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남에게 좋은 일을 베풀어 은혜를 입히는 일을 기리는 말로, '갸륵하다', '거룩하다', '착하다', '인자하다'와 병렬하는 형용사고, '감사한다'는 '고마움에 감동해서 사례함'을 뜻하는 자동사다.
그런데 국어 사전들이 '고맙다'를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뜨겁고 즐겁다. 감사하다.'(이 희승 편저,《국어 대사전》);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거나 하여 마음이 흐뭇하게 느껍다. 감사하다.'(한글 학회 지음,《우리말 큰사전》)고 풀어 말하는 이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는 형용사로 규정하고, 말의 구조와 뜻과 문법 기능이 완전히 상반(相反)하는 '감사한다'와 동의어라 하고 (1) 고마운 생각, (2) '고마운 말씀', (3) 고맙게 여기는 마음씨, (4) '와 줘서 고맙네.' 따위 불구문장(不具文章)들을 용례로 늘어 놓아 많은 국민들에게 이지(理智)가 결핍(缺乏)한, 무식쟁이 같은 말살이를 시키고 있다.
글쓴이는 오래 전부터 신문인, 아나운서, 학자, 교수, 시인, 작가, 장관, 국회 의원 들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 드리고 이만 인사 드리겠습니다.', '고마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따위 표현을 들을 때마다 한없이 역겨워하고 고심하면서, 이 말들의 뜻과 문법적 기능을 골똘히 연구한 끝에 이와 같이 정리하고 그 쓰임새를 다음같이 생각해 봤다(O표는 옳은 용례, X표는 옳지 못한 용례).
(1) 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O)
:도와 준 사람의 행위를 기리는 말.
(2) 도와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O)
:도움을 받은 사람이 감동해서 사례한다는 말.
(3) 도와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O)
:고마운 행위를 강조해서 기리는 말.
(4) 도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X)
:자신이 감사하는 행위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서 우습다.
(5) 도와 주신 데 대해 진심(충심)으로 감사합니다. (O)
:감사하는 뜻을 더욱 정중하게 나타낸 말.
(6) 도와 주신 분께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O)
:(5)와 같음.
(7) 도와 주신 분께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X)
:자신의 말을 고맙다고 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
(8) 감사하신 하느님 (X)
→ 고마우신
(9) 고마우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O)
(10) 호의를 고맙게 여긴다. (O)
(11) 호의에 감사한다. (O)
(12) 남의 도움을 받으면,
1)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O)
2)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O)
3) 고마워해야 한다. (O)
4) 고맙게 여겨야 한다. (O)
5)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O)
6)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X)
7)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O)
8) 감사해야 한다. (O)
9)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X)
10)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X)
(13) 도와 주시면,
1) 고맙겠습니다. (X)
2) 감사하겠습니다. (X)
남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절대적인 신뢰감을 보이면서 "아무쪼록(부디) 잘(많이) 도와 주십시오."라 하고, 도움을 받은 뒤에, '대단히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와 같이 사례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도와 주시면' 같은 조건을 제시하고 '고맙겠다, 감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다운 예의와 정서에 어긋난다.
(14) '전국 노래 자랑'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께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X)
(1998. 6. 7. KBS1 TV 전국 노래 자랑 사회자)
부분→1)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고맙습니다.(O)
부분→2)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O)
(15) 도와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X)
(1998. 8. 26. MBC TV 뉴스)
1) 도와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O)
2) 도와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O)
3) 도와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O)
(16) 김 대중 대통령은 과거 일본에서 민주화 투쟁을 할 때 도와 준 인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X)
(1998. 10. 9. MBC TV 뉴스)
부분→1)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O)
부분→2) 감사했습니다.(O)
고령자(高齡者)들 중에는 '감사한다'는 일본말 잔재(殘滓)이므로 버리고 '고맙다'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지만, 그것은 오해다. 일본인들이 '감사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것이 일본인만의 고유한 정서를 지닌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그 뜻과 느낌이 우리말에도 맞으며, '고맙다'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의 도덕적 정서적 속성을 기리는 뜻을 지닌 형용사일 뿐이지, 자신이 고마움을 느끼고 사례함을 뜻하는 동사가 아니므로 그런 뜻을 지닌 동사, '감사한다'를 써야 한다.
위와 같은 글쓴이의 견해는 권위 있는 국어 사전에 실려 오래도록 정착해 온 말뜻과 품사 규정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어서 다소 송구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진리가 언제나 낡은 권위와 무관심한 절대 다수 편에 있기보다, 한없는 고독을 끈기 있고 줄기차게 이겨 내며 꾸준히 탐구하는 무명 야인에게 있음을 확신하며 이제 감히 내세운다.
식자(識者) 중에는 말의 대중성과 사회성을 내세워 어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대다수 언중(言衆)이 오랫동안 써 온 관용(慣用)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오래된 괴질(怪疾)을 지닌 사람이, 새로운 약과 치료법을 알려 주는 사람에게, 이런 병을 지니고도 죽지 않고 살고 있으니, 그대로 살다 죽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몸이 아프지 않아서 병든 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라도 그것을 알았으면, 약의 쓴맛과 칼로 째고 수술하는 고통을 참으며 고쳐서 심신을 건전하게 해야 하듯이, 오랫동안 옳은 줄 알고 써 온 말이 옳지 못한 것임을 알았으면 즉시 고쳐서 국어의 품위를 높여야 한다. 한번 잘못된 채 만연하면 고질이 되는 말의 속성 때문에 저절로 바로잡히지 않으면 교육으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건국 이래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리 교육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역대 정권마다 교육 개혁을 요란하게 외치면서 여러 가지 과제를 내세워 법석거리다가는 용두사미로 끝내면서, 모든 교육과 민족 문화의 기초가 되고, 영원한 민족의 운명이 걸린 국어의 고질에 대해서는 아주 무감각해서 털끝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서 온통 오염한 저질 문장을 수없이 많이 들춰 내서 유형별로 정리해 두꺼운 책으로 엮어서 대통령에게 신고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교육부에 보내면 말이 안 되는 구실을 내세워 안 고친다.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해도 문제로 삼는 학자 하나 없고 언론인도 없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영어답지 않은 표현이 몇 군데만 드러나도 언론이 대서 특필해 요란을 피우는 현상과 한심한 대조를 이룬다.
이제 우리 정부는 대오 각성해서, 자국어 보호법을 제정해서 가혹하다고 할 만큼 철저하게 실시하는 프랑스 정부를 조금이라도 본받아 확고한 국어 정책을 세워 각급 학교의 모든 교과서를 국어다운 문장으로 완벽하게 개편하고 모든 교육 기관과 신문 방송을 포함하는 각종 문화 관련 단체를 총동원해서 국어를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