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낙인에 거래 끊긴 강서구 화곡동 빌라.
경향신문, 류인하 기자, 2023. 4. 30.
“화곡동에 새로운 피해는 많지 않은데 인식이 좋지 않아 추가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이미지가 너무 강해지면서 새 입주자를 찾기 어려운 집주인들의 새로운 고통이 있습니다.”(김태우 서울 강서구청장)
지난 4월 24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주재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 ‘HUG전세사기 피해자지원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 구청장은 “화곡동이 필요이상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새로운 새입자들이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2차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 5호선 화곡역과 2·5호선 까치산역을 끼고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은 강서구 내에서도 2030세대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곳이다. 출퇴근이 편리한 역세권인 입지인데다 상권이 고루 갖춰져 있으며, 무엇보다 바로 옆 양천구 신월동 등 인근 지역에 비해 저렴한 신축빌라가 다수 몰려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3월 기준 강서구 화곡동에 거주 중인 2030세대는 전체 인구(17만593명)의 38.5%인 6만5732명에 달한다. 강서구 전체 2030세대(17만9100명)가운데 36.7%가 화곡동 주민이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각종 지원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세사기 폭풍이 쓸고 간 28일 화곡동 공인중개업소들 대부분 손님이 끊긴 채 한산한 분위기였다.
“2주째 계약을 한 건도 못했어요.” 화곡동 A공인중개소 대표는 “화곡동 하면 전세사기 지역으로 낙인이 찍혀버려서 기존에 잘 살던 분들도 ‘나가겠다’면서 계약을 해지하는 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동네에 사는 임대인 한 분은 빌라가 4채 있었는데 세입자들이 다 나간다고 해서 올 초에 갖고 있던 아파트를 급히 팔았다”면서 “세입자 2명 보증금 주고 내보내고, 나머지 2명도 연말에 계약이 끝나서 미리 보증금을 마련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2주째 거래 없어” 한산한 공인중개사무소
평소라면 중개업소들이 한창 바빠야 할 금요일이지만 화곡동 공인중개소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앉아있는 사람들도 “옆 가게 사람인데 그냥 놀러온 것”이라고 했다.
B공인중개사는 “작년에 한참 ‘빌라왕’으로 시끄러울 때 좀 손님이 끊겼다가 올 초까지 또 괜찮았는데 인천 미추홀구가 터지면서 덩달아 다시 거래가 끊겼다”고 말했다.
책상과 의자 등 큰 집기구만 일부 남겨놓은 채 아예 문을 닫은 공인중개소도 곳곳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루종일 1건도 계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휴업 중인 곳도 많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C공인중개소 대표는 “(대각선 앞을 가리키며) 저기는 최근에 경기도 구리에서 터진 전세사기 매물을 공동중개한 게 확인돼서 경찰조사받으러 간 뒤로 문을 안 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수료를 좀 많이 받았다던데 면허정지 될 것 같다고 불안해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 누가 여기 전세들어오려고 하겠느냐”며 “나도 문만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혼자 사무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B공인중개소 대표는 “2~3년 전 외제차 몰고 다니는 컨설팅 업체들이 이 동네를 그렇게 휩쓸더니 지금은 다 사라지고 정상거래만 해 온 우리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화곡동 내 공인중개사들은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나쁜 임대인’ ‘나쁜 공인중개사’ 명단을 공유하고 있다.
D공인중개소 대표는 “2개월 전인가 공동중개(임차인과 임대인이 각가 다른 공인중개소에서 거래하는 것)를 하는데 임차인이 집을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계약금까지 넣었다가 임대인 물건에 임차권 등기명령이 돼 있는 걸 보고 우리쪽에서 먼저 계약을 깬 적이 있다”면서 “전세사기 매물은 아니었지만 요즘 화곡동은 그 정도로 엄청 보수적으로 중개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5월 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 가입기준이 ‘공시가격×126%’로 제한되지만 화곡동은 이미 지난 3월부터 ‘공시가격×120%’ 기준에 맞춰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관행’도 만들고 있다.
E공인중개소 대표는 “사장님(임대인)을 엄청 설득한다. 들어오겠다는 세입자가 있을 때 지금 이렇게 안 맞춰주시면 당분간 집 비워둬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면서 “그렇게 해도 화곡동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나빠지다 보니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못 들이는 집이 계속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30일 기준 4월 서울 강서구 다세대·연립주택 전월세 거래건수는 457건(계약일 기준)으로 전년 동월(1010건) 대비 거래량이 절반 이상 크게 줄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