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마음이 주는 행복
겨울비가 내린다. 밤이 깊도록 빗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볍다. 그 소리에 벌써 봄이 묻어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달력을 뒤적여 보니 벌써 입춘이 지난 지가 여러 날이다. 절기는 어느새 봄인 것이다. 나는 아직 겨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늘은 땅의 절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눈 대신 이렇게 비를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좋다. 고요한 겨울 산중에 내리는 빗소리가 아주 포근하게 다가온다. 마치 옛 추억의 한 장면처럼 다가와 내게 따뜻함을 남긴다.
옆방의 주지 스님은 이미 잠들었나 보다. 간간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까지도 정답게 다가온다. 그 소리가 삶의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듣기 싫었을 그 소리가 이 밤 그렇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지금 내 마음이 무척이나 순하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비 소리를 받아들인 내 마음은 어느새 이렇게 순해져버렸다.
야부라는 한 선사는 이런 깨달음의 말씀을 남겼다.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우물까지 꿰뚫어도 흔적조차 없어라.” 나는 야부의 게송에 내 순해진 마음을 대입해보았다. 대나무 그림자와 달빛 같은 마음, 그 마음이 지금 내게 있는 것만 같다.
이 순한 마음이 주는 행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인간이 행복한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마음에 사랑이 가득할 때라고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그 말의 진실을 이 밤 나는 알 것만 같다.
마음은 그런 것이다. 순한 마음은 행복을 의미하고 동시에 더 이상의 구함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때는 가장 강할 때가 아니라 가장 작아졌을 때라고 한다. 가장 작아졌을 때란 마음이 가장 순해졌을 때를 의미한다. 순함은 언제나 자기를 주장하지만 순함은 언제나 모든 생명의 존재를 먼저 인정한다. 네가 있음으로 인해 내가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인해 저것이 일어난다는 생명이 법칙을 알고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는 아름답다. 그 삶은 언제나 용서와 이해와 사랑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순한 마음의 크기는 바다와 같다. 그 마음속에는 모든 것이 정답고 따뜻하게 용해되어 있다. 옆방 주지 스님의 코 고는 소리도 더 이상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고 이 깊은 밤의 불면까지도 순한 마음속에서는 다 정답다. 이것이 삶이고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넉넉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편안함과 고요함은 내 순한 마음들이 내게 건네는 선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나는 이 밤 한 아름 받고 있다.
내 마음이 괴로웠던 시간을 돌아보았다.
그때 내 마음은 순하지 않았다. 언제나 앞서거나 이기고자 했었다. 지난 시간들은 강하고자 했기에 괴로웠었다. 이것과 저것이 부딪치고 저것과 이것이 투쟁하는 나의 마음은 강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기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패배를 의미한다. 진정한 승리를 고요함과 편안함을 준다는 사실을 나는 이 밤 깨닫는다. 부드럽게 내려 내 영혼 깊은 곳을 울리는 겨울비처럼 나는 순한 마음의 고요한 승리자가 되고만 싶다.
곧 해제다. 한 철을 나고 산문을 나서는 마음은 얼마나 부드럽고 착해졌을까. 산문을 나서는 순한 마음들의 물결에 봄이 묻어오는 것만 같다. 빗소리에서 나는 고요한 마음의 승리자가 되어 찾아올 도반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출처 ; 성전 스님 / 관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