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理(体) |
大 |
善 |
是 |
正義 |
因 |
事(用) | |
小 |
惡 |
非 |
不義 | ||||
有無 |
利 |
果 | |||||
害 |
대소유무가 이치이고, 시비이해가 일입니다. 가장 저급한 사람이 이해만 보고 삽니다. 누구나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利라는 것은 복락이고 행복이요 돈입니다. 대종사님은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이 오도록 만들라고 하셨죠. 돈이란 묘한 속성이 있어서 쫓아가면 도망 가버립니다. 이해에만 얽매여있는 사람이 가장 하근기이고, 나는 욕심 없다는 사람도 멍청한 사람입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욕심 많은 분입니까? 대욕은 무욕이라고도 하지만요.
是와 利, 非와 害는 인과의 관계 입니다.
돈을 벌려면 是, 옳은 것을 해야 돈을 번다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자리이타로 적당히 이득을 붙여야 하는데, 단골이라고 안심하고 그러니 손님이 떨어지죠.
是가 정의이고 선이라면, 비는 불의이고 악입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득을 보려면 옳은 것을 생각해라.
맹자님께 “무엇이 이득입니까?”하고 여쭤보니 “인의가 이득이라” 하셨답니다.
앞으로 밑지고 뒤로 큰 걸 먹는 사람이 이득 보는 겁니다.
큰 도인은 시비를 초월했다고 합니다. 선악을 초월한 자리.
어떤 것이 시인가?
비싼 옷 사도 남의 눈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지만, 싼 옷도 잘 어울리는 경우는
연구력의 차이를 드러내는 겁니다.
미련한 대학생은 술집 알바를 합니다.
저 같으면 장학금을 타든가 과외 또는 도서관 알바를 할텐데,
미리연마가 부족하니 술집에 가서 안 좋은 인연을 만나겠죠.
돈을 벌려고 해도 마음공부가 되는 여건을 고려해서 일해야 합니다.
불보살들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분들입니다.
교화가 되게 만들고 돈을 벌게 만들고 시간이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돈만 쳐다보고 선택하면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사를 해도, 물건을 하나 사도 전부 연구력의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에서 까닭이 들어가면 연구가 됩니다.
☞ 大 小 有 無
体 |
大 |
전체 |
合 |
無善 無惡 |
성품 |
몸 |
用 |
小 |
부분 |
나눈 것 |
惡 善 |
마음 |
손발 백해 |
有無 |
변화 |
오고 감 惡→善 相極→相生 降級→進級 |
분별심 |
生老病死 六途四生 |
보통사람은 小 하나만 보고 삽니다.
몸뚱아리만 보고 살고 산에 가도 나무만 보느라 기점을 못 잡기도 합니다.
유무에서는 有만 보고 삽니다.
보이는 것만 찾고, 나라는 존재가 고정된 줄로 압니다.
하지만 유와 무는 전부 변화하는 것입니다.
건강도 돈도, 지혜도 계절도 모든 게 변화합니다.
변화를 안다는 것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악이 선으로, 상극이 상생으로, 강급이 진급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 싫어하는 것은 그 반대로 변화하는 지름길이겠죠.
배우려는 마음 하나만 있어도 좋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딱딱하게 굳어서 유에 머물던 마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이 들어가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생각만 하고 게으름 피우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가 돌아갈리 없죠.
ㅇ 전도몽상
반야심경 강연할 때 일반인들은 어떻게 착각하고 사는가.
전도된 생각을 가지고 산다고 했습니다. 물구나무서면 거꾸로 보인다고 했죠.
그 중에 거꾸로 보이는 것이 상락아정이라고 했습니다.
常 공부 안해도 잘 살것 같고,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
樂 돈만 많으면 복락이 올 줄로 알고, 내 몸이 편하면 즐겁고 기쁘면 좋은 줄 압니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죠.
我 몸뚱아리만 나인 줄 알죠.
淨 내 몸이 깨끗한 줄 압니다. 숨 안 쉬고 3일만 있으면 누구든 구더기가 들끓습니다.
현상이 영원할 것 같고,
현상이 즐거움을 주고,
현상이 나타나는 게 나인 줄 알고,
현상이 깨끗한 줄 아는 것이 착각 중에 착각이요 전도된 생각입니다.
-진짜 영원한 건 성품자리입니다. 참 내 영혼, 이것이 불생불멸하는 진짜 내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마음공부에 공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한 천상락, 극락, 심락, 해탈락이 진짜 락,
영원하고 근원적인 락인줄을 모르니까 어둡다고 하죠.
-그러면 ‘나’는 뭐냐, 서울대 나왔고 재산이 얼마고 직책이 무엇이고 누구 엄마인게 나입니까?
무엇이 나인가?
-진짜 깨끗한 것은 무엇인가?
ㅇ 유무 -> 대 -> 소
유무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라.
내 몸이 나이고, 나라는 실체가 있는 줄로 알지만 그것도 없습니다.
동묘앞역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사람들은 ‘내가’ 내려간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뭐가 내려가는지 모르겠더군요.
몸뚱아리가 내려가는지, 느끼고 있는 내가 내려가는지,
아무것도 없는 내가 길을 찾아 가는 건지 참 묘합니다.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
이 때의 구족은 비로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입니다.
돈으로 말하면 원불교 만나기 전에는 돈밖에 모르지만, 죽어버리면 못가고 가니 허망하더라.
더 신심이 나면 돈이 있어야겠더라.
처음에 잘 먹고 잘 살려는 돈과 大까지 갔다가 와서 불사를 위한 돈은 다르죠.
ㅇ 대소유무의 가늠
직업을 선택할 때도 대소유무의 가늠을 잡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돈을 벌어주면서 자기도 벌 생각을 합니다.
보통 사람은 소가 좋으면 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도덕률로만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모든 법은 이치에 근간한 것입니다. 대와 소는 다르지 않은데,
죽어도 사가 있고 나중에 공이 있다고 하죠.
의사가 손님을 돈으로 보면 손님도 의사를 ‘돈밖에 모르는 구나’ 하겠지만,
대를 아는 의사를 보면, 손님도 뭔가 다르다고 느끼고 운영도 절로 됩니다.
마음으로 얘기하면, 보통 사람은 분별성(有無)에 매달려 삽니다.
그래서 금방 울었다 웃었다 하죠. 그런데 이 마음은 분별없는 성품자리(大)에서 나온 겁니다.
유무자리에서는 찰나찰나로 생주이멸하면서 변화무쌍하지만,
대자리에서는 무선무악 합니다. 매일 이 자리로 가줘야합니다.
몸 전체(大)에는 손가락 발가락 뼈(小)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이 생로병사합니다.
나는 생로병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것만 알아도 해탈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몸은 육도사생으로 변화합니다.
도인은 대자리를 체로 잡고, 소와 유무로 용을 삼습니다.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다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대를 여의지 않고 소와 유무를 활용해서 사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대자리에 어떻게 가느냐,
이것은 생각으로 사량으로 계교로, 책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자력으로 신분의성의 열쇠로 대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대각은 의심, 까닭이 있어야 합니다.
멍바우 장에 간다는 말이 그 말이죠. 주인 영감이 장에 갔다 와라 했는데
왜 가는지도 가버리니 주인이 정작 찾을 때는 없습니다.
결국 사리연구를 통해서, 대소유무는 우주와 인간의 심성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가늠을 잡고 책은 참고로 삼아라 하는 것입니다.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의 가늠을 잡으면 전체를 볼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가 갑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보니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리이타더군요.
전체를 보면서 부분을 다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현실에서 대를 모르니까 소에 떨어져 살고 대만 아는 사람은 허망한 데 떨어집니다.
소만 아는 사람은 잔챙이밖에 못됩니다. 크게 볼 줄 모르니까요.
유와무도 똑같이 유무 전체를 봐야합니다.
‘저 사람은 절대 변화 못할 거야’ 하는 사람은 유무자리를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교화가 어려운 거에요. 내 마음도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하겠어요? 내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교화도 할 수 있습니다.
핸드폰 사용법을 알려면 가능 빠른 방법이 뭡니까? 써 본 사람한테 배우면 금방 익힙니다.
다음 매뉴얼을 보면 되고, 해보면 됩니다.
마음도 스승한테 문답하고 경전을 살피고 연구를 하면 되겠죠.
강연 경전 회화 의두 성리를 통해서 말로 글로 생각으로 연구의 깊이가 있게 조절해주는 것입니다.
ㅇ사리연구의 목적과 결과
알고 보면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잘 살죠?
물론 이치에 근간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사리연구를 잘 하는 사람이 잘 삽니다.
영생을 행복하고 지혜롭게 잘 살 수도 있습니다.
사리연구의 목적을 보면,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 지어서 받는 고락에 대한 설명이 나오죠.
일을 모르면, 자행자지 해서 죄고로 가고 고통 속에서 삽니다.
이치를 모르면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의 원인을 몰라서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합니다.
보이는 현상만 보고 살고 생로병사의 변화를 모르죠.
사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못해서 전도몽상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공과 사가 하나다.’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실과 허위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망하고 요행한 데 떨어집니다. 게임, 투기, 노름 좋아하는 사람은 전부 사행심, 요행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천조의 이치와 인간의 일을 미리 연구해서 실생활에 다달아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하자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미리연구입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돌아 나오다가도 사고가 나고 일일이 해결하다보면 죽음이 다가섭니다.
미리연마를 안 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과거에는 도인들은 이치만 연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일만 연구했지만, 우리는 그런 구분이 없죠.
이사를 병행하고, 영육을 쌍전하고, 동과 정을 병진하고, 자력과 타력을 아울러야 합니다.
사리연구를 통해서 꿰뚫어져야만 요동치지 않습니다.
대자리를 잡으면 요동치는 가운데에서도 대를 여의지 않습니다.
정말 자기를 사랑할래도 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맨날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대자리에 가면 인정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정받을 때만 행복한 것은 노예생활입니다.
Q : 누군가가 요구를 했을 때 일일이 연구를 하다보면 실망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차라리 대자리를 생각해서 다 퍼주고 모르는 척 하는 게 낫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요.
대개 소자리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차라리 대자리를 생각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 맞는 말입니다. 진공을 체를 삼고 묘유를 용으로 삼는 것입니다.
대자리에 주력할 때 소자리도 드러납니다.
대종사님의 게송이 공부과정의 순서를 정확히 표현해주신 겁니다.
유무를 설명하고, 대자리를 설명하고 소자리를 설명합니다.
보통 유무의 현상만 보기 쉬운데 대자리까지 가줘야 합니다.
사를 놓고 사를 비워두고 설법이 있어야 하는데,
사를 놓지 않은 관계가 되면 사를 더 취하기 위한 적당한 방법이 됩니다.
그래서 재가자에게는 대자리를 더 얘기하고 출가자에게는 소자리를 많이 얘기해줍니다.
옛날 스님들은 유로 쳤다 무로 쳤다 하기도 하죠. 유에도 무에도 걸리면 안 됩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현상만 보고 사는 것보다
때로는 시비도 초월하고 대소도 초월한 다음에 다시 시비를 보는 방법이 더 수월하기도 합니다.
Q : 대자리를 공부할 때 시비이해가 발생하면 저 사람과 내가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 감정자체를 수용하고 느끼고 하는 식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어떤 식으로 대자리를 체 잡아야 하는 걸까요?
A : 진공을 체로 삼고 묘유를 용으로 삼는다는 말에만 묶여도 문제가 됩니다.
동시動時에는 주종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계속 사기 치는 놈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인 자리에서 계속 취사하겠습니까?
그럴 때는 감방에 보내거나 때리는 것이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체가 되는 거죠.
이와 같이 체와 용을 가늠할 줄 알아야 진리에 합당합니다.
그러니까 대종사님이 “내 자식이 총맞아 죽었을 때 어떻게 하겠냐.” 물어보니,
대부분 “그 사람도 부처님이니 내가 참겠습니다.”라고 답하죠.
대종사님은 “국가에 법이 있으니 국가에 맡겨라” 하시죠. 이 때는 용이 체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새로 오신분
이진성 교우님이 만덕산 훈련에서 만난 도봉교당 교도님의 따님 : 안녕하세요? 백가연입니다.
도봉교당에 비해서 인테리어도 예쁘고 좋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다니면서 좋은 인연 만들고 싶습니다.
김법준 교우님 친구 : 안녕하세요? 김혜진입니다.
오늘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구요, 종종 뵙겠습니다.
떡공양 : 이법륜 교도님(전농교당)
계란공양 : 김은태 교도님
첫댓글 명조교우님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려요...♡
와우.....이런 정성!!에 감동 감화...
앗, 수정하는 사이 언제 ㅋㅋ
계란 김은태님이신디...
아 넵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