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천 해인사의 문화재- 국가 지정 문화재)
1.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종 목 국보 제32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대장경은 경·율·논의 삼장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새긴 곳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한 숫자를 보면 81,258장이지만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 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또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종 목 국보 제52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조선시대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종 목 국보 제206호
지 정 일 1982.05.22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이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에서 새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후박나무를 짠물에 담가 지방기를 빼고 나무결을 삭혀 잘 말린 다음 판각하였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이 목판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있는데,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다.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 등은 비록 간행기록이 없고 전권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다.
고려시대 판화 및 판각기술은 물론이고, 한국 불교사상 및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4.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종 목 보물 제12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73-4 (치인리 산1-19)
시 대 고려시대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 9년(1104)에 승통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일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고려 인종 3년(1125)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5.합천 치인리 마애여래입상
종 목 보물 제222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85 (치인리 산1-1)
시 대 통일신라시대
해인사를 뒤로 돌아 가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옆의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높이 7.5m의 불상을 표현하였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크고 높직하다. 미소가 없는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는 날카로운 눈꼬리, 두꺼운 입술, 턱주름 등이 표현되었으며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뚜렷하다. 어깨는 넓고 당당하여 얼굴과 함께 자신만만한 자세의 불상을 나타내고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왼쪽 어깨에서 매듭을 지어 고리를 만들었으며, U자형으로 연 가슴에는 내의가 보이고 띠매듭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가슴에 대어 손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손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처리하여 생동감이 느껴진다.
머리 뒤에는 단순한 원형의 머리광배가 있을 뿐인데, 이를 지탱하는 자연광배가 몸광배 구실을 겸하는 것 같다. 얼굴과 두 손은 정교하게 조각한 반면 신체는 마치 돌기둥에 새긴 듯 옷주름을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이 불상은 각 부분의 표현이 힘있고 당당하면서도 세부수법에서 세련된 면이 보여 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추정된다.
6.합천 해인사 석조여래입상
종 목 보물 제264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44-21 (치인리 산1-1)
시 대 통일신라시대
해인사에 모셔져 있는 이 석불입상은 광배와 대좌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목이 절단되고 어깨와 두 팔이 모두 깨졌으며 발도 없어졌다.
민머리에는 작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많이 닳고 손상되었다. 머리에 비하여 왜소해진 몸은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마치 돌기둥 같은 느낌이 든다. 좁아지고 각진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양쪽에서 비스듬히 흐른 선이 중심에서 만나 날카로운 V자형을 이루다가, 허리 부근에서 U자형으로 바뀌어 두 다리 사이로 흐르고 있다. 오른손은 팔꿈치를 꺾어 가슴 앞으로 들었고, 왼손은 내렸는데 두 팔은 몸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이다.
이 불상은 신체 비례의 불균형, 평면적이고 형식화된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7.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종 목 보물 제518호
지 정 일 1970.06.24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41-22 (치인리 30)
시 대 통일신라시대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호국신앙의 요람인 해인사의 원당암 안에 있는 다층 석탑이다. 탑신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으로,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
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1단으로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노반(머리장식받침)이 낮게 있고, 그 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만이 높직하게 남아 있다.
청석탑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지만 이 석탑은 신라 말에 만들어져 청석탑의 선구라 할 수 있다.
석등은 탑의 옆에 있으며, 탑과 거의 동일한 시대의 작품이다. 땅과 맞닿은 6각형의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현재는 지붕돌 밑의 불을 밝히던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남아 있지 않다. 중간받침돌은 가늘고 긴 편으로 아래위에 상·하의 글자가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6각형으로 윗면은 편평하며, 머리장식은 원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을 뿐이다.
8.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종 목 보물 제734호
지 정 일 1982.05.22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과 유명한 승려들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해인사에 있는 목판은 모두 54종 2,835판인데 이 중 28종 2,725판이 국보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고, 26종 110판이 보물 제73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인사 고려각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에서 새긴 해인사 대장경판과는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청에서 새긴 것이며,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이 목판들은 금강경·화엄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유명한 승려,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다. 이곳의 불교경전들에는 대부분 간행한 연대와 목적 등이 남아 있어서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간행과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승 및 개인의 시문집과 저술 등에는 간행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일부분이 훼손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로서 당시의 불교사상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해인사 고려각판은 자체가 우리나라가 목판인쇄술의 실증적 자료이며 그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예술품으로 주목된다.
9.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종 목 보물 제999호
지 정 일 1989.04.1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808 (치인리 산21-1)
시 대 고려시대
해인사 조사였던 고려시대 희랑대사의 진영상으로 경상남도 합천의 해인사에 모셔져 있다. 고려 건국 당시 해인사 승려들은 견훤을 지지하는 남악파와 왕건을 지지하는 북악파(北岳派)로 나뉘어 있었는데 희랑은 북악파의 종주였다. 이 상은 화엄종 북악파의 진면목을 적절하게 묘사하여 화엄종의 진리를 무언의 형상을 통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설법하고 있는 우리나라 초상의 최고 걸작이다.
앞쪽은 건칠기법으로 뒷쪽은 나무로 제작한 이 상은 체구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큰 편이다. 얼굴은 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이 파였으며, 자비로운 눈매, 우뚝 선 콧날, 잔잔한 입가의 미소는 노스님의 인자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윈 몸에는 흰 바탕에 붉은 색과 녹색 점이 있는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바탕에 녹색 띠가 있는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그 밑에 금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미루어 원래 모습에는 금빛이 찬연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하여 노스님의 범상하지 않은 위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서 인간적인 따뜻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 초인 930년경 이전으로 추정되며, 진영 조각의 진수를 가장 잘 묘사함으로써 10세기 중엽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승려의 진영 조각이라는 점에서도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10.춘추경좌씨전구해 권60~70
종 목 보물 제1208-2호
지 정 일 2011.04.29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41-22 (치인리 30)
시 대 조선시대
이『춘추경좌씨전구해』는 송 나라 임요수가 두예(228-284)의『춘추좌씨경전집해』의 난해한 부분마다 초학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직접 구두를 떼고, 성명이나 지리 등이 중복되면서 다르게 표현된 부분에 ‘모인’ 또는 ‘모지’로 직주를 다는 방법을 채용하였기 때문에 서명에 ‘구두직해’를 붙였는데, 이를 다시 줄여서 구해라고 한 것이다. 임요수의 이러한 직해식 주석은 난해하다는 평을 듣던 두예의 집해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통속화한 것으로, 송·원 대는 물론 원․명 대에도 널리 유행하였는데, 조선 초에 이 책이 수입되면서 태종대에는 계미자로 간행되었고, 이어 세종대와 단종대에도 수차에 걸쳐 번각 등의 방식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조선 1431년(세종 13)에 경상도관찰출척사 조치와 도사 안질의 주선으로 청도지군사 주소의 책임하에 청도에서 출간한 책으로, 그중 전존한 11권 1책의 영본이다. 1431년(세종 13) 8월에 판각을 시작하여 3개월 후인 동년 11월에 완료한 것임이 권말에 수록된 발문과 간행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첫 장에 일부 훼손 부분이 있고 표지는 개장되었으나, 대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특히 기 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208-1호가 간행기록 부분을 어느 시기에 의도적으로 훼손한 것으로 판단되는 도서인 데 비하여 이 책은 해당 부분이 매우 선명하다. 책의 본체는 전체적으로 배접되어 있다.
『춘추경좌씨전구해』는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간행되면서 널리 읽혀진 책이나 알려진 범위에서는 완질이 없다. 비록 11권 1책의 영본이기는 하나 간행배경을 전하는 발문과 간행기록이 남아있어서 일의 주선자들은 물론 판각을 담당한 각수와 교정자 및 교감자 까지 상세히 알 수 있어 세종대의 서적출판을 비롯한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국가문화재로 기 지정된 보물 제1208호에 비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특히 서지학적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1.합천 해인사 길상탑
종 목 보물 제1242호
지 정 일 1996.05.29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85 (치인리 산1-1)
시 대 통일신라시대
해인사 일주문 가기 전 위치한 탑으로, 일반적인 절의 건물 배치와는 무관하게 길가에 세워져 있다.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세운 구조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바닥돌 위에 아래층 기단을 받고, 윗면에 얇은 괴임을 새긴 후 위층 기단을 얹었다. 위층 기단은 하나의 돌로 짜여져 다른 탑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탑신은 1층의 몸돌이 2·3층의 몸돌보다 크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각 층 모두 5단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고 모두 없어진 상태이며, 받침돌 윗면에 철주를 꽂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조그만 탑이 157개가 있으나,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탑에 대한 기록인 탑지는 4장인데, 통일신라 후기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에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5)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소탑으로, 탑지의 기록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12.해인사 동종
종 목 보물 제1253호
지 정 일 1996.05.29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808 (치인리 산21-1)
시 대 조선시대
해인사의 대적광전 안에 있는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의 종이다.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두 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부분에는 연꽃을 새겼다. 밑으로는 돌출된 9개의 연뢰가 사각형모양의 연곽 안에 있으며, 연곽 사이사이에는 보살입상이 배치되었다. 종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를, 아래로는 용무늬를 새겨 종 전체가 무늬로 가득 차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랫부분에는 다시 2줄의 가로줄을 돌리고, 윗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괘문을 두었지만, 아랫쪽에는 아무런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연곽 아래에는 조선 성종 22년(1491)에 만들었다는 양각명문이 있다. 이 종은 조선시대 종의 변천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불교 공예품으로도 가치가 크다.
13.해인사 영산회상도
종 목 보물 제1273호
지 정 일 1997.08.08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808 (치인리 산21-1)
시 대 조선시대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해인사에 있는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고, 길이 334㎝, 폭 240㎝이다.
이 그림은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무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영산회상의 법회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중앙에 있는 석가는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다른 무리들에 비해 유난히 신체가 크며, 떡 벌어진 어깨로 인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지만 둥근 얼굴과 엷은 미소로 부드러움과 넉넉함도 느끼게 한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많은 무리들이 대집단을 이루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서로 닮아 도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채색은 밝은 홍색과 녹색 바탕에 흰색과 금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옷과 대좌 등에 표현된 색상과 문양에서 정교함과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영조 5년(172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린 그림으로 주변에 무리들이 많지만 적절하게 배치하여 시선을 탁 트이게 해주는 구도와 격조 높은 색채와 문양, 정교한 필치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림에 기록된 글로 화가와 제작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16.합천 해인사 감로왕도
종 목 보물 제1697호
지 정 일 2010.12.21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808 (치인리 산21-1)
시 대 조선시대
1723년 심감, 신오, 득총이 조성한 해인사 감로왕도는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화임에도 구성이나 존상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의 감로도 형식이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이다.
화면 구성은 제단을 중심으로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지는데, 망자를 천도하기 위해 강림하는 불보살이 그려진 상단부분이 강조된 반면, 의식이 거행되는 장면과 천도의 대상이 되는 망자의 모습이 매우 조밀하게 표현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감로도가 상단에 불보살, 중단의 의식장면, 하단의 망자 등으로 구성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상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철위산을 표현한 산수를 배경으로 도량에 강림한 칠여래가 크게 강조되어 그려졌으며, 그 왼편 아래로 아미타삼존이 제단을 향해 내영하는 모습을 그려 의식장면과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관계가 이어지도록 구성하였다. 아미타삼존불 아래에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있으며, 제단 아래에는 금빛 발우를 든 아귀와 합장을 한 아귀를 배치하였다. 제단 오른쪽에는 번을 든 인로왕보살과 석장을 든 지장보살을 그려 지옥의 문을 깨 망자를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일련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천인, 왕후제상을 비롯하여, 전쟁으로 죽은 이, 우차에 깔려 죽은 이, 홍수로 죽은 이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해인사 감로도는 화면 구성이 유기성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불보살을 비롯한 각 존상의 세부 묘사와 녹색, 홍색을 중심으로 분홍, 노랑, 청색 등이 조화가 뛰어나다. 또한 배경을 이루는 청록산수는 안견화풍으로 그려져 중앙화단과 불화간의 영향관계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7.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종 목 보물 제1777호
지 정 일 2012.10.3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통일신라 말~고려 초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목조불상으로 1m가 넘는 크기에, 조형성은 물론 조각적인 완성도까지 갖춘 작품이다.
동글동글한 나발, 이상화된 얼굴과 당당한 신체 표현, 신체에 감기듯 팽팽하게 걸쳐 입은 편단우견의 착의형식과 더불어 치켜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형태, 긴장감 넘치게 조각된 옷주름 등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
복장유물로는 다라니, 발원문 그리고 후령통 등 여러 종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1167년경과 1490년의 중수 때 납입된 것이다. 특히 1490년에 납입된 후령통은 안립 절차에 입각하여 정확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조상경』이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복장의식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사씨 일가에 의해 납입된 반야심경의 발원문은 1167년(고려 의종 21)에 불상에 대한 중수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여서 이 불상의 하한연대 결정에 결정적인 자료이다.
이 밖에 1150년, 1156년, 1166년에 각기 판각한 『대비로자나성불경등일대성교중무상일승제경소설일체다라니』가 발견되었다.
복장물 가운데 3점의 조각보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조각보의 역사가 5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홑저고리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후령통 내부의 오보병은 그 구성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는 독특한 방식을 갖추고 있어 직물사와 복장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8.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종 목 보물 제1778호
지 정 일 2012.10.3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1. 반야바라밀다심경
이 경전은 당 현장법사가 번역한『반야바라밀다심경』이 전체 4면의 절첩장 형식으로 되어 있다. 상하간 19.7cm, 무계, 1면은 6행 16자, 2~4면은 5행 16자이며, 표지 제첨은 10.5×3.3cm의 크기에 ‘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고 먹으로 쓰여 있다.
권말제 다음에 “복위선백부상서공부시랑사위왕생서방견불문법지원인성시정해구월일봉삼보제자국자진사사겸광지”(삼가 돌아가신 백부이신 상서공부시랑 사위가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불법을 듣게 되기를 기원하여 <이 경을> 인출한다. 때는 정해년 9월 모일이다. 삼보를 받드는 제자이며 국자감 진사인 사겸광은 쓴다.) 라는 주필로 쓴 지문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경력을 지낸 인물이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지문에 보이는 사위는 문공유(? ∼ 1159)의 묘지명을 쓴 사위(검교태 자대보 승무낭 항시상서공부시랑을 역임)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이 맞다면 이 지문은 1159년과 가까운 정해년인 1167년(고려 의종 21)으로 추정되고, 이『반야심경』은 12세기에 판각 인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복장 유물의 시대를 추정할 때에도 이 지문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2.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16∼20
이 경전은 동진의 불타발다라가 번역한『대방광불화엄경』진본 60권 중 권16~20의 잔본 1책이며 호접장본이다. 상하단변, 좌우쌍변에 반곽 24.5×15.8cm, 무계이며, 반엽이 17행 34자로 된 소자본 화엄경이다. 판심에는 ‘진십육’, 권차, 장차 순으로 되어 있으며, 표지가 없고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거란본 계통의 번각본으로서 함차의 표기가 없는 점에서 사찰본으로 추정되는 귀중본이다.
19.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종 목 보물 제1779호
지 정 일 2012.10.3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크기나 착의법 그리고 표현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시대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여겨진다. 다만 세부적인 표현과 제작(속파기) 기법 상의 미세한 차이, 과학적 분석 결과 등을 참고할 때, 법보전의 상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다만 1167년을 하한으로 볼 수 있는 발원문이 복장에서 발견되어 이 불상이 늦어도 고려 1167년 이전에 제작된 상임을 알 수 있다.
1167년 이 지역 유력 세력이었던 사씨와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중수, 고려 14세기 후반에 화살 명장 송부개의 중수 참여, 그리고 1490년 조선 왕실 주도로 이루어진 개금중수 사실만으로도 한국조각사에서 중요한 불상이다.
또한 이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현재까지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중 최대·최고 수준이다. 법보전과 동일한 내용의 발원문 2매 외에도 17종의 다라니가 확인되었다.
이 밖에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섬유류 유물이 함께 복장되었다.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요선철릭(허리에 선장식이 있는 철릭), 답호, 저고리, 사경낭, 주머니, 직물 편 등 12점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것은 1490년에 납입된 것으로 저고리를 비롯하여 보자기, 오색후혈장엄 등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현전하는 고려시대 복식 유물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복장유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요선철릭이나 답호 등은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더불어 1490년에 납입된 홑저고리는 조선 초기의 저고리 유형을 알 수 있어 그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
종 목 보물 제1780호
지 정 일 2012.10.30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조선시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조성되어 1167년(고려 의종 21)과 14세기, 1490년(조선 성종 21)에 중수된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1779호)’에서 수습한 복장전적 중 일부(8건 37점)이다.
①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51∼57: 12세기 목판본. 가로 18.5cm, 세로 30.2cm. 동진의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총 60권의 진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제51~57권이다. 1행에 34자가 배치된 소자 판본으로 거란본(거란에서 편찬된 대장경)을 바탕본으로 하여 판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②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1∼10: 12세기 목판본. 가로 18.7cm, 세로 30.2cm. 당나라의 반야가 번역한 총 40권의 정원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제1~10권이다. 1행에 34자가 배치된 소자 판본으로 거란본을 바탕본으로 하여 판각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③ 금광명경 권3: 12세기 목판본. 가로 57.2cm, 세로 29cm. 축 형식(두루마리, 17장 연결). 호국신앙의 중요 경전으로 여겨지는 책으로, 북량의 담무참이 번역한 전4권 19품 중 제3권이다. ④ 반야바라밀다심경: 12세기 목판본. 가로 11.6cm, 세로 26cm. 절첩(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책) 형식. 당나라 현장이 번역한 《반야심경》이다. 말미에 ‘정해년 9월 국자감 학생 사유직이 부친의 무병장생을 기원하여 경전을 인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해년은 1167년(고려 의종 21)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불상을 중수하며 이 경전을 비롯한 복장물들을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⑤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12세기 목판본. 가로 49.5cm, 세로 26.6cm. 축 형식(15장 연결). 당나라 현장이 번역한 《약사경》으로, 변상도(경전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그림)가 있다. 사찰에서 펴낸 사간판이다. ⑥ 초조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12~13세기 목판본. 가로 46.8cm, 세로 26.9cm. 축 형식. 고려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에서 찍어낸 《약사경》이다. 총 52축이 발견되었는데, 훼손 없는 판본은 30축이다.
⑦ 백지묵서사경: 12~13세기 필사본. 제2~9장 가로 281.5cm, 세로 14cm. 축 형식(9장 연결). 중반과 후반부에 당나라 규기의 《아미타경소》 일부가 초서로 필사되어 있다. ⑧ 감지금니문수최상승무생계법: 1326년(고려 충숙왕 13) 필사본. 가로 6.4cm, 세로 8.3cm. 절첩 형식. 인도 출신 승려로 고려에 온 지공이 자신이 번역한 《문수최상승무생계경》에서 계율 관련 내용을 간추려 감지(짙은 남색 종이)에 금니(금물)로 써 제자 각경에게 준 책이다. 변상도가 있는 작은 절첩으로, 제작연대가 적혀 있다.
8건 모두 전래본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거나 귀중본·유일본으로,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1.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
종 목 보물 제1799호
지 정 일 2013.04.29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조선시대
‘합천 해인사 지장시왕도’는 1739년에 대시주 처옥의 발원에 의해 수화원 혜식을 비롯한 6명의 화승이 관음전 불화로 조성하였다. 구도에서는 지장삼존과 시왕, 판관, 지옥사자, 선악동녀, 옥졸 등 31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밀도 높게 표현하되, 중앙의 본존에 비하여 권속들을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함으로써 많은 권속들을 효과적으로 배열하였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형태에 안정감이 있고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채색은 녹색과 적색을 중심으로 차분하면서도 안정된 색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인물묘사에서 수염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 것에서 화승들의 필력이 숙달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이 불화는 현존하는 명부전 지장보살도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불화로, 18세기 전반 경상남북도 지역 불화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22.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
종 목 보물 제1806호
지 정 일 2013.07.16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권490 목판’은 1245년(고려 고종 32)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하여 완성한 경판이다.
내전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불경이고 음소는 음에 대한 해석을 뜻하는 것으로, 내용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여섯 가지 실천덕목인 육바라밀다를 설명한 것에 대한 주석이다. 본문은 반야가 한역한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의 10권에 대한 음의가 수록되었고, 권말에는 ’을사세 고려국 대장도감 봉칙조조‘의 간기가 있다.
지금까지 대장경 목록에도 없이 인쇄본만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 경판은 대장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3.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2
종 목 보물 제1865호
지 정 일 2015.03.04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치인리 10)
시 대 고려시대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2는 당의 실차난타(652~710)가 신역한 주본 80 화엄경 가운데 제72권으로 현재 해인사 사간판의 모본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고려대장경을 간행할 때에 저본으로 사용되었던 수창 4(1098)년 판본의 국내 전래본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이며, 불경과 불교학 및 서지학의 연구에는 물론 고려시대 목판인쇄문화의 연구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을 귀중한 자료이다.
|