경찰에게는 필수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저걸 겁니다.” 주형사가 손으로 레간자를 가리켰다. 황토색 레간자. “잣대 있나? 강형사?” “그람요.” 강은 잣대를 꺼내 운전석 창문을 몇 번 쑤신 후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뒤지지 말고 트렁크 열어봐.” 둔기는 트렁크에 있을 거란 심의 생각이었다. 트렁크를 열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아무것도 없다 였다. 물건이 없고 깨끗한 트렁크 안. 비엇다는 느낌이 그들의 공간 지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러나 관찰력 좋은 남형사가 구석에 놓인 쇠망치를 찾아냈다. “여??다.” 남은 망치를 집었다. “만지지마! 새끼야.” 심이 소리 질렀다. 남은 엉겁결에 망치를 트렁크 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누구 장갑 있는 사람 있냐?” “대강 손수건으로 해블죠.” 강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주섬주섬 꺼냈다. “국과수 불르지” “예” “이제 끝난것이여잉?”남이 무표정하게 되네었다. 주형사는 이 새파란 아침에 범인이 차를 놓고 달아나지는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생 학비도 되야된다고 했다. 잠적은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범행 흔적도 숨기지 못했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택시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형사가 뒤를 돌아본 순간 자신의 상황을 직감하며 멀리서 형사일행을 응시하고 있는 김복수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역설적으로 이 순간은 다른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긴 시간이었다. ?i아가야 한다. 소리질러야 한다. 놈이 뛴다. 도망간다. “저기 잡아!” 마침내 주가 소리를 질렀다. 상황을 재빠르게 알아챈 일행이 한 방향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심이 점점 뒤쳐졌다. 심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소리질렀다. “이따 구두 신은 새끼. 봐서 죽여버린다!” 형사들과 그와의 간격은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심리적으로 형사들의 추격은 그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최대한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 달렸다. 그러나 번잡한 아침시간에 변수는 엄청나게 많다. 골목에서 튀어나온 리어카와 마주 오는 쪽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승용차 사이에서 어찌하지 못하고 그는 휘청거렸다. 이후 3분여를 더 달린 뒤 그는 행인과 부딪쳐 쓰러진 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첫댓글 진짜 추리 같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