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교의 형성 과정)
지난달부터 청년성서모임 연수 준비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연수를 함께 준비하는 청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생각이 들곤 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어쩜 이렇게 손발이 잘 맞을까,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할까….’ 더 놀라운 것은 이 친구들이 그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일에만 집중하지 않고, 삶을 나누는 데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경험한 하느님에 대해 진솔하게 나누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매번 감동했습니다.
교의(dogma) 신학을 연구하고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에 교회와 신앙에 대한 교의와 신학자들의 저서를 연구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이지요. (교의는 종교에서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기본적인 교리나 원칙을 의미합니다.) 우리 삶은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반면, 교의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랜 시간 동안 교의는 위에서 아래로 선포되는 것이며 신자들은 그것을 따라야만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가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신앙의 질서가 확립된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초대 교회 교부들의 삶을 바라보면 교의를 선포한 최초의 과정은 우리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는 교의가 먼저 선포된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삶이 먼저였으니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 나간 올바른 삶은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지역 사회 안에서도 그들의 모범적인 삶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보편적인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교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삶에서 출발했습니다. ‘가르치는 교회’(ecclesia docens)에서 ‘듣는 교회’(ecclesia audiens)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로부터 믿음의 내용이 정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청년성서모임처럼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이들을 보며 오랜 기간 형성된 전통과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방식을 선택해 살다 보니 교회의 규정과 법도를 알게 되었고, 마음을 열고 나누며 서로에게 귀감을 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생활하던 방식’(lex vivendi)이 그들의 ‘믿는 방식’(lex credendi)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살아있는 교회의 전승은 삶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할 때 그 빛을 발휘하며 우리의 신앙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증합니다. 오늘날의 교의신학은 변화하는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2025년 1월 19일(다해) 연중 제2주일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