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는 핵무기보다 위력하다' <6.25는 전쟁초기참전자에게 조용히 물어보라!><남조선 갔다 온 조선족들에 물어보라!>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6·25 전쟁 진실만 북한에 알려도 무너져> 이 제목은 말로 하늘에 별도 따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북한을 지탱하는 중추는 수령 우상화와 증오의 철학이다. 중추가 무너지면 무너지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 정말 6·25라는 진실로 중추를 무너뜨릴 수 있을 가. 정말 그렇다. 공산 이념은 증오의 철학이다. 이 증오 이념에 6·25 참사란 기름을 부어 더 활화 시켰다. 한편 이 참사를 일으킨 전범자를 전승으로 응징한 수령님이 만세인 것이다. 그런데 6·25 전범자가 수령으로서 민족의 대 참사의 주범이라고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가. 지금처럼 눈물 흘리며 만세를 부를 수 있을가. 최소한 나는 이 진실을 알고 탈북 결심을 할 만큼 충격 받았다. 또 이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으로 민간 탈북자로서 대북 풍선을 개발하여 날리기 시작하였다. 이 길만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통일이라고 확신한 행동이다. 이것이 나만의 진리이고 확신일가. 너무나 뻔한 진리이고 역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어떻게 대할가. 6·25 전쟁 기간의 대북 삐라를 대부분 보았는데 거기에 전범자가 누구라는 내용을 본 적이 없다. 그냥 항복하면 살려주고 광복을 찾는다는 식이다. 또 공산당 간부가 당신들을 총알받이로 삼고 있다는 욕뿐이다.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 뭔지 모르는 헛소리들인 것이다. 전후에 대북 삐라들도 마찬가지이다. 겪는 모든 불행의 근원인 전범자가 너의 수령이라는 것을 중점을 두고 반복 반복하여 세뇌시켜야 한다는 전략이 없다. 소위 최고 심리전 전문가들이 책상머리 논리로 10년 복무 인민군이니 나체 여사진을 보내야 한다는 식이다. 심지어 기초적인 언어마저 틀렸다. <헝가리, 폴랜드> 즉 영어 발음식이다. 북한에서는 <웽그리아, 뽈스까>라는 자체도 모르는 것이 최고의 전문가들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에 도착한 후 이런 것을 도와주려 6개월만 받아달라고 간청하였지만 <밥통>이 깨어질가봐 종래 불허한다. 대북기관은 북한을 살아본 사람이 주력이 되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니 그 결과 역시 상식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사명감과 밥벌이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가. 북한은 거짓이긴 하지만 사명감으로 한다. 6·25 전쟁 근거를 가지고 백 배 효과로 활용하는 것은 북한인 것이다. 라디오 인터넷을 막아 놓은 유일한 폐쇄 조건에서 이러한 <사명감>은 효과가 만발한다. 6·25 전쟁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탱하는 비결이다. -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가. 핵무기와 핵잠, 항공모함을 만들어 대항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를 칠 것인가. 다 망한 북한은 칠 것도 없다. 그럼 중국을 칠가, 러시아를 칠가. 일본을 칠가. 이렇게 보면 돈만 엄청 낭비하는 헛발짓 인 것이다. 한미동맹만 유지해도 되는 문제이다. 북한에는 6·25 진실만 알려도 된다. 그런데 헛발짓 정도가 아니라 자해를 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북전단 금지법이 그 대표적이다. 무뇌 같은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민간이라도 하도록 내버려두면 되데 이렇게 꽁꽁 자기를 완벽히 묶는 바보짓은 역사에 없을 것이다. - 끝으로 북한 사람에게 직접 전달되는 대북 풍선에 어떤 6·25 진실을 담아 보낼까. 거창한 역사적 사실을 보내도 소용없는 것이 북한이다. 비교할 근거를 모두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히 세뇌 당했던 본인이 한순간 깨달은 것이 무엇인 가로 마무리 하련다. - 1990년 8월 북한 철원군 대전리에 본 남조선 삐라 중에 6·25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북한이 먼저 쳤는데(침략) 그 근거는 흐르쇼브 회고록에 기재되고 또 귀순한 인민군 이학구 대좌가 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임은 탈북한 후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있을 때는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흐르쇼브라면 공산 종주국 소련 공산당 총 비서인데 어떻게 회고록을 써서 자유 세계에 알렸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또 이학구 귀순자 역시 도망한 자가 살려면 별 소리 안하겠나?! 역사적 진실이지만 비교할 자료가 없는 북한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스스로 6·25 진실을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침략을 당한 공화국이 어떻게 침략자의 수도를 3일 만에 점령한 것이 이상하였다. 1, 2차 세계 대전, 소독 전쟁 등 그 어떤 전쟁 사에서도 침략자가 오히려 수도를 3일 만에 먹힌 사례는 없었다. 이게 참 이상하여 진실을 알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냈다. 연구라고 할 것도 없이 간단하였다. 전쟁 초기 참전자를 조용히 만나보면 될 것이었다. <조용히>라는 뜻은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북한을 아는 사람만 안다. 정말 조용히 물었다. 주위에는 6·25 참전자가 수두룩했다. 단지 진실이지만 말 한마디에 죽을가봐 입 다물고 있는 것뿐이었다. 하여 연구원 앞으로 차례지는 공급용 술, 담배를 챙겨 들고 관할 채종농장(김형권 군) 화부(참전용사)에게 찾아갔다. 국가 연구원과 화부 사이는 평시 하늘과 땅 차인데 갑자기 뒤바뀐 대우를 받고 술 한잔 들어가기 시작하자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은 원래 조선족으로서 해남도까지 장개석 군대를 쳐부순 백전노장 팔로군이었다고 한다. 6.25 전야 조선족들만 차출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는데 신의주로 가는 압록강을 넘으면서야 조선에 가는 줄 알게 되었다. 원산에 도착하자 인민군 편제로 견장을 달아주는 데 기분이 나빴다. 편제가 없는 팔로군에서는 평등했는데 갑자기 너는 별 달고 나는 뭐야?! 하며 원산 시내에 나가 진탕 치듯 먹고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소련군 고문관이 오더니 군기를 잡고 배치한 것이 양양, 속초 `3.8선이었다고 한다. 앞에 적은 백골이 되도록 싸운다는 백골 부대라기에 긴장했다. 많은 전투 경험으로 보면 가장 힘겨운 대상이 죽기를 각오한 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4시 대포를 쏘고 쳐들어가니 이놈들이 백골이 되도록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빤쯔 바람에 죽고나 도망쳐 버렸다고 한다. - 이 대목에서 나는 속으로 아차! 우리가 정말 쳐내려 갔구나! 확신하게 되었고 대북전단에 이 내용을 핵심으로 기재하였다. 의심이 가면 전쟁 초기 참전자에게 조용히 물어보라는 방법론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 삐라의 핵심이다. 이 내용이 결정타여서 김정은이 김여정을 대변시켜 독기를 풍기며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라고 훈시한 것이다. - 남조선이 잘산다는 것도 이런 주법으로 전단에 기입했다. <남조선 갔다 온 조선족들에 물어보라!> 체험자에게 물어보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은 억만 번의 선전을 한순간에 물거품 만드는 위력이 있다. 물거품 정도가 아니라 반발까지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핵 위력화 될 수도 있다. 탈북자들이 여기 와서 속아 산 것에 대한 분노를 보면 증명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에 도착한 지 3일 만인 1995년 2월 21일 대북 정보 제공 내용에 첫 마디가 삐라는 핵무기보다 위력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아마도 <6.25는 전쟁초기참전자에게 조용히 물어보라!> 이 한마디만 계속 보냈어도 벌써 싸우지 않고 이겼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주법은 북한이 오히려 백 배 활용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아직도 이것을 못하고, 아니 못하게 하는 남조선이라는 것이다. 또 초등학교생도 깨달을 수 있는 이러한 상식과 방법을 세계 정보력 제일이라는 미국도 모른 다는 것이 참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식이면 북한을 이길 수 없다. 이미 보여준 것처럼 300만이 굶어 죽어도 유지된 것이 그 증거이다. 김정은을 위수로한 통지자가 굶어 죽을 일은 없는 것이 북한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 까. 이미 위에서 다 말했기에 생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