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며칠 전 밤 늦게 아내와 정동진을 지나갈 때였다.
"저기, 유라네 아니야?"
"유라네, 맞네, 근데 유라네가 밤에 여기를 왜......."
"아! 낮에 신랑과 대판 싸웠다는데.......어디 갈려고...돈을 찾지?"
유라네는 정동진 농협에서 야간 현금 서비스 부스 안에 있었다.
다음 날, 유라네 부부는 다시 화해를 했는 지 사이좋게 어판장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유라네에 관한 기막힌 이야기를 하자면, 작년 9월 고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을 할 수 밖에 없다.
"x대가리 안 서는 놈과 살아준 게 어딘데.....할망구가 망령이 났지...요새..그런 여자 어딨어? 느그들도 같은 여잔데..왜 그리 모르노! 지 눈깔이 지가 찌르제...그러니, 니들이 바다에서 요 모양이으로 살지...니들은 아즉 멀었다!"
내가 고모네 횟집에 막 들어서자, 고모는 회를 썰다말고 파라솔 아래 앉은 동네 여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자 고모는 머쓱해하며 다시 회를 써는 척 했고, 동네 여자들은 한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는,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며 의미 있는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 들었다. 내가 이 어촌에 들어온 이유가 만들어 지고 있었다.
"우리 고모 대단해......다른 여자들 같지 않아...."
"그래? 무슨 얘기야?"
"얼마 전에 약 먹었던 여자 있잔아...유라네라고.... 그 여자를 두고 동네 여자들이 입방아를 찧다가 고모에게 딱 걸려들었잔아....아까..당신 들어 올때.....'
"아! "
아내와 단 둘이 되었을 때, 드디어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고모도 유라네 욕을 했었다. 미친 년 약은 왜 먹어.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나와 소주를 마시면서 고모는 나의 동의를 슬쩍 구하기도 했었다. 유라네 약 먹은 것은 온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고, 아무도 그 여자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할 일 많은 어촌에서 아무리 죽을 일이 있다고 해도 약 먹는 것 조차 사치였다. 나도 그런 고모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 되었다. 나도 어느 새 어촌에 들어와 어촌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 특히 여자들의 생활은 고모 말대로 죽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새벽 2 시 정도에 남편과 바다에 나가 그믈을 걷어 아침에 들어 와서 판장에서 고기를 팔고, 아침을 먹고 남편들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지반, 여자들은 다시 부두에 나가 그믈 손질을 한다. 그리고 나서도 잠을 온전히 잘 수 있는 시간은 드믈다. 가끔씩 시간이 나면 토막 잠을 자기도 하지만, 대부분 낮 시간을 뜬 눈으로 세운다. 그런데, 약 먹고 죽을려고 했다는 것은, 동네 여자듫에게 욕을 먹어도 싼 일이었다.
게다가, 유라네는 이 동네 여자가 아니었다. 생김새도 모양새도 여느 여자와 다르다. 긴 머리를 노랗게 파마를 했고 눈은 쌍거풀 수술을 했는지 커다랗다. 웃기는 것은, 몸매다. 워낙 바빠서 배 나온 여자가 아무도 없는 동네에서 젊은 여자가 유일하게 배가 나왔다. 나이 역시 30대 대 후반으로, 5, 60 대의 동네 아줌마들에 비해 튀는 존재다.
유라네는 1 년 전, 장가 못 간 늙은 청년 영식의 아내로 자신이 나은 중학셍 아들을 데리고 이 동네로 시집을 왔다. 그리고 여느 어촌의 여자들 처럼 착실하게 일해 왔다. 처음에 탐탁하게 여기 않던 동네 여자들도 열심히 일하는 유라네늘 보고 인정을 해 준 터였다. 그런데, 약을 먹다니.
아내의 얘기를 듣고, 대쪽 같은 고모가 화 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모의 뜨거운 피는 할머니를 닮았고 그 피가 아버지를 거쳐 나에게도 전달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흐믓하기도 했다.
약을 먹고 몇 일 병원에 입원해 있던 유라네가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었고, 유라의 시어머니를 비롯해 동네 친척들이 모여 유라네 남편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유라네와 친했던 비슷한 연배의 동해 시내서 보험일 하러 다니는 남편의 4 촌 여동생은 건너 방에 누워있는 유라네와 독대를 하며 유라네 남편과 똑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둘이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그런데, 두 사람은 똑 같이 흔들림 없이 대답햇다는 것이다. 난 죽어도 그 사람 없으면 못산다고. 그래서 원수 같았던 시어머니도, 유라네에게 쌍욕을 했던 동네 친척들도 두 사람을 말릴 수 없었다.
그래서 유라네가 동네 여자들에게 더 욕을 먹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고모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만약 유라네가 남편과 살지 않겠다고 했다면, 고모 역시 동네 여자 처럼 욕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죽어도 그 사람 없음 못살겠다는데. 역시 우리 고모 최고였다!
유라네가 약을 먹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네서 착하다고 소문났던 유라네 남편은, 나보다 다섯살이나 나이가 많은 중늙은이다. 그런데, 장가도 못가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외아들로 둘이 살아왔다. 몇 년 전 조선족 여자를 잠시 데리고 살았는데, 야밤에 여자가 돈을 훔쳐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나서 유라네 남편은 방황을 하면서 마실줄도 모르는 술을 마시다가 술집에서 유라네를 만났다. 그래서 재작년에 유라네가 아들을 데리고 들어 왔던 것이다. 유라네가 약을 먹은 이유는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외아들과 둘이 살아 온 홀어미 특유의 질투심에 유라네가 스트레스를 받아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처음으로 겪어 보는 힘든 어촌 생활 때문에 죽겠는데. 게다가 유라네에게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남편과 같이 살기로 하고 아기는 절대 낳지 않기로 했다는데, 아기를 낳으라고 매일 같이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동네 여자들과 친척들에게도 며느리 욕을 했고, 동네 여자들 전부 시어머니 편을 들었다. 유라네만 나쁜 여자가 된 것이다. 소문을 듣기로는 유라네는 이십대에 이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안해 본일이 없었다고 들었다. 이 동네에 살려고 들어 온 것도 오로지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였다고. 그래서 절대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유라네는 너무 억울했다는 것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아무리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하고 들어 왔다고 해도, 시어머니의 협박과 친척 여자들의 입방아로 유라네인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라네 남편이 자지가 안 선다는데서야. 시어머니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 아무도 몰랐던 그 사실이 유라네의 폭탄 발언으로 온 동네에 알려졌다. 그래서 유라네는 더욱 쌍 소리를 들었다. 마치 아기 못 낳는 것이 유라네 잘못이 되는 양, 유라네의 폭탄 발언이 있은 후, 그 전의 욕은 욕도 아닐 정도로 유라네는 시달림을 당했던 것이다. 유라네 남편은 일 주일간 어디로 사라졌고, 유라네는 골방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유라네 남편이 나타났고, 시어머니와 함께 동네 친천들이 개떼같이 달려 들어 두 사람에게 따져 물었으나,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자지가 서지 않고 아이가 없는 것 조차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 입방아는 두 사람에게는 개소리일 뿐이었다.
"어제 저녁 밤에 유라네가 고모에게 왔었잖아......유라네가 유일하게 속 얘기를 하는 게 고모래....."
'그래서?"
"유라네가 아들이 6 개월도 되지도 않고 남편이 칼 맞아 죽었나봐...그 후 세 남자와 살았는데, 글쎄.....세 놈 전부 자지에 다마 박았었데....그 짓 하는데 그 동안 얼마나 아팠는지....거기가 헐어서...키키킥... 그리고 그 놈들 바람도 수도 없이 피었나봐...그래서, 유라네는 자지 큰 놈들이나 다마 박은 놈들과는 죽어도 안 산다고 했는데, 자지 안서는 남편이 나타난 거야. 그러니 얼마나 좋겠어...자지도 안서고..바람도 안피고 착하지...."
"하하하.....호호호"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동네가 떠나갈 듯 웃었다.
"근데 말이지....자지가 안서는 것은 아니래...살짝 섰다가 금새 죽는데...정액은 안나오는 모양이야...살짝 섰을 때 하긴 하는 모양이야..."
"그럼, 그렇지...그거 안하고 살 수 있나..."
나는, 마지막 말을 해 놓고 아내를 처다 볼 수 없었다. 아내는 그런 나를 원망하듯 눈을 홀기고 있었다.
"하여간, 우리 고모는 알아줘야 해"
나는 이런 말을 해 놓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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