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프리웰 산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내보내져 혼자 살고 있는 고모(67·여)씨
2020년 9월 프리웰 산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내보내져 혼자 살고 있는 고모(67·여)씨
장애인 거주시설이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 명의(名義) 가짜 동의서를 만들어 그 장애인들을 시설 밖으로 내보낸 행위(탈시설)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여부를 다시 조사하라고 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가 지시했다.
앞서 인권위는 ‘시설의 장애인 내쫓기를 멈춰 달라’는 공익제보자의 폭로를 기각한 바 있는데, 상급 기관인 행심위가 ‘재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해당 장애인 거주시설은 최근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를 벌이는 ‘전장연’ 관련 인사가 이사장인 사회복지법인의 시설이다.
11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지난 7월 행심위 지적에 따라 2020년 8월 제기된 중증장애인 9명 강제 탈시설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프리웰’이란 단체가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에서, 구두(口頭)로도, 행동으로도 의사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증 장애인들이 스스로 퇴소 동의서를 쓰고 시설에서 나갔다는 내용의 사건으로, 한 공익신고자가 퇴소 동의서 위조 의혹을 인권위에 진정하며 불거졌다.
인권위 관계자는 “행심위의 처분에 따라 재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가 된 지난 첫 조사에서 인권위는 퇴소자들이 ‘비자발적으로 나갔고, 동의서도 직접 작성한 게 아니란 등의 상황을 확인하고도 진정을 기각했다. “탈시설은 인간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 등의 이유를 대며 시설 측에 면죄부를 줬다.
이에 공익제보자는 상급기관인 행심위에 다시 제소했고, 행심위는 조사를 거쳐, 진정 대상이 된 중증장애인 9명 가운데 적어도 4명에 관해 인권위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행심위 조사에서, 4명 중 3명은 ‘장애인복지법 상 법적대리인 자격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장애인 대신 퇴소동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한 사람 조모씨의 퇴소동의서는 아예 조작된 정황이 나왔다. 조씨는 아예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였는데, 동의서에 본인 날인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행심위는 인권위 처분에 대해 “조씨의 장애 정도‧상태는 ‘심한 지적장애와 심한 뇌병변’인데, (인권위의 민원 처분에선) 조씨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퇴소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위와 판단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인권위가 조씨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적절한 처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소통 불가 중증장애인 조모(54)씨의 퇴소 동의서. 본인 도장이 찍혀 있고, 법적 대리인란엔 법적대리인이 될 수 없는 시설장의 도장이 찍혔다. /양천구청
조씨의 법적대리인란에는 당시 향유의집 원장이었던 정모(60·현 인천장애인주거전환지원센터장)씨의 도장이 찍혔다. 정 원장은 인권위·행심위 조사 결과에서 조씨가 ‘의사소통 불가 장애인’으로 확인된 데 대해 “왜 그런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내부 폭로자이자 진정을 제기한 공익제보자 박대성(47)씨는 “장애인의 건강 상태나 인권을 생각하지 않고, 문서를 위조하는 등의 방식으로 장애인복지법을 위반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강력한 처벌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가 가짜 동의서를 만든 시설의 비위에 눈감은 배경에 대해 “지난 정권에서 인권위가 ‘탈시설’을 미화하는 장애인 단체들의 눈치를 봐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배경엔 양측 간 얽히고 설킨 ‘인적 교류’가 있다고 박씨는 주장한다.
첫 진정이 있었던 2019년 12월 기준, 인권위엔 전장연 관련 인사들이 많았다. 당시 인권위 전문위원 2명이 전장연 산하 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출신이다. 한명은 2013~2018년 프리웰 이사장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그 뒤를 이어 지금까지 프리웰 이사장이다.
올해들어 지하철 중단 시위를 주도하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도 당시엔 프리웰 이사였다. 박 대표의 아내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는 당시 인권위원이었다.
인권위는 “전장연 관련 인물들이 당시 인권위 소속이었던 건 맞지만, 민원 처리엔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