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조정래
장님인 나를 눈뜨게 한 사람이 바로 조정래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해 까막눈이었던 나는
그의 책을 통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로 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장' 이라는 단어는 부담을 주기 때문에 별로 안좋아한다.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가장' 기억에 남는 날, '가장' 좋아하는 음식 등등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을 묻는다면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각각 제목을 달리 하고 있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 책들은 나에게 앞서 이야기했듯이 역사의식 뿐만 아니라
품성, 정치적 성향까지 바꿔놓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 작품들의 지은이이니
내 어찌 조정래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한강을 마치면서 더이상 대하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위 세작품을 쓰면서, 국가보안문제로 안기부를 들락거리기도 하고,
실제로 태백산맥은 한때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보다 그는 대하소설을 쓰면서 몸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이젠 그의 대하소설은 볼 수 없지만,
간간히 단권 소설로나마 접했으면 바램이 있었는데,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지난 2월 이 출간소식을 듣고, 계속 기다렸는데,
예상보다 조금 늦게 출간되었고,
기다림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내가 조정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느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더욱 뜻있는 책이었다.
나에게 있어 책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큰 행복이다.
...
조정래는 이야기한다.
"인생 황혼인데 쓸 건 많고 시간은 없어 안타깝다."
그는 아직도 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가 부디 건강하게 장수하셔서,
좋은 글을 계속해서 봤으면 좋겠다.
그는 현재 예술가의 삶, 종교인의 성찰 등을 다룬 장편 소설 서너권을 구상 중이고,
손자 세대를 위한 50권 짜리 전래동화 전집과 위인전도 집필 중이다.
1. 마침표
그가 신문사 인터뷰에서,
“'인간 연습´은 지난 20년간 천착해온 분단문학을 마무리짓는 글”이라고 말했다.
그렇듯 앞서 그가 지은 대하소설들에 대한 에필로그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설은 겉으로는 전향했지만 속은 여전히 비전향자인 ‘윤혁´노인이
‘사상의 조국´인 소련의 몰락을 목도한 뒤 회의와 좌절 끝에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신뢰로 새 삶을 맞이하는 내용이라고,
언론은 이 책에 대해 이처럼 소개하고 있다.
2. 비전향장기수와 사상
이 책은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소설이다.
인권문제 차원에서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사회문제가 있다.
그들이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닌데,
그들은 수십년씩 감옥에 있었다.
단지 우리와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
이것은 신념 문제이다.
그들이 그렇게 수십년씩 감옥생활과 모진 고문에도
바꿀 수 없었던 사상에 대한 신념.
우리에게 하찮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믿는 사상이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나서 들었다.
그러고 보면 사상과 비슷한 것에는 종교란 것이 있다.
종교에 대한 신념도 굽히지 않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은가?
요즘에 와서야 종교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했듯이
사상에 대해서도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3. 그들의 이야기
이 소설의 주인공 윤혁.
그의 사상적 쌍생아 박동건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박동건과 윤혁은 외향적으로는 전향한 사람들이다.
박동건은 구타에 의해 기절한 상태에서 전향서에 지장을 찍었고,
윤혁은 정신신경증에 걸려 비몽사몽간 전향서에 지장을 찍었다.
박동건은 죽기 직전까지 윤혁에서 하고픈 말은
전향하지 않았다는 말일 정도로 그들은 강제로 전향했지만,
실제로는 전향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들에 있어 쏘련의 붕괴는 큰 충격이었다.
그들의 사상의 조국이었던 쏘련의 붕괴,
그리고 북한 인민들이 굶주려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이 평생 희망이라고 믿어왔던 사상에 의문을 들면서 큰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이 충격에 몸이 망거진 박동건은 결국 죽음에 다다른 것이다.
윤혁.
그는 60년 4.19의 혼잡한 틈을 타 남파된 고정간첩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서점을 차리기로 계획했고,
그 준비를 위해 옛친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다음날 그 친구의 신고의 바로 감옥에 갇혔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30년를 감옥에서 지내고 출옥한 후,
감옥에서 친분을 쌓았던 운동권 경력을 가진 강민규의 도움으로
번역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길에서 도움을 준 고아남매인 기준, 경희를 알게 되었는데,
그 둘이 그에게 있어 큰 삶의 이유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윤혁에게 있어 그들은 꽃이요, 희망이요, 행복이었다.
그래도 출옥 후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의문점은
쏘련과 그들이 그렇게 신념하던 사회주의 몰락의 원인이었다.
학계에서도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들고 있듯이
이 소설속에서도 윤혁을 보호감찰을 하는 김형사의 입(자본주의 신봉자)을 통해
또는 운동권 경력을 하고 지금은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강민규(진보주의자)를 통해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강민규와 대화를 하면서,
윤혁은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면서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아간다.
그리고 강민규의 권유로 자신의 삶에 대한 수기를 출판하게 되고,
그 책을 읽은 보육원장 최선숙을 알게 된다.
최선숙은 한국전쟁당시 간호병으로 윤혁과 동명이인의 인민군 장교를 알았다는
인연으로 윤혁을 만나게 되고, 이후로 편지를 통해 친분을 쌓아간다.
그리고 최선숙의 권유로 윤혁은 기준, 경희와 함께
보육원에 들어가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하게 되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4. 인간은 진화중
조정래는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는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
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이것 또한
인간이 모색했던 것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사회주의는 시도한 지 100년도 채 안되어
큰 희생을 남기도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아직도 시험중에 있다.
물론 그 자본주의가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자본주의란 것은 인간사회에서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인간은 아직 진화중이다.
...
베르나르는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인간의 유전학적 missing link는 다름아닌 지금의 인간이라고 한 것이 생각난다.
즉 아직 지금의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되고 있는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5. 문학이란
문학이란 무엇인가?
조정래는 <작가의 말>을 통해
그 정의를 시원하게 이야기주고 있다.
"문학은 영혼의 호흡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