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이주인권단체 활동가의 질문-‘와하’가 해줄 수 없는 것들
내가 일하는 한국이주인권센터는 2018년도에 아랍/난민 여성들의 오아시스 쉼터 ‘와하’라는 공간을 개소하면서, 지역(인천)의 아랍 난민 여성들을 만났다. 이미 우리 지역에서 아랍사람들의 통역을 돕고 있던 아랍계 여성들과 개소 계획을 함께 논의해 왔던 터라, 와하의 개소식은 지역의 아랍계 여성들의 따듯한 환영과 함께 많은 기대를 받았다.
와하의 개소식은 오히려 우리 센터가 지역의 아랍계 여성들에게 환대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분들이 기꺼이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준비하고 축하해 주었다.
지역사회 아랍/난민 여성들의 환대와 필요로 꾸려진 ‘와하’의 시공간
일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난민 여성들, 그러나 현실은∙∙∙
그 후 ‘와하’라는 공간의 역사는 미안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대를 좌절시키는 일들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역의 난민 여성들에게 쌓여가고 있던 필요와 요구들이, 당신들을 돕겠다고 만들어졌다던 센터에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영세한 비영리기관으로, 공간 하나 만드는 것으로도 거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다 쓴 단체와 활동가에게 그 필요들을 수용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활동가인 나 또한 내가 만나는 아랍 여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몰랐고 편견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한국 사회에서 마음 편히 방문하고 지역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활동과 힘 기르기를 할 수 있는 공간 정도가 되면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했기에, 하루 하루 등장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문제들,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청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 결국 와하와 함께하는 여성들에게 무엇이 된다고 이야기하기보다 무엇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일이 더 늘어났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찾기를 원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일자리센터는 극소수인 난민인정자를 제외한 난민관련 비자의 이주민들에게 직업훈련이나 직업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난민신청자들이나 인도적 체류자들이 출입국사무소에 근로계약서 등을 제출한 후 허가를 받으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양성적으로 직업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업주들이 이들의 비자가 일을 할 수 없는 비자라고 생각하고 고용을 하지 않는다. 출입국에서 허가를 받았으면 일을 할 수 있는 단순노무직종임에도 허가 받지 않고 일했다가 200만원이 넘는 벌금을 낸 사람들도 생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센터 역시 이 여성들에게 직장을 찾아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일자리 알선이 많은 노력과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원했는데, 난민관련 비자로 할 수 있는 단순노무일수록 장시간 노동을 요구한다. 결국 인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인권위원회에 지자체로서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라는 요구를 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고, 여전히 지자체의 직업훈련이나 일자리 알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예멘 여성은 자기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미용기술이 있기 때문에 와하 공간에서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헤어스타일링을 하면서 돈을 버는 소일거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랍 무슬림 문화에서는 여성 미용실과 남성 미용실이 따로 있고, 여성 미용실은 여성들만 이용한다. 한국의 미용실은 남성들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아랍 여성들은 히잡을 마음 편히 벗고 머리를 자르기 어려워했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우리 공간은 작은 단독주택 건물이었고 아이들도 많이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염색 등을 하냐고,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그 여성은 미용과 관련된 직업을 구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미용사는 전문직종으로 취업허가를 받기 어렵고, 수련 과정과 그에 따른 비용도 필요한 일이다. 그 여성은 여전히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은 미래와 생계를 고민하는 여성들의 절실함에 비해
영세한 비영리기관에서 지원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
생계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공동의 문제였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처한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시리아에서 유명한 월계수 잎 오일로 만든 알레포 비누를 제작해서 여성들의 포켓머니를 만들어보려고 했고, 구성원들 모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쯤 비누를 제조하고 팔기 위해서는 허가된 제조시설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수제비누 만들기에 대한 몇 번의 수업만 받고 포기해야 했다.
한국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여성들의 태도는 진지했다. 취미생활로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 이것들이 현재의 문제 해결과 조금 더 나은 미래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이기를 바랐다. 이들은 단순히 포켓머니 수준을 넘어서는 진지함과 절박함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러한 절실함들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우리 기관에서 여성들의 마음치유라는 명목으로 외부 프로젝트에 지원해서 마음치유를 위한 아로마 테라피 향수 만들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저 함께 만나서 힘듦을 서로 나누고 치유하는 시간 정도를 생각했지만, 늘 그 이상이 요구되었다. 여성들은 미래에 언젠가 도움이 되기 위해 그저 향수를 만들어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로마, 공병, 포장상자 등은 어디서 구입하는지를 포함하는 세세한 배움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우리가 초빙한 강사 선생님조차 한번도 받아본 적 없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난민 여성들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들은 늘 센터가 처한 상황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여유 자원이 없는 우리 기관은 활동을 위해서는 외부 프로젝트에 응모해야 했다. 그러나 매번 선정될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고, 같은 내용의 활동을 여러 번 신청하는 것을 받아줄 프로젝트를 찾기도 어렵다.
‘와하’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처한 조건에서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배움, 예를 들면 재봉술, 미용술, 컴퓨터 등과 같은 것인데, 이러한 배움은 장비도 필요하고 단기간의 학습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신청을 받아줄 수 있는 프로젝트도 찾기 어려웠고, 신청해도 떨어졌으며, 결국은 지원서를 더 잘 작성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나의 스트레스도 매우 컸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그들의 실망과 체념도 컸을 것이다. 그나마 배운 것이 있다면,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앞으로를 함께 하는 데 꼭 필요한 절차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국적 여성들이 서로 배우고, 의지하고, 협의하며 꾸려가는 ‘제2의 집’
이주민은 정해진 부품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아랍/난민 여성들의 오아시스 쉼터 와하가 개소한 지도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이사를 한 번 했고, 엄혹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쳤고, 초기 멤버들은 일부는 남아있고 일부는 기관을 떠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모였다. 난민 여성들을 주로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던 공간은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위해 체류하고 있는 아랍계 이주민들의 초청 가족 신분으로 온 여성들, 또는 유학생 비자로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랍 무슬림 여성들도 함께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을 떠안으면서,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논의해서 진행한다.
이 여성들이 가진 비자로는 자신의 부모 형제 자매들을 한국에 초청할 수는 없지만, 이 커뮤니티 안에서 인정받는 요리사이기도 한 여성들로부터 음식 만들기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언어 장벽으로, 또는 의료 비용의 문제로 편하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이지만, 우리 커뮤니티 안에 있는 여성 의사들이 건강에 관련한 조언과 강연을 해준다. 이슬람 종교 생활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증 역시 커뮤니티 안에 있는 종교학 전공자들이 강의를 통해 채워준다.
무엇보다 와하 공간은 본국에 있었으면 만나지 못하는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이 만나고, 또한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나누는 그런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공간은 소수의 몇 명이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와하 공간을 채우는 여성들과 함께 논의하고, 오히려 그 논의와 요구들에 이끌려가며 채워진다. 와하 공간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와하 공간의 여성들의 노력과 이해와 협의의 산물이다.
그들의 여정에 ‘와하’ 공간이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와하’ 공간을 “제2의 집”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공간 지킴이로서 감사하다. 그러나 와하 공간의 한계도 명확하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펼치는 삶을 사는데 있어서 한국에서 번번이 부딪치게 되는 제도적 장벽들은 결국 한국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다.
한국 사회는 이주민들을 한국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고, 그들에게 제한된 역할들을 부여하고, 그 범주를 넘어서는 사람들을 처벌한다. 또한 아랍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로만 여기고, 그들이 미래를 그리는 존재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주민들은 정해진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자신들의 고유한 존엄성을 가지고 누구나 존중 받는 미래를 꿈꾼다. 이주민들을 제한된 존재로 가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주민들이 그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차별의 경계를 없앨 때, 한국 사회는 더욱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필자 소개]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현재는 아랍여성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위해 센터에서 만든 ‘오아시스 와하’의 공간지킴이 역할이 크다. 이주민들이 처하는 어려움들을 상담하고 이주민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쌓여갔다. 그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있기도 하다.
박정형 ilda@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